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5화
카트리나가 말했다.
“오염된 아티팩트는 그냥 사용할 수 없어. 반드시 정화작업이 필요하지. 착용자를 오염시키기 때문이야.”
“오염되면 어떻게 되지?”
쓸 만한 영상 좀 건질 수 있으려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나. 신체의 일부가 썩기도 하고 미치광이가 되어버리기도 해. 선량했던 사람이 살인마가 되기도 하고, 멀쩡했던 자식이 패륜을 저지르기도 하지. 어쨌든 확실한 건 안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거야.”
카트리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잘못했다가 그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군.”
차진혁은 ‘오염당하면 조회수 터지려나?’ 와 같은 생각을 하느라 카트리나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이걸 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카트리나. 네가 해줄 수 있나?”
“적당히 오염된 거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내 수준을 초월했어. 이 정도면 정화 전문가를 찾아야 해.”
“혹시 아는 전문가가 있나?”
“아는 전문가야 많지. 다만 이런 아티팩트를 손상없이 정화시킬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훼일러 가문의 가주. 만인의 성자 가르시아 정도는 되어야 할 거야.”
* * *
다음 날.
차진혁은 곧장 아르비스 서버로 향했다.
명예시민인 그는 아르비스 내에서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었고, 곧장 훼일러 가문으로 향했다.
-근데 문제는…… 훼일러 가문에 오르기가 무진장 어려워.
훼일러 가문은 신성제국의 북쪽 끝단.
‘눈보라 산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가 불어닥쳤다.
눈보라를 헤치고 계단 앞에 서자 낡은 나무 팻말이 하나 꽂혀 있었다.
[고행이 정신을 맑게 하리라]
-초대장이 있으면 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어. 그나마 눈보라만 버티면서 올라가면 되는데 초대장이 없으면 계단 사용도 불가. 그럼 결국 날거나 등산해서 올라야 한다는 건데 정말 어려워. 결계들이 엄청나게 중첩되어 있는 곳이라서.
수많은 결계들이 중첩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길.
그 길에 계단을 설치한 것이라, 저곳 말고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인위적인 결계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그곳의 결계는 자연재해 같은 것에 가까워.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니 산맥 전체가 거대한 결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확실히 저 계단 쪽이 생로(生路) 같기는 했는데 계단이 굉장히 가팔랐다.
전문 등산인이 아니면 오르기 어려워 보였다.
르세핌도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내가 훼일러 가문에 초대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볼까?”
“…….”
대답하지 않는 차진혁을 보며 르세핌은 약간 안도했다.
차진혁이 드디어 사람 같아 보인 것이다.
대자연의 힘 앞에서 김철수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때가 있구나.
“내가 초대장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줄 거야.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역시 안 되겠다.”
“응? 뭐가?”
“고행 콘텐츠가 화제성이 있나 좀 검색해 봤어.”
르세핌의 예상과 달리 차진혁은 대자연의 힘 앞에 굴복한 게 아니었다.
다만 힘겹게 눈보라를 뚫고 계단을 오르는 콘텐츠가 과연 조회수가 잘 나올 것인가를 고민했을 뿐.
“딱히 인기 있는 콘텐츠 같지는 않네.”
그렇다면 괜히 시간과 노력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뇌룡을 타고 날아가는 게 낫겠다.”
“……뭐?”
르세핌은 귀를 의심했다.
저 산맥의 휘몰아치는 마법력과 눈보라를 보고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아무리 뇌룡의 힘을 빈다고 해도 저 결계를 뚫어가면서 비행하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그녀는 길잡이답게 차진혁을 말리려고 했다.
“내가 초대장을 요청할게. 넉넉히 일주일이면 충분해. 초대장을 받아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자.”
“아니.”
말하자면 지금 메인 콘텐츠를 1주일이나 쉬라는 의미였다.
엘튜버에게 그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엘튜버의 덕목은 규칙적인 업로드와 성실함 아니겠는가.
“내가 어떻게든 요구해서 시간을 줄여볼게. 3일!”
르세핌을 새로운 경쟁자로 삼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두더지우먼이 먼발치서 뛰어왔다.
르세핌 입장에서는 무척 거슬렸다.
‘아르비스 시민도 아니면서 여긴 어떻게!’
두더지우먼이 크게 외쳤다.
“내가 안내해 주겠다, 두지!”
르세핌이 차진혁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뭐해? 빨리 뇌룡 소환 안 하고.”
* * *
훼일러 가문의 가주 가르시아가 눈을 번쩍 떴다.
회의실 한가운데 백염이 타올랐고, 그 가운데 뇌룡의 모습이 보였다.
산맥에 자연의 정기가 워낙 가득하여 그 어떤 생명체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기는 했지만 뇌룡은 무척 의외였다.
‘자연의 뇌룡이 아니다?’
뇌룡의 머리 위에는 김철수와 르세핌이 타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르세핌? 르세핌이 어찌 저리 무모한 시도를.”
차라리 초대장을 보내달라고 했으면 보내줬을 것을.
가르시아의 부관. 표범계 수인족 게르독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초대장을 발송해놓을까요?”
그가 보기에 저건 너무 무모한 시도였다.
“어차피 금방 돌아갈 겁니다.”
뇌룡이 아무리 강대한 존재라고는 해도 저런 식으로 산맥을 통과하여 여기까지 오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게르독. 저 자들이 산맥을 통과할 수 있다고 보나?”
“절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지?”
“김철수가 눈보라와 냉기 마법을 잘 다루는 대마법사라면 모르겠지만 김철수는 검객이지 않습니까?”
가르시아가 잠자코 게르독을 쳐다보자 게르독은 아차! 싶었다.
“크흠, 엘튜버 아닙니까? 저건 불가능한 수작입…….”
게르독이 눈을 크게 떴다.
‘결계들이 부서지고 있다?’
하나는 그렇다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 김철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 같은 모양새로.
* * *
차진혁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템빨이구나.’
여태까지는 플레이어의 순수 능력에 의지하는 플레이를 많이 해왔다면, 지금은 아이템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송하영이 구해다준 ‘해금액’ 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해금액은 자연적/인위적으로 조성된 마력의 흐름을 뒤틀거나 망가뜨리는 권능을 담은 액체였다.
이름 높은 연금술사 공방에서만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가격이 아주 비쌌다.
(참고로 송하영은 아르비스 유명 공방들의 VVIP가 되었다.)
“이래서 템빨이 중요한 건가 봅니다.”
게다가 이 해금액은 차진혁과도 상성이 아주 잘 맞는 아이템이었다.
-좋아, 너무 좋아, 너무 맛있어!!!
룰 브레이커로부터 탄생한 미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무구.
해금액을 빨아들여 결계를 부수는 작업은 미리에게 굉장히 유리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차진혁은 해금술 신비까지 부릴 수 있는 입장.
그리고 르세핌의 길안내는 상당히 훌륭했다.
“좌현 12도!”
꽝!
차진혁이 미리를 휘둘렀다.
미리로 안 되는 부분에는 해금액 포션을 통째로 던져서 결계를 약화시킨 뒤 해금술을 곁들였다.
‘아슬아슬했다!’
결계 하나를 겨우 파훼했다.
그렇지만 모든 결계를 다 부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설산의 결계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꽈앙!
가끔은 몸으로 때워야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뇌룡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그대라 할지라도 이런 명령은 지나치다!
“절대결계로 잘 막았잖아.”
-그렇다 해서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나도 그래.”
실제로 차진혁 또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괜히 이 산을 날아서 통과하려는 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후우웅-!
엄청난 기세의 눈보라가 몰아쳤다.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고, 옆 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센 폭풍이었다.
뇌룡의 몸이 일순간 수십 미터나 뒤로 밀려 날아갔다.
“대박각이라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 가운데 뇌룡은 차진혁의 희미한(그렇지만 매우 흥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뇌룡은 당장에라도 뇌전을 토해내 주변을 박살 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살을 에는 이 눈보라와 수많은 마법의 격류가 뇌룡의 육체와 정신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주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지금은 일단 비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뇌룡조차도 순식간에 격류에 휘말려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 * *
우여곡절 끝에 차진혁은 훼일러 가문의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훼일러 가문은 과연 신성제국의 가문답게 신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바깥은 어마어마한 눈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으나 이곳은 오히려 따사로운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거대한 신전 양옆에는 항아리를 든 여인 조각상이 각각 세워져 있었는데, 항아리에서 반짝이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진혁은 바닥에 내려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근래 들어서 가장 큰 위기였다.
그만큼 긴장감 연출에는 성공이었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22억을 돌파하는 기염을 선보였다.
역시 결계를 부수면서 들어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 무식한 방법이 통할 줄 몰랐다, 김철수.”
누군가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와 차진혁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일순간 하얀빛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차진혁의 숨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르시아?”
“그래, 내가 훼일러의 가주, 가르시아 훼일러다. 만나서 반갑군, 김철수.”
차진혁은 반색했다.
훼일러 가문의 가주가 직접 마중을 나와있을 줄이야.
“네가 이곳에 왜 찾아왔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얘기가 쉽ㄱ…….”
“네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어째서?”
“엄밀히 말하면 너는 가문의 침입자다. 초대장도 없이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와 결계를 파괴했지. 신분이 확실한 자이고, 아르비스의 시민이기에 강압대응을 하지 않았을 뿐, 그대의 방문은 지나치게 무례했다.”
자신의 뜻을 전달한 가르시아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고 훼일러라는 거대 가문을 이끌어가는 수장.
눈썰미라면 자신 있는 편이었다.
‘왜 좋아하고 있는 거지?’
실제로 차진혁은 꽤 설레하고 있었다.
‘서사가 생기고 있다!’
가르시아가 갑자기 나타나 ‘오, 훌륭한 성도여, 암석거인의 사제를 내가 정화해 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면 차라리 머리가 아팠을 것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뚫고 왔는데 결말이 너무 쉽게 나버리면 용두사미가 되어버릴 테니까.
이런 식으로 반응해 줘야 재미있는 영상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가르시아도 방송을 좀 아나 보다.’
이렇게까지 협조해 줄 줄은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