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4화
“이번에 얻게 된 보상은 두 종류야.”
두더지우먼이 손바닥을 탁! 치며 약간 과장된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인 뒤 팔짱을 꼈다.
“두 종류라고, 두지?”
그러면서 은근슬쩍 르세핌 쪽을 쳐다봤다.
르세핌은 무언가를 추적하고 있었는데(도망친 사무엘의 흔적을 쫓는 중이었다), 두더지우먼은 그걸 아주 한심하게 봤다.
‘봐라! 방송에 더 적합한 길잡이는 이 몸이시다, 두지!’
“지금 당장 가르쳐주면 좋겠다, 두지!”
굉장히 안달 난 모양새로 차진혁을 닦달했고 차진혁은 그런 두더지우먼 덕분에 흡족해졌다.
반대로 르세핌에게는 조금 실망했다.
도망친 암살자의 흔적을 뭐하러 찾고 있단 말인가.
미래에 강해져서 나타날 샌드백을 찾는 것 따위보다는, 이렇게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방송 분위기를 띄워주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르세핌은 아직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첫째는 던전 자체의 클리어 보상.”
두더지우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간절하기까지 한 그녀의 표정에 좋아요 숫자가 급증했다.
‘역시 두더지우먼이다.’
두더지우먼이 앵글에 잡히면 시청자 숫자와 좋아요 숫자가 급증하는 현상은 지속됐다.
차진혁은 두더지우먼에게 미묘한 경쟁심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고대 암석 거인의 사제복이 주어졌어.”
───
[(오염된)고대 암석거인의 사제복]
───
“오오! 엄청나게 크다, 두지!”
인벤토리에서 꺼내 든 아이템은 흰색 사제복이었다.
팔 부분이 불타 사라졌지만 나머지 부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얼핏 보면 거대한 천원단인지 사제복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얀색 융단이 넓게 뻗어있는 것 같았다.
“이걸 잘라서 옷을 만들면 꽤 좋은 방어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긴. 김철수 너도 슬슬 템빨의 중요성을 깨달았겠지, 두지!”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쳇, 쥐새끼 같은 놈!’
르세핌은 사무엘 마이에르의 흔적을 완전히 놓쳐 버리고 말았다.
온전히 사무엘을 쫓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면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두더지우먼이 너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두더지우먼처럼 김철수에게 달라붙었어야 했나?’
그녀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
도망친 암살자를 쫓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김철수 옆에서 리액션 하는 것이 먼저인가.
일단은 길잡이로서 더 중요한 것은 도망친 암살자를 쫓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하필이면 지금 두더지우먼이 김철수 옆에서 ‘방송에 더 어울리는 길잡이’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봐, 카일 경.”
“?”
“내 옷을 좀 갈가리 잘라주겠어?”
“옷을?”
“어. 수위에 안 걸리게 잘 잘라줘. 혈흔이 보이면 좋겠어.”
“……명예로운 검황대의 검은 죄 없는 자를 해하지 않는다.”
“카리나의 꿈이 길잡이라고 하던데…….”
카리나는 카일의 딸이었다.
올해로 열다섯 살이 된 카리나는 길잡이가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인 카일은 카리나에게 최고의 스승을 붙여주고자 노력해 왔으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길잡이들은 카일의 성에 차지 않았는데, 정말 반열에 오른 길잡이들은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애초에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력도 아니었고 말이다.
“기사의 검은 사사로이…….”
“저번에 슬쩍 보니까 카리나의 자질이 대단하더라. 특히 추적 쪽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것 같아. 스승만 잘 만나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을 텐데.”
카일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저런 언변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나는 스웨딘의 검황대장, 명예로운 검객이다.
“카일 경. 딸의 꿈을 위하여 휘두르는 아버지의 검. 아주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롭고 아름답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
그런가.
이건 명예로운 검인가. 어쩔 수 없군.
카일이 검을 휘둘렀다.
이 장면이 방송에 잡히지 않은 걸 확인한 르세핌은 절뚝거리며 차진혁에게 다가갔다.
“놓쳤…… 다, 크윽……!”
모양새만 보면 치열한 전투 후에 겨우 복귀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차진혁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풀썩 쓰러졌다.
“미안해. 놓쳤어.”
그 모습을 본 차진혁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차진혁이 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비겁한 암살자 놈. 길잡이를 공격해?”
차진혁이 르세핌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르세핌은 기절한 척 눈을 감고 팔을 늘어뜨렸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사무엘 마이에르! 고생했어, 르세핌. 네 원수는 내가 꼭 갚아주마.”
눈을 감은 르세핌은 남몰래 웃었다.
‘이것이 길잡이의 관록이다, 두더지우먼!’
* * *
차진혁이 이번 던전 클리어로 얻은 보상은 두 개였다.
하나는 (오염된) 암석 거인의 사제복.
또 다른 하나는 우주급 시나리오의 스토리 진행.
───
.
.
.
(9)위대한 검의 영령의 유산
‘???’ 하여 위대한 검의 영령이 드디어 그대를 인정했노라. 그가 지켜온 모든 것을 그대에게 내어주리니, 그대는 검의 파편을 쥘 자격이 있으리. 그대여. 검의 파편을 쥐어라. 그대의 필요를 채워주리라.
(10)연자여, 오랜 시간이 흘렀도다. 검의 파편에 잠들어 있던 진실을 마주한 소감이 어떠한가. 아아 오염된 신도여. 네가 자랑하던 신성모독의 무구가 오히려 네 심장을 찔렀구나. 거짓된 평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리라.
────
방송을 공개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스킵을 안했다는 것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는 사람들.
-스킵 안하고 (10)으로 넘어갔네 ㅋㅋㅋㅋㅋ 설마 이번에도 스킵하나 했다
-스킵 너무해도 안 좋음. 정보 다 놓침
-(9)에서 ??? 가 분명 중요한 단서였을 거임.
우주급 시나리오의 진행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
-님들 원래 우주급 시나리오 진행이 이렇게 빠른가요?
-ㄴㄴ 절대 아님. 우주 아니고 서버급만 해도 몇 년 이상 걸리는 거 수두룩빽빽
글자 속에서 힌트를 찾은 사람들.
-(10)에 보면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써있음
-??? : 40분 정도면 충분히 오랜 시간 아닌가요?
-오랜 시간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정말 오래걸렸다 ^^
한 가지 확실한 건 차진혁의 스토리 진행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었다.
-근데 너무 빠른 거 아님?
-너무 빠르면 체하는데…….
-저거 한국맵 특성이라 함. 저게 한국맵에서는 일반적인 속도
약간 과장된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하긴 저런 환경에서 경쟁하면 진짜 빨리 강해지긴 하겠다.
-아르비스는 너무 평화롭긴 하지
-저러니까 김철수같은 괴물도 나오는 듯?
한국맵에서는 모든 것들이 대체로 빠르기는 했지만 차진혁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한국에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문의 진위를 힘 들여가며 파악하고 싶은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탓에 한국맵에 대한 괴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우리도 한국맵처럼 해야 하는 거아님?
-미친 소리 ㄴㄴ 저러다 다 죽음
-대신 살아남으면 강해지잖아
비록 소수이기는 했지만 한국맵처럼 성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금씩 힘을 얻기 시작했다.
* * *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리던 차진솔은 차진혁이 도착하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오빠!”
그녀는 차진혁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와 소파에 앉혔다.
“자. 그럼 얘기해 봐.”
그 와중에 차진혁은 녹화를 시작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다 콘텐츠가 될 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차진솔이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꽤 높은 편이었다.
차진솔이 등장하는 영상에서는,
-제발 자유의 성녀님 출연 빈도좀 높여주세요 ㅠㅠ
라는 댓글이 항상 베스트 댓글을 차지할 정도였다.
쉴 시간도 없이 자신에게 들러붙는 친동생은 귀찮았지만, 조회수를 높여주는 조력자는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차진혁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뭘 얘기하라는 거야?”
“어떻게 복구했어?”
차진솔 또한 철수랜드 중 한 명.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어떻게 고대 암석거인의 메이스를 복구할 수 있었는지.
‘쫌!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질문 좀 해라!’
두더지우먼과 르세핌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차진혁은 한숨을 내쉴 뻔했다.
“미리가 부쉈던 건 검이었는데, 어떻게 메이스를 복구했느냐고 묻는 건가?”
“응응. 그거 그거. 나 진짜 궁금해 미치겠어.”
차진솔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마침 카트리나도 도착했다.
장인인 그녀 또한 이번 사건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카트리나와 차진솔은 비슷한 표정으로 차진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카트리나는 차진솔에 비해서 훨씬 더 깊은 고찰을 하는 중이었다.
‘미리가 가진 권능인 시간역행의 절대값을 무한대까지 늘렸나? 그래서 본래의 모습까지 돌릴 수 있었던 건가? 아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워. 시간을 다루는 권능은 제약이 무척 심하고 마력 소모도 지나치게 크니까. 그게 아니라면…… 중계자의 통찰로 검의 본질을 꿰뚫어 봤나? 결국 그건 메이스를 검의 형상으로 변환시켰던 거였으니까. 김철수의 눈이라면 변환계 권능을 뚫어볼 수 있었을지도 몰라.’
과연 어떤 기술적인 대답이 나올까.
장인인 그녀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참신한 발상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모처럼 그녀의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이윽고 차진혁이 입을 열었다.
“익숙해졌다.”
“?”
“?”
두 사람은 또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해졌다니까?”
“…….”
“…….”
두 사람은 비슷하게 눈을 크게 떴다가 서로를 마주봤다.
큰 눈을 끔뻑거리다가 다시 차진혁을 바라봤다.
차진혁은 흡족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리액션이 풍부하네.’
저 두 사람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닐 테고.
주변인들이 방송을 이렇게 도와주는 걸 보면 인복이 꽤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원래 같은 작업이라도 여러번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법이잖아.”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서 익숙해졌어. 마침 미리와 같은 둔기 형태의 아이템이어서 더 잘 됐나 봐.”
카트리나는 정말로 할 말을 잃었고, 오히려 지식이 별로 없는 차진솔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게 되는 거였구나!”
카트리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게 되는 거였으면 전 우주의 수많은 복구장인들은 굶어 죽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