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3화
사실 궁금한 것이 두더지우먼보다 더 많은 카일이 차진혁에게 물었다.
“네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놀랍더군.”
“고마워.”
“그렇지만 그 정도 파괴력이었더라면 외피를 공격해도 될 뻔했다.”
오히려 그게 효율적이었을 것 같았다.
외피부터 차근차근 파괴해서 결국 핵을 공격하는 방법.
만약 핵을 한 번에 부수지 못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아무도 모르는 법.
결과가 좋아서 망정이지 과정까지 그리 좋았던 건 아니었다.
“물론 두려울 수 있다. 자부하는 나의 공격이 상대에게 닿지 않았을 때의 그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ㄴ…….”
“그럼 한 방에 못 깨잖아.”
“?”
“부술 거면 멋있게 부숴야지.”
차진혁이라고 해도 암석거인과 싸우면서 멋있게만 싸울 수는 없었다.
암석거인은 그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홈마도 옆에 있는데 사진도 예쁘게 찍혀야 하고.”
너무 진심으로 싸우면 홈마가 좋은 영상을 건지기도 어렵다.
차진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네가 답답해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 카일.”
“…….”
“하지만 내 직업을 좀 이해해 주면 좋겠군.”
“…….”
“그냥 부수는 게 목표면 누가 못하겠어?”
순간, 카일의 몸이 움찔했다.
그는 그냥 부수는 게 목표였었으니까.
카일은 아득한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김철수를 보고 있는 것이 어지러워졌다.
“그러면 검황전 때도?”
“당연히 멋있게 싸웠지.”
그냥 목표를 위해 효율적으로 싸우는 것과 멋을 신경 쓰면서 싸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내가…… 괴물을 키운 거였나?’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심연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레 현실을 깨달았다.
‘내가 누구랑 싸우려고 했단 말인가……!’
“네가 이겼다.”
아무래도 김철수와 싸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원했던 건 강자와의 명예로운 결투였지, 김철수의 멋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아참. 그럼 우리 결투는 언제 하지?”
카일은 당황스러웠다.
‘못 들은 척을 한다고?’
* * *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
숙련된 암살자인 사무엘 마이에르는 크게 당황했다.
‘아니, 벌써?’
그는 수많은 경험을 쌓아온 노련한 암살자.
던전에 진입하면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예상이 아주 정확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아예 빗나가지도 않았다.
‘암석거인. 그 존재의 기운을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파티였다면 일주일 이상.
하지만 지금 김철수 일행의 전력이라면 3일 정도는 걸리리라 내다봤다.
클리어 직후.
가장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에 효과적인 기습을 하기 위하여 준비 중이었는데 벌써 클리어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공격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그는 늘 완벽한 상태에서 암살을 해왔다.
사실상 지금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한 명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김철수 일행 모두를 죽여야 하니까.
판게아 던전의 침입자를 모두 죽이는 것이 그의 사명.
아직 안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던전 파괴자를 죽이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
‘지금이 가장 방심했을 때다!’
저들을 다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는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먼저 기습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생각했다.
‘광란의 마도사? 검황대장?’
보통은 그 둘이라 생각했겠지만 김철수를 열심히 연구해 온 그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김철수를 노려야 한……!’
순간, 그의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방금 김철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찰나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느꼈다.
뭐랄까, 김철수는 이쪽이 기습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자. 나 방심하고 있어. 그러니까 덤벼봐! 라고 유혹하는 느낌이랄까.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김철수의 경계는 전혀 풀어지지 않았구나!’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공격해야 하는데…….’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암살에 실패했다.
* * *
차진혁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왜 그래, 두지?”
“아무것도 아냐.”
여기서만큼은 덤빌 줄 알았는데 덤비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기서 저 정도 실력자가 암습해 주면 정말 멋진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흥분을 감췄어야 했는데 말이다.
‘더 강해져서 와라, 사무엘 마이에르.’
중계자의 통찰을 통해 셰비안과 사무엘이 마이에르 가문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왕유미에게 확인해 보니(욜린이 정보를 줬다) 전설적인 암살자 가문인 키옌 가문을 모시는 제1봉신가문.
아르비스에서도 제법 명성이 높은 가문이었다.
‘저 사무엘이 살아돌아 간다면 셰비안을 먹음직스럽, 아니, 강하게 키워주겠지.’
가진바 잠재력은 셰비안이 더 뛰어나고 현재 실력과 경험은 사무엘이 앞섰다.
저 둘이 수련을 거듭한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샌드백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샌드백이 위협적이여봤자 샌드백이기는 하겠지만 차진혁은 사무엘을 그냥 살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낚시꾼이 너무 어린 치어는 풀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흐흐흐.’
빨리 커서 기습해 주면 좋겠다.
* * *
몇 분 전.
던전 파괴자 디스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암석거인.
실로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디스트는 암석거인을 보자마자 내뺐다.
그의 목표는 던전을 붕괴시키는 것이지 던전 보스 레이드가 아니었으니까.
‘잘됐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까 던전 보스를 직접 봤다.
그 존재감과 강함을 직접 느꼈으니 던전 파괴 밑작업을 조금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았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는 확실한 파괴를 원했다.
단순한 던전의 붕괴가 아니라, 던전에 생존자가 없기를 바랐다.
‘오늘의 내 업적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암석거인은 물론이거니와 저곳에서는 김철수, 카일, 퓌렐, 르세핌 등.
우주 랭커로 손꼽히는 이들이 플레이하는 중.
저들을 통째로 매장할 수 있다면 여태껏 던전파괴자들의 업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위대해질 것이다.’
오늘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기는 어려울 터.
오늘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서약을 맺겠다.’
디스트는 마력으로 만들어낸 다이너마이트들과 서약을 맺었다.
제약을 가하는 대신 더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판게아 던전. 이곳에서 모든 것을 쏟아낼 것이다. 모든 힘을 잃어도 좋다.’
여기에 더하여, 화력을 끌어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 일주일 이상의 기나긴 여정이 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3일?’
아니,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김철수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것 같았으니까.
‘하루. 그래. 모든 변수를 통제한다. 하루면 충분해.’
솔직히 3일 정도는 안정권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24시간 동안 화력을 모으기로 작정했다.
그의 몸이 커다란 다이너마이트 형상으로 변했다.
이제 일은 벌어졌다.
‘24시간 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붕괴가 일어날…… 응?’
암석거인이 파괴되었다.
‘안 돼!!!’
던전 여기저기 설치해두었던 다이너마이트 뭉치가 바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던전파괴자는 던전을 붕괴시키는 위험천만한 능력을 가진 만큼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컸다.
던전이 붕괴되기 전 완전히 클리어되어버리면, 던전파괴자는 던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던전에 묶여서 그곳의 망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씨X!!!’
위대한 업적을 꿈꿨던 그는 꼼짝없이 죽을 운명에 처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
던전파괴자 디스트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고 하는데.”
“?”
던전이 무너졌나.
나는 죽어버린 건가.
“인터뷰 좀 하려고 하는데요.”
“!!!”
디스트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눈 앞에 김철수와 두더지우먼이 있었던 것이다.
“신이 날 버리지 않았구나!”
아무래도 환상을 본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렇지.
던전이 벌써 클리어 되었을 리 없지!
“으하하하하핫!”
“인터뷰 가능한가요?”
“결국 도망나왔나 보군, 김철수.”
차진혁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암석거인이 너무 세서요.”
“그럴 줄 알았다. 암석거인은 너무 강한 존재. 전력을 보강하여 레이드에 임해야 한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던전 파괴하려고 준비 중인 거죠?”
“?”
디스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던전파괴자는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당황하지 말자. 놈은 중계자의 통찰로 이름과 직업 정도는 꿰뚫어 볼 수 있으니.’
하지만 그게 끝.
더 이상 정보는 알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특별한 서약을 맺은 거 같은데, 맞나요?”
“…….”
검의 서약을 맺을 줄 아는 놈이니, 서약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디스트는 표정을 관리하며 침묵했다.
“아, 마력으로 폭발형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그거랑 서약을 맺었군요.”
디스트의 눈이 흔들렸다.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저 떠보는 것에 불과하다!’
정말 알고 있다면 다이너마이트들을 해체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을 터.
김철수가 심리전을 걸고 있다고 판단했다.
“와 폭발에 진심인가 봐요. 이번 폭발에 플레이어 생명을 전부 다 걸었네요?”
“…….”
디스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24시간 후면 다 끝날 일.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어떻게 안 거지?”
“어, 진짜였네?”
“?”
차진혁도 모든 걸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법.
지금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지만 다이너마이트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대충 찍어봤는데 우연히 맞췄다.
“왜 그렇게까지 했나요?”
“……이 새끼가!!!”
차진혁이 목소리를 낮추고 작게 속삭였다.
“잘 생각해. 지금 널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암석거인은 죽었고 이 던전은 클리어 되었거든.”
“…….”
“두더지우먼이 땅 잘 파.”
땅을 깊이 파서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던전 속 망령도 아니고, 던전 땅 속 망령이 되어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협박.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디스트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의뢰인에 대한 정보를 발설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는 던전의 망령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살고봐야 했다.
“세 자매 예언가가 의뢰했다. 네 놈을 죽여달라고.”
거기까지 들은 차진혁은 녹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고맙다. 잘 있어라.”
“이, 이, 이봐! 김철수!!! 나를 구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널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지, 구해준다고는 안 했는데?”
두더지우먼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놈은 플레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놈이다, 두지. 죽여도 되지 않나, 두지?”
“저렇게 두면 나중에 혹시 던전 보스 같은 걸로 변할 수도 있을까 해서.”
그냥 던전 보스가 아니라 서사가 있는 던전 보스를 잡는다면 큰 화제를 몰고올 것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서사니까.”
“……과연! 오늘도 배웠다, 두지.”
차진혁은 두더지우먼과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와 판게아 던전 클리어 보상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