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1화
“거대한 돌기둥이 떨어져 내립니다!”
무척 거대한 기둥.
그것이 신전의 천장을 뚫고 떨어져 내렸다.
쾅!
소리와 함께 땅속 깊이 박혔다.
마법학교 교장의 관이 있던 그 자리였다.
“돌기둥을 기이한 마력이 감싸고 있습니다.”
피어오르는 먼지.
적막이 감도는 신전 안.
차진혁은 마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해당 장면을 연출했다.
“돌기둥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데…….”
그것은 이내 커다란 거인의 형상으로 변했다.
“거인입니다.”
쿵! 쿵!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지면이 흔들렸다.
-내가 분명 마법을 금지하라 일렀거늘.
존재감 넘치는 목소리가 공간에 가득차서 쩌렁쩌렁 울렸다.
상대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목소리였다.
[LV411/고대 암석거인/스킬]
무려 레벨 400대 마물.
고대 암석거인은 가슴팍에 노란색 십자가가 새겨진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척봐도 있어보이는 것이, 우주급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고대 암석거인이 크게 소리쳤다.
-나의 명령을 무시하고 감히 마법을 사용한 망령된 자가 누구이더냐!
고대 암석거인은 흉흉한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발아래 작은 생명체들을 훑어보았다.
-그 망령된 자가 누구이더냐? 몹쓸 목숨 하나로 나머지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마. 자백하거라, 어리석은 아이들아.
암석거인의 위세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차진혁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존재만으로도 긴장감을 주는 거인.
어떻게 하면 더 흥미진진한 콘텐츠를 뽑아낼 수 있을까?
두더지우먼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바로 저 녀석들입니다, 두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이었다.
고대 암석거인이 암석끼리 부딪치는 파열음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힘을 합쳐 합동 마법을 펼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두지! 보십시오 지금도 은신마법으로 숨어 있습니다, 두지!”
“너희 모두를 악에서 구해주마!”
암석 거인이 녹색 안광을 뿜으며 고대 마법언을 중얼거렸다.
[ümeq ötüllükler ke-mizle]
암석 거인의 몸통으로부터 거대한 암석창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위로 만들어진 투창이었다.
암석창은 기둥을 관통하여,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시릴연합의 암살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아악!”
한 명은 즉사.
놀라운 건 암석 거인이 공격 마법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암살자를 꿰뚫었던 투창에서 팔다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암석 거인으로 변했다.
저 거대한 덩치의 암석거인이 순식간에 위치를 바꾼 것이다.
차진혁은 여전히 방송에 집중했고,
“이동마법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두더지우먼은 암석거인의 행동을 분석해서 차진혁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저 자식. 안 속았어, 두지!”
암석거인은 두더지우먼의 말에 속아서 암살자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암석거인 또한 이 강대한 불길을 피워올린 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적을 상대하기 전에 사소한 변수들을 없애려는 것.
차진혁 입장에서는 약간 황당했다.
‘저런 뻔한 고자질에 속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누가봐도 이 화염을 일으킨 건 퓌렐인데.
지금도 퓌렐의 몸 위에서는 뜨거운 화염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두더지우먼은 고개를 갸웃했다.
“남성체들은 잘 속던데 남성체가 아닌가…….”
어쨌든 두더지우먼은 실시간으로 고대 암석거인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른쪽 가슴팍 부근 깊은 곳에 핵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두지.”
암석거인이 저 거대한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핵을 부수면 될 것 같은데 틈이 거의 나질 않는다, 두지.”
그렇다고 겉에서부터 깨부수기에는 암석거인의 피부가 너무 단단해 보였고.
레벨 400대.
거기에 히든 보스 보정까지 받는 던전보스는 과연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상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김철수 너라면 부술 수 있지 않을까, 두지?”
“안 되지.”
“그, 그건 안 되는 구나.”
왜 나는 김철수라면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지?
두더지우먼은 스스로를 되돌아 보기로 했다.
* * *
시릴연합의 암살자들은 전멸.
뒤따라온 사무엘 마이에르만 겨우 살아서 도망쳤다.
‘김철수……!’
저자의 철두철미함에는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김철수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김철수는 자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다놓고 가지고 놀고 있었다.
던전 보스를 활용하여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를 처리하다니.
‘마음만 먹는다면 직접 나를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롱과 농락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방송의 다채로움을 위해서였군.’
저 정도로 자신의 일에 미쳐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련한 암살자인 그는 차진혁의 열정과 치열함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본받을 만한 자이다.’
조금은 아름답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철수를 죽여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 정도 강력한 고대의 괴물이 소환되었다면, 김철수라도 무사히 돌아오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게다가 던전 파괴자가 던전 붕괴를 준비하고 있었고.
‘일단은 빠져나가서 다음 기회를 노리자.’
마이에르가문의 가주.
단 한 번도 암살에 실패한 적이 없었던 사무엘 마이에르는 조금 더 치밀한 습격을 계획하기로 했다.
* * *
차진혁이 크게 말했다.
“고대의 암석거인이시여!”
주먹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암석거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의 이름을 부른 자가 누구냐?
차진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접니다, 암석거인이시여.”
-가문과 이름. 그리고 소속 교단을 말하라.
“훼일러 가문의 미트라입니다. 대지의 여신 기아스를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나 뻔뻔한 대답에 두더지우먼조차도 차진혁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방송스킬이 더 늘었다, 두지!’
-좋은 신앙을 가졌구나, 어린아이야. 나 또한 기아스 여신을 사모하였다.
차진혁이 암석거인과 대화하는 사이, 퓌렐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거대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퓌렐은 암석거인을 통째로 녹여 버릴 작정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마력을 쏟아붓고나면 본인도 며칠은 쓰러져 있겠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끝없이 타올라라 불사조여!”
마법을 완성한 퓌렐이 시전하자 7마리의 불새가 마법진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건 불사조……!’
전설의 환수 불사조.
그 어떤 공격으로도 벨 수 없고 끝없이 재생하는 화조(火鳥)였다.
불계열 소환 마법 중에서도 최고난이도의 마법과 화력을 자랑하는 불사조가 무려 7마리나 모습을 드러냈다.
“영원한 생명의 불사조가 또다른 생명을 불태우려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불사조는 처음 보는군요.”
차진혁의 떨림과 설렘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불사조가 영원히 삼?
-근데 김철수는 불사조의 심장 먹었잖아
-그건 불사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로 주는 거라고 함
불사조의 심장은 그런 거였다.
불사조가 친구에게 선물로 내어주는 심장 모양의 불꽃.
사람들이 ‘불사조의 심장’이라고 부를 뿐, 사실 불사조에게 심장은 없었다.
그것을 먹는 것만으로도 사왕급 이하의 모든 독에 내성을 가질 수 있는 사기적인 성능의 힘을 보여줄 정도.
그러나 암석거인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모양새였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불태우는 재주밖에 없는 천박한 날것이 감히!
암석거인은 팔을 X자로 교차하여 불사조의 공격을 받아냈다.
불사조가 암석거인의 팔과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암석거인의 사제복과 팔의 일부가 녹아내렸으나, 주변의 돌이 날아와 다시금 그를 재생시켰다.
그 모습에 차진혁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마법면역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 사제복에 마법 저항 속성이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사제복의 팔 부근이 녹아내린 상황.
퓌렐이 또다시 불사조를 소환해 내면 어느 정도 공격이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퓌렐의 사정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이번 마법에 모든 것을 쏟아넣은 퓌렐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전투에 있어서 마법사들은 장점과 단점이 이렇게 뚜렷했다.
누구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지만 한 번 실패했을 시에 리스크가 큰 것이다.
그 사이, 검황대장 카일이 접근하여 검을 휘둘렀다.
깡-!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불꽃이 튀었다.
카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의 공격이 암석거인의 피부를 뚫지 못한 것이다.
암석거인이 공중에 작은 돌덩이(그마저도 수박만 했다) 수십 개를 띄워 카일을 향해 쏘아냈다.
카일조차 그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마법 면역보다 오히려 물리 면역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정말 강하군요.”
차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 * *
고대 암석거인도 퓌렐과 카일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선점할 수는 없었다.
암석거인이 강했던 만큼, 퓌렐과 카일의 조합도 굉장히 강했으니까.
뜨거운 화염이 불타오르고 집채만큼 커다란 암석 창이 날아다니고 다이아몬드조차 베는 카일의 검기가 번뜩거렸다.
수차례 폭풍같은 전투가 지나가고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암석거인은 분명 강한 던전 보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그 묘한 위화감 때문에 차진혁은 전투에 끼어들지 못했다.
두더지우먼이 찔끔 놀랐다.
그녀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말을 아끼던 중, 차진혁이 먼저 입을 연 것이다.
‘그냥 어색하다는 걸 눈치만 챈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길잡이인 자신보다 더 빨리 알아낼 수는 없겠지.
아니, 없어야 하는데.
“특별히 주먹을 휘두를 때 어색한데요. 두더지우먼. 네 생각은 어떻지?”
“나, 나도 그렇게 봤다, 두지.”
“왜 저렇게 강한 보스에게서 어색함이 느껴지는 거지?”
그야 나도 모르지!
……라고 말할 수 없었던 두더지우먼은 일단 떠오르는 대로 던져봤다.
“원래 주먹이 주특기가 아닌가, 두지?”
“……과연!”
역시 두더지우먼이다!
차진혁의 눈빛을 받은 두더지우먼은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그냥 대충 말해봤어! 라고 고백할 수 없기에, 양심의 가책이 조금 생겨버렸다.
“움직임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암석거인은 사실 커다란 둔기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는 사제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무기를 잃어버린 것 같고요.”
차진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던전 보스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단순히 폐쇄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잊혀진’ 키워드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던전 보스룸은 ‘마법학교의 교장실’이 아니라 ‘잊혀진’ 마법학교의 교장실이었습니다. 아마 신전은 이 마법학교가 강제로 잊혀지도록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폐쇄가 아니라 봉인에 가까운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리고 그 봉인에 암석거인의 무기. 즉 신물이 사용되었겠죠. 두더지우먼. 네가 하려던 말이 이게 맞지?”
‘두, 두지?’
그녀는 너무 당황해서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암석거인과의 전투가 한창이던 이 시점에, 굉장히 편안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