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8화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삐쩍 마른 노인의 형상이 보였다.
“네가 위대한 검의 영령이냐?”
다른 검령들에 비해 사람과 굉장히 흡사했다.
얼핏 보면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카일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영령과의 교감은 무척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육성을 내뱉으면 집중이 풀려 버린단 말이다!
검령과 육성으로 대화를 시도하다니.
초짜들도 저런 실수는 하지 않을 터인데.
방송에 너무 미쳐서 기본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검술의 스승으로서 아무래도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영령의 목소리가 육성으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네 눈에는 내가 위대해 보이냐?”
……?!
저 목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다고?
노인(검령)은 새끼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볐다.
차진혁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홍홍홍. 어여쁜 처자. 몇 살이고?”
거기서 카일은 더욱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검의 영령은 두더지우먼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김철수와 육성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깊이 교감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정말로 각 잡고 교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가.
김철수가 괜히 700자루가 넘는 검의 영령을 불러낸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의 조각 일부를 완성하였습니다.]
[‘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 위대한 영령을 만나리’가 클리어되었습니다.]
[다음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두더지우먼은 노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노인이 침을 질질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주 기뻤다.
‘오, 빌런 등장!’
이건 확실히 엘튜브 각이었다.
재미있는 콘텐츠에 빌런은 필수인 법.
빌런을 욕하는 재미로 시청자들이 대동단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한 건 했다, 김철수!’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낸 것 같아 무척 설렜다.
때문에 떨리는 목소리로(검령이 보기에는 겁 먹은 것처럼 보였다) 대답했다.
“저, 저는 열다섯 살이랍니다.”
“오! 상큼하기도 하지. 내가 좋아하는 연령이로구나!”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진짜 검의 영령 맞음?
-저딴 변태 새끼가 무슨 위대한 영령임?
-ㅅㅂ 역겨워서 못 봐주겠누
두더지우먼은 시청자들의 열띤 반응을 상상하며 얼굴을 붉혔다.
“나타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대한 검의 영령이시여.”
올라라 조회수야, 올라라 좋아요야, 인급동에 올라보자!
“흐흐흐, 예의도 바르구나! 앞으로 내 몸종이 되어 나를 섬길 영광을 허락해 주겠노라!”
“섬기는 게 뭔데요?”
“그건 내 차차 알려주도록 하지, 흐흐흐흐.”
검의 영령은 코를 벌렁거리며 손짓했다.
“가까이 와보거라!”
그 사이. 차진혁은 검 본체에 가까이 다가간 상태였다.
“우주급 시나리오고 뭐고, 저 더러운 새끼는 일단 부수고 보겠습니다.”
검 본체를 향해 미리를 휘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
꽈광!
미리가 검을 내리쳤다.
무구를 부수는 것에 재미가 들린 미리도 신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히히히히! 잘 먹겠습니다!
“네 이놈!”
헤실거리며 웃던 검의 영령이 차진혁을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천박한 태도와 달리 움직임은 무척 기민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차진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감은 내가 상대하지.”
정의로운 검객. 검황대장 카일이 영령을 막아섰다.
그는 정말로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은 모양새였다.
참고로 그는 열다섯 살 딸을 키우는 아버지였다.
“죽여주마, 늙은이.”
* * *
커뮤니티 논객 백과사전은 요즘 차진혁의 방송에 무척 심취했다.
차진혁의 방송에는 심오함이 있었다.
‘저 우주급 시나리오에 얼마나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인가!’
그는 신들린 속도로 타이핑을 이어갔다.
[……하여, 위대한 검의 영령과의 전투를 통해 더욱 많은 것을 깨우칠 터. 그는 더 높은 경지의 검객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대표할 새로운 검왕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실시간 방송을 살펴보았다.
검령과의 전투를 통해 이번에는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
무려 우주급 시나리오의 안배가 김철수에게 무엇을 안겨다줄 것인가.
과연 김철수는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더욱 성장할 것인가!
‘응?’
빠각!
위대한 검의 영령을 생각보다 너무 쉽게 부서져 버렸다.
김철수+카일 조합이 위대한 검의 영령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노인은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두더지우먼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웠구나, 아이야, 흐흐흐흐!”
백과사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분명히 위대한 검의 영령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워야 할 텐데?
그래야 더 높이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진짜 부서져 버린 건가?’
미리의 무구 박살 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한 듯 했다.
‘김철수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우주급 시나리오를 클리어해가는 와중에 아무런 보상도 얻지 못하다니.
뼈아픈 손실이었다.
김철수의 손해가 마치 자신의 손해인 것처럼 속이 무척 쓰렸다.
그는 이 아쉬운 상황을 유일한 친구인 마시멜로에게 터놓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마시멜로가 다른 각도의 해석을 내놓았다.
“야, 백과사전아. 근데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그…… 혹시 있잖아.”
“뜸 그만 들이고 말해라.”
“사실 김철수가 위대한 영령에게 더 배울 게 없었던 것 아닐까?”
“……뭐?”
“그럴 리 없겠지? 이건 그냥 사고겠지?”
* * *
차진혁은 무척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7)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 위대한 영령을 만나리
‘???’ 하여 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여. 그대의 노고와 위업이 영원토록 남아 영원히 빛나리라. 검의 노랫소리가 기어이 한 곳으로 흘러들어 장송곡을 부르니 그곳은 위대한 영령이 잠든 곳이리라.
(9)위대한 검의 영령의 유산
‘???’ 하여 위대한 검의 영령이 드디어 그대를 인정했노라. 그가 지켜온 모든 것을 그대에게 내어주리니, 그대는 검의 파편을 쥘 자격이 있으리. 그대여. 검의 파편을 쥐어라. 그대의 필요를 채워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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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급 시나리오가 이제는 (9)에 이른 것이었다.
‘열 받아서 부순 거였는데?’
사실 위대한 검의 영령이 담겨 있던 검을 부순 것은 반쯤은 충동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빌런을 깨부숴야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부쉈다’라는 이유로 합리화하고는 있지만, 그게 완전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9)를 달성했다.
차진혁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검을 주워 들었다.
“기어이…… 위대한 영령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검의 파편을 주웠으니 인정받은 거임. 아무튼 인정 받았음.
-인정받기 참 쉽죠?
이게 과연 ‘인정을 받은 것이 맞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검의 파편을 얻은 것은 맞았다.
“이제는 제가 손에 쥐어도 상서로운 빛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차진혁은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강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카일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 미친놈아!!!”
우주급 시나리오를 통해 획득한 아티팩트를 그 어떤 누가 강화의 재료로 쓴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강화의 빛이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시청자 숫자가 또다시 20억을 돌파했고 차진혁은 몹시 만족할 수 있었다.
* * *
차진혁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서, 성공입니다! 미리가 강화되었습니다.”
미리는 이제 플레이어들과 매우 흡사해졌다.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특성’을 획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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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집요하고 끈적한 욕망]
대상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기어이 욕망을 이루어내는 권능.
사용제한 조건 : 주인과의 스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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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긴장했던 카일이 숨을 헐떡거리며 차진혁을 다그쳤다.
“이봐, 김철수. 제정신이냐?”
“응?”
“그러다 무구가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심산이냐!”
차진혁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 바라보듯 카일을 바라보았다.
“강화는 원래 깨져.”
“……?!”
하필이면 옆에서 두더지우먼이 ‘암, 그렇고 말고’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카일은 왠지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낯선 기분을 받아야만 했다.
‘아니, 휩쓸리지 말자.’
“그게 아니라 강화의 위험성을 정녕 모르는 거냐?”
그는 차진혁이 미리와 아주 깊게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깊은 교감을 무구가 깨지면 네 정신이 온전할 것 같으냐!”
그러자 차진혁은 더욱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강화는 원래 깨진다니까?”
차진혁은 카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미리가 깨지면 본인의 정신도 깨진다. 운이 좋으면 폐인이 될 것이고, 운이 나쁘면 광인이 될 것이었다.
차진혁이 무척 태연하게 되물었다.
“애초에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강화를 하는 건 양심 없는 거 아닌가……?”
“…….”
그건 목숨 걸고 강화에만 매진하는 전문 강화꾼들 얘기고!
아니, 그들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걸?
카일은 할 말을 잃고 말았지만, 차진혁은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제게 필요한 능력을 쥐어주고 떠났군요.”
─────
검의 파편을 쥐어라. 그대의 필요를 채워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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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진혁은 광역기보다는 정밀하고 강력한 공격기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집요하고 끈적한 욕망은 말하자면 정밀 유도탄 같은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리의 파괴력이 하나의 대상을 추적하여 정확하게 타격하네요.”
-히히히! 대갈통을 집요하게 부술 수 있겠어요!
“미리도 무척 좋아하는 모양새고요. 사용 제한 조건도 아주 간단합니다. 추후, 적당한 기회에 이 기술을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새로운 기술을 언급한 뒤, 차진혁은 화제를 조금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분명 던전 보스를 사냥했는데, 클리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전의 던전 보스가 왜 마법학교의 교장일까요? 아무래도 저희가 풀어나가야 할 스토리가 남은 것 같습니다.”
두더지우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스피드런은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어.”
이제는 단순히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판게아 던전에는 분명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고, 시청자들은 그 비밀을 궁금해하고 있을 터였다.
“두더지 우먼. 뭐 짐작가는 거라도 있어?”
“글쎄. 지금 당장은 나도 단서를 찾을 수가 없네.”
최악의 경우, 다시 입구로 되돌아가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진행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일단 던전 보스도 사냥했고 우주급 시나리오도 깼으니까요, 잠시동안 소통방송 이어가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소통을 한다고?
-저기 미공략 던전 안 아님?
던전 보스를 처치했는데도 클리어되지 않는 미공략 던전.
그 어떤 변수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변수따윈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철수이기 때문이다.
-아아, 저것이 낭만이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