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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97화 (39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7화

차진혁은 숨겨져 있던 공간을 향해 폴짝 뛰어내렸다.

“상서로운 기운의 검이네요. 주워보겠습니다.”

검을 집어 들었다.

“어?”

검을 손에 쥐자 검에서 새어나오던 신성한 빛이 사라져 버렸다.

“검이 고철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철검이 되어 버렸다.

다시 검을 본래 자리에 내려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상서로운 검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래도 이 검과 소통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또 미인계를 써야 하나?

그렇지만 차진혁은 선뜻 미인계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생방 중인데…….’

방송을 끄고 하면 모를까.

미인계를 생방으로 송출하기에는 아직 심리적 거부감이 심했다.

‘치열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미인계는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았다.

문득, 항문검 이현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현성은 스스로 검령을 불러내고 검과 교감했었지.’

사실 그게 정석적인 방법에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근데 어떻게 하는 거지?’

정석적인 방법으로 해본 적이 없다보니 검령을 불러내는 것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미리와의 강한 정신적 결합 때문에 다른 무구와의 교감이 어려운 탓도 있었고.

어느덧 ‘불멸의 마도병’들을 모두 해치운 차진혁 옆에 섰다.

“검령을 불러내려는 것 아니었나?”

“……쉽지 않군.”

카일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 충분히 연습했을 텐데? 거기서 700자루가 넘는 검과 소통하며 검령들을 불러내지 않았…….”

말을 하던 카일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차진혁은 정상이 아니구나!’

던전보스가 잠든 관을 한 번에 없애버리는 무지막지한 권능을 사용한 직후.

그러니까 무척 지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회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검령은 내가 불러주도록 하지.”

“카일. 너는 내게 심검의 경지를 알려준 검술의 스승이다. 이번에도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나?”

“…….”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그 또한 차진혁의 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해 가는 중.

700자루의 검령을 불러낸 김철수가 그 방법을 정말로 모를 리는 없고.

‘자연스레 시간을 끌면서 방송을 진행하기 위한 전략이군.’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차진혁의 직업의식에 카일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기로 했다.

“먼저 검을 손에 쥐어라. 육체적인 연결은 검과의 교감을 훨씬 쉽게 만드는 법이므로.”

전 검황전의 우승자.

검황대의 대장 카일이 정석적인 교감 방법을 사사하기 시작했다.

* * *

아르비스 최대의 도적 연합.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우리의 형제가 살해당했다.’

생각지 못했던 기습이었다.

비겁하게 검황대장을 끌어들이다니.

그들은 맹렬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판게아 신전에 재진입했다.

‘기회를 노린다.’

뛰어난 암살자들답게 그들은 판게아 신전에 대한 분석을 최대한 많이 해놓은 상태.

“기둥 뒤에 숨어 있는 타락 사제들을 처치해야만 지하로 내려가는 관문이 개방되지.”

“타락 사제들은 이미 처리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밀리에 차진혁의 뒤를 쫓았다.

차진혁이 이미 마물들을 다 처치했으리라고 예상하면서.

“타락 사제가 모두 리젠되어 있다!”

“리젠 속도가 우리의 예상치를 한참 벗어나 있어.”

‘계산 실수였나……!’

타락 사제들이 이미 리젠되어 불길한 주문을 외워대고 있었다.

온갖 디버프와 저주가 암살자들을 향해 쏟아졌다.

숙련된 암살자들답게 타락 사제들을 모두 처치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운이 좋군, 김철수.”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의 추적이 늦어진 것을 하늘에 감사하도록.”

그런데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계속 이어졌다.

“왜 오염된 성녀들이 살아 있는 거지?”

“또 리젠인가?”

레벨 200대 후반, 오염된 성녀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조심해라. 까다로운 놈들이다.”

언령 마법의 일종으로 암살자들의 청각기관을 파괴하고 멘탈을 뒤흔드는 공격들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오염된 성녀들을 섬기는 기사들이 날카로운 창을 휘둘러대는 통에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진땀을 빼야 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림자에 숨자.”

아무래도 이상했다.

“김철수의 방송을 확인해 보고 진행하는 건 어떤가?”

시간상 리젠이 되었을 리 없었다.

그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김철수가 이곳의 마물들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통과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말도 안 되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김철수의 방송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안 돼. 김철수라면 방송을 통해 우리를 역추적할 수 있을 터.”

“김철수는 우리의 존재를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우리의 위치와 전력을 노출시키고 말 것이다.”

물론 차진혁은 그들을 별로 경계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차진혁이 자신들을 굉장히 경계하고 있으리라 판단했다.

‘철두철미한 놈.’

‘우리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마물들을 내버려 둔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 한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김철수를 놓친다. 우리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해.”

결국 그들은 방송을 확인해 보기로 의견을 통일했다.

방송을 켜서 확인해 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미 보스룸에 입장했다고?”

“……어떻게?”

“시간을 돌려봐.”

지난 영상들을 살펴보고 그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저런 방식으로 보스룸까지 돌파하는 미친놈들은 처음 봤기때문이었다.

그들은 힘겹게 결론을 내렸다.

“보스룸까지의 진입은 불가능하다.”

“두더지우먼의 강제 돌파 스킬이 생각보다 탁월하군.”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길잡이 실력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이 던전이 완전히 클리어되고 김철수 일행이 밖으로 탈출할 때.

배경이 바뀌고 긴장이 풀어지는 그때.

그때가 기회였다.

“마지막 클리어 순간을 노린다.”

“그때가 유일한 기회겠지.”

그런데 그때, 그들은 또다른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다. 사람이다.”

* * *

얄상한 체형에 삐죽삐죽 솟은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남자.

고글을 쓴 그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오염된 성녀의 시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시릴의 암살자들아.”

“…….”

“나는 세자매 예언가와 계약을 맺은 던전 파괴자다. 대화를 원한다.”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대화를 나누었다.

“던전 파괴자? 그게 실존하는 거였나?”

“물론.”

던전을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자가 있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이 진입해 있는 던전을 파괴하는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관리자들이 그것을 용인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가능하다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가능한 일이 많다. 너희의 세계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아주 많지.”

그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세자매 예언가는 어떻게든 김철수를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고용했고, 나는 의뢰받은대로 던전을 붕괴시킬 참이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김철수는 세상의 빛을 보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경우가 있는 법. 그가 혹시 생존해서 빠져나온다면, 그때 너희가 기습을 하는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네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확신하는 모양새군.”

“우리의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내 제안이 효율적이지 않나?”

* * *

판게아 던전 밖.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진 아들(셰비안)을 보며 사무엘은 혀를 끌끌 찼다.

“결국 호된 꼴을 당했구나, 아들아.”

망치 같은 것으로 가격당한 모양이었다.

“아버……지.”

“아들아. 나는 사실 중독되지 않았다.”

“…….”

“내가 일부러 중독된 척 연기를 펼쳤던 것은…… 네게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다. 암살자는 암살자다워야 한단다. 암살자가 검객의 흉내를 내면 말로가 좋지 못하지.”

미리에게 큰 부상을 입은 셰비안의 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거렸다.

“이 아이를 후송해라.”

“가주께서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나는 마이에르 가문의 사명을 완수하러 갈 것이다.”

김철수에게 원한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명은 판게아 던전에 침입하는 침입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너무 유해졌음이야.’

여지껏 침입했던 침입자들을 살려둔 게 화근인 것 같았다.

얼씬조차 못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보물을 취할 수 없음이다.’

그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셰비안. 저 아이를 잘 보필해다오. 아직 어리고 성급하나 잠재력은 나를 뛰어넘는 아이이니. 마이에르의 미래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 사무엘 마이에르도 던전 안에 진입했다.

‘음?’

그런데 김철수 외에 다른 녀석들이 있었다.

‘김철수.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자군.’

이곳에 범상치 않은 잿빛머리 녀석과 또 다른 암살자들을 배치해놓았다.

김철수가 말하는 것 같았다.

-내게 닿으려면 이들을 먼저 제거해 봐라! 마이에르가의 가주여!

‘보여주마. 마이에르 가문의 힘을.’

수십 년간 암살의 길을 걸어왔다.

그간 닦아온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로 했다.

* * *

카일은 정성스레(?) 가르쳐주었다.

“몸에 힘을 풀고 소우주에 집중해라. 분명 목소리를 보내오고 있는 작은 빛이 있을 것이다.”

차진혁은 카일의 음성에 따라 명상에 집중했다.

결국 아주 작은 빛을 포착해내는 데 성공했다.

-라……!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아라……!

손 끝을 통해 위대한 검령의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기세.

정상에 올라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개가 검을 통해 전달되었다.

-……가 잡아라!

조금 더 집중했다.

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너와 교감하기 위해서, 실체화된 검의 영령을 불러내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네 의지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그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저 여자가 잡아라!

커다란 빛이 차진혁의 내우주를 관통했다.

‘설마!’

차진혁은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미인계가 필요했던 거구나!’

차진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카일은 호되게 나무랐다.

“뭐하는 짓이냐, 김철수! 이제 막 집중하려던 찰나에 그런 식으……!”

차진혁이 두더지우먼에게 검을 건넸다.

“두더지우먼. 정성을 다해 검에게 말을 걸어봐라.”

차진혁의 열혈 시청자.

진성 철수랜드인 두더지우먼은 이미 지난 에피소드들을 다 알고 있었고, 차진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미인계를 쓰라는 거구나!’

해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차진혁과 렐핌의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검 손잡이를 가슴골에 끼운 다음 뜨거운 숨을 뱉으며 말을 걸었다.

“일어나라, 검의 영령이여!”

카일은 어이가 없어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까지의 기상천외한 플레이와는 결을 달리하는 해괴망측함이었다.

이건 검의 길을 모욕하는 행위.

“그따위 천박한 행위로 어찌 검의 영령을 불러……!”

검의 영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더지우먼이 히죽히죽 웃었다.

……나 미인계에 소질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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