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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93화 (39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3화

“내가 앞장서서 수풀을 제거하겠다, 두지.”

두더지우먼은 우거진 수풀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으로부터 날카로운 절삭력을 가진 기운이 뿜어져 나와 수풀들을 깨끗하게 베어냈다.

차진혁은 두더지우먼의 활약에 집중하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왜 좋아요 숫자가 평소보다 높은 거지?’

내가 하고 있는 거라곤 그저 두더지우먼의 뒷모습을 찍으면서 따라가고 있을 뿐인데?

저 뒷모습이 재밌나?

차진혁은 두더지우먼에게 경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가 특별한 거지?’

그냥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채 팔을 휘젓고 있을 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는 기어서 가는 것이 좋겠다, 두지.”

가시덤불이 가득한 곳.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길목이 하나 보였다.

작은 동물들의 통로 같았다.

두더지우먼은 요염한 자세로 엎드려서 기어가기 시작했고, 차진혁이 그 뒤를 따랐다.

‘시청자 숫자가 또 10억을 돌파했어?’

별 거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또 10억을 돌파한 건지 차진혁으로서는 의문이었다.

이야기꾼 왕유미의 중계채널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업계포상 아니냐 ㅋㅋㅋ

-근데 이거 노딱 걸리는 거 아님?

-너무 야한데

-뭐가 야함 노출 하나도 없는데

-저게 안 야하다고?

-ㅉㅉ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저걸 야하다고 함? 두더지우먼은 그냥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을 뿐임.

-근데 그게 야하다는 거임.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거겠지 더러운 새끼들아

왕유미가 황급히 말했다.

“출연자에 대한 성적 비방이나 높은 수위의 농담 등은 자제해 주세요. 옐로우 카드 없이 바로 강퇴입니당.”

차진혁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많은 건지.

이 이유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방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왕유미에게 꼭 물어봐야겠어.’

* * *

우거진 수풀. 그리고 축축한 늪지대를 지나 차진혁은 판게아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신전이라 추측되었다.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와 벌레소리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차진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방송을 이어갔다.

“벽면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나무덩쿨이 신전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나무덩쿨이 너무 많아서 두더지우먼의 도움으로 계속 길을 냈다.

“여기가 입구인 것 같군요.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웅장합니다.”

“지옥의 미공략 던전이라. 재미있겠어, 두지.”

두더지우먼은 은근슬쩍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한국 최고의 길잡이로서 늘 차진혁과 함께 플레이하기를 바라왔고, 오늘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부터 미리 준비해 왔던 멘트를 쏟아냈다.

“그런데 김철수. 여기가 왜 이렇게 오랜시간 미공략 던전이었는지 알고 있나, 두지?”

“글쎄.”

두더지우먼의 의도를 파악한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을 뻔했다.

요즘 주변 동료들의 눈치가 아주 빨라졌다.

본격적인 던전 공략 전,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으리라.

“예언가들의 예언 때문이야.”

“예언가?”

사실 차진혁도 최근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내용이었다.

아르비스 서버에는 ‘예언가’라 불리는 플레이어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등을 점수로 환산하여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던전을 직접 공략하지 않고도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정도를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전 우주를 통틀어 ‘진짜 실력자’라고 인정받는 예언가는 단 세 명에 불과했고, 그들의 몸값 자체가 어마어마했기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극비리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말이야. 판게아 던전은 0점짜리 던전이야. 우주의 모든 미공략 던전을 통틀어서 최하점수를 받았지. 즉, 여길 클리어해 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두지.”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도전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

그러나 차진혁읜 보통의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개고생하는 것도 좋은 콘텐츠지!’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두더지우먼을 계속 분석하다보면, 지금 시청자들의 숫자가 이례적으로 많은 것에 대한 원인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고.

‘혹시라도 뭔가 보상이 나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고.’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래서 판게아 던전이 여지껏 미공략 던전으로 남아 있었던 건가?”

“그럴지도, 두지.”

“하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얘기지. 나는 특별한 보상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위대한 영령을 깨우고 싶을 뿐이니까.”

두더지우먼은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거면 특별한 보상 아닌가?’

그녀의 의아함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진혁은 덩굴이 우거진 문 앞에 섰다.

‘기둥 뒤쪽에 살기가 느껴진다.’

사람의 살기가 틀림없었다.

‘암살자?’

그 사실에 조금 설렜으나 굳이 티내지는 않았다.

이런 반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야 더 효과적인 연출이 될 테니까.

‘두더지우먼도 당연히 느꼈겠지?’

두더지우먼도 암살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었다.

* * *

우주에서 ‘신뢰받는 예언가’는 세 명 뿐이었다.

세 자매 예언가라 불리는 이들.

그들은 아르비스 출신의 쌍둥이 자매였다.

그녀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던전의 가치를 읽어낼 줄 아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키옌가문의 가주, 사라 키옌을 만나러 왔어.”

“키옌가문의 가주, 사라 키옌을 만나러 왔어.”

“키옌가문의 가주, 사라 키옌을 만나러 왔어.”

로브를 뒤집어 쓴 세 자매가 똑같이 말했다.

낡고 초라한 나무문 앞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건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그녀를 만나야 해.”

“돌아가라.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세 자매가 입을 모아 말했다.

“김철수를 죽여.”

“김철수를 죽여.”

“김철수를 죽여.”

그녀들은 별다른 소득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돌아가고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무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욜린이었다.

“그건 곤란한데…….”

그녀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흙먼지가 가득한 땅바닥이었건만 먼지 한 톨 흩날리지 않았다.

예언가 세 자매가 왜 황급히 키옌가문을 찾아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저기서 위대한 검령과 만난다거나 특별한 보상을 얻게 되면, 세 자매의 커리어에 흠집이 생기니까…….’

세 자매가 0점을 부여한 곳에서 김철수가 큰 보상을 얻게 되면, 예언가 세 자매의 명성은 곤두박질 칠 것이 분명했다.

그녀들의 사정은 안타깝게 되었으나,

“내 손으로 사장님을 죽이라니.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녀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데스. 네 생각도 그렇지? 내가 좋아하는 역사 공부하라고 지원 팍팍 해줘. 그걸 했더니 돈까지 줘. 솔직히 개꿀 아니야?”

“…….”

“훌륭한 워라밸. 월급 루팡. 내 삶의 모토란 말이지. 사장님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 1등 공신이고.”

“하지만 가주. 저희는 피사트의 초대 가주와 약조를 맺었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판게아 신전에서 살아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꽤 많이 살려줬잖아.”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방해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신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애송이들이었습니다.”

진짜배기 실력자들쯤 되면 예언가 세자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진짜 실력자들은 애초에 이곳을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철수는 다릅니다. 그자는 분명 신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걸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욜린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거듭했다.

“근데 말이야. 파사트 가문에서도 이 약속 모르지 않아? 알았다면 우리한테 공문 보내서 우리 사장님, 아니, 김철수한테 협력하라고 했을 것 같은데.”

“초대 가문 가주들과의 약속이니…… 잊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나도 안 지켜도 되는 거 아닌가?”

“파사트는 약속을 잊을지언정, 키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또또 그놈의 고지식한 소리한다. 꼰대가 따로 없다니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그림자들은 결국 김철수를 죽일 것입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럴까?”

“그들은 명예와 긍지가 있는 암살자들입니다. 의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냅니다. 그것이 설령 수천년 전의 의뢰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가주라고 해도, 그들의 긍지를 짓밟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욜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왕유미한테 가야겠어. 정보라도 좀 줘야지.”

* * *

욜린은 옆구리에 두꺼운 책을 낀 채 왕유미를 찾았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찾아냈는데요.”

“네에. 말씀하세여.”

“저기는 파사트 가문과 특별한 약속을 맺은 암살자 가문이 지키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여지껏 미공략 던전으로 남은 거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아주 잘 훈련된 암살자들이 저기 도사리고 있을 거예요.”

“정말요?”

왕유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본 욜린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 좋아해요?”

“저 음산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신전에 암살자라니. 엘튜브각이 제대로 섰네요.”

당장 어울리는 BGM을 찾아야겠어!

“아니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니까요? 기록에 의하면 키옌가문에서 작정하고 키운 특급 살수들이래요.”

“키옌가문이요?”

“네. 제국 7대 가문 중 하나. 존재조차 전설로 치부되는 그 미지의 암살자 가문 말이에요.”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잘 아시네요?”

“그걸 알아내는 게 제 일이니까요! 월급값은 해야죠.”

“월급값 하지 말고 놀자가 모토 아니었어요?”

“월급만큼은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요, 알겠어요.”

짧은 대화를 끝마친 왕유미는 다시금 중계를 이어갔고, 욜린은 조금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한테 말씀 안 드려요?”

“왜 드려요?”

“숙련된 암살자가 숨어 있다니까요?”

“그걸 몰라야 더 좋은 연출이 되지 않을까요?”

“……네?”

왕유미는 검지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며 쯔쯧, 소리를 냈다.

“암살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긴장감이 팍 죽잖아영.”

“그, 그렇다고 사장님을 위험에 노출시키려고요?”

왕유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욜린 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정말 철수 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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