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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87화 (38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7화

그리들은 문화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황궁이 나선 게 아니야?’

그럼 나를 이토록 기다리게 한 것이 정말 저것 때문이라는 건가?

‘내가 엘튜브 생태계를 잘 모르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많이 늙었나 보군.

정말 팬 1호를 만났다는 것 정도로 나를 기다리게 할 리는 없을 텐데 말이야.

사실 그게 맞았지만 그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최갑수가 껄껄대며 웃었다.

“자네 마음이 어떨지 대충 이해는 간다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김철수에게는 이게 자네와의 만남보다 훨씬 더 비중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최갑수의 핸드폰 액정 속에도 선명한 ‘♥’표시가 보였다.

아직 영상을 보지 않았지만 선 좋아요부터 누른 것이었다.

문화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리들이 물었다.

“자네에게는 정말 이, 그러니까, 이 썰이라는 것이 나와의 만남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가? 자네에게 항의하려는 것 아니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아무래도 철수랜드 1호와의 만남이 더 중요하죠.”

“……진심인가?”

“그리들 경, 구독 했습니까?”

“최근에 했네.”

“좋아요는요?”

“그건…….”

“민지는 제 영상이 나오자마자 좋아요를 누릅니다. 좋은 댓글도 많이 달아주고요. 철수랜드로서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

“그러니까 저한테 있어서 그리들 경보다 민지가 훨씬 소중인연이죠.”

기둥 뒤에 숨어 있던 김민지는 또 녹아내렸다.

“주, 죽어버려도 좋아.”

“민지라는 자는…….”

그리들이 힐끗 기둥 뒤쪽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사람이 아니다!’

감춘다고 감추고는 있지만 절대 일반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막강한 존재감과 아우라가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최상위 랭커?’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대략 어떤 계열의 플레이어인지 판별할 수 있는 그리들이었지만 김민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들은 최갑수를 한 번, 김철수를 한 번, 그리고 릴리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저들 또한 저 소녀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을 터인데?’

그런데 저들은 김민지를 별로 어렵게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김민지만 김철수를 무척 어려워하는 중.

그리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여기는 미쳤다!’

* * *

그리들은 차진혁에게 ‘피사트의 보구’ 복제품을 받아내기 위하여 직접 지구를 찾았다.

사실 지구를 찾을 때만 해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진혁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그리들 자신이 직접 지구까지 찾아와 제안하면 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어느정도 거래에 응할 줄 알았다.

차진혁뿐만 아니라 보통은 다 그랬고, 그리들은 그것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이건 그로서도 무척 충격적인 일이었다.

트리니티인 돈벼락(최갑수)보다 건너편에 앉은 저 소녀가 더 신경쓰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최상위 랭커.

돈벼락조차 경어를 사용하며 굽신대는 저 소녀의 정체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진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저건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목을 따버리겠어.

연신 들려오는 이 환청은 결코 환청이 아니었다.

저 소녀가 자신의 머릿속에 직접 주입하는 의지였다.

‘협상의 자리가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저 소녀가 신경 쓰여서 뭘 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1. 성유물의 복제품을 넘겨줄 것. 그게 안 된다면 대여 형식이라도 빌려줄 것.

2. 또 다른 복제품을 만들지말 것.

고개를 끄덕인 차진혁이 말했다.

“저한테 뭘 줄 수 있습니까?”

“돈이라면 달라는 대로 주겠네.”

차진혁으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아니었다.

돈이라면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았다.

“그런 것보다는 게스트로 몇 번 나와주시죠?”

“게스트?”

“네. 보니까 그리들 경은 타 방송에 나온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나마 마시멜로의 방송에 몇 번 자신을 노출했을 뿐, 엘튜버의 방송에는 나온 적이 없었다.

“그, 그건…….”

아르비스 7대가문의 수장들 대다수가 그랬다.

흔히 ‘공중파’라 불리는 거대 방송사의 기획 프로그램에는 출연하더라도, 엘튜버의 개인 콘텐츠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컸다.

그건 절대자들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싫으면 말고요.”

“아니, 누가 싫다고 했나? 좋네. 자네 방송에 나가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걸 요구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다음 요구조건도 영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피사트 가문을 비롯해서 그 관계자들이 의무적으로 제 방송 콘텐츠를 3개 보게 하시고요.”

“…….”

사실은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억지로 허수 뻥튀기를 해봤자 공허할 뿐.

‘내 콘텐츠가 재미있으면 안 시켜도 구독과 좋아요를 누를 거고. 재미 없으면 더 이상 안 보겠지.’

일단 보게 하는 것.

그게 차진혁의 목표였다.

“필요한 경우에는 제가 피사트 가문에 촬영 협조 구할 수 있는데 그것도 받아주시고요.”

“어렵지 않지.”

말을 하다 보니 그리들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 너무 쉬운 것들이다.’

물론 자신이 엘튜브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이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몫이었다.

그 외에 방송을 보라거나 촬영 협조를 해준다거나하는 것은 성유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뭔가 속셈이 있나?’

이후로도 이어지는 요구조건들은 대다수가 방송에 관한 것들이었다.

필요한 경우에는 피사트 가문의 검객들을 게스트로 부를 수 있다거나하는 것들이었다.

“아, 그리고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의 촬영을 좀 허락해 주면 좋겠는데요.”

“그건…….”

그리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한동안 생각하던 그리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네. 아무리 성유물이 귀하더라도, 검이 노래하는 절벽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는 없어.”

“그래요?”

차진혁은 아쉽다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죠.”

* * *

‘검이 노래하는 절벽’은 검황전의 우승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피사트 가문의 성지.

그곳에서 수련하면 단기간에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하여, 검술가들의 꿈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피사트 가문으로 복귀한 그리들은 장로들을 소집했다.

“김철수가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야 할 것 같네.”

“안 됩니다.”

“그자는 검술가도 아니지 않습니까?”

“검황전 준우승자에게 그런 혜택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간 준우승자들과 그 가문들에서 격렬하게 항의할 것입니다!”

장로들이 거세게 반대의사를 표했으나 이는 그리들이 모두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김철수를 이번 검황전의 우승자로 인정하면 그만 아닌가?”

“이미 준우승인 자를 어찌 우승자로 인정한단 말입니까?”

“안 될 말입니다.”

“이미 검황전의 우승자는 정해졌습니다. 이제 와서 번복한다면 피사트 가문의 권위가 무너집니다.”

그리들은 장로들에게 0.00001초 단위로 분석된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영상에는 무명이 어떤 서약을 맺었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하나하나 분석된 영상이었다.

그것이 검황전이 진행되는 타임라인별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명이 그토록 강한 힘을 냈던 건 무리수에 가까운 서약 덕분이었지. 그리고 그 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자네들도 알다시피 심판이 매수되었기 때문이야.”

심판이 검황전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명은 계속해서 서약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검황전 종료를 선언하기 직전, 무명은 이미 사망해 있었네. 바이탈 사인이 명확하게 기록된 영상이지. 검황전이 종료되기 전에 사망. 그러니까 김철수는 부전승인 거네.”

“그,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김철수가 부전승이라니요. 그건 억지입니다.”

한 장로가 미심쩍은 듯 중얼거렸다.

“가주께서 이런 억지를 부리실 분이 아닌데…….”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약의 구체적인 내용. 생체반응까지 완벽하게 적용되어 있는 이런 영상을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마시멜로가 해당 장면을 정성들여 찍고 있지 않았는가.”

“제아무리 우주랭커라고 해도 이 정도 분석 영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리들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구. 그중에서도 한국맵이라는 아주 작은 곳에 트리니티 둘이 모여 있네. 그것도 같은 장르의 둘이.”

“같은 장르의 트리니티 둘이요?”

“그럴 리가.”

우주 역사상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우주에 단 99명만 존재하는 트리니티.

그 콧대 높은 존재들은 서로 융화되지 않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같은 장르라면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트리니티 입장에서는 유희일 수 있겠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초토화되기 직전입니까?”

“혹시 그곳에 아르비스 시민이 있습니까?”

“구출작전을 펼쳐야 한다면 미리 언질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들은 괜스레 안도했다.

지구의 반응이 이상한 것이지, 이것이 사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그 둘이 힘을 합쳐서 김철수를 키우고 있어.”

“…….”

장로들은 그제야 김철수의 폭발적인 성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둘 위에 또 다른 상위존재가 있네. 나조차도 정체를 가늠할 수 없지.”

“그 존재가 두 트리니티를 중재하는 겁니까?”

“아……!”

그런 존재가 있다면 트리니티 둘이 한 자리에 자리 잡은 것에 어느 정도 개연성이 생겼다.

“그런데 김철수가 그 상위존재를 마치 아이처럼 대하고 있네. 상위존재는 김철수를 무척이나 어려워하고 있고.”

“혼란스럽군요.”

“가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트리니티 위의 상위존재.

그 상위존재 위에 또 김철수가 있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말 그대로네. 김철수는 어쩌면…… 그저 플레이어가 아닐지도 몰라. 아니,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

장로들은 저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확실히.”

“엘튜버가 그런 검술실력을 가질 수 없기는 합니다만…….”

그리들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는 신의 개입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 그러나 가르비누의 시대만 하더라도, 신의 개입에 관한 설명들이 종종 등장했지. 신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가르비누의 명성이 지금과는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말이야.”

장로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들 입장에서도 김철수의 그 말도 안되는 성장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야 김철수의 성장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것 같았다.

“어쩌면…… 김철수는 신의 강림체일지도 모르네.”

“그, 그런……!”

“그런 허무맹랑한……!”

“허무맹랑하지. 그러나 이것 말고 김철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그 누구도 그리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당분간 우리만 알도록 하지. 그리고 김철수에게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고, 혹시라도 김철수의 비위를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으면 좋겠군. 어쩌면 이 세상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지도 몰라. 아니, 이미 불어닥쳤을지도 모를 일이지.”

만약 정말이라면, 신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 위대한 피사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들과 장로들의 마음이 불타올랐다.

“신의 계획에 동참을.”

“신의 계획에 동참을.”

그들은 포도주를 나눠마시며 위대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피사트 가문이 차진혁의 완벽한 협력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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