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6화
“그것참 심각한 일이네. 얼른 얘기해 봐.”
최갑수는 김철수가 얻게 된 능력이 어떤 상황들을 초래할지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들을 설명했다.
“이건 김철수가 제작기술자로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 그럼 새로운 종류의 콘텐츠가 나오겠네?”
“…….”
김민지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본 최갑수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김철수에게 뭐가 좋다는 설명은 그냥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전략을 조금 바꾸었다.
“김철수는 지금 피사트 가문의 성유물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구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검의 현인 그리들이 지구를 방문하네 마네 난리가 났었고요. 아, 지금쯤 이미 지구에 방문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응. 그거 내놓으라고 지X하면 죽여 버려도 될까?”
“당연히 안 되는 거 아시죠?”
“쳇.”
“아무튼 생각 해보십시오. 김철수가 또 성유물을 만들어서 비싼 값에 판다면요? 피사트 가문 입장에서는 그걸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대 가주의 성스러운 보구인데 말입니다.”
“그냥 안 두면 지들이 어쩔 건데?”
혹시 우리 철수 님에게 위해라도 가하려는 건가 싶어 김민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김철수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김철수가 만든 성유물 복제품을 회수하려고는 하겠죠. 피사트 가문의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말입니다. 수많은 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애꿎은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저 양상이라면 묵검 아르테달도 복구할 것이고, 그러면 스웨딘 황궁에서 움직일 겁니다. 그들 또한 복제품이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고요. 그렇게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민지 님도 불편해지시지 않겠습니까? 또 붙잡혀서 강제로 동면에 들게 되실 거고, 동면에서 깨고 나면 김철수도 없을 텐데요?”
“흥, 영감은 정말 철수 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김민지는 철수랜드 1호다운 자태로 자신 있게 말했다.
“철수 님은 절대 복제 2호품, 3호품을 만들지 않을 거야.”
“김철수는 엘튜브에 미치, 아니, 치열한 자입니다.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데요.”
“아니? 철수 님에게는 철수 님만의 아름답고 숭고한 기준이 있어.”
최갑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김민지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 자신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름답고 숭고한 기준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예전 어린 소년의 눈물도 방송에 담지 않았었고…….’
당연히 영상을 올릴 것이라 생각한 지점에서 올리지 않은 지점들이 존재했다.
‘자신이 무구를 깨뜨린 것에 대한 일말의 도덕적 책임의식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김철수에게 그러한 책임의식과 부채감이 있다면?
그렇다면 복제 2호, 3호품은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김민지가 말했다.
“그런 복제품 뿌려서 파는 영상보다는, 피사트 가문이나 황궁이 찾아와서 ‘위대한 김철수 경, 저희에게 그 복제품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간절히 청합니다’ 하는 영상이 훨씬 임팩트 있을걸?”
김민지가 흐흐흐 웃었다.
“재밌겠다.”
* * *
최갑수의 공방을 찾은 차진혁은 계단을 오르다가 김민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 복제품 뿌려서 파는 영상보다는, 피사트 가문이나 황궁이 찾아와서 ‘위대한 김철수 경, 저희에게 그 복제품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간절히 청합니다’하는 영상이 훨씬 임팩트 있을걸?”
‘오? 그렇긴 하네?’
새로이 얻게 된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확히 정하지 않았던 차진혁은 김민지의 말에 큰 영감을 얻었다.
‘과연 철수랜드 1호다운 통찰력이었다.’
차진혁에게 있어서 이제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조회수와 구독, 그리고 좋아요였다.
‘황궁이나 피사트 가문쯤 되는 이들과 엮이는 게 훨씬 재미있겠어.’
이래저래 생각해 보면 ‘복제품은 단 하나만 만드는 장인’과 같은 프레임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고.
복제품 양산자보다는 복제품 장인이 ‘캐릭터’ 만들기는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민지. 오랜만이네.”
김민지는 화들짝 놀랐다.
용수철 튕기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둥 뒤로 숨었다.
최갑수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아, 아, 안녕하세요.”
키보드 앞에서는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김철수 앞에서는 수줍은 소녀가 되어버렸다.
김민지의 저런 반응을 예상했던 차진혁은 피식 웃었다가 이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라?’
이번에 강화를 하면서 느꼈던 그 이질적인 감각.
그 감각이 어쩐지 익숙한 것 같았었는데, 김민지를 만나니 약간 알 것 같기도 했다.
“민지야. 잠깐 이리로 와봐.”
“저, 저, 저요?”
기둥 뒤에 숨어서 차진혁을 훔쳐보던 김민지는 쭈뼛쭈뼛 몸을 드러냈다.
“빨리.”
“네, 네!”
김민지는 차진혁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극렬하게 반응했다.
언제 썼는지는 몰라도 얼굴을 반이나 가릴 정도로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지금은 대낮이고, 여기는 실내인데 말이다.
차진혁은 자신 앞에 선 김민지를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왜요? 저,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차진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김민지의 머리에 손을 슬쩍 얹고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최갑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편애광신의 머리에 손을 얹다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김민지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미리는 그런 김민지를 이해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마음 이해해.
그러더니 갑자기 날 선 목소리로 또 중얼거렸다.
-하지만 양보는 안 해줘.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다고, 미리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분명 미친 여자였다.
-내 주인은 내 거야.
-한낱 무구 주제에 지나치게 거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구나.
미리는 깜짝 놀랐다.
차진혁 외에 누군가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너, 너 뭐야?
-나? 철수랜드 1호.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미리는 김민지의 소우주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깜깜한 우주.
그곳에 떠 있는 별들의 모습은 모두 김철수의 얼굴이었다.
그 기괴하고 끔찍한 광경에 미리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미, 미, 미친 여자다!
차진혁이 그런 미리를 진정시켰다.
‘미리. 조용히 좀 있어. 집중이 안 되잖아.’
-주인. 속지 마요. 저 여자는 광녀야. 저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요!
그러나 이미 집중을 시작한 차진혁에게 미리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 * *
김민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운을 느껴본 차진혁은 알 수 있었다.
‘확실해. 얘 느낌이 나.’
강화 가운데 분명히 김민지를 느꼈다.
특히 쉘비와 김 이사엘이 가져온 ‘검 손잡이들’에게서 김민지의 존재감을 느꼈다.
눈을 뜬 차진혁이 물었다.
“영감님. 송하영이 영감님 창고에서 검들을 훔쳤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래. 그랬지. 건방지긴 하지만 치열하게 훔치는 모습이 귀여워서 봐줬네.”
“근데 왜 그것들에서 민지의 존재감이 느껴지죠?”
“그거야…….”
최갑수는 오랜만에 위기감을 느꼈다.
여기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가는 신의 분노와 철퇴를 맞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민지는 아주 실력이 뛰어난 해커거든. 내 창고와 아티팩트에 걸린 비밀번호들을 민지가 풀어낸 것 아니겠는가?”
“마, 맞아요. 그랬어요!”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송하영의 실력만으로 영감님의 창고를 털었다는 게 좀 믿기지 않기는 했습니다.”
“일부러 내준 감도 없잖아 있네.”
“일부러 내줬다고요?”
“아…… 열심히 훔쳐보려는 게 기특하기도 해서.”
“그게 기특할 수도 있는 거군요.”
자기 물건을 훔치려는 게 기특할 수 있다니.
역시 트리니티의 배포는 남달랐다.
“어쨌든 제가 검황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건 민지 덕분이기도 한 거네요.”
김민지의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이 새빨갛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마시멜로의 머리가 그러하듯, 몸이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괜찮은 거지?”
“허허허. 괜찮네. 민지가 수줍음이 좀 많아서 그래.”
멜팅 치즈가 되어버린 김민지의 몸에서 치익- 하고 증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네 덕분에 콘텐츠 방향도 잡혔고, 고마워.”
“저,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요.”
“아냐. 사실 이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좀 많았거든. 고맙다, 민지야.”
차진혁은 그윽한 눈으로 –사실 그냥 쳐다본 거지만, 김민지 입장에서는 굉장히 그윽했다- 김민지를 바라보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김민지는 뒷짐을 진 채 얼굴을 푹 숙였다.
‘너, 너무 눈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어.’
그 모습을 보며 차진혁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김민지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철수랜드 1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저 철수랜드 1호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해 주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팬들이 주는 그 이유 없는 사랑과 호의가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알고 있는 차진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 민지야.”
“아, 아, 아니에요.”
김민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조, 존재해 줘서 고마워요. 사, 사랑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차진혁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네요.”
저렇게 보니 참 귀엽고 고마웠다.
“설마 방송에 내보내려고?”
“네. 민지 얼굴은 모자이크 해야겠지만.”
짧은 영상을 올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검의 현인 그리들이 찾아왔다.
* * *
그리들은 한국맵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방금 분명히 트리니티를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는데…… 그리고 그걸 김철수도 느꼈을 텐데?’
김철수는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돈벼락(최갑수) 또한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몽마 또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거지?’
이 중소 규모의 작은 서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란 말인가.
‘게다가…….’
이런 푸대접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몽마(릴리아)가 차를 내주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무려 ‘검의 현인 그리들’이 방문을 했는데,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잠깐 앉지. 자네가 아주 어렸을 때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맞나?”
“……맞습니다. 트리니티께서 이렇게 작은 서버에 자리를 잡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김철수 방송 안 보는구만. 제대로 봤으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리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가?’
김철수의 방송을 열심히 보지 않은 것이 마치 죄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는 말투와 태도였다.
“저는 김철수와 대화를 나누려고 왔습니다.”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네. 지금 영상 올리는 중이거든.”
그리들은 또다시 익숙하지 못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무려 검의 현인 그리들. 피사트 가문의 수장이 왔는데 이렇게 찬밥 신세라니.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니!
혹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영상인가.
“영상이라면……?”
혹시 나보다 먼저 제국이 움직였나. 황자가 찾아와 담판을 지었나.
묵검 아르테달과 관련된, 서버 단위의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간 내용인가.
그렇다면 제국의 기민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노릇.
자신을 이렇게 푸대접할 정도라면, 감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만큼 묵직한 내용일 것이 틀림없었다.
이내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됐다.”
그가 영상을 올리자 최갑수와 릴리아는 동시에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지금 이순간, 그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리들도 도대체 무슨 영상인가 싶어 차진혁의 영상을 살펴보았다.
[철수랜드 1호랑 만난 썰 푼다.]
영상을 올린지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베스트 댓글이 만들어졌다.
[참나, 잘들 노네. 자기가 철수랜드 1호고 김철수라고 말이야. 그렇게 막 기고만장해서 친목하면 평생 잘될 줄 알고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해라.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소통까지 해버리다니. 이런 식이면 우주 최고가 되어버리고 말 듯. 다들 사랑에 빠져 버릴 텐데 감당할 수 있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