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3화
차진혁이 먼저 제시했다.
“아르테달의 파편 모음이니까…… 10억 다이아 줄게.”
차진혁의 말에 송하영이 코웃음 쳤다.
“그깟 10억 다이아를 누구 코에 붙여?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렸던 생기를 열 번이나 불어넣을 수 있는 돈이었으나 천사소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송하영은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못해도 100억은 받아야 나도 뭐가 좀 남지.”
“흠.”
“솔직히 별로 남지도 않아.”
차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100억 다이아면 숨을 몇 번이나 내쉬어야 생기는 큰돈이니까.
“나 학생들한테 3,000억 다이아 줘서 돈 없다. 좀 봐줘라.”
“나랑 대화하는 동안 이미 3,000억은 벌었겠다.”
4개의 지옥과 지구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꾸준히 차진혁에게 경험치와 돈을 보내고 있는 상황.
게다가 수십억의 철수랜드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차진혁에게 후원까지 보내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차진혁은 손가락 7개를 펼쳤다.
“70억.”
“100억.”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다면…….”
차진혁이 비장의 패를 내밀었다.
“안 사.”
“뭐?”
“안 산다고.”
“왜? 산다며?”
“그냥 안 사고 싶어졌어.”
“……그럼 나 이거 스웨딘 황실에 판다?”
“그래라.”
“야! 너 진짜 이렇게 나올래?”
송하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명이 그렇게 값비싼 템들을 주렁주렁 걸칠 수 있었던 건 스웨딘 황실의 도움 덕분이라고!”
물증이 없다뿐이지,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 똥같은 새끼들한테 이걸 넘겨주라고? 그건 절대 안 되지. 돈만 봤으면 걔네한테 팔았지. 근데 이건 내 자존심이 용납을 못해. 나도 엄연히 K사단의 일원이라고.”
송하영은 은근슬쩍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 말했으면 금액 좀 올려주겠지?
……는 어림 없었다.
“70억. 이거 넘으면 안 산다.”
“…….”
도둑질은 잘했지만 흥정에는 능하지 못한 송하영은 결국 70억 다이아에 판매했다.
“아니, 근데 돈이 그렇게 썩어나면서 왜 그렇게 흥정을 하는 거야?”
“재밌잖아.”
“……나는 네 재미를 위해서 30억을 잃었네?”
“70억을 얻은 거지.”
“…….”
“억울하면 내돈 훔쳐보든가.”
“진짜?”
“뒷감당 할 자신 있으면.”
송하영의 실력이 꽤 좋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차진혁은 약간 설렜다.
이왕이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돈을 훔치려고 들면 좋을 것 같았는데, 송하영은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직 안 돼. 조금 더 수련하고 훔쳐볼게.”
“약속했다?”
“어. 약속! 최선을 다해서 훔쳐봄.”
어쨌든 70억에 판매하기로 한 송하영은 한껏 생색을 냈다.
“70억 다이아면 진짜 솔직히 엄청 싸게 판 거야. 이거 가지고 스웨딘 갔으면 백억은 그냥 줬을걸?”
“그리고 걔네가 네 뒤통수 쳤겠지.”
“…….”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송하영은 화제를 돌렸다.
“근데 이걸 왜 사는 거야?”
“너라면 예상할 줄 알았는데.”
“내가? 예상을?”
약간 고민하던 송하영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설마?”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곧장 방송을 켰다.
검증된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
[강화]
“묵검 아르테달의 파편을 재료로 써서 미리를 강화해 보려고 하는데요.”
-왘ㅋㅋㅋㅋㅋ 김철수 또 강화한다 ㅋㅋㅋㅋ
-피사트 가문의 성유물에 이어 묵검 아르테달의 파편이라닠ㅋㅋㅋㅋㅋㅋ
-강화 스케일 제정신이 아니네 ㅋㅋㅋㅋㅋㅋ
-설마 진짜 하려고?
-저번에도 설마 진짜 하려고 했는데 진짜 함 ㅋㅋ 미친놈임 ㅋㅋ
시청자 유입속도에 만족한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재료 아이템에 훨씬 가까우니까 성공 확률이 높겠죠?”
생각해 보니 저번에 성유물도 부숴서 해볼걸 그랬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는건가 싶었다.
한편, 차진혁의 방송을 본 카트리나가 왕유미를 통해 황급히 연락을 넣었다.
“카트리나가 지구로 온다고 합니다. 미친 짓하지 말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다릴까요, 말까요?”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투표를 올렸다.
[1. 기다린다]
[2. 기다리지 않는다]
투표 결과, ‘기다리지 않는다’가 무려 72퍼센트였다.
“역시 강화는 바로 해야 제맛이죠.”
강화를 시작했다.
* * *
최근, 미리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이 크고 검고 단단한 것!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며 아르테달을 부수는 데 성공했을 때.
극렬한 쾌감과 함께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양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플레이어들처럼 ‘알림’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업적을 달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플레이어로 치면,
[업적, ‘보구 파괴’를 달성하였습니다.]
와 같은 알림을 받은 것 같았다.
미리는 생각했다.
‘그냥 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겠지?’
아무리 자아가 강해졌다지만 어떻게 무구가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단 말인가.
미리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또 이번에 그와 비슷한 고양감을 느꼈다.
“흑흑…… 내 칼이……!”
“아빠가 선물해 준 내 창이……!”
“말도 안…… 돼.”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학생들의 무구를 하나하나 깨부수고 나니 또 알림이 들려온 것만 같았다.
[업적, ‘무너뜨린 희망’을 달성하였습니다.]
혹은,
[업적, ‘절망의 선사’를 달성하였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구체화하기는 어려웠으나 미리는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전에는 없었던 특별한 힘들이 자신의 몸에 깃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업적 효과’가 적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미리는 이번에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차진혁가 결국 카트리나를 기다리지 않고 강화를 시도한 그 시점이었다.
‘어?’
아르테달의 검은 파편들이 몸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간질간질했다.
“강화 진행합니다.”
여느 때처럼 강화가 진행되었고 그 강화는 실패로 끝이 났다.
순간, 미리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느꼈다.
온몸이 깨져버릴 것 같은 그 순간, 미지의 힘이 미리를 보호했다.
‘나한테도 업적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거야!’
플레이어와 같은 인터페이스가 없다뿐이지, 그 효과는 비슷한 것 같았다.
-원래는 깨졌어야 했는데!
특별한 힘이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
-몸이 깨져 버릴 것만 같아서 너무 흥분, 아니, 너무 괴로웠었는데!
미리는 흐흐흐흐 웃었다.
조금 더 치열한 무구로 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도 엄청 기뻐하네?’
차진혁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중이었다.
차진혁은 지금 무척 기뻐하고 있었는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미리는 온몸이 간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차진혁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방송을 이어갔다.
“이럴 수가.”
차진혁 입장에서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강화가 실패했는데 재료 아이템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 * *
처음에 시청자들은 믿지 않았다.
-에이 주작이네 ㅋㅋㅋ
-걍 눈속임일 듯 ㅋㅋㅋㅋ
-김철수 퇴물다됐누 ㅋㅋ 강화에 주작이라니 ㅋㅋ
그러나 카트리나의 등판 이후 여론이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응 아니죠 ㅋㅋ 아는 만큼 보이죠?
-ㅈ밥들이 지들 시야에서 김철수를 판단하니까 그렇지 ㅋㅋㅋ
-치열좌의 높으신 뜻을 어찌 알리오.
카트리나는 미리에게 특별한 힘이 깃들었다고 말했다.
“플레이어로 치자면 업적 효과가 적용되는 것 같아. 시간을 두고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아르테달을 부순 것과 학생들의 무구를 부순 것이 어떤 시너지 작용을 일으킨 것 같네.”
전설적인 보구 아르테달을 부순 것.
그리고 뉴비(학생)들의 아티팩트들을 박살 낸 것.
그것에 상관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예측했고, MK재단에서 ‘역사학도 육성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는 욜린이 몇몇 자료들을 제출했다.
욜린의 눈이 반짝거렸다.
“사장님. 저 월급 루팡 아니죠?”
욜린이 양피지를 하나 내밀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바스러질 것 같이 생긴, 아주 낡은 양피지였다.
그녀가 내민 자료에는 고대 무구들 중 특별한 힘을 얻은 것들에 관한 내용들이 일부 써져 있었다.
“엣헴. 이건 고대어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만 겨우 읽을 수 있는 글씨거든요. 여기 뭐라고 쓰여 있냐면요. 극에…… 음, 그러니까…….”
“극과 극에 자리 잡은 것들끼리는 통하는 이치가 있나니.”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의 성능에 또 흡족해졌다.
“고어를 읽을 줄 알아요?”
“주의 깊게 살펴보니까 뜻이 보이는데.”
“……그게 된다고요?”
“이게 되네.”
통찰력 때문인가.
“여, 역시 사장님. 수많은 역사학도와 해석가의 꿈과 희망을 가차 없이 밟아버리는 모습이 너무 멋져요.”
양피지의 내용을 모두 해석한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적인 보구를 부순 직후, 새싹들의 무기를 부순 덕택에 특별한 힘이 적용되었다는 것이 맞네. 극과 극을 동시에 경험했으니까. 한쪽은 정말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싸워야 하고, 한쪽은 아주 쉽게 상대해야 하는구나. 하긴. 이런 경험은 쉽지 않지.”
아무튼 미리에게 특별한 힘이 적용된 덕택에 강화실패에도 깨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카트리나가 쉘비와 김 이사엘을 데리고 지구로 복귀했다.
“철수 오빠. 내가 얘네 데리고 왔거든?”
차진혁은 쉘비와 김 이사엘 쪽을 바라보았다.
친구가 된 쉘비는 그렇다 치고, 철수랜드 777번 김 이사엘 쪽은 신경이 많이 쓰였다.
“김 이사엘. 너 본업에 집중해야지. 왜 자꾸 나를 쫓아다녀?”
“죄, 죄송해요.”
극강의 검술가 김 이사엘이지만 차진혁 앞에서는 한낱 소녀 팬에 불과했다.
차진혁에게 혼이 난 김 이사엘은 풀이 잔뜩 죽었다.
“그래도 이걸 꼭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그게 뭔데?”
김 이사엘이 내민 것은 검황전 당시 사용했었던 쌍검의 손잡이였다.
“검은 사라지고 손잡이만 남았거든요.”
쉘비도 검 손잡이를 내밀었다.
“내 것도.”
차진혁은 쉘비와 김 이사엘이 내민 검 손잡이들을 받았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것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흔적만 남은 무구들인데…….’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묵검 아르테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등급의 무구가 잔재를 남긴 것만 같았다.
카트리나가 팔짱을 꼈다.
“느껴지지, 오빠?”
“……어. 무명과 싸울 때는 나도 급해서 잘 몰랐는데…… 이거 어마어마한 것들이었구나.”
“역시 오빠라면 느낄 줄 알았어.”
차진혁은 이 검 손잡이들에게서 막대한 존재감을 느꼈는데, 그 존재감이 마냥 낯설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카트리나가 말을 이었다.
“미리가 새롭게 얻게 된 특별한 힘. 묵검 아르테달의 파편. 이 위대한 검들의 손잡이. 이 정도 재료가 갖춰지면 뭐라도 좀 될 것 같아서.”
“…….”
“그러니까 좀 기다리라고 했잖아.”
카트리나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강화. 다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