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1화
몇 년 전.
스웨딘의 황자 델리악크는 한 몰락귀족가의 창고에서 아르테달을 발견했다.
황궁에는 경사였고, 몰락귀족에게는 비극이었다.
“그게…… 죄송합니다, 황자님. 아버지의 유품이라서 팔 수가 없답니다.”
대대로 내려온 유품이라나 뭐라나.
델리악크는 그런 사정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군.”
결국 그는 암살자들을 보내 가문을 통째로 몰살시켰다.
목격자는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고, 뒷처리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다음 날, 소식지에는 처지를 비관한 몰락귀족가의 집단 자살을 보도했을 뿐이었다.
“황자님. 아르테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몇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죽일까요?”
“아니.”
한 가문이라면 몰라도, 여러 가문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건 곧 정치적 입지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뜻.
“일단은 그냥 두고 본다.”
아르테달을 직접 회수하지는 않고, 현장을 보존하고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해당 가문의 창고를 지켰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사람들의 관심이 뜸해졌을 때 즈음 무명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게 좋겠군.’
그의 머릿속에 훌륭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1. 복수심에 눈이 멀어버린 무명이 몰락귀족가를 몰살시키고 아르테달을 손에 넣었다.
2. 황궁은 무명이 아르테달을 손에 넣은 경위를 살피다가 우연히 그의 범죄를 알아차리게 된다.
3. 무명의 검황전 우승자 자격을 박탈하고 연쇄살인의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한 뒤 보구 아르테달을 합법적으로 회수한다.
그 와중에 김철수도 죽일 수 있으면 좋았고.
그런데 그 계획이 김철수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나는 중이었다.
‘안 돼!’
황급히 검투를 중지시키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잘!
-먹!
-겠!
-습!
-니!
-다아아아아아아아앙! 으으읏!
미리가 아르테달의 옆면을 강타하는 순간.
-크고 검고 단단한 맛!
-맛있어어어어어어!!!!
쩌적- 쩌저적-
아르테달의 묵빛 검신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다가 이내 폭발해 버렸다.
‘절대결계.’
부서진 쇳조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들어 일부는 관중석 결계에 부딪치고 일부는 바닥에 꽂혔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 조각들이 여기저기 꽂히게 되었다.
“우리의 악연은 여기서 끝내지.”
빠각!
아르테달은 파괴되었고 무명도 더 이상 시간 역행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무명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차진혁은 퍼엉! 하는 환청을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폭발은 없었으나, 무명의 머리 안에 커다란 폭발이 있었다.
무명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차진혁은 무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숨을 취하려는 자. 목숨을 걸어라.”
중완김(중2병의 완성은 김철수)의 향연이었고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마시멜로의 실시간 시청자 숫자는 100억 명을 달성했고, 이는 우주랭커 마시멜로도 단 세 번 경험해 본 수치였다.
* * *
황자 델리악크는 분통을 터뜨렸다.
일렬로 선 부관들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신경질을 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란 말이냐!”
그 누구도 보구 아르테달이 깨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파편은! 파편이라도 있어야 뭘 분석이라도 할 것 아니냐!”
그나마 파편이라도 수거하려고 봤더니 이게 웬걸.
파편도 남지 않았다.
마시멜로의 영상을 토대로 살펴보았더니, 아마도 도적이라 짐작되는 누군가가 파편들을 쓸어갔다는 것만 짐작이 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마시멜로 영상에도 정확한 증거가 남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마시멜로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도둑놈이 있다고?”
“그게…….”
부관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지금은 누가 말해도 정강이를 까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하는 법.
“마시멜로가 김철수에게 너무 포커싱을 하는 바람에…… 다른 요소들을 좀 놓친 것 같습니다.”
“마시멜로가 의도적으로 숨겼을 확률은?”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희박하다고 봅니다.”
황자가 다시 물었다.
“좋다. 파편은 그렇다 치고. 아르테달이 왜 깨진 건지 말해봐라. 시간 역행이라는 권능까지도 감당하는 내구성을 지닌 보구였다. 설마 김철수가 그 내구성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가졌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설령 그렇다고는 해도, 룰 브레이커를 기반으로 성장한 그 무구가 그 정도 내구성을 가졌을 수는 없다.”
부관 중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쉘비와 김 이사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무구들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럼 그들의 협조를 요청해서라도 조사를 진행해! 뭐하고 있어!”
아르테달을 부쉈다는 것은, 현존하는 대다수의 보구들을 부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군이라면 괜찮지만 적군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은 재앙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부관들이 돌아왔다.
“그들이 협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강제로라도 끌어와.”
“보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
“조사단을 보내 진상을 파악해 보았으나 정말인 것 같습니다. 보구가 사라지는 장면이 김철수의 방송에도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시간 제한이 걸린 보구 같았습니다마는 저희가 알기로 그것이 가능한 보구는…….”
빡!
델리악크가 부관의 정강이를 또 걷어찼다.
“왜? 뭐? 신의 무구가 잠깐 강림이라도 했다, 뭐 이런 거냐? 이 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빨았나.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 * *
우여곡절 끝에 차진혁은 검황전의 준우승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우승자는 사망해 버린 무명.
-근데 ㅋㅋㅋㅋ 그럼 실전에서는 김철수가 이긴 거 아님?
-실전에서는 엘튜버가 갑인 듯?
-검황전에서 이기면 뭐하냐 죽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검술’의 실전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었다.
-검술이야말로 실전성 끝판왕 아니었음?
검은 범용성이 무척 뛰어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두루 대처할 수 있으며 마법 수준의 재능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적당한 재능을 가진 일반인들이 익혔을 때, 실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무술이 검술이다’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퍼진 정설이었다.
-사실 김철수가 거품인 게 아니라 검술이 거품인 거 아님?
-그런 걸지도?
-김철수가 전능의 연출가 썼으면?
-ㅂㅅ들아 그걸 쓸려면 진작에 썼겠지. 무명이 하도 몰아붙이니까 그걸 쓸 겨를이 없었던 거 아니냐 이 검알못들아.
-응 그래봤자 엘튜버한테 졌쥬?
-너 검쟁이임? ㅂㄷㅂㄷ대며 급발진하는 꼴이 존나 웃기네 ㅋㅋㅋ
어찌 됐든 김철수가 엘튜버로서의 능력을 모두 사용하면 어지간한 검술가들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이번에 밝혀졌다.
이는 검술가들에게 꽤 위협적인 문제였다.
실전성 최고라던 검술이 실전성을 의심받게 된 거니까.
그러나 모든 검술가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무,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김 이사엘은 김철수에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방 끝, 문 언저리에 서서 김철수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에 반해 쉘비는 김철수 바로 옆에 서서 말했다.
“괜히 내가 끼어들어서 방해한 건 아니지?”
“아냐. 너희 없었으면 나는 거기서 죽었을 거다.”
차진혁은 진심으로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너희가 없었으면 그 크고 검고 단단한, 아니, 아르테달을 먹…… 아니, 부수지 못했을 거야.”
쉘비와 김 이사엘은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혼자 수련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협공하면서 보였다나 뭐라나.
덕분에 몇 단계 이상 강해진 기분이라고 했고, 앞으로도 함께 수련하면서 더 발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이사엘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 그런데 철수 님.”
“어?”
김 이사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감히 김철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인 것 같았다.
또 눈물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이번 검황전 준우승 때문에 많은 세력에서 철수 님을 견제하려고 할 것 같아요.”
“그런 건 언제든지 환영이지.”
그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김 이사엘은 또다시 김철수에게 반하고 말았다.
만약 자신감 넘치지 않는 태도를 보였어도 어떤 식으로든 이유를 만들어서 반했겠지만.
“그래서 저도 도움이 어떻게든 되고 싶어서요…….”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뮈엔느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시장이 될 거라나 뭐라나.
‘뮈엔느가 정계에 진출한다고?’
회귀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종류의 변화였다.
그 원칙주의자이자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던 뮈엔느가 대도시 렌마의 시장이 된다니.
“권력 없이 개인의 순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해서요. 그래서 저희도 뮈엔느 경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해요.”
쉘비가 가슴을 탕탕 쳤다.
“나만 믿어, 친구. 든든한 힘이 되어줄게.”
김 이사엘은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공식철수랜드 타 서버 1호 지부를 세울 수 있을 거야.”
최강의 서버 아르비스.
그곳에 김철수의 정치적 지지세력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 * *
-검술가<<<넘사벽<<<<<<<<<<엘튜버
-실전에선 살아남으려면 스트리밍 기술이 최고다
-검술 개적밥ㅋㅋ
-실전 최강은 엘튜버다
……와 같은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검술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 대거 이탈했다.
전 우주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MK재단의 이사장이자 서울에 플레이어 아카데미(아름다운 플레이를 위하여)를 설립한 미셸장은 고민이 많아졌다.
“김철수가 특이한 거지, 사실 대다수의 엘튜버들은 약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우리 [아름다운 플레이를 위하여] 학생들의 1지망이 엘튜버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건 별로 존재 못한 현상이에요.”
최갑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봐 돈쭐. 언제부터 그렇게 아카데미에 진심이었지?”
“…….”
미셸장은 문득 놀랐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진심이 된 것이.
“……몰라요. 하다 보니까 진심이 되어가네요.”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MK재단이었으나 이제는 진심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덕분에 요즘은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김철수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셸장은 차진혁을 연사로 초대했다.
차진혁과 미셸장은 최갑수의 공방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다.
“부탁이니까 학생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줘요.”
“제가요?”
“대부분의 엘튜버는 김철수처럼 강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위상이 낮아졌어도, 적당한 재능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나마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검술이라는 것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증명된 팩트니까요.”
미셸장(돈쭐)은 큰 손 중의 큰 손.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가 연설하는 거 방송에 담아도 됩니까?”
“물론이죠.”
“그…….”
차진혁은 약간 머뭇거렸다.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후원도 해주나요? 요즘 좀 뜸하신 거 같아서.”
차진혁은 멋쩍게 웃었고 최갑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 요즘 돈쭐은 자기 일 바쁘다고 후원에 소극적이란 말이야. 그에 반해 나는 실시간 방송 때마다 후원을 이어가고 있어. 이게 바로 관록의 차이 아니겠는가! 으하하하핫!”
다른 사람한테는 져도 최갑수한테는 질 수 없는 미셸장은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이번 방송에 10억 다이아 쏠게요.”
“감사합니다, 돈쭐 님. 방송 시작하면 좋아요도 부탁 드릴게요.”
미셸장의 허락을 득한 차진혁은 결국 ‘아름다운 플레이를 위하여’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 아카데미. 통칭 ‘K아카데미’라 불리는 그곳에서 연설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에 따라 K아카데미 학생들은 흥분했다.
“와, 진짜로 김철수가 온다고?”
“김철수 실물 영접 가능한 거냐?”
“철수 형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받아줄까?”
수많은 학생들이 설레하는 가운데, 차진혁이 강단에 섰다.
K아카데미의 전교생 2,000명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