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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80화 (38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0화

황금빛에 삼켜진 송하영은 생경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우주랑 비슷한데?’

명상으로 접할 수 있는 내우주.

그 공간과 꽤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현실세계에서는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영상이 재생된다고?’

마치 어두컴컴한 영화관 안에 홀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재생되는 홀로그램에는 차진혁이 고전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만든 티가 팍팍 나는, 다소 조악한 자막이 보였다.

[‘능력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에 밀리고 있다. 통탄스럽구나.’]

‘저게 김철수의 속마음이라고……?’

요즘 시대에 누가 저런 속마음 대사를 넣는단 말인가.

그렇지만 송하영은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하긴. 최갑수 선생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이 영상이 왜 재생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상을 보고 나니 송하영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실력으로 지면 어쩔 수 없지만 템빨 차로 지면 킹받지.’

이내 화악-! 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소우주는 사라지고 황금빛 광채가 가득한 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고 안에 들어와 있는데…… 아득한 기분이야.’

인간의 눈으로는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수평선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기이함.

‘이게 트리니티의 보물창고!’

다만 모든 것을 훔칠 수는 없었다.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청록색 보석에 손을 댄 순간,

“아악!”

강한 스파크가 튀며 송하영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무거나 훔칠 수는 없다는 거지?”

그녀는 도둑으로서의 천부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내가 여기서 무엇을 훔쳐야 가장 정의롭고 가성비가 훌륭한 도둑질이 될까를 고민했다.

그러자 이 수많은 보물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가 보였다.

‘대검이랑 쌍검?’

하나는 푸르스름한 검면을 지닌 굉장히 커다란 대검이었다.

한쪽 검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검신이 웅웅- 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일단 이거를 줍고, 아니, 훔치고.’

아까 훔치려고 했던 보석과는 달리 자연스레 손에 쥘 수 있었다.

인벤토리를 열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인벤토리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근데 이 정도면 그냥 주는 거 아닌가?’

이러면 도둑으로서 재미가 없는데.

또 다른 하나는 전체적으로 하얀색 형상의 쌍검 한 세트였다.

하얀색 대리석을 갈아서 만든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의전용 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 쌍검 또한 손을 대자마자 인벤토리에 알아서 빨려들어 왔다.

‘이것도?’

이럴 거면 그냥 선물해 주시지 왜 훔치라고 했을까?

그것도 창고로 들어오는 문까지 친히 열어주면서.

‘응?’

다시 보니 바닥에 쪽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쌍검의 주인 : 김 이사엘]

[대검의 주인 : 쉘비]

“…….”

송하영은 한동안 멋쩍게 웃었다.

“이걸…… 전해주라는 건가?”

그러니까 천하의 천사소녀에게 검셔틀을 시키는 거였어?

송하영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주고 싶으면 그냥 후원하면 되지! 굳이 나를 이렇게 개고생을 시킨다고?’

이건 도둑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행동이었다.

도둑에게도 명예가 있는 법!

‘이렇게 된 이상 내 명예는 지킨다.’

여기서 뭐가 됐든 하나는 훔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김민지는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쟤 저기서 뭐 하고 있어?’

대검과 쌍검을 선물해 준, 아니, 도둑맞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송하영은 여전히 목이 마른 듯했다.

‘지금 네 실력으로는 훔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저 대검과 쌍검마저도 편애광신이 직접 금제를 풀어주었기에 훔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이 공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 어리석은 도둑아!’

분명 신체적,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있을 텐데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할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사실 송하영이 여기서 고사당하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차진혁을 돕는 것이 어려워질 터.

김민지는 최갑수의 모습으로 변하여 송하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가장 훔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어…… 주인 앞에서 훔쳐도 돼요?”

“훔칠 수 있다면.”

“그럼 저거요.”

맨 처음, 송하영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던 청록색 보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거 말고 다른 걸 도둑질하는 건 어떠냐?”

“아뇨. 저거요.”

“……진짜 저거? 저건 좀 그런데.”

“그럼 비켜봐요. 제가 알아서 훔쳐볼 테니까.”

“…….”

김민지는 한동안 고민했다.

‘저걸 바깥세상에 뿌려도 되나?’

염려가 조금 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무명이 김철수를 몰아붙이고 있을 테니까.

최갑수(김민지)는 성큼성큼 걸어 청록색 보석을 주워든 뒤, 송하영에게 건네주었다.

‘내 철수 님, 절대 지켜!’

김민지에게는 김철수의 안위가 우주의 안위보다 더 중요했다.

“이런.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도둑에게 훔침당했군.”

최갑수(김민지)가 버럭 화를 냈다.

“감히 트리니티의 보물창고를 털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예?”

“네년을 즉시 추방해 버리겠다.”

언제 준비되었는지, 워프포탈이 바닥에 하나 새겨져 있었다.

“썩 꺼져라!”

송하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아르비스 서버 내.

검황전이 열리고 있는 검투경기장 근처였다.

* * *

차진혁의 체력은 점점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번 검황전이 이상하다는 것을, 사람들도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차진혁이 지쳐가는 만큼 무명 또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결국 피사트 가문의 검술가들이 난입할 수밖에 없어.’

분명 그들이 들어와 상황을 정리할 것이었다.

혹은 심판이 검황전의 종료를 선언하거나.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방어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진혁의 목숨을 거두어야 했다.

소중했던 이들의 복수를 위하여.

‘결국……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하나.’

스웨딘의 황자 델리악크가 가르쳐주었다.

아르테달에게는 신비로운 힘이 숨겨져 있다고.

‘시간 역행은 겉으로 드러난 권능.’

그리고 숨겨진 권능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주인의 생명을 원료로 하여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광전사’.

-“그걸 사용하면 넌 틀림없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에는 확실히 성공하겠지.”

‘황자는 아마도 이 상황을 모두 예견했던 것 같군.’

-“김철수의 방어는 생각보다 대단할 것이고, 어쩌면 네 복수가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주저 없이 광전사가 되어라. 네 복수가 진심이라면.”

어쩐지 황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아르테달을 들어 올린 뒤 속으로 읊조렸다.

‘광전사.’

검과 함께 호흡하며 공명하는 기분.

주인의 생명을 잡아먹을 생각에 신이 났는지, 묵빛 검면이 웅웅거리며 떨렸다.

검은색이 더욱 짙어져 순흑의 검으로 변모한 아르테달의 주변이 시각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차진혁은 긴장하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르테달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기이하게 휘어지고 있다.’

그를 둘러싼 시간마저도.

이 시공간이 아르테달과 무명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시간배율 촬영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인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생각을 하는 속도마저도 느려진 것 같았다.

그에 따라 무명이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죽어라, 김철수.”

무명의 눈동자가 시꺼먼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검에 이성이 잡아먹혀 버린 모습이었다.

‘빨라.’

차진혁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생방 켜야겠다.’

녹방으로는 이 갈급함이 채워지질 않았다.

아쉽게도, 오디오를 채울 여력까지는 없었다.

그는 절대결계를 사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채비를 끝냈으나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패는 ‘전능의 연출가’뿐.

‘너무 아꼈나?’

하지만 전능의 연출가는 필살기 격의 스킬이었고, 발동하는 데에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그 힘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마지막 정신력을 짜내어 한 마디를 꺼냈다.

“죽음의 사자가 다가옵니다.”

* * *

번쩍!

하얀 섬광이 터져 나왔다.

마시멜로를 제외한, 검투장의 관중들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까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요란한 검명이 들려왔다.

몇몇 관중들의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검과 검이 부딪치고 공기가 진동하며 공명음이 들려왔다.

“철수 님. 괜찮아요?”

묵검 아르테달과 비교되는, 두 자루 순백의 검신이 아르테달을 막아냈다.

두 개의 검이 교차하여 아르테달을 막아낸 그 순간.

“죽어!”

쉘비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차진혁과 대련을 할 때보다 훨씬 빠르고 간결했다.

마치 그녀가 거대한 화살이 된 것 같았다.

거인이 활시위를 당겨 그녀를 쏘아낸 것처럼.

그녀는 대검과 한 몸이 되어 쇄도했고 순식간에 무명의 심장을 꿰뚫었다.

무명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풀썩 쓰러졌다.

의도치 않은 조력자들의 등장이었으나 차진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파훼법은 아르테달. 그 자체입니다.”

아르테달을 부수는 것이 공략법이었다.

* * *

마시멜로는 크게 감명받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사자가 다가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시멜로는 그게 유언처럼 느껴졌었다.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멜팅치즈처럼 주욱- 녹아내렸다.

방송 중이 아니었더라면 ‘안 돼!’ 하고 소리칠 뻔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순백의 쌍검으로 묵검을 막아낸 김 이사엘.

푸른색 대검으로 무명의 가슴을 뚫어버린 쉘비.

“저 둘이…… 저 둘이 죽음의 사자였군요!”

마시멜로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반전이지!’

시청자들도 지금 난리가 났다.

-나 유언인 줄?

-그 죽음의 사자가 저 죽음의 사자였을 줄이야.

-유언마저 비장해서 존나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존나 멋있음 ㅠㅠㅠㅠ

-어디까지나 진짜고 어디까지가 연출이냐?

-반전 미쳤다 ㅋㅋ

마시멜로가 신나서 방송을 이어갔다.

“현실과 가상. 진실과 연출 그 사이의 경계. 스트리머 김철수는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그가 왜 검황전에 참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네요. 비록 검철수는 패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김철수는 패배하지 않는다. 이것이 김철수가 나아갈 방향이며, 김철수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게다가 차진혁은 무명의 공략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파훼법은 아르테달. 그 자체입니다.”

차진혁은 빈틈이 생긴 무명에게 접근하여 미리를 휘둘렀다.

꽈앙-!

미리는 무언가를 깨부수기에 최적의 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미리는 망치였으니까.

꽈앙-! 꽈앙-!

대장장이가 강철을 단조하듯, 차진혁은 아르테달을 내리쳤다.

시간 역행을 통해 제 컨디션을 되찾은 무명은 저항하려 했으나 쉘비와 김 이사엘의 협공 때문에 번번이 차진혁의 망치질에 아르테달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더해지는 김 이사엘과 쉘비의 공격 또한 아르테달에게 치명적이었다.

아르테달을 직접 손에 쥐고 있는 무명은 느낄 수 있었다.

‘아르테달이…… 부서져 간다?’

VIP석에서 관람하고 있는 스웨딘 황자 델리악크가 벌떡 일어섰다.

아르테달의 검신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황급히 부관에게 말했다.

“뭐하고 있어? 빨리 끝내!”

델리악크의 예상과는 철저하게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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