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7화
차진혁의 따뜻한 말에 김 이사엘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는데, 그녀의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나도 우러 ㅠㅠㅠ
-철수 님 그저 갓벽 ㅠㅠㅠㅠ
-나 왜 울고 있냐 ㅠㅠㅠ
-갬덩 ㅠㅠ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김 이사엘에게 이입하여 함께 울고 있는 시청자들.
그리고 그 시청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시청자들.
-근데 왜 우는 거임?
-김철수를 만나면 눈물이 난다고 함. 이유는 알 수 없음.
-저렇게까지 울 수 있다고?
-저게 왜 감동이지?
-이걸 안 운다고? 너네 싸이코패스지?
-너네가 감정과잉인 듯 ㅉㅉ
아무튼 김 이사엘은 다시금 검을 주워 들었다.
“알겠어요. 철수 님을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손이 김 이사엘의 어깨에 닿았다.
‘내가 왜?’
얼떨결에 김 이사엘의 어깨에 손을 얹은 차진혁은 잠시 굳었다가, 이내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응원할게, 철수랜드 777번, 김 이사엘.”
“네!”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서야 심판이 차진혁을 제지했다.
차진혁은 두 손을 들어 올린 채 순순히 무대를 빠져나왔다.
그때, 차진혁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를 왜 저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거지?’
김민지도 그렇고 김 이사엘도 그렇고.
그들을 볼 때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이성적인 호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정이었다.
‘나를 좋아해 준다라.’
그 마음이 문득 고마워졌다.
시청자들에게는 늘 감사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오늘따라 유독 더 깊이 체감한 느낌이었다.
‘이게…… 뭉클하다는 건가.’
* * *
김 이사엘과 무명의 결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박빙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무명이 김 이사엘의 목젖에 단도를 가져다 댄 것이었다.
-무명이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비교영상 있음 ㅇㅇ 더 빨라짐
-계속 성장하는 걸 보면 사실 천재였던 건가?
-뭔 개소리임 무조건 서약 빨은 거지.
김 이사엘은 비록 패배했지만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오늘이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었어요. 철수 님을 영접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저는 매일같이 오늘을 추억하며 살아갈 겁니다!”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김 이사엘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가슴이 너무 쿵쾅대고 호흡이 진정되질 않아서 실력 발휘를 못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명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더라구요.”
이것은 완전히 의도된 발언이었다.
‘무명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것처럼 말해야 더 많은 관심이 쏠리겠지!’
김 이사엘은 철수랜드답게, 김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철수 님이 기뻐할 거야!’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이불 속에 숨었다.
아까 김철수의 손이 닿았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여기는 이제 절대 안 씻어야겠다.’
* * *
‘여러모로 참 고맙단 말이야.’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그토록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보니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인터뷰까지 저렇게 완벽하게 해주다니.
원래부터 네임드였던 김 이사엘을 상대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무명은 이제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내가 언더독.’
덕분에 어그로가 어마어마하게 끌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박살 나길 바라는 애들도 은근히 많고.’
결승전까지 3일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보통의 검술가들은, 이 시간 동안 상대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며 컨디션을 관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는 검술가가 아니라 엘튜버였다.
“쉘비. 잠깐 나 좀 봐.”
차진혁에게 패배한 이후 쉘비는 숙소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패자 인터뷰 때 ‘이제 그만 은퇴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끝으로, 언론에 노출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
“안에 있는 거 알아.”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문 연다?”
금색 손잡이에 손을 대고서 오른쪽으로 돌렸다.
잠겨 있다면 천사소녀의 도움을 받아 열려고 했는데,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빛 한 점 들지 않는 방 안.
창문은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환기를 오래 하지 않았는지 공기가 무척 탁했다.
“쉘비.”
“가라.”
쉘비는 침대 앞에 폐인처럼 앉아 있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요 며칠 씻지도, 먹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젠장.’
차진혁은 녹화기능을 껐다.
‘나름 일상 콘텐츠 찍으러 온 건데…….’
지금의 쉘비를 콘텐츠화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꽤 큰 이슈가 되겠지만, 이상하게 이건 싫었다.
예전 테러에 이용당했던 소년 솜피아드의 눈물을 담지 않았던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자꾸 이런 감정이 드네.’
조회수만 생각하면 무조건 올려야 하는데 말이다.
조회수보다 중요한 무언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복잡해진 차진혁이 쉘비 앞에 서서 말했다.
“은퇴한다고 들었는데.”
“나가라고 했어.”
순간, 쉘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대검을 휘둘렀다.
예비동작 없이 갑자기 펼쳐진 기습에 차진혁이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의 셔츠 앞섶이 잘려나갔다.
‘와, 이것도 엘튜브각이었는데.’
쉘비는 대검을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다음에는 진짜로 벤다.”
“쉘비. 네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꺼지라고 했어.”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로 쉘비의 마음을 읽어냈다.
쉘비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꺼져 #혼자 있고 싶어 #가지 마 #혼자 두지 마]
‘멘탈이 박살 났네.’
그 모습을 보는 차진혁의 마음이 그리 좋지 못했다.
‘나를 살려주던 그때의 네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때의 쉘비는 벽이었다.
쉘비를 목표로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고, 덕분에 눈에 띄는 성장도 할 수 있었다.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쉘비.’
아직 깨달음도 얻지 못한 것 같은데.
그때의 쉘비. 패도적인 검술을 선보이던 그때의 쉘비가 다시 보고 싶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엘튜버다, 쉘비.”
“조롱하려는 거냐?”
엘튜버한테도 패배한 검술가라고?
쉘비는 순간 화가 치솟았지만 이내 짙은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서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너는 네 스스로 경험이 풍부하다 자부했겠지만 틀렸다고 말해주러 온 거야. 나는 검술가와 싸워본 경험이 아주 많다. 그러나 너는? 엘튜버와 싸워본 적 있나?”
“…….”
차진혁은 쉘비의 잠재력을 믿었다.
지금은 무너져있는 상태지만,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경험은 오히려 네 쪽이 훨씬 적었어.”
“같잖은 위로 같은 건 그만둬.”
“그리고 나는 엘튜버다. 검술가들과는 다른, 완전히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약간의 거짓말을 섞었다.
“네 잠재력이 보인다. 약간의 깨달음만 있으면 결국 몇 차원은 더 강해진 검술가로 거듭날 거야. 내가 그걸 확실히 보증하지.”
“……엘튜버의 보증 따위.”
“내가 실력으로 널 이겼다고 생각해?”
“……뭐?”
물론 실력으로 이겼지만 지금 중요한 건 쉘비에게 희망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서약 빨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말해주기 어렵지만.”
“…….”
“그러니까 반쯤은 반칙이었다고.”
“……나한테 왜 그런 걸 알려주는 거지?”
“내가 아는 쉘비의 모습으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서.”
차진혁은 오늘 있었던 김 이사엘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조건 없이 자신을 좋아해 주던, 그 순수하고 맑은 호감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무척 새롭고 감동적인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그 쉘비의 모습을 좋아했거든. 지금도 좋아하고.”
“…….”
[#내 모습을 좋아했다고? #나를 언제 봤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널 처음 봤던 건 마시멜로 방송에서였다. 정확히 어딘지는 기억 안 나는데, 네가 마물로부터 마시멜로를 지켜주는 영상이었어.”
“……아.”
“그 모습을 보고 네가 등장하는 모든 영상들을 찾아봤다. 네 검술이 나한테는 감동이었으니까.”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짜였다.
쉘비에게 뼈아픈 패배를 했었던 차진혁이기에,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쉘비가 등장하는 영상을 살펴본 것은 사실.
그녀의 검술이 감동이었다라는 말은 거짓.
그러나 쉘비 입장에서는 뭐가 진짜이고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리만 언덕에서의 활약도 보았고. 그 재수 없던 칼리툰의 검을 박살 내는 장면도 보았고. 탈옥자 빌리망을 생포하는 것도 보았어.”
“…….”
“네 모습이 내게 울림을 주었다.”
“…….”
“그래서 너와 만났을 때 무척 설레고 기뻤다.”
“…….”
“그러니까 돌아와줘. 네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지금은 쉘비의 팬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자신을 정말 좋아해 주는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오늘 그걸 배웠으니까.
* * *
쉘비는 은퇴를 번복했다.
예상치 못했던 패배에 정신이 무너졌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했고, 이번 일을 발판 삼아 더 높이 성장하겠다는 다짐을 덧붙였다.
-“저를 진심으로 도와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었고, 그 위로 덕택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는 그 친구에게 진심을 다하여 은혜를 갚을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철수랜드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인터뷰에 감명받은 김 이사엘은 쉘비를 찾아가서 직접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공식 철수랜드가 되기는 어렵다, 쉘비. 지금은 신청이 마감된 상태거든.”
둘은 이미 몇 번이나 검을 맞대기는 했지만 큰 친분은 없었다.
“하지만 공식이 아니라고 해서, 철수랜드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둘은 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통해 쉘비가 말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김 이사엘은 크게 감동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지 모르겠어.”
“…….”
“이러니 내가 안 좋아하고 배겨?”
“…….”
쉘비가 머뭇거리는 걸 본 이사엘은 피식 웃었다.
“지금 내가 지나치게 주접이라고 생각했지?”
“그, 그렇다기보다는…….”
“아직 철수 님이 막 엄청 좋고 그렇지는 않지? 고맙기는 해도.”
“…….”
“원래 처음에는 좀 그래. 그걸 전문용어로 입덕부정기라고 하거든?”
이사엘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거 지나고 나면 철수 님을 사랑, 아니 사모하게 되는 때가 올 거야. 우리 같이 힘내보자. 아 맞다. 근데 내가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말이야.”
서로 검을 맞대왔고, 실력은 이사엘이 조금 더 위였다.
“네가 대검을 운용할 때 말인데. 왜 왼팔의 마력 흐름을 연거푸 두 번 돌리는 거야?”
“그 건…….”
차진혁의 회귀 전에는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사람이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차진혁과 무명의 검전이 시작되었다.
검황전 역사상 가장 큰 화제가 되었고, 전 우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검황전을 집중했다.
검황전에 나선 무명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하나 있었다.
“죽여주마, 김철수.”
여태까지는 단도를 사용했었던 무명이 이번에는 검은색 장검을 들고나온 것이었다.
해설자들을 비롯하여 엘튜버들은 깜짝 놀랐다.
-“무명 선수가 들고 있는 검은 설마!”
-“마치 거울처럼 삼라만상을 반사하는 흑색 검면. 검신 전체를 관통하여 피어오르는 성스러운 묵빛 기운! 검은색 초승달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려한 외형! 아무래도 무명 선수가 들고 있는 무구는 묵검 아르테달인 것 같습니다! 전설로 전해지던 보구가 만천하에 그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전설 속을 유영하던 묵검 아르테달이 현세에 강림했습니다!”
묵검 아르테달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