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5화
회귀 전.
쉘비는 쓰러진 차진혁의 목젖에 검을 겨누었다.
“지구라는 작은 그릇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너의 불행이라면 불행이겠지.”
“…….”
당시 차진혁은 죽음을 직감했다.
쉘비는 강했고, 고작 한국의 검왕이었던 그는 우주랭커였던 쉘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지구 서버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자부하던 그의 검은 처참하게 두 동강 난 지 오래.
“그럼 잘 가라.”
쉘비는 거대한 대검을 들어 올린 뒤 차진혁의 목을 찔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 바로 옆, 땅을 찔렀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두부처럼 검이 쑤욱- 깊이 박혔다.
“하나 그토록 척박한 서버에서 이 정도 실력을 키워낸 것이 기특하니 기회를 주도록 하지.”
쉘비는 검을 회수한 뒤 그 자리에서 유유히 떠나갔다.
당시 차진혁이 느꼈던 존재감은 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검황전에서 마주한 쉘비는 조금 달랐다.
‘왜 이렇게 허점투성이야?’
전에는 마치 생명이 없는 벽과 싸우는 것 같았다.
아득한 기분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애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인가?’
일정 수준 이상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깨달음을 통해 계단식으로 강해진다.
아직 쉘비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았다.
‘시기상으로는 몇 년 뒤이기는 하니까.’
상대가 쉘비로 정해졌을 때에는 무척 설렜으나 이내 김이 팍 식어버렸다.
조금 과장하자면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차진혁은 일단 힘을 빼고서 쉘비의 대검을 받아냈다.
쉘비의 움직임이 훤히 읽히다 보니, 페이크와 진짜 공격을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페이크에는 반응하지 않고 진짜 공격만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그 광경에 관중들을 비롯하여 마시멜로의 시청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와 방금 코 잘릴 뻔.
-박진감 개쩐다 ㅋㅋㅋ
-1인칭 아니라서 실망할 뻔했는데 실망할 필요 전혀 없었누
-이게 마시멜로지
차진혁을 독점적으로 중계하고 있는 마시멜로.
그리고 그 마시멜로를 보는 백과사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네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랜 친구인 백과사전은 영상만 봐도 마시멜로의 상태와 기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철수랜드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확히 알 수 있을 듯하군.’
마시멜로의 연출 주안점은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아니었다.
‘김철수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박진감이 전달된다는 것은 마시멜로의 실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의미.
어쨌든 마시멜로의 연출 덕택에 전 우주의 철수랜드들이 마시멜로의 채널에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마시멜로 채널의 실시간 시청자 숫자는 순식간에 50억 명을 돌파했다.
-여기가 김철수 실물짤의 요람인가요?
-철수 님 실물에 근접한 수준의 영상을 보여준다고 해서 찾아왔네요.
마시멜로는 한술 더 떠서 3D 화면까지 제공했다.
-은혜롭다 은혜로와 ㅠㅠㅠ
-나 자신, 살아 있길 잘했어 ♥
-기특해 내 자신
물론 부작용들도 있게 마련이었다.
-얼굴 말고 전투에 집중하라고
-ㅅㅂ 지금 저 퀄리티 개쩌는 전투를 보면서 김철수 외모에만 침 흘리는 게 맞냐? (소매로 침을 슥- 닦으며)
전투에 집중하라는 전투파와 김철수의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김철수파가 나뉘어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와중, 차진혁은 드디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본선까지는 압도로 간다.’
콘텐츠의 유기적인 연결을 위하여, 이전에 한 번 썼던 연출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똑똑히 보아라, 쉘비.”
-검철수의 시간이다.
-나왔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검철수 등장이오! 빵빠레를 울려라 ♪♬
-기쁘다 검철수 오셨네
“검철수의 시간이다.”
* * *
쉘비의 움직임이 모두 보였다.
이게 함정인가 아닌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일직선으로 밀고 들어간다.’
차진혁은 계속해서 무명을 의식하고 있는 중.
‘무명과 똑같은 방식으로 쉘비를 꺾으면 어그로가 끌리겠지?’
-단검 형태도 좋아요. 흐흐흐.
미리는 차진혁의 의지에 반응하여 단검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 모습이 더 자극이 세게 오니까, 하아-!
-작은 검이 매운 법!
미리는 미약한 신음을 내며 흥분했다.
단검의 형상으로 찔렀을 때 더 자극이 잘 온다나 뭐라나.
차진혁은 잔뜩 흥분한 미리를 보며 괜스레 조금 미안해졌다.
‘이거 실전 아니야. 죽이는 건 곤란해.’
그렇지만 미리는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사전연습이라 생각하면 되지요. 히히.
연습 열심히 해놓으면 다음에 정확하고 깊게 쑤실 수 있잖아요.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무구 같지는 않아서, 차진혁은 문득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무구들은 주인과 정신적으로 연동된다고 하지 않았나? 얘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지극히 정상인데 말이야.
아무튼 차진혁은 무명과 같은 방식으로 쉘비에게 접근했다.
쉘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네 수가 뻔히 보이는구나.”
허리를 숙이고 일직선으로 접근하는 것은 하수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키려는 동작이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셋업 과정이 하나도 없어서 그 수가 눈에 훤히 보였다.
‘마음이 급해졌나 보지?’
사실 연출 방향을 결정하느라 차진혁이 많이 봐준 상황이었지만, 정작 쉘비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서 차진혁이 봐줬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검술에 경험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이런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진짜 검술가와 엘튜버의 차이이자 경험의 차이니까.
‘응?’
그러나 쉘비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어느새 차진혁의 단검이 쉘비의 관자놀이에 닿은 상태.
쉘비의 관자놀이로부터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승자는 김철수입니다!”
관중들이 와아아아-! 하고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쉘비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뭐였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는데, 사실 그녀는 답을 알고 있었다.
‘알아도 막지 못했다.’
그것은 차진혁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빨랐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스피드 앞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던 것.
이것은 검술 차이가 아니라 피지컬 차이에 가까웠다.
쉘비는 저도 모르게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렇게도…… 패배할 수 있는 거였나.’
세 살 때 처음으로 검을 손에 쥐었다.
상대의 동작과 검로를 모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쉘비는 땅에 떨어진 검을 다시 줍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돌려 검투장 밖을 향해 걸어갔다.
‘벽이다.’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벽.
밖을 향해 걸어가는 쉘비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전혀 없었다.
살짝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로 위태위태하게 걸어간 그녀는, 그날부로 은퇴를 선언했다.
* * *
검황전에 신성이 등장하여 본선까지 진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신성이라고 해도, 직전 검황전이나 그전 검황전 경험이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철수나 무명처럼 첫 검황전에 본선 진출을 확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김철수와 무명에게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중.
그 와중에 무명이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주게 되면서, 반대로 김철수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김철수 밑천 다 드러났쥬?
-김철수 : 저는 ㅈ밥입니다 ㅠㅠ
-무명에게 발리쥬 발레리 꼴레리쥬?
그것은 누군가가 분석한 ‘무명과 김철수의 실력 차’라는 게시글 때문이었다.
해당 게시글은 각종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철수와 무명의 속도를 비교해 본다]
이번에 차진혁은 무명과 같은 방식으로 쉘비를 상대했다.
말하자면 ‘가까이 다가가 단도를 휘두른다’라는 방식.
-똑같이 움직여 준 덕분에 속도 비교 쌉가능
-마시멜로 영상으로 보면 1/1000배속도 가능함
게시글 작성자는 두 영상을 꽤 심도 있게 분석했다.
[상대와의 거리를 고려하여, 거리를 같다고 가정하였을 시…… 하여…… 계산하면…….]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같은 출발 선상에서 달리기 시작한 둘을 비교한 영상이었는데, 무명의 속도가 더 빨랐다.
[이렇게 무명의 속도가 김철수를 압도한다. 효율도 무명 쪽이 훨씬 좋을 듯하고.]
느리게 재생해서 보면 전체적으로 무명의 움직임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검술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김철수의 검은 궤도가 지나치게 크고 간결하지 못하다.]
그것은 차진혁이 미리를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미리의 취향이 관자놀이나 뒷통수였으니까.
그래서 조금 불필요한 동작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단도의 궤적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무명이 김철수를 압도하는 것이 팩트. 물론, 엘튜버로서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는 말이다.]
분석글과 영상이 상당히 자세하고 그럴듯해서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영상 봄?
-김철수 찌발리던데
-김철수 거품 드디어 꺼지나욬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다 방심하다 진 거 아님?ㅋㅋ
-본선부터는 차원이 다름 ㅇㅇ 김철수 광탈할 듯
원래부터 김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뜨겁게 불타올랐고, 엘튜버가 검황전에 참여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도 그에 호응했다.
-그래도 엘튜버치고는 꽤 선방했음
-이제야 김철수 떨어지냐? 후 고구마 백 개 먹은 줄 알았다
-김철수가 사실은 ㅈ밥이었던 건에 대하여
김철수와 무명의 실력을 비교한 게시글은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엘튜버들이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그에 따라 카일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이러면 안 된다……!’
그는 결승전에서 차진혁과 맞붙고 싶었다.
정정당당하게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우고 싶었는데 이런 변수가 발생해 버리다니.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른 검술가들끼리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멘탈이 무너지면 실력이 안 나온단 말이다!’
그는 황급히 차진혁의 숙소로 향했다.
‘김철수가 당연히 결승까지 올라온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 여유도 없었다.
“김철수!”
아니나 다를까.
차진혁의 방은 어두웠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고, 차진혁은 이불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걸어가 차진혁이 덮고 있는 이불을 확 들어 올렸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차진혁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본선이다. 그깟 조롱들 때문에 멘탈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 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
급박하게 말을 잇던 카일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차진혁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카일은 차진혁의 액정을 슬쩍 훔쳐봤다.
[김철수 굴욕]
[김철수 무명 속도]
[김철수 거품]
[김철수 단도]
무명으로 도배되어 있던 실시간 검색어들이 김철수와 관련된 거로 바뀌어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는 [김철수 굴ㅇ] 까지 써 있었다.
“……너 뭐 하냐?”
차진혁은 멋쩍은 듯 웃었다.
“별거 아니다.”
차진혁은 본인 스스로 ‘김철수 굴욕’을 검색 중이었다.
카일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검색 횟수를 한 번이라도 더 늘리려고?’
말하자면 조회수를 1이라도 올리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그렇게 생각했으나 왠지 모르게 그게 맞을 것 같기도 했다.
우연찮게 검색기록이 보였는데,
[김철수 굴욕]
[김철수 무명 속도]
.
.
.
[김철수 거품]
[김철수 단도]
차진혁의 충혈된 눈을 본 카일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광기……다.’
엘튜버로서의 김철수는 조금 두려울 것 같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진혁은 상당히 흐뭇한 상태였다.
‘내가 이겼다, 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