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74화 (37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4화

-나는 지옥 출신이다.

그 한마디는 상당히 많은 추측을 낳았다.

-지옥 출신?

-저 정도면 김철수가 지옥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봐야 됨.

자유연대 연대장 헬람과 뇌전술사 산디에므에 이어 이번에는 ‘무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검술가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좋은 내용밖에 없던데.

-내 지인 중에 지옥민 있는데 개만족하던데?

-근데 왜 저렇게까지 함?

-어떻게 보면 헬람과 산디에므는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 아님?

여러 의견이 난립하는 가운데, 무명은 또다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저거 근데 장난감 칼 아니냐?

-한 뼘도 안 될 듯?

-저런 단검을 쓰는 랭커가 있었나?

-어떻게 저런 실력자가 하루아침에 튀어나옴?

무명은 그 자체로 커다란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검술은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까이 다가가 목을 베는 것이 끝이었다.

대련을 중재하는 중재기사조차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

그와 싸웠던 두 명의 검술가들도 무명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죽이려고 했으면 죽였겠는데.

-와 진짜 개쩐다.

-우주는 넓고 강자는 많다. 늘 겸손하자.

차진혁은 숙소 침대에 누웠다.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여론을 살폈는데, ‘검황전 김철수’보다 ‘검황전 무명’ 키워드가 더 뜨거웠다.

그런데 그때, 노크 없이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피사트 가문 내에서 이렇게 매너 없이 행동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카일?”

“스승님을 대하는 태도가 그게 맞는 거냐?”

“…….”

“잊지 마라, 네가 심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준 스승님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말이야.”

“가짜 주제에.”

하마터면 저 가짜 가르침에 속아 본업보다 검술에 더 비중을 둘 뻔하지 않았는가.

저런 어중간한 가르침은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법이었다.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온 거냐?”

드르륵-

카일은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무명. 그 새끼한테 죽지 마라.”

말을 꺼낸 카일은 은근슬쩍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우연찮게 차진혁 핸드폰의 액정이 보였는데 무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김철수도 무명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군.’

“기분이 나빠 보이는군, 김철수.”

“조금 불쾌하기는 하다.”

그럴 수밖에.

대놓고 자신을 저격하며 죽이겠다고 선포한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상대가 이 정도 했는데 화가 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진혁은 한숨을 내쉬고서 액정을 들어 올렸다.

“이것들을 봐라.”

[검황전 무명]

[무명의 정체]

[무명 전적]

[무명 진짜 무기]

등등.

무명에 관한 것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러니 불쾌할 수밖에.”

“……그러니까,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너를 이겨서 기분이 나쁘다는 거냐?”

뼛속까지 검술가인 카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검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깨달음을 통해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상식적인 선이 있기 마련이야.”

차진혁은 순간 ‘내 얘기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조금 찔렸다.

“무명. 그자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무지렁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검황전에서 이렇게 두각을 드러낸다? 이게 가능하려면 하나밖에 없어.”

“그런 방법이 있어?”

“설마 모르나?”

카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모르는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호승심을 느끼는 내 자신이 혐오스럽군.”

“당사자가 듣고 있는데 실례 아닌가?”

카일은 기분이 나빠졌고 차진혁은 좋아졌다.

어쨌든 카일이 차진혁 자신을 경쟁상대로 인정했으니까 말이다.

“설마 검의 서약을 모른단 말이냐?”

“잠깐만.”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엘튜브 각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급 정보가 흘러나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녹화 따도 되냐?”

“네 마음대로 해!”

“미리 말하지만 나는 방송에 치열하기는 해도 미친놈은 아니야. 그러니까 민감한 주제라면 미리 언질을 줘라. 상대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것들까지 공개하지는 않아.”

“공개해도 전혀 상관없다.”

카일 입장에서 [검의 서약]은 딱히 엄청난 비밀은 아니었다.

다만, 알려줘도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뿐.

“검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비단 검이 아니라 모든 무구에도 해당되는 일이지.”

“미리랑 내가 대화하는 것처럼?”

“그거랑은 다르지, 이 멍청한 놈아!”

카일은 자꾸 헷갈렸다.

‘이놈이 정말 심검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 맞나?’

성장속도만 보면 가히 천재 위의 천재였으나 검술에 관한 지식은 너무 얄팍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무서운 걸지도.’

저런 지식을 가지고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서울 지경이었다.

“네 무구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말하는 에고 소드에 가까운 아티팩트고.”

“…….”

“내가 말하는 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무구가 가진 의지 자체를 듣는 것이지.”

“…….”

“설마 모르나?”

“솔직히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

“그래. 그런 게 있다 치고 넘어가라. 검의 목소리를 듣게 된 자는 검의 서약을 맺을 수 있다. 특별한 클래스인 서약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야.”

그제야 차진혁도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회귀 전에도 서약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검과 어떤 계약을 맺게 되면 삽시간에 엄청난 힘과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었다.

‘세상에 그런 말도 안되는 잡기술이 어디 있냐며 그딴 건 사기라고 생각했었지.’

돌이켜 보면 그때는 시야가 참 좁았다.

매일같이 목숨 걸고 싸우며 전장에서 칼을 휘둘러야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엘튜버의 삶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검의 서약’같은 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었다.

“검과 서약을 맺는다는 것은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들에 제한을 걸고 약속을 맺는다는 의미다.”

카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고 차진혁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무가내인 성격 탓에 무식해 보였는데 이럴 때 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맞기는 맞구나 싶었다.

“이를테면 성인 남성에게만 검을 사용하겠다라든가. 사람이 아닌 자에게만 검을 사용하겠다라든가 등의 제한을 걸어 검과 서약을 맺는 것이지. 이 제약이 커지면 당연히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게 되고, 그 범위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강력한 권능을 발휘한다.”

카일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어쩌면 무명은 ‘검황전에서만 실력을 발휘하겠다’ 등의 서약을 맺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 * *

무명은 상의를 모두 벗은 채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요즘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것만 같은 고양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이것이 새로운 소우주.’

같은 것을 보아도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같은 것을 느껴도 더 많은 것이 느껴졌다.

상대의 날숨과 들숨. 기세와 동작.

기술의 형태뿐만 아니라 본질까지도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는 명상을 통해 아까 있었던 대련을 복기하는 중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상대의 솜털까지도 기억이 날 정도였다.

‘이것이 서약의 힘!’

카일의 예상대로 그는 ‘검황전에서만 나의 검을 사용하겠다’라는 서약을 맺은 상태.

그것도 모든 검황전이 아니라, ‘이번 회차 검황전에서만’ 검을 사용하겠다라는 서약을 통해, 범위를 굉장히 좁혀놓았다.

그러니까 그의 실력은 끽해야 몇 주짜리 실력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억울하게 죽은 친우 산디에므.

그리고 존경했던 헬람의 복수를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의도가 훤히 보이는군. 산디에므의 친구이자 헬람을 따르는 추종자였다지?”

무방비 상태로 명상 중이었던 무명은 눈을 번쩍 뜨고서 옆에 내려놓았던 단도를 집어 들었다.

“누구냐?”

금발머리의 소년은 푸른색의 상당히 고급스러운 제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의 왼쪽 허리춤에는 의전용 검이 매달려 있었는데, 장식품에 가까운 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졌다.

“검황전에서만 검을 사용하기로 서약했나 보군. 기세가 아주 형편없어.”

금발머리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명 앞에 섰다.

“내 이름은 델리악크다.”

무명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검을 손에 쥔 자들 중 델리악크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천재 소년.

검이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진, 검의 제국 스웨딘에서도 손꼽히는 잠재력을 가진 이.

“풀네임은 델리악크 드막 스웨딘.”

스웨딘의 성을 쓸 수 있는 자들은 오로지 황가의 직계혈통뿐이었다.

금발머리 소년의 정체는 바로 스웨딘의 제1황자였다.

“네게 제안을 하나 하지.”

“……무엇입니까?”

무명은 차마 반말로 응수하지 못했다.

실력은 별개로 치더라도, 델리악크에게서는 지배자로서의 아우라가 있었고 무명은 그 아우라에 이미 압도되었다.

“김철수를 죽이는 걸 도와주마.”

* * *

계약을 끝마친 델리악크는 말을 조금 높여주었다.

“그럼, 내 자네를 믿도록 하지.”

그러고서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뒤돌아 나갔다.

델리악크 뒤에 조용히 서 있던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저자에게 새로운 신분과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주실 겁니까?”

“제 입으로 말한 걸 지키지 못한 황족에게 황족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

“만들어준다고 했지 지켜준다고 한 적은 없다.”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난 후,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 리 없는 무명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깃들었다.

‘이것이 스웨딘 제국의 검령환……!’

겉보기로는 특별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검은색 환약이었다.

무명은 망설임없이 환약을 삼켰다.

맛이 무척 썼고 뱃속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의 눈빛이 한층 더 맑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델리악크가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쓰라며 건네준 무구들은 하나같이 다 보구들이었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같은 실력이라면 좋은 무구를 지닌 자가 이기는 법.

‘김철수의 미리보다 절대 못나지 않은 무기들이다.’

그는 푸르스름한 빛을 흩뿌리고 있는 단도를 집어 들었다.

손에 쥐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검과 함께 춤을 추고 싶구나.’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근질거렸다.

그리고 다음 경기.

그는 또 다른 우승 후보를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 차를 선보이며 승리하며 최후의 16인에 선정되었다.

‘보여주마, 나의 의지를. 김철수. 너는 결코 살아돌아갈 수 없으리라!’

무명이 뜨거운 열의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32강 전에 오른 차진혁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는 눈 앞에 선 붉은 머리여자를 바라보았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는 여자.

검왕 시절 차진혁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었던 쉘비였다.

그녀 앞에 선 차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아닌데…….’

너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