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69화
우주선 내에 숨어 인질극을 벌이고 있던 헬람은 군주외침을 통해 제 의사를 전달했다.
-“지옥의 자유를 강탈한 김철수와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대화를 나눈 뒤 순순히 자수하겠다.”
특임대장 빌스마르크로서는 딱히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특임대와 검황대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여 겨우 헬람의 위치를 잡아냈는데, 그다지 큰 시간 차 없이 김철수가 등장한 것부터 그에게는 악재였다.
‘대중들이 보기에는 김철수와 르세핌의 역량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 보이겠지.’
항상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특임대장에게는 이 사실 자체가 무거운 납덩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저 테러단체의 수장이 김철수와의 단독대화를 원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이 상황의 포커스가 김철수에게로 향하는 것 같아 마음에 영 걸렸다.
헬람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김철수와의 대화를 보장해 준다면 인질들은 모두 안전할 것이다.”
빌스마르크가 차진혁에게 물었다.
“김철수 경. 그대는 저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가?”
내심, 차진혁이 저 제안을 거절하기를 바란 그가 은근슬쩍 말을 이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헬람은 교묘하고 비열한 자이네.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혹시 그게 무슨 함정인지 파악됐습니까?”
빌스마르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김철수도 제 안위를 생각하기는 하는구나!’
그럼 그렇지.
함정을 신경 쓰지 않는 머저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직 어떤 함정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지.”
“……그렇군요.”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게. 시간이 조금 걸릴 뿐. 특임대는 놈의 계략을 샅샅이 파헤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으니.”
-빌스마르크 지금 오해하는 듯?
-무슨 함정인지 알아야 더 치열하고 긴박하게 연출할 수 있는데 그걸 몰라서 아쉬워하는 건데?
-근데 사실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듯.
-하긴. 모르면 모르는 대로 긴장감 연출 쌉가능 ㅋㅋ
차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뭐?”
하마터면 ‘함정이 뭔지 모르는 것조차도 엘튜브 각이니까요’라고 말할 뻔했던 차진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수많은 인질들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별로 인간다운 마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진혁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군가의 부모가, 누군가의 자식이, 누군가의 형제자매가, 누군가의 친우가 목숨을 담보로 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말을 하는 본인도 이것이 연기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저자가 저와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 요청에 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저는 그 함정을 외면하기 어렵겠군요.”
“오히려 인질들을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네.”
이쪽의 상황을 방플을 통해 모두 살펴보고 있는 헬람이 다시 외쳤다.
-“1분 주겠다. 1분 안에 김철수와의 대화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인질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그는 알람스킬을 사용하여 허공에 붉은 숫자를 띄웠다.
[1:00]
[0:59]
[0:58]
“저자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위험하다 해도,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도, 가끔은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그때입니다, 빌스마르크 경.”
빌스마르크는 멀어지는 차진혁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조금 헷갈리는 중이었다.
‘저자는…… 정말로 정의로운 인물인 건가?’
차진혁을 뒷모습을 바라보는 빌스마르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 * *
헬람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아마 오늘도 희생이 있을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우주선 내부에 마력폭탄을 심어두었고, 승객 몇몇도 지옥을 위해 제 몸을 던질 위대한 전사들이었다.
말하자면 생체폭탄들.
‘김철수를 없애면…… 수호수의 힘도, 지옥좌의 영향력도 약화되겠지.’
그는 김철수와 꽤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었다.
지난 테러에 대한 사과도 하고, 김철수를 오해했다며 이제부터는 너를 인정하겠다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우리는 악수를 나눌 것이다.’
악수를 나누는 그 순간이 기회였다.
품 안에 숨겨놓은 기폭스위치를 눌러 김철수와 함께 장렬히 산화할 작정이었다.
‘모든 것은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그는 자신의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진실된 투사였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투사 헬람은 비장한 마음으로 김철수가 우주선 내부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멍청한 놈. 정말로 들어왔군.’
헬람이 임시로 마련해놓은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환영한다, 김철수.”
적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몹시 애써야 했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각종 위장 아티팩트들도 둘렀다.
‘놈은 상대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오히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들은 자만하기 마련이니까.
‘이곳은 수호수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 그러니까 내 속마음을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다.’
군주 클래스인 그는 핸드폰 등의 단말기 없이도 차진혁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홀로그램 형식이었다.
말하자면 몰래 방플이 가능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내 속마음부터 읽는군.’
방송으로 확인해 보니,
[#진실된 사죄 #잘못된 신념 #깊은 반성 #마지막_대화]
‘내 위장 능력이 이정도였나?’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위장능력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았다.
그도 아니면 김철수의 파악 능력이 생각보다 보잘 것 없거나.
중계자의 통찰로 저런 걸 확인했으니 이제 김철수가 완벽하게 방심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지난 과오들을 모두 반성한다. 수십억의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과하고 싶었다, 김철수. 아니, 김철수 경.”
대화는 순조로웠다.
“이 대화가 끝나면 나는 제 발로 나가 체포될 것이다. 물론 김철수 경이 나를 용서해 준다면 말이야.”
“내가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나의 목숨은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지. 그대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김철수에게 처분을 맡기는 겸허한 태도.
그는 자신의 작전이 완벽하게 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배기 철수랜드들은 이미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공식철수랜드 전용앱, 철수피아에서 적극적으로 채팅을 나눴다.
[001호: 근데 철수 님이 원래 남 속마음 안 보여주잖아>_<]
[092호: ㅇㅇ보여준 적 거의 없어.]
[221호: 이거 오히려 계략인 듯?]
공식 철수랜드들은 그 누구보다 김철수 방송에 진심인 사람들.
[001호: 철수 님을 속였다고 생각한 헬람을 속인 철수 님을 알아차린 철수랜드를 사랑하는 철수 님 채고야 너무 짜릿해♡]
* * *
차진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름 위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다 보인다고?’
[#끝이다_김철수 #자유를 위하여 #순교 #동반자폭]
방플을 하고 있다는 건 어차피 알고 있었다.
차진혁은 헬람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읽어냈다.
굳이 중계자의 통찰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꿍꿍이가 있는 것쯤은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자축하고 있어?’
차진혁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수호수의 권능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는 해도, 겨우 레벨 300 중반대의 군주를 속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
‘아…….’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레벨 400대 엘튜버를 만나본 적이 없나 보다.’
원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자기가 최선을 다하면 모두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기 얼굴만 숨기면 남들도 자기를 못찾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보아하니 아마도 마지막 악수를 제안할 것 같고.’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한세린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상대의 수가 훤히 보였다.
무엇을 얘기할지, 그 다음 스텝은 어떻게 될지.
‘그 다음에 곳곳에 심어둔 폭탄들을 연쇄적으로 폭발시켜서 나랑 자폭할 거야.’
그게 좀 의아하기는 했다.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폭발이길래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레벨 300대 군주가 준비해놓은 함정은 생각보다 허술했다.
얼마나 강한 폭탄을 준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맞아보고 싶다.’
혼자였다면 맞아보았겠지만, 이곳에는 연약한 승객들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 사죄의 의미로 그대와 악수를 나누고 싶다.”
이렇게 뻔히 보이게 수작을 부린다고? 이거 진짜인가? 오히려 내가 속고 있는 거 아닌가?
차진혁은 혀를 내둘렀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차진혁도 손을 내밀었다.
‘지금이다!’
손을 맞잡은 순간, 헬람은 왼손에 쥐고 있던 기폭제를 눌렀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비장하게 외쳤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 *
우주선 바깥에서 몰래 작업하던 특임대원들이 침투공간을 만들어내고서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들은 갈고리를 던져 헬람을 생포했다.
헬람의 목에는 둥그런 형태의 구속 마도구가 걸렸고, 손목에는 특수합금으로 제작된 수갑이 채워졌다.
“헬람을 체포하였습니다.”
헬람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왜지?’
왜 폭탄이 하나도 작동하지 않은 거지.
‘분명 스위치를 눌렀…….’
그는 땅에 굴러 떨어진 스위치를 쳐다보았다.
‘어?’
스위치 밑면에 메롱 표식이 있었다.
그것은 천사소녀 송하영의 표식이었다.
차진혁은 쓰러진 헬람 쪽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방송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헬람은 사실…… 해서…… 폭발을 준비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그것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척 하며 천사소녀를 투입한 것입니다.”
헬람은 자신이 대화를 주도하며 차진혁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정신이 쏙 빠진 쪽은 차진혁이 아니라 헬람이었다.
차진혁은 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헬람의 신경을 완전히 분산시킨 뒤 송하영을 통해 기폭장치를 훔쳤다.
“헬람은 멀티태스킹이 좀 안 되더라고요.”
승객들은 밖으로 대피시키며 사태를 수습하던 빌스마르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아니. 저자는 오히려 멀티태스킹에 능한 자다, 김철수 경. 그대는 저 자를 오해하고 있어.’
헬람과 같은 군주계열인 빌스마르크는 알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헬람이 해냈던 것은 무척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위장 아티팩트와 정신방벽을 통해 속마음을 숨기면서, 겉으로는 차진혁과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누면서, 홀로그램을 통해 차진혁의 방송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군주들이 홀로그램으로 방송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단말기를 사용하는 건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정신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는 행위였다.
신경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멀티태스킹에 자신있는 자가 아니라면 감히 시도하지 않을 방법.
‘헬람이 못하는 게 아니라 그대의 능력이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것이다.’
분명히 그런데,
“네, 뭐.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멀티태스킹도 못하고 정신력도 약하고. 그냥저냥 상대할 만했던 것 같습니다.”
김철수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 플레이를 펼쳤는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보였다.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김철수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