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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68화 (36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68화

산디에므는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

함정도 없고. 긴박함도 없고. 이렇게 순순히 항복한다고?

와씨, 개 열받네.

차진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야, 아니,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봐라. 마법수사대의 일리나에 아르비스 랭커 르세핌에 뇌룡 아탄나까지 초호화 캐스팅으로 기승전을 만들었는데 결이 이렇게 허무하다고? 이런 걸 뭐라고 하는 줄 아냐?”

“…….”

산디에므는 차진혁이 화를 내는 포인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용두사망이라고 하는 거다, 이 새끼야.”

“…….”

……라는 내용은 편집자 강철의 센스있는 편집으로 모두 편집되었다.

한바탕 화를 쏟아낸 차진혁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잠깐만?’

내가 정상인이라면 이 방향으로 화를 내는 게 맞나?

물론 화가 난 건 맞지만 보편타당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의 분노 표출이 맞았나?

생각해 보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왕유미로부터 중계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걱정 마시고 그냥 마음 편히 화내세요. 편집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여]

[※편집 포인트: 감동 서사 및 산디에므 죽일놈 만들기☆]

강철은 이제 실시간 방송을 편집하는데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자료화면을 여기에 써서 화면을 교차편집 하기 시작했다.

뇌전술사 산디에므가 잿빛머리의 소년을 납치해 왔던 그 순간의 영상.

몽마 렐핌이 소년의 기억을 기록한 영상이었다.

영상 속 산디에므가 말했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나선, 위대한 소년입니다.”

여기에 전문 성우의 나래이션이 덧입혀졌다.

“소년은 집에 보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유를 외치던 어른들은 그 소년의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디에므가 말했다.

-“이 아이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작은 폭발을 일으킬 겁니다. 그 공간에서는 작은 폭발마저도 커다란 위협이 되니까요.”

“본인들의 욕망을 위하여 소년을 희생하려던 뇌전술사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화면을 교차편집 하여 현재의 산디에므에 집중했다.

-“항복합니다. 제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자발적으로 바치라고 강요하던 이는 이제 본인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외치던 자유를 향한 갈망은 겨우 이정도였던 것일까요?”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집에 보내달라던 어린아이는 위대한 용사라 불리며 희생해야 옳다고 말했던 자가, 본인은 살아남고자 무릎을 꿇고 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들의 민낯이며, 우리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실시간 편집에 성공한 강철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꽤 괜찮은 연출이 되었는지, 채팅창의 화력이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생각해 보니까 개시X새X구나.

-자유니 뭐니 ㅈㄹ 떨다가 막상 잡히니까 살려주세요 ㅇㅈㄹ 떨고 있네

-개역겹누

-위대한 전사 어쩌고 하다가 막상 지는 빛의 속도로 항복하네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차진혁에 대한 우호도도 덩달아 상승했다.

초반에 차진혁이 대뜸 분노한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어쩐지 갑자기 화를 내더라니.

-나는 함정 없어서 화난 줄 알았잖아.

-미친놈이냐? 그런 걸로 화내게?

-그저 빛, 빛철수이시다.

-정의구현 가즈아아아ㅏㅏㅏㅏㅏ!

오늘도 김철수는 정의로웠다.

* * *

헬람은 특임대와 검황대의 추적을 피해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서버와 서버를 이동하는 밀항선이었다.

그는 우주선 내 화장실에 숨어 차진혁의 방송을 염탐했다.

‘잘하고 있다, 산디에므.’

산디에므를 갈루이 바위산에 배치한 것은 그의 계략이었다.

눈에 띄는 악당을 보기 좋게 미끼로 전시하고, 그 사이 몸을 피하려는 헬람의 계략.

사실 그는 산디에므에게 가짜 정보를 쥐여 준 상태였다.

헬람은 산디에므가 사로잡힐 것을 이미 예측했고, 가짜 도주경로를 산디에므에게 알려준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더 벌 수 있겠지.’

산디에므 하나를 내주고 지옥 자유연대의 연대장인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훨씬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방송 속, 차진혁이 말했다.

-네 정보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리고 잠시 화면가리개가 등장했다.

최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화면가리개였는데 이것도 꽤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오 미녀 삼대장 폼 미쳤다 ㅋㅋ

-개이쁨 ㅋㅋㅋ

-화면가리개 개이득

-캡처

시청자들이 렐핌/일리나/아탄나의 사진으로 구성된 화면가리개에 정신이 팔렸고, 화면가리개가 사라졌을 때에는 더 이상 산디에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산디에므 어떻게 된 거임?

-죽였겠지. 정의의 치열좌가 저걸 그냥 뒀겠음?

-이건 무조건 정당방위인데 ㅋㅋ

-철수 님. 산디에므 죽였나요?

차진혁은 산디에므를 죽였다, 죽이지 않았다에 대한 언급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체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다 보니 살해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산디에므는 이제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할 겁니다. 산디에므의 품 안에서 헬람의 도주경로가 담긴 쪽지를 발견하기는 했습니다만.”

차진혁이 그 쪽지를 북북 찢었다.

“한세린이 말하길 가짜 정보라고 하는군요. 대신 닉크만이 항복을 해왔으니, 이를 토대로 헬람을 추적해 보려 합니다.”

헬람은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바, 방금 뭐였지?’

액정 너머로 차진혁과 자신의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그럴 리가 없지.’

그는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곧 어딘가에 도착하니 승객들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라는 우주선 내 방송이 들려왔다.

* * *

닉크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 내가 과연 여길 잘 찾아온 건가 싶었다.

‘젠장.’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뇌전술사 산디에므가 차진혁의 망치공격 한 번을 버티지 못했다.

닉크만이 본 차진혁은 괴물이었다.

‘방송으로 볼때와 너무 다르잖아.’

방송으로는 김철수의 위압감이나 존재감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데 눈으로 마주한 김철수는 거인이었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어떤 재앙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에 가까웠다.

‘산디에므는 정말 죽은 건가?’

강하게 내려친 것도 아니고 가까이 다가가 톡 쳤을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산디에므의 동공에 초점이 사라지며 쓰러져 버렸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도 거의 없었으나 숨은 더 이상 쉬지 않고 있었다.

‘죽은 게 맞아.’

닉크만은 알 수 있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완전히 박살 났어.’

외피에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으면서 내부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수법.

숙련된 권법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로 알고 있는데, 그걸 망치로 해내는 괴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그냥 때리는 것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이고.’

산디에므의 죽음을 목격한 닉크만은 벌벌 떨며 말했다.

“헬람은 저와 군주통신을 여러 차례 했었습니다. 그를 토대로 역추적을 하면 헬람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르, 르세핌 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겠죠.”

한세린이 옆에서 중요한 것을 짚었다.

“그 정보는 네 목숨값이야. 알지?”

다시 말해 천사소녀가 훔쳐간 각종 보물들은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일단 눈 앞이 노래진 닉크만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살려만 주세요.”

“그건 고려해 볼게. 아 근데 그냥 죽일까 싶기도 하고.”

한세린은 옆에서 굉장히 얄밉게 굴었다.

닉크만은 그러한 한세린 때문에 화가 나는 한편, 차진혁이 무서워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다물었다.

“근데 목숨값을 좀 더 받아야 할 거 같아.”

“예, 예?”

“숨겨놓은 거 더 있지?”

“어, 없습니다.”

“뒤져서 나오면 100원당 한 대.”

“…….”

한세린이 히죽 웃으며 무방비로 닉크만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닉크만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세린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

당장에라도 인질로 잡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는 더 이상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긴말 하지 않겠다. 너희들이 가져간 내 보물들 중 절반이라도 돌려준다면 이 여자를 살려서 보내주겠다.”

닉크만이 독 묻은 단검을 한세린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는 한세린과 함께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다가오지 마. 그럼 이 여자는 죽는다!”

한세린이 또 히죽 웃었다.

‘자, 인질극이야, 김철수!’

이거 엘튜브각 맞지? 내가 방송각 세웠어!

그녀의 눈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 * *

차진혁이 한세린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엘튜브각 #조회수 20억 #방송각 #나_사실 방송천재일지도?]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차진혁은 방송을 생각하기가 어려워졌다.

[스킬,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합니다.]

순간 이 모든 공간의 통제권을 가져오고서 잿빛으로 변해버린 닉크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찰나.

연출가의 공간이 사라졌을 때, 이미 차진혁은 닉크만의 관자놀이를 향해 미리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미리가 관자놀이에 닿았으나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요했다.

“…….”

“…….”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닉크만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한세린이 뒤를 힐끗 돌아봤다.

“어……?”

닉크만의 온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번쩍! 하고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이 터진 공간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닉크만이 없어졌어?’

저기 멀리 곱게 누워 있는 산디에므의 시체와는 대비되었다.

닉크만은 아예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한세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김철수……?”

“……아.”

차진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방금 뭐야?”

“…….”

“설마 지금 이성을 잃고 미리를 휘두른 거야? 전력을 다해서?”

“…….”

차진혁 본인도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생각해 보니 한세린이 겨우 잡아준 이 방송각을 스스로 날려 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내가 왜?’

조금 더 흥미로운 연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세린의 납치 인질극을 보다 긴박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왜 그랬지?

한세린이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기껏 방송각 세워줬더니…….”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나도 모르게 닉크만에게 쌓인 게 많았나?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엘튜버인데 그 사랑을 강탈하려고 해서 열이 받았던 건가?

차진혁은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세린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너 반성 좀 많이 해야겠다. 자꾸 이러면 나 실망해.”

“…….”

그러고서 싱긋 웃었다.

“군주 한세린은 그렇다는 거고, 사람 한세린으로서는 기분 좋기도 해. 그만큼 네가 날 아낀다는 거니까.”

* * *

차진혁은 빠르게 방송을 이어갔다.

‘산디에므와 닉크만을 너무 허무하게 죽여버렸어.’

별다른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얼른 움직여서 특임대나 검황대보다 먼저 헬람과 접촉해야했다.

“군주통신을 역추적하는 장면은 방송에서 빼줘. 내 밥벌이 수단 중에 하나니까.”

르세핌을 필두로, 차진혁 일행은 헬람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워프포탈 두 개가 있는데, 이 둘 중 하나 쪽으로 가야 할 거 같거든. 헷갈리네.”

“아마 이쪽일걸?”

차진혁의 말에 르세핌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음, 글쎄. 감?”

차진혁도 아직 정확하게 말하기는 애매했다.

‘아까 액정 너머의 헬람과 눈이 마주친 것 같고, 그래서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르세핌이 말했다.

“뭐, 아무래도 좋아. 일단 네 감을 믿고 움직여보자.”

* * *

어느 중소 서버의 한 우주 정거장.

“여기로 이어지네.”

그런데 르세핌이 한 발 늦었다.

특임대와 검황대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던 것이다.

빌스마르크가 말했다.

“한발 늦었군, 르세핌. 그리고 김철수 경.”

특임대와 검황대의 대원들이 한 우주선을 에워싸고서 그만 항복하고 나오라는 방송을 연신 내보내는 중이었다.

“헬람. 너는 이미 포위되었다. 그만 포기하고 나와.”

“헬람. 지금이라도 투항하고 나선다면 정상참작이 될 것이다.”

보아하니 헬람이 우주선 안에서 승객들을 인질로 삼아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진혁의 눈이 반짝거렸다.

‘혹시 이건 아까 실패했던 인질극?’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던 그 때.

차진혁은 문득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다. 마냥 기쁘진 않네?’

아까 한세린이 인질로 잡혔을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의 심경변화는 있었다.

‘내가 설마…… 우주선 안의 승객들이 걱정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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