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67화
차진혁의 레벨이 400대 중반을 돌파하게 되면서 권속들과의 유대감과 정신적 연결이 굉장히 굳건해졌다.
수호수, 미리 등 의지를 가진 개체들은 물론이거니와 행운의 신이나 흘리는 바람 같은 ‘신비’들과도 연결이 더욱 단단해진 것이다.
뇌룡 아탄나와의 결합도 마찬가지였다.
“아탄나.”
허공에 황금색 문이 생성되고, 그곳을 통해 금발머리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너머의 초월적인 아우라를 가진한 인외종.
실물을 처음 만나게 된 한세린은 우와, 하고 감탄성을 내뱉었다.
“대박이다. 김철수의 화면으로 담았는데도 화면이 실물을 못 담네. 아, 김철수. 네 실력을 욕하는 건 아니야. 그만큼 뇌룡 씨가 지나치게 예쁘다는 의미지. 쓸데없이 자아성찰이나 반성 같은 건 안해도 돼.”
……라고 말은 했지만 차진혁은 이미 꽤 큰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저 아름다움을 내가 다 못 담아냈다고?’
일류 스트리머로서 그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다.
차진혁은 타오를 듯한 눈으로 아탄나를 바라보았고, 아탄나는 슬쩍 눈을 피했다.
용주인 차진혁의 강렬하고 뜨거운 감정을 전신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토록 뜨거운 감정을 느껴봤자 의미가 없음이다. 나는 현재 육아만으로도 지나치게 바쁘니.”
이미 크게 자극받은 차진혁의 귀에 아탄나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아름다움을 시청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카메라에 저걸 다 담아내려면 더 많은 수련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그러한 생각에 침잠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마치 올가미처럼 아탄나의 온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고려는 해보지. 그대는 훌륭한 수컷이니.”
한세린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 김철수. 뇌룡의 등장이 이렇게 심심해진 건 뇌룡과 네 정신적 연결이 더욱 강하게 결속되어서 그런 거지?”
아탄나의 말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한세린의 말에는 즉각 반응했다.
한세린의 질문은 사실 자신(차진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위해 던지는 설명적인 질문이었으니까.
“그래. 맞아. 수호수가 그랬던 것처럼.”
“튜닝의 끝은 순정 같은 느낌으로?”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완전히 제정신을 되찾은 차진혁이 자연스레 녹화를 이어갔다.
“아탄나. 너라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임신 가능성을 뜻하는 것인가? 미리 말하지만 내가 가임기가 되려면 2년은 있어야…….”
“르세핌에게 네 능력을 일부 이식할 수 있지?”
차진혁의 레벨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 * *
호출을 받은 르세핌도 갈루이 바위산 앞,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일리나는 막사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담배를 내뿜었다.
‘웃기는 일이군.’
르세핌은 아르비스에서도 손꼽히는 추적전문 길잡이였고, 그녀와 계약하고 싶은 모험가들이 줄을 섰다.
우스갯소리로 르세핌과 함께 무언가를 하려면 최소 3년은 기다려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자존심도 무척 강한 길잡이여서 아르비스를 잘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최고의 서버인 아르비스를 놔두고 굳이 다른 곳에서 플레이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르세핌의 평소 지론이었으니까.
‘그런 르세핌이 김철수의 호출 한 번에 타 서버. 그것도 선진서버도 아닌 겨우 지옥에?’
차진혁과 함께 산디에므를 추적하는 이 과정 모두가 그녀에게는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녀 또한 차진혁의 진면모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으니까.
“뇌룡의 능력을 전수받으라고?”
처음, 르세핌은 코웃음을 쳤다.
“김철수. 잊었나 본데 나 르세핌이야. 아르비스 길잡이계열 랭킹 5위. 추적계열에서는 부동의 1위, 르세핌. 근데 고작 뇌전술사 한 마리 잡자고 뇌룡의 능력을 나한테 이식한다니 그게 말이 돼?”
일리나는 르세핌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내가 르세핌이어도 그렇겠지.’
그녀는 여유로운 태도로 앉아 담배를 계속 태웠다.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겠군.’
자연 재해 앞에서도 당당했던 저 김철수가, 이번만큼은 분명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차진혁이 정중하게 말했다.
“부탁한다, 르세핌. 나한테 시간이 별로 없어.”
일리나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저 자존심 강한 길잡이에게 저런 일차원적인 방법이 통할 리 없는 것이다.
“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통했다.
딱히 그렇게까지 말한 건 없는 것 같은데도.
* * *
“좋다. 용주의 명령을 받들어 그대에게 내 능력을 전이하고자 한다. 나는 뇌룡이며 뇌전의 기운에 더없이 민감한 기감을 지니고 있으니, 이 기감이 네게 전달되리라. 용의 방식으로 그대에게 전수하지.”
용은 본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종족.
자신의 능력을 전수하는 것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식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아름다운 방식이 뭐냐고?”
“우아하고 고귀한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말을 해달란 말이다, 이 답답한 뇌룡 씨야.”
“그 고결하고 우아한 행위를 진정 모른단 말인가?”
르세핌이 이해하지 못하자 성교라는 단어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미쳤어? 절대 못해!”
“왜 이 아름다운 행위를 거절하는 거지?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 거북하다면 내가 남성체로 변하는…….”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차라리 나 혼자 찾아내주겠어.”
르세핌은 완강했다.
그녀는 용의 방식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탄나는 답답하다는 듯 몇 번이나 르세핌을 설득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보다 부족한 방법을 제안하지. 내 능력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아탄나와 르세핌은 나름대로 합의를 보았다.
르세핌이 셔츠의 단추 몇 개를 풀러 목덜미와 오른쪽 어깨를 드러냈다.
“이는 흡혈귀의 방식과 유사하다. 우리 용들은 그다지 우아…….”
“알았다고.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 알아들었으니까 그냥 이렇게 가자고. 그 정도만 해도 나는 충분하니까.”
아탄나는 차진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이래도 되겠는가? 이건 비효율적인 방식이다’라는 뜻이 담긴 눈빛이었는데 차진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마치 왕유미가 19금 콘텐츠나 우결 혹은 가상연애 콘텐츠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래도 르세핌에게는 이게 그런 종류의 것인가 싶었다.
문득 생각났다.
‘역시 나는 하나도 안 미쳤다니까?’
사람들은 자신더러 미친놈이라고 얘기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신은 미치지 않은 것 같았다.
미치지 않았으니까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도 용납하지.
어쨌든 아탄나는 르세핌에게 가까이 다가가 르세핌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로 이어지는 부분을 깨물었다.
상처 부근으로 푸른 뇌전이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번개 형상의 표식(⚡)이 새겨졌다.
르세핌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푸른 기운이 드나들었다.
마치 옅은 푸른 연기를 마시고 뱉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제 돌아가도 되는 것인가?”
“그래.”
아탄나는 허공에 손을 움직여 황금색 문을 생성해냈다.
“나는 이제 돌아가겠다.”
“그래.”
“이제 이곳에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는 않겠군.”
“그래, 고맙다.”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서 말해주면 좋겠군. 한 번 소환된 김에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다.”
“이제 없다.”
“그렇군.”
아탄나의 동작은 어딘지 모르게 굼떠보였다.
마치 이곳을 떠나기 싫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김철수가 한 번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미묘한 아쉬움이 차진혁에게도 분명히 전달되었고, 차진혁은 그 아쉬움을 완벽히 이해했다.
‘하긴. 직관이 제일 재미있다고는 하니까.’
직관을 놓치기 싫은 거겠지.
“걱정 말고 어서 돌아가라 아탄나. 내가 비록 네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지 못할 만큼 실력이 미천하기는 하지만, 더 재미있고 즐거운 영상으로 보답할 테니. 직관만큼 재미있게 연출해 보겠다.”
“…….”
아탄나는 아쉬움을 안고서 떠나갔다.
* * *
뇌룡의 기감을 이식받은 르세핌은 산디에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추적과정의 스릴을 위하여 차진혁은 실시간 방송을 켰다.
[추적]
-근데 이걸 다 보여줘도 됨? 산디에므도 보지 않음?
-방플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ㅋㅋㅋ
-비전을 켜주고 추적하네 ㅋㅋㅋㅋㅋ
-black sheep wall…….
-위에 뭐라는 거임?
차진혁이 말했다.
“도망가는 것보다 더 빨리 추적하면 방송을 켜도 상관없습니다.”
르세핌은 뇌룡의 기감과 본인의 추적능력들을 결합하여 효과적으로 산디에므를 추적했다.
마치 산디에므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는 것처럼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차진혁과 마법수사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산디에므도 그 핸드폰으로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었고 커다란 압박을 느꼈다.
‘질식할 것 같다.’
도망가는 것보다 더 빨리 추적하면 된다라는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잡힐 것이었다.
‘방법이 없어.’
헬람과의 연락은 끊겼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항복밖에 없었다.
‘여긴 안전할 거라며, 이 빌어먹을 연대장아!’
그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겠다는 듯 뇌전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 위로 치직- 치직-하고 노란빛 뇌전이 생성되었고, 르세핌이 그것을 간파했다.
“우릴 부르는 모양이야. 적의는 없어 보여. 항복일 수도 있고 함정일 수도 있고.”
“함정이면 좋겠다.”
“뭐?”
“응? 내가 뭐라고 했어?”
“방금 함정이면 좋겠다고…….”
“그럴 리가.”
차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항복보다 함정을 더 좋아한단 말인가.
편집자 강철이 센스있게 차진혁의 혼잣말을 지워버렸다.
-근데 내가 아는 김철수라면 함정을 더 좋아할 거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긴 갈루이 바위산이잖아. 저게 함정이면 무척 피곤해지긴 할 듯.
-저 미로같은 동굴에서 입구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진짜 아찔하다.
-그러면 길 절대 못 찾음. 실제로 저기는 길 잃고 헤매다가 죽은 해골들을 이정표로 삼는다고 함.
산디에므가 자신의 위치를 알린 덕택에 르세핌은 비교적 쉽게 산디에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산디에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제 옷을 찢어 깃발 대신 흔들고 있었다.
“항복합니다. 제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시키는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차진혁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산디에므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산디에므는 겁에 잔뜩 질린 모양새였다.
누가봐도 함정 같지는 않았다.
중계자의 통찰로 주변을 구석구석살펴보았는데도 함정의 낌새는 전혀 없었다.
뒷쪽을 힐끗 쳐다보아 일리나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혹시 마법수사대라면 이곳에 설치된 아주 은밀한 함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으나 일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함정은 전혀 없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차진혁은 무척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함정 하나 안 만들었단 말인가!
“감히 이렇게 대놓고 항복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