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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65화 (36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65화

차진혁에게는 모든 플레이의 순간이 방송의 요소이자 콘텐츠였다.

‘내가 깨달음을 얻은 걸로 할까?’

무슨 깨달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성장했다는 것으로 하여금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그래. 나는 깨달음을 얻은 거다.’

그것을 대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깨달음이라고 칭할 만큼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었습니다, 일리나 경.”

“…….”

무언가를 성취해 냈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그것은 바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방송에 임하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셨고 일리나 경의 헌신적인 모습 덕택에 사소한 기연을 얻은 것뿐이죠.”

“…….”

일리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렇게 빨리 성장한 자들은 겸손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인데.’

겸손이 무조건적인 미덕이라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롱런의 비결 중 하나이기는 했다.

겸손하지 못해 일찍 저버린 새싹들을, 그녀는 그간 정말 많이 봐왔다.

‘김철수는 이미 완성형이구나.’

여기서 경험만 조금 더 쌓이면 어떤 괴물이 될지 벌써부터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이번 차진혁의 방송은 단순히 시청자 숫자 22억을 돌파하는 것에만 의의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지지율 나라 봤음?

-지지율 개떡상잼

-몇이길래?

-지금은 다시 떨어지긴 했는데 거의 90%에 가까운 지지율까지 떴음

김철수는 무려 85%에 달하는 우호적인 지지를 받았다.

현재 ‘지지율 나라’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영웅들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상황을 빌스마르크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김철수에게 상황이 지나치게 좋게 흘러가고 있군.’

그는 군주통신을 사용하여 일리나에게 개인대화를 요청했다.

군주통신은 SSP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군주전용 스킬이었다.

빌스마르크는 정상급의 군주였고 가상의 공간을 구현하여 홀로그램을 통해 직접 대면과 거의 똑같은 대화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전 우주뿐만 아니라 특히 아르비스에서도 김철수에 대한 인식이 무척 좋아지고 있네, 일리나 경.”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일리나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담뱃대를 물었다.

“문제가 된다는 걸 일리나 경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3대 제국이 그의 성장을 이렇게까지 견제하려고 하는지. 빌스마르크 경. 당신은 나 몰래 내 부하들에게 재미있는 장난을 쳐놓았더군요.”

“…….”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당장 혀를 잘랐어.”

“그건 미안하게 됐군. 후에 정식으로 사과하지.”

빌스마르크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김철수를 좋게 보고 있는 것쯤은 어린아이라도 알겠고.”

“…….”

“그자를 해하는 데 동참해 달라고 말하면 거절하겠지?”

“김철수가 아르비스에, 아니, 매지크에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빌스마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일리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억지로 강요했다가는 역효과만 벌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탁이니 그가 더 이상 돋보이도록 만들지는 말아주면 좋겠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자는 스스로 빛날 겁니다, 빌스마르크 경.”

“그러니 자네가 돕지는 말라는 얘기야. 이번에 그자의 깨달음에 관한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말이야.”

“…….”

“자네의 호감 어린 눈빛. 감탄하는 표정. 김철수를 향한 칭찬. 그 모든 것들이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된단 말이지.”

일리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빌스마르크의 아바타(홀로그램)에 가까이 다가간 뒤, 그의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자제는 해보죠.”

* * *

산디에므는 갈루이 바위산 깊숙한 곳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했다.

마법수사대가 광역마법을 퍼부어 평탄화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비웃었다.

‘겨우 나 하나 잡겠다고 그 짓을 하겠어? 그리고 정말로 폭격을 퍼부을 거였으면 수사대가 아니라 기사단이 왔겠지.’

이건 아마도 제국 측에서 보여주는 쇼일 것이었다.

감히 워프포탈에서 테러를 저지른 악당들을 처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정의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겠지.

‘게다가 김철수랑 같이?’

그는 한 번 더 비웃었다.

심지어 김철수는 실시간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방플하라고 떠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방송을 통해 김철수 일행의 위치나 작전 등을 너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맵핵을 켠 상태로 플레이에 임하고 있는 것.

위험할 일도 벌어지지 않겠지만 설령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넘쳐나는 것이었다.

이곳은 ‘갈루이 바위산’이었으니까.

‘어?’

그런데 김철수가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친?’

김철수가 예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깊숙한 동굴 속에 숨어 있는데도 목덜미가 오싹했다.

엄청난 열기를 머금은 두 줄기의 빛기둥이 바위산 전체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시X!’

열기가 전해져서 숨을 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는 비밀통로들을 통해 더, 더, 아래로 피신했다.

‘이런 게 몇번 더 이어지면 어떡하지?’

산디에므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보아하니 김철수는 별로 지친 것 같지도 않은데?’

원래는 지쳐야 정상인데 하나도 지치지 않은 것이 보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인데,

‘지쳐서 뇌룡을 소환하지 않은 게 아니라…… 설마 이쪽이 더 멋있어서 저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싶었다.

다행히 김철수는 ‘깨달음을 얻었다’라는 말로 산디에므를 안심시켜주었다.

‘그렇다는 건 며칠 정도 여유가 생겼다는 거겠지.’

아까와 같은 공격을 몇 번이고 연거푸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생각해 보자. 내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 * *

특임대 및 검황대의 추격을 받고 있는 헬람은 한 중소 서버에 숨어든 뒤, 군주통신을 사용하여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갈루이 바위산은 그 자체로 무형적인 가치를 지니는 보물이지 않습니까? 김철수, 그자는 자신의 방송을 위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김철수와 마법수사대의 행위가 자연을 지나치게 파괴한다.

둘째. 김철수의 영상 속 증거인 ‘몽마 렐핌’은 수많은 간통 사건과 연루되어 있을 정도로 지저분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그럼…… 잘 좀 부탁합니다.”

이후, 아르비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철수는 무슨 권리로 바위산을 파괴하고 있는가.]

[방송괴물이 되어버린 김철수.]

[반드시 환경적 영향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차진혁과 마법수사대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환경운동가 닉트만은 아르비스의 주요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와 관련한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갈루이 바위산은 우주에서 존재하는 바위산들 중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죽은 땅처럼 보이지만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여 수많은 생명체들이 공존하고 있죠. 이를테면 그곳에서만 발견되는 갈루이 전갈이나 갈루이 도마뱀처럼.”

김철수의 방식은 지나치게 파괴적이고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식한 행위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선진서버 및 랭커들은 환경적인 영향을 늘 고려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아름답고 건강한 자연을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철수 및 마법수사대에게서는 랭커로서의 책임감을 전혀 살펴볼 수 없습니다.”

몇몇 이야기도 덧붙였다.

“게다가 갈루이 바위산 서편에 발달한 도시들은 농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그것은 갈루이 바위산 덕택이지요. 갈루이 바위산이…… 응결고도를…… 하여…… 결국 지형성 강우가 형성되게 됩니다. 그를 통해 서쪽으로 강줄기들이 형성되고…… 하여…… 하므로 김철수는 지금 범죄자 한 명을 잡자고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 근데 그 정도면 좀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건 나도 몰랐네.

-역시 마법수사대원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지 않은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뇌전술사 한 명 잡는 거 치고는 너무 심한 듯?

거기에 닉트만은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어쩌면 김철수와 그 세력에게 선동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뇌전술사 산디에므를 비롯하여 지옥 자유 연대의 연합원들이 테러리스트라는 증거는…… 사실 몽마 렐핌이 건넨 영상기록석에 불과합니다. 몽마 렐핌은 온갖 불륜을 자행하여 수많은 가정을 파탄 낸 파렴치한입니다. 그런 자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지율 나라 속 김철수의 우호도가 70퍼센트 초반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근데 70퍼센트를 곤두박질이라 표현하는 게 맞냐?

-그래도 탑10 안쪽 아님?

-아 몰랑. 암튼 곤두박질은 곤두박질임 ㅎ

* * *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한세린. 네 말대로 됐네. 제법인데.”

어느새 베이스 캠프에는 한세린이 합류한 상태.

“제법일 것도 없어. 나뿐만 아니라 군주계열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이 사태를 예견했으니까. 걔들이 취할 전략이 그거 두 개밖에 없거든.”

“그래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일리나는 건너편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차진혁과 한세린이 어떤 결론을 내든지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뭐 같은 장면을 또 연출하고 싶지는 않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연달아 먹으면 질리기 마련.

같은 콘텐츠를 같은 연출로 또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한세린은 턱을 매만졌다.

“바위산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도 꽤 압도적인 콘텐츠가 될 거 같기는 한데…….”

“잠깐. 거기, 군주. 그대는 김철수가 바위산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한세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봐요?”

“김철수는 분명…….”

그때 깨달음을 얻었기에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을 텐데?

일리나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고 한세린이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김철수는 그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요.”

“……뭐?”

“뇌룡을 소환할 체력도 충분히 있었고.”

“그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대가 그대의 전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이해하나…….”

한세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차진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만약 방송 신경 아예 안 쓰고, 말 그대로 화력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공격하면 바위산 날려 버릴 수 있지?”

“한 번에는 안 되고, 뭐 몇 번은 해야겠지.”

“연거푸 할 수 있지?”

“할 수 있겠지만 못하지.”

스트리머가 방송 생각 안 하고 플레이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건 플레이가 아니라 의미 없는 노동이었다.

“체력적으로 부담 안 되지?”

“수호수가 있으니까 뭐.”

일리나는 담뱃대를 다시 입에 물지 못한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김철수 경. 그대는 전혀 지치지 않은 상태였던 건가?”

“지칠 만한 부분이 있었나……?”

“…….”

일리나는 확신했다.

‘허세가 아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굳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기점을 넘어가면 레벨 격차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이 온다.’

그게 레벨 400 초반대.

아르비스 최상위 랭커들 대다수가 이 정도 급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더 뛰어넘으면…….’

그러면 다시 레벨 격차가 압도적인 실력 차를 만들어내는 구간이 도래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상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일리나는 담배를 다시 물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뇌룡을 소환하지 않았던 거지? 아니, 그대의 피지컬이었더라며 날지 않아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여력이 있…….”

순간,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것을 결국 꺼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도망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홀로 결론을 내렸다.

“힘을…… 숨겼던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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