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8화
뇌전술사 산디에므를 비롯하여 지옥 자유연대의 연대원들은 무척 당황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워프 포탈 내에서 테러를 저질렀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끝이었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는 정의로운 해방대’가 아니라 ‘전 우주적인 범죄를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
연대장
“걱정 마시지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를 해놓았으니.”
연대장 헬람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아까도 걱정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절대로 출구를 못 찾을 거라더니…….”
헬람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는 그대들에게 지금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
산디에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지금의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오로지 연대장 헬람만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왔고, 그것을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소년이 살아날 가능성을 대비하여 독약을 심어두었습니다. 지금도 저 위대한 소년은 곧 죽을 겁니다.”
“……독약이요?”
“물론 소년이 죽고 난 이후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요.”
부검에 의해 사인이 밝혀질 거고 그에따라 여러 잡음들이 생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일단 급한 불은 꺼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독약은 언제 효과를 발휘합니까? 지금 눈빛 맑아진 걸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헬람은 손목시계를 힐끗 살펴본 뒤 말을 이었다.
“앞으로 약 7분. 7분 후면 저 위대한 어린 용사가 자유의 기치 아래 눈을 감을 것입니다.”
“7분이면 우리에 대해 다 불고도 남겠소!”
“그러니 시간을 끌어야지요.”
뇌전술사 산디에므가 의견을 냈다.
“김철수는 콘텐츠에 미쳐버린 자입니다. 그러니 콘텐츠 재료를 준비만 해준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콘텐츠 재료요?”
“엘튜브 각 말입니다.”
그들은 재빨리 의견을 모았다.
“혈사제의 진화 조건을 알고 있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 또한 자유를 위한 위대한 용사죠.”
“그, 그렇습니까?”
“동료들의 성장에 진심인 김철수이니만큼, 그 노인이 지옥좌의 왕성을 찾아간다면 분명 반응할 겁니다. 7분 정도는 충분합니다!”
* * *
눈빛이 형형한 백발의 노인이 왕성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혈사제를 만나러 왔다!”
반 나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노인을 보며 경비병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미친 영감탱이까지도 보고를 올려야 합니까?”
“어쩔 수 없지. 김철수 경과 관련된 모든 것은 무조건 보고해야 한다.”
이 소식은 실시간으로 차진혁에게도 전해졌다.
지옥좌가 차진혁에게 직접 알려주었다.
“성문 밖에 노인이 그대들을 찾아왔다. 혈사제의 진화방법을 알려준다더군.”
“뭐?”
이건 아무리 봐도 엘튜브 각인데?
저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략 10분 정도의 영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차진솔의 눈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시한부라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실제로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더군. 위대한 혈사제의 명맥을 잇기 위하여 지금 당장 자유의 성녀를 만나야겠다고 한다.”
“오……!”
“물론 거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순히 미친놈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간을 끌려는 개수작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런 건 그대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겠지만.”
노인이 미친놈이든, 특정 세력에서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든, 아니면 정말로 노인이 혈사제의 진화조건을 알고 있든.
그런 건 차진혁에게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차진혁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이슈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
재미있는 콘텐츠를 뽑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지옥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년은 내가 직접 보호하고 있도록 하지. 다녀와라, 김철수 경.”
* * *
차진솔이 창문을 열고 난간에 발을 올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기세였다.
“오빠.”
얼른 안오고 뭐하냐고 재촉하는 듯한 눈빛에 차진혁은 정신을 차렸다.
‘아. 뛰어내리는 게 빠르구나.’
문을 나가 복도를 거쳐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뛰어내리는 게 빠른데 말이다.
“뭐해? 빨리 안아.”
힐러(?)인 차진솔은 이곳에서 뛰어내릴 수 없지만, 차진혁은 가능했다.
차진혁은 그녀를 안고서 뛰어내리며 속으로 감탄했다.
‘차진솔의 간절함은 나와의 스킨십까지도 감수할 수 있을 정도구나!’
그것은 꽤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차진솔이 가진 절박함의 깊이가 생각보다 더 깊다는 방증.
차진솔의 눈에 생기가 가득 찬 것을 보니 차진혁도 기분이 좋아졌다.
차진혁은 차진솔을 안은 채 가볍게 착지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온갖 방어 결계가 걸려 있는 왕성에서 뛰어내려벌임ㅋㅋㅋ
-지옥좌가 그새 결계 푼 거 아닐까?
-그게 가능하겠냐?
-7층 높이지만 아마 체감으로는 70층 정도 될듯?
-70층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한 엘튜버가 있다?
-1년 전에 이런 얘기했으면 대가리에 총 맞았냐고 했을 텐데 ㅋㅋ
-ㅇㄱㄹㅇ
분명 엄청난 일이었지만 시청자들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어이없다며 웃을 뿐.
시청자들도 이러한 자극에 꽤 많이 익숙해진 것이다.
-근데 뭐냐?
-죽은 거 아님?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차진혁이 도착함과 동시에 노인은 피를 토하며 사망했다.
“혈사제…… 여.”
차진솔은 열심히 힐을 쏟아부어 봤지만 노인은 살아나지 못했다.
* * *
그동안 차분한 모양새를 유지했던 헬람이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됐군요.”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어린 용사는 이제 사망했을 것이었다.
“그의 숭고한 죽음은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죽은 소년을 위해 묵념했다.
다른 이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년의 넋을 기렸다.
“확실히 죽었겠죠?”
“그렇습니다. 소년에게 김철수와 같은 독저항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요.”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우리야말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마지막 보루이니까요.”
“물론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옥 자유연대의 연대원들은 서로를 얼싸안기도 하고 손을 맞잡기도하며 이 위기를 훌륭히 타파해 낸 것에 크게 기뻐했다.
“김철수도 이상함을 눈치챈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연대장님의 뛰어난 전략과 안목에 놀랐습니다.”
“김철수도 마음이 급한가 봅니다. 어림없는 시도를 하는군요.”
얼마나 늦었으면 창문을 향해 또 뛰어오르려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오는 거야 그렇다쳐도 어떻게 뛰어서 올라가단 말인가.
“대략적으로 70층 높이를 뛰어오를 정도의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김철수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보군요.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말입니다. 하하핫!”
* * *
진화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친 차진혁은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게 진짜였으면 인급동에 또 올라갔을 텐데.’
왕유미를 통해 한세린의 의견이 전달되었다.
[너무 공교롭네. 마치 시간을 끌기 위한 함정 같아. 진솔이가 여지껏 방송에 안 나왔던 것도 아닌데 이 타이밍에 나타난 것도 수상하고. 당장 아까 소년에게 가봐. 소년에게 변고가 벌어질지도 몰라.]
차진혁은 그에 따라 긴박한 연출을 시작했다.
“시간을 끌기 위한 함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진혁은 다시금 시무룩한 표정의 차진솔을 안아들었다.
꽤 많이 낙심했는지, 스킨십을 거부하지 않았다.
차진솔을 안아 든 상태로 높이 뛰었다.
-저길 뛴다고?
-저게 된다고?
-에이 설마 그건 안 되지.
실제 높이 7층.
그러나 각종 결계들로 인하여 70층에 도달할 정도의 에너지와 도약력을 지니고 있어야 오를 수 있는 높이.
그런데 차진혁은 7층에 도착했다.
-저게 되네?
-왜 저게 되는 거냐?
-결계가 아무 작동도 안 한 건가?
-누가 이유 좀 알려주실 분;;;
본의 아니게 시청자들에게 수많은 궁금증을 유발한 덕택에 시청자들이 꾸준히 유입되었다.
“헉…… 헉…….”
차진혁은 일부러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년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소년에게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 *
지옥 자유 연대원들은 경악했다.
“연대장! 저 소년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헬람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 액정을 살폈다.
눈을 비빈 뒤 다시 살펴보았는데, 정말로 소년은 살아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헬람 입장에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새 지옥좌가 어떤 조치를 취했나 싶었으나 그것도 아닌 듯했다.
-“별일 없었지?”
-“그렇다. 누군가가 수작을 부려놓았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그저 우연의 일치였겠군.”
액정 속 김철수가 직접 확인해주었다. 아무 일 없었다고 말이다.
지옥좌도 소년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듯했다.
독약 자체가 작용을 안한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왜? 왜?’
헬람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반면, 차진혁은 약간 아쉬워했다.
‘함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니.
심심한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아. 소년이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차진혁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소년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소년은 겁이 많은지 차진솔 뒤에 숨었다.
차진솔에게 치료를 받았기 때문인지, 차진솔에게는 마음을 조금 연 것 같았다.
차진솔은 쪼그리고 앉아 소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괜찮아. 누나랑 얘기를 좀 해볼까? 이름이 뭐니?”
“제 이름은 솜피아드에요.”
안정을 되찾은 솜피아드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보내주세요.”
“납치당했어?”
솜피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진솔이 솜피아드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많이 무서웠겠구나, 솜피아드.”
그러자 솜피아드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차진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우는 솜피아드를 화면에 담았다.
‘이것도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인데…….’
정황을 들어보니 누군가가 아이를 납치해서 끔찍한 테러를 자행했다.
이것은 분명 어마어마한 이슈였고 훌륭한 엘튜브각이었다.
솜피아드의 우는 모습을 찍던 차진혁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잠시 방송은 끊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는 무려 20억.
20억이 보는 방송을, 어쩌면 가장 자극적일지도 모를 이 순간에 종료했다.
‘내가 왜 이러지?’
피해자인 저 아이의 얼굴과 눈물을 팔아 조회수를 뽑아내고 싶지 않다는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옳은 건가? 나는 엘튜버인데?’
왠지 모르게 방송을 끄길 잘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