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7화
폭발의 여파가 소년에게 닿기 직전, 차진혁은 또다시 절대결계를 사용하여 소년의 몸을 보호했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틈을 두고 절대결계 두 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이중결계 운영은 최초 공개 아닌가?’
싱글벙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모름지기 ‘최초’ 들어가는 건 조회수가 높은 법이니까.
파바밧!
두 개의 결계 틈 사이에서 작은 스파크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지옥 자유연대원들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액정을 살폈다.
“저런 미친놈이…….”
“저 순간에 저런 컨트롤을…….”
아무리 적이라지만, 저 컨트롤은 경이로운 수준으로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안으로 향하는 폭발을 안에서 다시 막아내다니.
수십만 분의 1초까지 컨트롤할 수 있어야 저게 가능할까 말까였다.
뇌전을 다루는 것에는 일류라고 자부하는 뇌전술사 산디에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다만 연대장 헬람은 비교적 침착한 편이었다.
“걱정 마십시다. 어차피 저곳에는 이미 왜곡이 생겨났어요.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김철수여도 시간을 너무 끌었어.”
이래서 워프포탈 내에서의 공격이 위험한 것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충격이나 왜곡에도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하니까.
산디에므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길을 찾아 나오면 어떡합니까?”
“일류 길잡이들도 불가능했었습니다. 한번 갇히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다. 미아가 되어 방송을 하다가 결국 저 안에 갇혀 사망할 겁니다.”
그런데 액정 속 차진혁이 말했다.
-“저기, 빛이 보이는데 저기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헬람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저 안에서는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을 것이었다.
그 누구도 저 안에서 살아나왔다는 기록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 지극히 안정화 된 워프포탈이지만, 한 번 흔들리면 저토록 인명사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문물.
괜히 선진서버들이 워프 포탈에서의 테러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잘 가라, 김철수. 이제 지옥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을 뗀 것이다!”
-“네, 다행히 잘 도착했네요. 여기서부터는 뇌룡 타고 가면서 소년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철수는 무사했다.
* * *
차진혁으로서도 간담이 서늘했다.
‘와, 방금 건 진짜 운이었다.’
혹시 몰라 아까 ‘행운의 신’을 사용했던 것이 운 좋게 작용한 것 같았다.
빛을 보는 순간 차진혁은 직감했다.
저기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영영 이 공간의 미아가 되겠구나.
그러면 앞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 것이었다.
차진혁은 자신의 옆구리에 낀 소년을 바라보았다.
‘얘를 살려서 왔네…….’
그 급박한 상황에 소년을 살려서 데려왔다.
소년을 데리고 오느라 워프포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버리고 나왔어야 맞는데…….’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기분이었다.
‘얘를 버리고 나왔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까?’
상상만 해도 무척 불편했다.
그는 이 불편함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했다.
‘얘를 버렸으면 영상 더 못 뽑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엄청 찜찜했겠지.’
……라고 생각은 했으나 그렇다고 머릿속이 명쾌해진 건 아니었다.
이외에도 뭔가 다른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의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 * *
왕유미와 죠셉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눈에는 커다란 희망이 깃들어 있었고, 둘은 거의 동시에 읊조렸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 다!”
말하자면 명상 콘텐츠를 진행했던 건 예고편.
오늘을 위한 사전연습이었다.
실제로 여론이 급변하고 있었다.
[하락무새들 어디갔눜ㅋㅋㅋ]
[오이오이 하락무새들 나와보라능]
[와 근데 사건 사고 스케일 미친 거 아니냐 ㅋㅋㅋㅋ 워프포탈에서 테러라니 ㅋㅋㅋ]
이 사건은 전 우주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일까?]
└모르지 ㅋㅋ 아무리 그래도 저런 짓을 하냐 진짜 양심도 없다]
└핵보다 더 나쁜 걸 써버리네
왕유미가 말했다.
“죠셉. 지금 진솔 씨 어딨는지 알아요?”
“당연히 알죠.”
왕유미와 죠셉은 김철수 방송의, 김철수 방송에 의한, 김철수 방송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김철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춘 지 오래였고 그에 따라 K군단 핵심멤버들의 위치나 지원 가능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좋아요. 진솔 씨. 아니, 자유의 성녀를 곧장 지옥좌의 왕성으로 보내도록 하져!”
왕유미가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썼다.
“아무래도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 같으니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서포트를 해보자고요. 스타메이커 죠셉 씨!”
* * *
뇌룡을 타고 이동하면서 소년에게 몇 마디 말을 걸어 보았으나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일단은 왕성에 데려가서 안정을 시킨 뒤에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차진혁은 무사히 지옥좌의 왕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성 중심부 거대 광장에 지옥좌가 직접 나와 있었다.
“그대의 사정은 보고 받았다. 괜찮은가?”
“물론.”
차진혁의 태도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아주 사소한 실수가 더해졌더라면 틈새의 미아가 됐겠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3인칭이었어도 꽤 긴박한 긴장감도 전달되었을 것 같고.
여러모로 다 괜찮은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세뇌를 당했던 것 같더군. 그래서 내 임의로 테르서박 경을 호출해놓았다.”
“좋지. 일단은 좀 쉬게 해두자. 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고.”
차진혁은 귀빈 대우를 받으며 왕성 안에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차진혁은 방송을 멈추지 않았다.
“여러분. 이게 지옥의 왕성이라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황금으로 제작되어 번쩍이는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대문 옆에 제복을 갖춰 입은 근위병들이 서 있었고 그들은 창을 들어 올려 김철수의 입성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본래 지옥은 무력만 강했지, 문명적으로는 굉장히 뒤처져 있던 서버라는 평이 많았는데요.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왕성 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과 화려한 조각상들이 보였다.
꽤 이름난 장인이 정성 들여 조각한 것 같은 역동적 자세의 말 조각상.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아 보일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들은 현 지옥의 위세를 보여주는 듯했다.
드높은 천장에는 황금빛 샹들리에가 번쩍이고 있었다.
“샹들리에를 구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력입니다. 놀라운 발전이군요.”
-근데 왕성 내부 이렇게 다 보여줘도 됨?
-이거 기밀사항 아님?ㅋㅋ
-세상 참 좋아졌다. 한 서버의 왕성을 안방에 누워서 배 벅벅 긁으면서 구경할 수 있다니.
“왕성 내부가 굉장히 화려해졌고 신식 문물을 잘 받아들인 듯합니다. 지옥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서 저도 기쁘네요.”
아까 워프포탈에서 테러가 있을 때 실시간 시청자 숫자는 20억을 돌파했다.
그 일이 일단락되면서 숫자가 많이 빠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19억~20억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왕성 내부를 공개하는 것도 꽤 괜찮은 콘텐츠인 듯했다.
“그대를 시중들어 줄 몽마들이 욕실에서 대기 중이다.”
“몽마들?”
“특별히 무척 아름다운 이들로 엄선하였다. 그대도 알다시피 몽마들은 남성체와 여성체의 구별이 모호하니, 그대의 취향대로 고르면 되겠지. 취향껏 노고를 풀며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군.”
“잠깐.”
차진혁은 다급히 지옥좌의 말을 끊었다.
“너, 자객이냐?”
“자객?”
지옥좌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곳에 쥐새끼가 숨어들었나?”
“아니. 그게 아니라…….”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옥좌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보니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겠지.
“그런 거 하면 노딱 붙어.”
“노딱?”
“노란 딱지. 아무튼 그런 게 있다. 난 전체 연령가로 방송 중이란 말이야.”
영상에 갑자기 나신의 여성체(혹은 남성체)들이 떼거리로 나와서 시중을 들어준다?
이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콘텐츠였고,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차진혁에게는 별로 좋은 제안이 아니었다.
“혼자 쉴게.”
지옥좌는 차진혁이 왜 불쾌해졌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몽마들 중에서도 추리고 추려서 고른 인재들인데 말이다.
‘몽마가 취향이 아닌 건가?’
* * *
지옥에서 지옥 마물들을 테이밍 중이던 테르서박이 지옥왕성에 도착했다.
그는 한 시녀의 안내를 받아 차진혁의 방문 앞에 섰는데 달큼한 복숭아 향기가 진동했다.
“아쉽게 됐어.”
“그런데 정말 잘생기기는 했다.”
“저 정도면 진정한 사랑을 꿈꿔봐도 되지 않을까?”
“진심으로 유혹해 보려고 했는데 기회조차 안 주네.”
“그러니까 더 매력 있지 않아?”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르서박은 한동안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는 후광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복숭아 향기를 쫓아 천천히 걸었다.
“정신 차려 테르서박.”
테르서박이 문득 정신을 차렸다.
“고새 유혹당하냐?”
“…….”
“몽마들한테 유혹당하면 뼈도 못 추린다. 쯔쯧.”
“한 번쯤은 뼈도 못 추려봤으면 좋겠군.”
테르서박은 무척 부러운 눈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김철수의 인생을 산다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이냐?”
그러나 차진혁은 방송얘기밖에 안 했다.
“내 방송 확인했지?”
“……네 머릿속에는 방송밖에 없는 거냐?”
방금 저렇게 아리따운 자들을 방에서 쫓아낼 정도로?
테르서박은 차진혁이 약간 불쌍해졌다.
“네 인생도 마냥 행복한 건 아니겠군.”
“방송 봤어, 안 봤어?”
그래. 저토록 치열하니 저 자리까지 갈 수 있었지.
나도 분발을 좀 하자.
완전히 정신을 차린 테르서박이 말했다.
“봤다. 내가 소년과 대화를 해보지. 세뇌를 당했었던 거라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테르서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테이밍 계통. 그러니까 정신계열 세뇌는 아닌 것 같다. 지옥좌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고. 아니, 애초에 지옥좌가 나보다 이쪽 계열에서는 더 뛰어난데 굳이 나를 부른 이유를 잘 모르겠군. 내 생각에는 정신계열 세뇌라기보다는 약물에 의한 세뇌 비슷한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자유의 성녀를 불러야 할 것 같다.”
“자유의 성녀? 차진솔?”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걔가 약물 세뇌도 다뤄?”
혈사제에게 그런 힘도 있었다고?
‘뇌에 침투한 약물중독을 치료하는 개념인가?’
테르서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생에게 관심이 그렇게 없으면 쓰나? 자유의 성녀야말로 약물 전문가잖아.”
……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벌써 왔어?”
“유미 언니가 가라고 해서 한참 전에 미리 출발했었어. 아무튼 얘가 걔야? 내가 한번 볼게.”
차진혁은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웃고 말았다.
‘약물 치료개념이 아니잖아?’
애초에 본인이 약물을 사용하는 플레이를 즐겨한다고 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인 것과 똑같아. 최고의 치료는 공격받지 않는 거지. 그게 뭘까 열심히 고민해 봤는데 적이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제일 효율적이더라고. 그러려면 약물이 최고더라. 내 피를 사용하니까 엄청 효과적이던데?”
그렇게 약물을 다루다 보니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나 뭐라나.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전문가들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기함을 통했을 말이었지만, 차진혁은 쉽게 납득했다.
“깨달음을 얻었던 모양이구나.”
“어, 누구 덕분에.”
차진솔은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낸 뒤, 소년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소년의 몸에서 떨림이 사라졌고 거칠었던 호흡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자. 이제 대화를 시작해 보자. 얘. 너 이름이 뭐니?”
그리고 차진혁은 다시금 실시간 방송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