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6화
잿빛 머리카락과 잿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벌벌 떨고 있었다.
“지, 집에 보내주세요.”
산디에므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소년을 데려온 남자에게 눈치를 주자, 남자가 알아서 재갈을 물렸다.
“으읍, 으으읍!”
소년은 이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나선, 위대한 소년입니다.”
“…….”
지옥 자유연대 인원들 중 몇몇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 아이로 뭘 하려고 합니까?”
“이 아이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작은 폭발을 일으킬 겁니다. 그 공간에서는 작은 폭발마저도 커다란 위협이 되니까요.”
“그 아이가 자발적으로 원한 것은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서류도 있습니다.”
소년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으나 소년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산디에므가 내민 서류에는 소년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나 솜피아드는 지옥의 영광과 자유를 위하여, 지옥을 무단으로 침범한 침략자 김철수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려고 한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서류를 받아든 자유연대의 연대장. 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말 소년의 의지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서류와 지장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명분은 되겠군.’
아르비스와 같은 선진 서버에서는, 워프 포탈을 이동하는 중에 공격하는 것은 심각한 전쟁범죄로 취급되었다.
같은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훨씬 더 엄격한 형벌을 받게 된다.
워프 포탈은 현대 물류의 중심.
워프 포탈 이동 중에 공격하는 것은 사회에 커다란 불안감을 야기하고 그에 따른 손실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아르비스쯤 되는 선진서버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다수의 서버가 비슷한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몰랐다고 잡아떼야겠지.’
그렇다고 해도 지탄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건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헬람은 소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정말 훌륭한 소년이군.”
소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 받거라.”
헬람이 작은 술잔을 하나 건넸다.
소년이 거부하자, 헬람은 소년의 입을 벌려 술잔 안에 가득 담긴 액체를 부었다.
소년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옥의……자유를…… 위하여.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누군가 조심스레 물었다.
“문제 되지는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어떤 증거도 남지 않을 테니. 다만 도의적인 비난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그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숭고한 사명을 위하여 도의적인 비난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는 그들이었으니까.
* * *
한마갤은 수많은 우주 유저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많은 유저들이 모이는 만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었으나 단연 가장 핫한 주제는 역시 김철수였다.
[이번 김철수 영상 개노잼. 명상 콘텐츠 실화냐?ㅋㅋ]
정확히 말하면 명상이 아니라 ‘워프포탈 내에서 이동하는 시공간을 관찰하면 어떻게 보일까’에 관한 호기심을 다룬 영상이었지만, 수많은 유저들이 그냥 줄여서 ‘명상’ 콘텐츠라고 불렀다.
[너무 욕심냈지 ㅋㅋ 김철수 영상은 원래 개쫄리는 맛으로 보는 거 아님?]
└졸립던데
└나 13초 만에 바로끔 ㅋㅋ
└13초? 많이 버텼누 난 3초
└저 이제 내려요 ♡
[김철수도 퇴물 다됐누]
└솔직히 거품 너무 꼈지
└거품 쌉인정 ㅋㅋ
[구독 취소각 아니냐?]
└구독을 했었음? 이렇게 호구 인정하나요 ㅋㅋ
└이번에 처음으로 싫어요 누름 ㅋㅋ
└정신 차려야지 ㅋㅋ 명상 콘텐츠라니 감 떨어졌누
전 우주적으로 ‘김철수’에 대한 우호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빠가 있으면 까도 있는 법.
[최근 영상 조회수 10억도 안 됨ㅋㅋㅋㅋ]
[동접자가 20억을 돌파했는데 조회수가 10억이 안 된다고?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ㅈ망이네 ㅋㅋ]
[이제 하락세 시작인듯]
철수랜드와 안티 김철수 사이에 활자 전쟁이 벌어질 정도였다.
[─────병먹금────]
[주의─먹이를 주지 마시오──]
└논리적 반박은 못하고 병먹금 병먹금 ㅇㅈㄹ ㅋㅋㅋ
└ㅋㅋㅋㅋ 할말 ㅇ벗쥬? 김철수 망해가는 거 사실이쥬? ㅋㅋㅋㅋ 아무말도 모타쥬?ㅋㅋ 논리 같은 건 아몰랑이쥬?
물론 논리적 반박은 이미 수많은 유저들이 했다.
[뭔 솔? 전 우주적으로 조회수 1억 넘으면 대박으로 분류하는 거 모름? 5억 넘으면 초대박이고.]
└아아 모르겠고요 그냥 10억 안 넘었으니까 김철수 망한 거라니까요? ♩♬
└ㅂㅅ아 조회수가 8억인데 초대박이지 어떻게 망한거냐?
└윗댓님은 하락무새들 비꼰 거 잖아요.
└아 ㅈ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진혁도 은근히 신경 쓰이기는 했다.
‘나한테 이쪽 콘텐츠는 안 맞나?’
네임드 엘튜버인 ‘호기심궁이’라든가 ‘그것도알려드림’등은 사소한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콘텐츠를 주로 진행했는데, 그들의 영상은 꽤 인기가 많았다.
‘같은 내용을 다뤄도 누군가가 하면 재밌고 누군가가 하면 재미없긴 하지.’
그와 관련하여 왕유미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호기심궁이나 그것도알려드림같은 엘튜버들 평균 조회수가 몇인지 알고 계세여?”
“높겠지 뭐.”
차진혁도 그쪽 계통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초대박 난 것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보통은 5억 내외에요.”
“아…… 그래? 생각보다는 낮네?”
그러니까 이번 명상 콘텐츠의 조회수 8억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성공이기는 했다.
“하지만 무려 김철수의 영상치고는 낮은 것도 사실이져. 이건 좀 반성하셔야겠어요. 저랑 상의 없이 진행하신 거잖아요?”
“…….”
그들의 대화는 보통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미안. 재미있을 줄 알았지.”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실제로도 반성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지 않은 채 의욕만 앞서서 제멋대로 영상을 공개했다가 이런 실패를 겪은 거니까.
“칫. 그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반칙이죠! 정말이지 화가 안 나는 얼굴이에여.”
왕유미는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쓰고선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하지만 이건 사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라는 걸로 컨셉을 잡으면 좋겠어여.”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혹시 뭐, 그 안에서 사고 같은 거 안 터질까요?”
차진혁은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글쎄. 요즘은 워낙 안정화가 잘되어 있어서.”
아주 오랜 옛날에는 워프포탈에서 종종 사고가 일어났다고는 하는데, 근대 이후에는 워프포탈 사고률은 거의 0에 근접했다.
최근 10년간은 전 우주적으로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고.
“인위적으로 사고를 터뜨리는 방법도 고려는 한번 해봐야겠네요. 이 부분은 제가 열심히 한 번 고민해 볼게여! 이제 지옥좌 만나러 가실 거져? 일상 브이로그 느낌으로.”
“어, 그래야지.”
“화면은 3인칭 유지해 주세여. 진혁 님, 아니, 철수 님 얼굴만 나오면 10억은 보장이니깐.”
* * *
지옥좌가 다스리는 4지옥의 왕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수의 워프포탈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재미없었나?’
명상 콘텐츠라고 이렇게 조롱받을 일인가 싶기는 했다.
사실 명상이라는 건 모든 플레이어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자신 안의 소우주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라도 간접경험할 수 있으면 무척 좋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판단이 틀린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진짜 명상 콘텐츠를 진행해야 하나?’
소우주 속에서 커다란 발견을 하여 한 층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건 재미있으려나?
깨달음에 목마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러한 고민과 함께 또다시 워프포탈에 올라탔다.
‘응?’
0.3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
차진혁은 그 공간 안에 무언가 이물질 같은 것이 끼어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혹시 사고가 일어나 주는 건가!’
그런 행운이 여기서 터져준다고?
차진혁은 서둘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하여 공간 속 시간의 흐름을 늦췄다.
‘엥?’
저만치 앞,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깨달음의 빛이 아니라 잿빛 머리카락의 어린아이였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시간 배율 촬영이 만능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은 수호수의 권능이 닿지 않는 곳.
‘끽해야 30초 정도인가?’
차진혁은 재빨리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얘 세뇌됐다.’
뇌룡의 주인이니만큼, 뇌전에도 꽤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었던 차진혁은 소년의 몸에 뇌전이 일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진혁은 기쁨을 감추고 중얼거렸다.
“여기서 사고 터지면 개죽음인데.”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이 설렘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뻔했다.
‘얘가 여기 왜 있는 거지?’
그런데 소년의 몸 안에 일렁거리는 기운이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본 것 같은 기분.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어느새 소년의 동공에 초점이 생겼다.
그 짧은 순간에 소년의 눈에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렬히 깃들었다.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을 통해 그것을 정확히 읽어냈다.
“가만히 있어. 도와줄게.”
순간 치직- 치지직- 하고 전하들이 맞부딪치며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생체 폭탄 같은 건가.’
폭발 자체는 막을 수 없었다.
이 아이의 몸을 매개체로 꽤 따끔거리는 수준의 뇌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 자체는 차진혁에게 딱히 위해를 가할 수 없었으나 이 공간 자체에 왜곡을 불러오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나를 직접 타격하는 게 아니라 이 공간을 무너뜨려서 나를 차원 틈새의 미아 같은 걸로 만들겠다, 뭐 그런 건가?’
[신비, ‘행운의 신’을 사용합니다.]
레벨이 대폭 오르면서 한 번 사용하는 것 정도로는 이제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킬,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합니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이곳은 오롯이 연출가의 공간.
연출가인 차진혁이 지배하는 우주가 되었다.
‘시간 개짧겠다.’
수호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보니 시간에 제약이 많이 생겼다.
3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 안에 차진혁은 뇌전의 기운을 삭제해 버렸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완벽한 삭제는 어려웠다.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너무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후 미처 다 없애지 못한 뇌전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절대결계를 통해 막아냈다.
이 공간 자체를 향한 테러는 방어해 낸 셈이었다.
‘이러면 폭발이 결계 안에서만 일어나고.’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대신 소년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쟤도 구해야 하는데?’
암묵적으로 공격이 금지된 공간에서 생체폭탄을 이용한 테러?
척 봐도 엘튜브각이 보였다.
‘이건 조회수 15억 넘는다, 무조건.’
시간배율 촬영의 효과가 남아있다지만, 이 모든 판단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떻게 구하지?’
저 소년을 꼭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엘튜브 때문에 소년을 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말 구하고 싶어서 구하고 싶은 건지.
만약 엘튜브가 아니었더라면 저 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건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살리고 보자.’
일단 지금은 엘튜브 때문인 걸로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