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4화
광란의 마도사 퓌렐이 대답했다.
“진실에 닿는 방법은 이…….”
이내 퓌렐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모든 걸 알려줄 뻔했다.
퓌렐 스스로도 깜짝 놀라 물었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딱히 아무 짓도 안 하기는 했는데…….”
둘은 함께 고민하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김철수. 설마 이거 미인계냐?”
“미인계였나?”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퓌렐은 다 납득했다는 표정이었고 차진혁은 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미인계 기술이 발동한 건가?’
미인계는 차진혁에게도 꽤 고역인 일이었다.
정말 큰 각오와 다짐을 해야만 겨우 사용할 수 있는 계책.
그런데 이걸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레 할 수만 있다면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한 거지?’
차진혁은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인계가 잘 발동되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ㅋㅋㅋㅋㅋ 김철수 왜 고민함?
-자기가 자연스레 기술 썼다고 생각한 듯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다.
아주 우연한 타이밍에 특별한 기술이 발동된 것이 아니라,
-퓌렐이 그냥 얼빠라서 그런듯ㅋㅋㅋㅋ
퓌렐이 차진혁의 외모에 지나치게 매료되었을 뿐이었다.
-근데 저 정도 얼굴이면 아무것도 안 해도 미인계 아님?
-철수 님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함.
-내 앞에서 숨만 쉬어도 내 전 재산 갖다 바칠듯.
-미인계 그 잡채.
“미인계든 뭐든 상관 없어. 내 요구사항은 말이야.”
퓌렐이 히죽 웃은 뒤 말을 이었다.
“너와의 결혼이다, 김철수.”
-왘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우주급 시나리오로 결혼딜을 친다고?
-근데 방송에 미친 김철수라면 저거 받아들일지도?
-안돼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 난 이 결혼 반대일세!!
그리고 차진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결은 안 돼.”
“우결?”
“아. 결혼 콘텐츠 같은 건 안 된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퓌렐은 하얀 손을 이마에 얹었다.
왠지 모르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느낌이었지만 이것도 꽤 나쁘지 않았다.
일에 미쳐 있는 김철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나 차인 거야?”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퓌렐은 깔깔대며 웃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가늘어진 눈으로 차진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 존X 섹시해.’
저 남자. 갖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차진혁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결혼 콘텐츠에 꼭 출연해 보고 싶은 거라면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 * *
퓌렐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이자 부관이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브. 퓌렐을 막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소개팅. 해봐.”
“나는 김철수랑 결혼하고 싶은 거지, 다른 놈은 관심 없다니까?”
“소개팅 상대가 김철수의 최측근이라며. 그리고 김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 있다며.”
차진혁은 소개팅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강은우라면 김철수만큼이나 아름다운 얼굴로 유명한 애인데, 몰라?”
“그게 뭔데?”
“너는 김철수 팬이 강은우를 모르냐?”
“내가 그깟 걸 알아야 돼?”
“강은우는 김철수의 홈마…… 아니, 전속 사진기사 같은 거야.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김철수의 최측근이지.”
에이브는 퓌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만나봐. 너 강은우한테 반할 수도 있어.”
“나는 김철수가 제일 좋다니까?”
“소개팅 콘텐츠 진행하면? 김철수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소개팅 해보고 싶었어.”
퓌렐은 강은우와의 만남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강은우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에이브. 소개팅하면서 김철수를 유혹하는 법을 좀 알려줘 봐. 춘약을 먹여보는 건 어떠냐?”
* * *
차진혁은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래. 퓌렐은 실버레인의 간부였었지?’
실버레인은 강은우의 팬덤이었다.
강은우는 그의 얼굴을 공개한 적이 별로 없었지만 그에 비해 팬덤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그때는 별로 관심 없었는데.’
그때는 쓸모없는 정보였는데 지금은 꽤 쓸모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강은우. 퓌렐을 좀 만나봐.”
“아, 저는…….”
강은우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그의 일(플레이)에 집중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랐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퓌렐에게 정보를 좀 얻어야 할 것 같거든.”
“아…… 그럼 이건 콘텐츠의 일환이겠네요?”
소개 혹은 만남이라는 말에는 난색을 표하던 강은우였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그의 눈빛이 말똥말똥 빛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렇지?”
“그럼 제가 미인계를 발휘해서 퓌렐을 유혹하고, 퓌렐이랑 연애하면서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면 되는 거죠?”
“정확해.”
강은우는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차진혁의 방송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직접 참여하는 덕질.
말하자면 이것은 덕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 제가 퓌렐과 성공적으로 연애하게 되면 기쁘게 웃어주실 수 있나요?”
“그게 중요한 건가?”
“네. 형님이 환하게 웃을 때 S컷이 잘 뽑히거든요.”
그 말에 차진혁은 잠깐 감탄하고 말았다.
차진혁 본인이 방송에 진심인 것만큼이나, 강은우도 본인의 일에 진심이었다.
저 와중에도 본인의 일에 이토록 치열하다니.
본받을 구석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럼 날짜 잡는다? 나는 웃는 거 연습 좀 해볼게.”
* * *
시청자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ㅋㅋㅋㅋ이게 무슨 조합이냨ㅋㅋㅋㅋㅋ
-우주급 시나리오 진행하다가 갑분 소개팅이라닠ㅋㅋㅋㅋ
-갑자기 개가벼워짐ㅋㅋㅋ
우주급 시나리오와 소개팅.
이 두 가지 키워드 사이에는 아무래도 큰 간극이 있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꽤 큰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여기서 소개팅 콘텐츠를 할 줄이야 ㅋㅋㅋ
-근데 이거 찐임?
-방송은 방송으로 좀 봐라 찐따야 진짜겠냐?ㅋㅋ
시청자들 대부분은 이게 짜여진 각본에서 연출되는 예능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당사자인 강은우는 심각했다.
‘퓌렐을 어떻게 유혹해야 하지?’
짜여진 각본 같은 건 없었다.
퓌렐을 정말로 유혹해서 우주급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를 뽑아내고, 그를 통해 차진혁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담아야 했다.
차진혁 앞에 붉은색 불꽃이 일렁거렸다.
주위가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붉은 머리카락의 늘씬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철수. 나 왔어.”
“어. 앉아. 말했지? 여기는 강은우.”
퓌렐은 별로 관심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강은우쪽을 힐끗 바라보았다가 움찔했다.
‘어?’
퓌렐은 두 눈을 꿈뻑거렸다.
‘저렇게 생긴 애가 또 있네?’
지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서버란 말인가.
저 서버에 뭐가 있길래 이런 애들이 둘이나 있단 말인가.
퓌렐이 히죽 웃었다.
“너도 내 스타일이다.”
“그렇습니까?”
강은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퓌렐 앞의 의자를 빼주었다.
“앉으시지요, 레이디.”
아르비스의 예법과 매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온 상태.
공부를 하기는 했으나 많이 긴장한 탓에 강은우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뚝딱거리는 거 넘 귀엽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ㅇ벗어 ㅠㅠ -졸라 사랑스러워ㅜㅠㅜㅠㅠㅠ
이 순간에도 강은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떻게하면 효과적으로 퓌렐을 유혹할 수 있는 거지?’
퓌렐은 무려 7대가문의 수장 중 한 명이었다.
이런 거물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철두철미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었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에 몽마들을 만나 수많은 전략들을 머릿속에 주입한 상태.
그렇지만 하도 긴장한 탓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 이름이 뭐라고?”
“강은우입니다, 퓌렐 경.”
퓌렐은 강은우의 턱에 검지손가락을 대고서 슬쩍 들어 올렸다.
강은우의 얼굴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감탄했다.
“무례하군요. 저는 품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퓌렐 경.”
“품평하고 싶게 생겼잖아.”
퓌렐은 기다란 검지손가락으로 강은우의 입술 부근을 매만졌다.
“탐스러운 입술이네.”
“퓌렐 경의 입술도 탐스럽습니다.”
강은우는 여전히 경직된 자세로 말했다.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린 상태.
‘이러면 안 되는데.’
이론과 실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렇게 허술한 유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식이면 미인계고 우주급 시나리오고 뭐고 다 날아가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럼 우리 키스할까?”
“그럼 우리 사귀는 겁니다.”
말해놓고서 강은우는 아차 싶었다.
멘트가 너무 별로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때, 퓌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보였다.
-왘ㅋㅋㅋㅋㅋ 이거 15금 아니냐?
-김철수 콘텐츠에서 키스씬을 보게될 줄이얔ㅋㅋㅋㅋ
-얼굴합은 너무 좋은 것 같은데 ㅋㅋ
-우주급 절대자와의 첫 만남에 키스한 썰 푼다 ㅋㅋ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강은우는 퓌렐을 슬쩍 밀쳐냈다.
“저는 퓌렐 경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겁니까?”
* * *
차진혁은 약간 황당했다.
‘미인계가 통한 것 같은데?’
강은우가 제대로 된 기술을 선보인 건 없는 것 같았다.
시청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냥 뚝딱거렸을 뿐인데 퓌렐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강은우와 퓌렐은 실제로 연애를 시작했다.
이쯤되니 시청자들도 혼란스러워했다.
-이거 뭐야? ㄹㅇ이야 가상이야?
-에이 설마 가상이겠지.
-가상이어야해. 절대로. 절대 절대 절대로. 우리 은우 절대지켜 ㅠㅠㅠㅠㅠ
수많은 실버레인들이 오열했다.
아르비스에도 실버레인이 꽤 많았는지, 헤이나 가문에 앞에서 ‘우리 오빠를 돌려달라’ 혹은 ‘우리 오빠는 김철수의 대체품이 아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어쨌든 퓌렐과 강은우의 연애가 시작된 건 사실이었다.
둘은 헤이나 가문의 정원에서 오붓한 산책을 즐겼다.
“퓌렐 경. 우리 만난 지 3일 기념선물을 좀 주면 어떻습니까?”
“왜? 결혼반지라도 주게?”
“결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퓌렐 경.”
“그러면?”
“혹한의 불꽃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퓌렐이 히죽 웃었다.
“너 그러려고 나랑 사귀는 거지? 김철수 도와주려고?”
“그러면 안 됩니까?”
“아니. 안 될 건 없지.”
퓌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만큼 강은우의 미모는 압도적이었다.
“3일째는 좀 그렇고, 22일째 되는 날에 알려줄게. 투투 기념으로.”
“투투요?”
강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투투라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그게 뭔가 싶었다.
“아. 그, 지구에서 쓰는 그 투투요?”
“어. 22일 되는 날. 설마 그걸 몰라?”
사실 퓌렐은 요즘 지구에 대해 공부 중이었다.
그녀는 분명한 얼빠였고 만난 지 3일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강은우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는 진짜였다.
“뭐, 모르는 것도 귀여워.”
그리고 22일째 되는 날.
퓌렐이 말했다.
“가문 심층부를 개방한다. 내 애인한테 혹한의 불꽃을 보여줄 거야.”
가문의 원로들이 극심히 반대했다.
“안 됩니다, 가주!”
“혹한의 불꽃은 홍염의 헤이나를 상징하는 보물입니다!”
“피사트 가문이 끔찍한 꼴을 당한 걸 못 보셨습니까?”
피사트 가문의 보구가 산산조각이 난 사실은 아르비스에서도 무척 유명했다.
“강은우는 김철수의 측근입니다!”
“혹한의 불꽃에도 수작을 부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원로들이 크게 반대했으나 퓌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라고.”
“…….”
“꼬우면 니네가 가주 하든가.”
“가주!”
“아니면 막아보든가. 물론 막으면 죽인다.”
“…….”
퓌렐은 약속대로 강은우에게 ‘혹한의 불꽃’을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퓌렐 경. 철수 님과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퓌렐이 환하게 웃었다.
“당욘하지, 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