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51화 (35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1화

검의 현인 그리들은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차진혁을 맞이했다.

“지도는, 가져왔겠지?”

“물론입니다.”

차진혁은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일급 도둑을 숨겨놨나?’

“잠시 확인을 좀 하도록 하지.”

“그러시지요.”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송하영 이상의 실력자를 대기시켜놓은 게 아닐까 싶었으나 그것도 아닌 듯했다.

‘바꿔치기도 안 하고.’

지도를 살펴본 그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 밖을 향해 말했다.

“가져와라.”

방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헝겊에 싼 검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진짜로 이렇게 쉽게 내준다고?’

“자네가 직접 헝겊을 풀어보게.”

“예.”

차진혁이 직접 헝겊을 풀어 물건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피사트의 보구’가 맞았다.

─────

[피사트의 보구]

─────

‘혹시 가짜는 아니겠지?’

중계자의 통찰마저도 속일 수 있는, 아주 정교하게 제작된 모조품이 아닐까 싶었으나 아무리 봐도 진품이었다.

‘수호수 버프에 신화급 카드 버프까지 받고 있으면서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 중인데…….’

만약 이 중계자의 통찰까지 속일 수 있었던 거라면 오히려 인정해야했다.

‘이게 가짜면 내 능력이 부족한 거지.’

차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두 개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피사트의 보구’를 획득하였습니다.]

[‘피사트의 보구’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들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는 약속을 지켰네. 이것으로 아카시아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서로에게 잘된 것 같군요.”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무엇입니까?”

“그 보구는 자네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을 거야. 강력한 사용제한 조건이 걸려 있으니까.”

이미 확인했다.

───────

[피사트의 보구]

가르비누의 동료 중 한 명, 정의의 검객 피사트가 남긴 성유물.

───────

설명은 굉장히 심플했다.

마치 거대했던 수호수가 진화를 거듭하여 평범한 나무로 변해 버린 것처럼.

화려한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담백한 설명이었다.

설명으로는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을 통해 아이템의 성질을 읽어낼 수 있었다.

검 옆면 글자가 써 있었던 것이다.

[피사트의 격이 녹아들어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베지 못할 것이 없으나]

이는 진짜 글자가 아니라, 아이템에 내재된 피사트의 의지였다.

그 의지를 중계자의 통찰이 문자의 형식으로 읽어낸 것.

또 다른 검의 옆면에도 글자가 있었다.

[오로지 피사트의 후예만이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으리라]

“압니다. 피사트의 피를 이어야만 이 검을 사용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나도 알지. 자네에게는 뛰어난 성능의 룰 브레이커가 있다.”

“예. 룰 브레이커로 설정을 부수면…….”

“그러면 검이 부서질 것이다. 피사트의 후예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은 후에 덧입혀진 것이 아니라, 보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차진혁의 귀가 쫑긋거렸다.

‘해볼까? 엄청 어그로 끌리겠는데?’

차진혁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들이 말을 이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줄 것이고, 다른 것을 원한다면 다른 것을 내어주겠네. 자네에게는 쓸모없는 검이겠지만 나에게는 보물이지. 그러니 자네의 현명한 선택을 기도하겠네.”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하니까?”

“시간이 필요한가?”

“일주일 후, 연락드리죠.”

그리들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지기는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기다리지.”

“혹시 연락 없으면 거래에 응하지 않는 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지.”

차진혁이 돌아간 뒤, 그리들은 의자에 앉았다.

검을 가져온 부하가 말했다.

“혹시라도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어떡하시렵니까?”

“응할 것이다. 내가 알아본 김철수는 철저히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는 자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그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겨다 주었어. 이건 운이라고 볼 수 없다. 철저히 계획하여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뽑아낸다.”

……라고 오해했다.

그리들의 판단은 분명 상식적이고 이성적이었으나 정확한 판단은 아니었다.

철저히 계획하여 모든 이득을 뽑아낸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방송을 하다 보니 운 좋게 이렇게 되었다라고 보는 편이 훨씬 사실에 가까웠으니까.

“연락이 없으면 거래에 응하지 않는 걸로 이해하면 된다라는 말도 이쪽을 안달나게 하려는 노림수인 것이 틀림없겠지.”

이것도 사실 노림수가 아니라 차진혁의 진심이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수많은 경험을 쌓아왔고, 대부분 옳은 판단을 내려왔던 검의 현인 그리들은 자신 있었다.

“기다려보아라. 반드시 내 제안에 응할 테니.”

* * *

우주랭커 마시멜로는 기분 나쁜 듯 투덜거렸다.

“어떻게 매번 방송이 다 터지냐? 거를 타선이 없네.”

그는 인급동 1위에 오른 ‘김철수가 피사트 가문의 보구를 얻어내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백과사전이 가까이 다가와서 마시멜로의 액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좋아요는 이미 눌러져 있고.’

말로는 말도 안 된다며 투덜거리고 있지만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철수랜드로서 무척 기쁜 것이 틀림없었다.

백과사전이 피식 웃고서 말했다.

“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스트리머가 레벨 450 찍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사기급 스킬이 생기냐?”

“나도 비슷한 스킬이 있기는 있는데.”

“있어? 너도 쓸 수 있어?”

“쓸 수는 있지.”

“쓸 수는 있다는 게 뭔데?”

“한 0.01초 정도?”

“……그럼 못 쓰는 거잖아.”

“글쎄. 만렙 제한 풀려서 내가 무슨 레벨 999 정도 찍으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스트리머 만렙이 몇인데?”

“현재는 500. 참고로 재작년까지는 400이었다. 최근에 500까지 제한 풀린 거야.”

백과사전은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SSP 역사는 약 4,000년. 4,000년간 만렙 제한이 400이었는데 김철수는 1년 만에 450을 찍은 거야? 아무리 스트리머라고 해도 이건 너무 밸붕인데?’

“서울 관리자들 또 싹 물갈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러든가 말든가.”

“너 왜 기분 나빠 보이냐?”

마시멜로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건 기분 나쁘다는 증거였다.

“아니, 서울 관리자 새끼들은 지네가 일을 잘못해 놓고서 자꾸 김철수가 밸런스 붕괴니 뭐니 떠들어대잖아. 김철수는 그냥 치열하게 플레이했을 뿐인데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김철수를 욕해서 짜증 난다고?”

“당연하, 아니, 미쳤냐? 그게 아니고, 그냥 자기들 실수를 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꼴이 같잖은 거지.”

마시멜로의 머리가 붉게 물들며 멜팅치즈처럼 흘러내렸다.

그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김철수가 피사트 가문의 보구들을 어떻게 할까? 네 의견은 어때?”

“글쎄. 내가 김철수라면 당연히 팔겠지.”

“판다고?”

“어. 돈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요구하겠지만.”

백과사전은 굉장히 똑똑했고 넓은 시야를 지니고 있었다.

“김철수는 우주급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잖아. 결국 큰 줄기는 가르비누 및 7개의 가문과 연관이 되어 있어. 피사트 가문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우주급 시나리오를 훨씬 더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게 되겠지. 한세린도 아마 나와 같은 판단을 하고, 그렇게 조언했을 거야.”

같은 시각, 한세린이 말했다.

“……해서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면 당연히 유리해지겠지. 거래 형식으로 그들의 보구를 돌려주는 편이 합리적이고 좋은 판단이 될 거야. 차진혁 개인에게는.”

하지만 한세린은 평범한 군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방송에 미쳐 있는 김철수를 이해할 줄 아는 군주’였다.

“근데 방송각으로는 좀 약한 거 같기도 하고? 연출하기 나름이긴 하겠지만…… 감동 콘텐츠 같은 걸로 뽑아내면 피사트 가문과 협력할 수도 있고, 네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모로 괜찮을 거 같긴 한데. 근데 어쨌든 좀 자극이 덜한 거 같기는 해.”

“네 생각에도 그렇지?”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 * *

일주일이 흘렀다.

검의 현인 그리들은 지난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늘 연락이 오겠군.’

그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가주!”

“무슨 일이냐?”

“이, 이, 이걸 보십시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이, 이건……!”

차진혁의 방송화면이었다.

현재는 대기 중으로 검은 화면.

그러나 설명란이 가관이었다.

[피사트의 보구로 강화합니다]

그리들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강화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보구들을 재료로 삼아 미리. 그러니까 룰 브레이커를 강화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크게 소리치자 방의 창문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단 말인가!”

피사트의 보구는 신화급 너머의 격을 지닌 아티팩트.

이러한 보구를 재료로 소모해서 무언가를 강화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금을 갈아넣어 동을 얻는 미친 짓을 누가!”

“어쩌면 연막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려는…….”

“그래.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김철수는 절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내 그리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마주쳤다.

화면 속 차진혁이 말했다.

-“네. 이곳은 반얀트리 던전입니다. 아시다시피 올 클리어 효과가 적용 돼서 제 모든 능력치가 강화되는 곳이죠.”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방송.

현재 김철수가 느끼는 감정의 일부가 액정을 통해 전해졌다.

김철수는 지금 진심으로 설레하고 있었다.

-“서울 수호수의 도움을 받는 중입니다. 제 모든 전력을 다해 강화에 임할 생각입니다. 네, 지금은 QnA 시간입니다. 이야기꾼 채널 가셔서 질문 해주시면 이야기꾼이 질문들 걸러서 저한테 전해줄 겁니다. 미리도 동의했냐고요? 예, 미리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자기가 파괴되어도 좋으니 무조건 강화 해달라고 조르던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시청자들은 긴가민가했다.

-에이 설마.

-아무리 김철수가 미쳤어도 저 보물을 부숴서 강화를 한다고?

-이미 완성형 아이템을 미쳤다고 재료로 쓰냐 ㅋㅋㅋ

-게다가 이러면 피사트 가문한테도 찍힘 ㅋㅋㅋㅋㅋ 이런 짓은 절대 안한다 ㅋㅋ 이거 어그로임ㅋㅋㅋ

-어그로 너무 심하네요. 구독 취소합니다.

이윽고 카트리나와 르세핌이 도착했다.

-“아무래도 재료가 재료다 보니, 연금술사와 장인의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불렀습니다. 조수로 천재소년 넬슨도 함께 왔고요.”

-아 어그로 이제 그만.

-이걸로 피사트 가문 협박하는 중인듯 ㅋㅋ

-피사트 가문 똥줄 타긴 하겠다 ㅋㅋ

시간이 흐르면서 ‘김철수가 어그로를 끌고 있다’라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차진혁에게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이 강화 콘텐츠는 말이 안되는 종류였던 것이다.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 길게 끌지 않겠습니다.”

강화는 말하자면 가챠(뽑기)에 가까웠다.

그것은 사행성 도박에 가까운 행위. 도파민이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 설마 진짜 하나?

-엄청 설레하는데?

-뭐야, 나도 설레.

-우리가 이 정도로 느끼면 김철수 본인은?

차진혁이 말했다.

“강화 시작합니다.”

그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곧장 강화 작업을 시작했다.

르세핌/카트리나/넬슨이 준비해 준 자잘한 재료들이 허공에 떠올랐고, 피사트의 보구 두 자루가 두둥실 떠올랐다.

재료들에서 황금색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강화 전조 현상이었다.

“당연하지만 강화 대상 아이템은 미리입니다.”

미리로 두 개의 검을 차례로 내리쳤다.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미친.

-진짜 했다.

-와, 이걸 한다고?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시간 시청자 15억 명을 돌파했다.

신기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