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49화
아카시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뭐?”
검옥은 일단 사용하면 무척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준비과정이 길고 복잡했다.
아까도 차진혁이 방송한다고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한 번 더 검옥을 써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 검옥은 내가 파훼한 것이 맞다.”
“…….”
“내가 한 건데 왜 못 믿는 건지. 개빡치네.”
차진혁은 일부러 억울함을 연기했다.
-와 개억울해 보인다 ㅋㅋㅋㅋㅋ
-저 정도면 배우 해도 될 듯ㅋㅋ
-그치, 억울한 건 못 참지.
제3자인 시청자들은 차진혁의 연기를 알아차렸으나, 당사자인 아카시아는 차진혁의 표정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직접 나의 강함을 증명해 주지.”
“…….”
아카시아는 순간 차진혁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차라리 잘 됐다.’
저렇게 어리숙한 모습을 보아하니 신생서버 출신의 신성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다.
만약 노련한 플레이어였더라면 저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너의 만용과 어리석음이 명을 재촉할 것이다.’
그녀는 자부심 가득한 아르비스의 최상위 랭커.
한 번 당한 것에 또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르세핌과 카트리나의 방해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면 돼.’
한 번 더 검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김철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속으로는 기뻤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그리고 이내 아카시아는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대검을 꺼내 검옥을 사용할 준비를 끝마쳤다.
아카시아의 마지막 일격을 대하는 차진혁의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상대의 최선을 다하는 공격에 예를 갖추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시아는 그 모습에 조금 감탄했다.
‘어리석으나, 명예를 아는 자로구나.’
명예를 아는 자이니 괴롭지 않게 죽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재차 검옥을 사용하기 직전,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뻥이다.”
그가 세차게 미리를 휘둘렀다.
아카시아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
미리가 아카시아의 관자놀이를 향해 뻗어나갔다.
콰광!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스킬, ‘검옥’ 모방에 성공하였습니다.]
차진혁의 웃음이 짙어졌다.
“모방은 끝났다.”
아카시아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이었다.
그러나 최상위 랭커답게 황급히 몸을 뒤로 빼내어 미리의 공격을 피해냈다.
어느새 다리에 걸려 있던 석화도 풀어낸 상태였다.
‘아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망치가 늘어나?’
말하자면 폭발은 일종의 속임수였다.
폭발음과 희뿌연 연기로 시야를 속인 뒤, 본체인 망치가 주욱 늘어나 아카시아의 관자놀이를 타격했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성공을 만드는 법이지요. 맛있네요, 당신의 관자놀이. 츄릅.
애황 마르코를 상대할 때 미리는 크게 반성했었다.
폭발력이 강한 광역 공격만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배웠었고, 이후 어떻게 하면 보다 정밀하고 정교한 공격을 할 수 있을까를 매일같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상대를 끝까지 추격하여 공격하는 방식을 스스로 깨달았다.
솔직히 차진혁도 놀랐다.
‘이게 된다고?’
-치열 유니버스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답니다. 저는 성장형 무구이니까요.
무기조차 치열하게 노력하는 치열 유니버스.
차진혁은 이 세계관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이제 치열 유니버스의 완성을 보여줄 때였다.
‘타격은 정확하게 먹였고.’
이내 목왕 목재현이 나무 덩쿨을 뻗어냈다.
평소라면 그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차진혁의 공격에 틈이 생긴 뒤.
거기에 김정현이 온 힘을 다한 주먹을 뻗었다.
아카시아가 습관적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만약 검을 들고 있었더라면 김정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검을 제물로 바쳐 사용하는 검옥 때문에 이미 검이 두 동강 나 있던 상태.
퍽!
김정현의 주먹이 아카시아의 가슴에 닿았다.
‘이깟 공격 따위.’
이어지는 연계 공격에 정신이 없기는 했으나 큰 데미지는 없었다.
‘이들은 김철수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당황할 필요 없어.’
뮈엔느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호흡을 되돌리고 다시금 재정비할 수 있었다.
다행히 뮈엔느는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나무술사 먼저 제거한다.’
부러진 대검으로 김정현을 찌르는 척 하면서, 김정현의 겨드랑이 사이로 슬쩍 빠져나갔다.
‘네놈을 죽이고, 그 다음은 저 덩치.’
머릿속에 효율적이고 빠른 경로가 그려졌다.
부러진 대검으로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녀의 검에 붉은 마력이 서렸다.
그때, 차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옥.”
아카시아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그녀의 기술, 검옥이 그녀를 감쌌다.
“성공했습니다.”
검으로 이루어진 감옥.
그 공간이 좁아지며 아카시아를 압박했다.
검옥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것 자체는 무척 기뻤으나 이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19금 걸어야 하나?’
검옥은 공간이 통째로 상대를 잡아먹는 기술.
신체가 조각나고 피가 줄줄 흘러나올 것이 자명했다.
‘너무 잔인할 것 같은데…….’
검옥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것은 무척 기뻤으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피사트 가문의 가주.
검의 현인 그리들이었다.
* * *
검의 현인 그리들.
검에 있어서 우주 최강이라 불리는 노인.
차진혁은 그리들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다.
“저 노인은 분명 검의 현인 그리들이겠죠.”
그리들이 백색 호선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차진혁이 새겨놓은 황금색 흔적들.
왕유미의 표현에 따르면 ‘골든 트레이스’를 파괴하며 백색 실선이 허공에 새겨졌다.
수천 가닥의 백색 실선이 거미줄처럼 검옥을 덮쳤고, 검옥이 여섯 가닥으로 갈라졌다.
차진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오…….”
그렇지만 차진혁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터진 모습을 보여주면, 어중이떠중이들이 수없이 덤벼들 것이 뻔했다.
‘나를 공격하려면 네 목숨도 걸어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저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겠죠.”
차진혁은 품 안에서 검 여러 개를 꺼냈다.
아카시아의 대검만큼 질 좋은 것들은 아니었지만,
“물량에는 장사 없습니다.”
가끔은 질보다 양이 중요할 때도 있었다.
차진혁은 인벤토리에 모아놓았던 검들을 사용하여 해체되어가던 검옥을 되살렸다.
검의 현인 그리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이미 파쇄한 검옥을 되살려?’
검옥의 진짜 주인인 아카시아도 해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검을 여러 개 사용하여 검옥을 운영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 같군.’
검옥은 거대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큰 기술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체력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생명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몸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신체의 마력회로가 모조리 끊어질 텐데?’
검옥은 그만큼 위험하고 예민한 기술이었다.
그래서 아카시아도 이 기술을 사용할 때는 무조건 손에 익은 대검으로.
그것도 뛰어난 대장장이가 제련한 질 좋은 검만을 사용한다.
‘어떻게 생겨 먹은 몸뚱어리란 말이냐!’
그리들은 이를 악물었다.
저런 식으로 검옥을 사용하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야 정상이건만, 김철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저런 괴물 같은 몸은 그리들로서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가 황급히 외쳤다.
“아카시아의 생명값을 지불하겠다. 그러니 아카시아를 살려다오.”
그 말에 차진혁이 그리들을 힐끗 쳐다봤다.
“구독자냐?”
“…….”
그리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진혁의 방송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저번 긴급회의 때 구독을 눌러놓기는 했었다.
구독을 확인한 차진혁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채 검옥의 사용을 멈췄다.
그 모습에 아카시아는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검옥을 인위적으로 멈췄다.’
아카시아도 여러번 시도했었다.
그녀 또한 필요한 순간에 검옥을 멈추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까딱 실수했다가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
‘너무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이야.’
분명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저 자는…….’
그리들과 대화도 나누고, 심지어 방송도 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섬세한 마력 컨트롤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그저 피지컬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려왔던 그녀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 기술은 의미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믿어야 할 것 같았다.
“생명값은 무엇으로 지불할 거지?”
“네가 얻은 지도는 반쪽짜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암놈만 얻을 수 있다. 그 검은 암놈과 수놈으로 나뉜다. 두 검이 함께 할 때에 진가를 발휘하지.”
“암놈과 수놈?”
차진혁도 들어본 적 있었다.
“설마 정의의 검객 피사트의 쌍검을 말하는 건가?”
“그래. 피사트 가문의 보구다. 그 정도면 그녀의 생명값으로 충분하지 않나?”
중지된 검옥 안에 갇힌 아카시아가 외쳤다.
“가주! 나는 괜찮습니다. 명예롭게 죽게 하여 주십시오.”
“명예는 개뿔. 네 기술에 잡아먹히는 게 명예로운 거냐?”
“나는 패배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완벽한 패배입니다.”
그리고…… 나는 죽고 싶습니다.
그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으나, 그리들은 아카시아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거대한 벽을 마주했을 때의 그 절망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천재라고 자부해 왔던 자부심이 무너져 내렸을 때의 그 기분은 실로 참담하지. 그러나 아카시아. 잊지 마라. 너는 피사트 가문의 검이고, 가문의 명령없이는 멋대로 죽을 수 없다. 그러니 제멋대로 목숨을 포기하지 마라. 너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검이다.”
차진혁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꽤 좋은 장면인 것 같았다.
[*여기에 비장한 음악 좀 넣을 것. 검의 현인 표정에도 좀 집중.]
죽음을 바라는 절망한 천재는 검옥 안에서 울고 있었다.
그 천재를 아끼는 검의 현인은 입술을 앙다물고 그의 방식으로 아카시아를 위로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하여 피사트 가문의 보구를 내주기로 약속했다.
‘이 정도면 분량 충분히 뽑았다.’
단순히 싸우고 쳐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연출은 다양할수록 좋았다.
차진혁이 손을 휘젓자 아카시아를 둘러싸고 있던 검옥이 사라졌다.
“이러면 내가 죽일 수 없지 않습니까?”
일부러 이 타이밍에는 존대를 썼다.
아끼는 부하를 위해 보물을 아끼지 않는 검의 현인에 대한 예의였고,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크게 감동했다.
“내 목숨을 노렸던 자는 모두 죽였습니다. 그게 나의 원칙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리들 경. 당신의 위대한 마음이 내 원칙을 깨뜨렸습니다.”
차진혁이 미리를 품 안에 넣어 더 이상 공격의사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비록 우리는 적으로 만났고, 앞으로도 적으로 만나겠으나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차진혁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들은 아카시아를 부축한 채 차진혁의 손을 맞잡았다.
“……고맙군.”
“약속의 징표는 무엇입니까?”
차진솔은 남몰래 웃었다.
‘약속의 징표? 보물 삥 뜯는 걸 이렇게 포장한다고?’
혹시 화면에 잡힐까 싶어 몸을 돌리고 웃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삥뜯기일 거야.’
차진혁은 지도 두 장을 획득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알림까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