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43화
애황 마르코.
각성자 사냥꾼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의 랭커.
“얼굴은 딱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신비, ‘흘리는 바람’이 작동합니다.]
흘리는 바람이 저절로 작동하여 마르코의 공격을 피해냈다.
‘무슨 공격이었지?’
차진혁은 상대의 공격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이게 진짜배기 우주랭커의 실력이구나 싶어 더 설렜다.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공격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개미만큼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차진혁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미리를 휘둘렀다.
쾅!
벽면에 닿은 미리로부터 작은 폭발이 일었고, 좁은 공간 전체가 흔들거렸다.
“이런 공격은 안 되겠네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 공간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물론 여기가 무너진다고 해서 제가 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카트리나를 구하기가 어렵겠군요.”
기절한 카트리나를 구출해서 이곳을 빠져나간다?
애왕 마르코가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가한 일이었다.
“어쩌면 골디믐 가문의 가…….”
골디믐 가문의 가주가 이것을 노렸을 수도 있다.
카트리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낳아준 년’.
그자는 카트리나를 이전부터 혐오했고 이참에 사고를 빌려 죽기를 바랄지도.
이 발언을 하면 꽤 괜찮은 어그로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다. 됐다.’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안 하는 거냐, 김철수! 조회수를 위하여 목숨까지 걸 수 있는 녀석이잖아, 너는!’
그러나 쓰러진 카트리나의 모습을 보니 차마 멘트를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카트리나의 어머니니까.
어머니가 딸의 사고사를 노렸다는 걸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가.’
조금씩 다른 것을 배워가는 기분이었다.
* * *
카트리나를 생각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지금의 이 상황이 그리 좋다고 보기만은 어려웠다.
‘위치 파악 자체가 안 된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애황 마르코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신비, ‘흘리는 바람’이 작동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흘리는 바람’이 생각보다 굉장히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중계자의 통찰로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대신 읽어내 주고,
[특성, ‘절대 결계’를 사용합니다.]
덕분에 효과적인 회피와 방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공격은 포기하고.’
대신 회피와 방어에만 집중했다.
‘애황 마르코의 약점은 체력.’
공식적으로 마르코가 가장 길게 전투를 이어간 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다.
‘4시간 정도만 버티면 되겠지.’
차진혁이 작정하고 방어와 회피에만 전념하기 시작하자, 아까보다는 마르코의 기척이 더 잘 느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작아. 개미와 비슷한 크기로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인다.’
마르코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극도로 희귀한 곤충계 수인족이라는 말도 있었고, 특수한 클래스 때문에 개미처럼 작아졌다는 말도 있었다.
‘워낙 빨라서 내 공격은 닿지도 않고.’
미리는 반성 중이었다.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광역 공격에 너무 의존했던 것 같아요.
폭발에만 심취해서.
뒤통수를 깨는 것에만 신난 나머지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정밀 유도 공격 같은 능력도 키웠어야 했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들었다면 ‘망치가 보통 그 정도까지 생각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미리가 지나치게 뒤통수를 화려하게 깨부수는 것에만 너무 치중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력할게요. 더 열심히 할게요. 훗날에는 저런 자그마한 날파리 같은 녀석도 부숴버릴 수 있게요!
차진혁은 방어에만 집중하고,
[신비, ‘환상검희’를 사용합니다.]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 또다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는가.
깨달음을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움직여라. 방어신비, 환상검희.”
환상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스스로 몸집을 작게 만들었다.
타락천사와도 같았던 외형은 어느새 타락요정처럼 작아져 있었다.
“나의 적을 위협하는 어리석은 자에게 핏빛 망치를 휘두르리라.”
방어신비 환상검희가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차진혁은 조금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 동률은 이룰 수 있겠다.’
그렇게 약 14시간이 흘렀다.
차진혁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황 마르코는 체력이 약점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마냥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위세를 떨치던 환상검희도 역소환한 상태.
척 보기에도 차진혁은 지쳐보였다.
“헉…… 헉……!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 * *
애황 마르코.
그는 스트리머를 습격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김철수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도저히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플레이어로서 기본적인 능력들도 사기적인 수준.’
저 절대결계는 결코 스트리머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저 정도 능력이면 레벨 300대 이상의 탱커 혹은 결계술사들이나 다룰 수 있는 능력이라는 판단이 섰다.
‘저 능력을 추출해서 탱커들에게 판다면…… 아니, 내가 사용한다면……’
욕심이 끓어올랐다.
그 밖에도 행운의 신, 진보된 형태의 룰 브레이커, 환상검희, 흘리는 바람 등등 탐나는 능력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주인’의 자리까지.
‘모난 돌은 정을 맞는 법.’
어쩔 수 없었다.
‘순순히 내 제물이 되어라.’
……라고 생각했으나 상황은 그리 쉽지 않았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아무리 방어와 회피에만 전념한다고 해도,
‘이제 겨우 레벨 300에 진입했다고 안 했나?’
300 초반대의 탱커도 저렇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독은 뱀들의 왕인 ‘사왕’의 독니로부터 추출한 독.
그것을 물 분자보다 더 작게 가공하여 구슬 형태로 쏘아내는 형태의 공격을 구사했다.
이 공격은 무척이나 은밀하고 빨라서 엄청난 독내성을 가진 탱커가 아니라면 받아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놈도 지쳐간다!’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은 초인적인 회복능력이었다.
아무리 전력을 쏟아내서 싸우더라도 두어 시간이면 다시 최상의 컨디션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체력전으로 가면 돼.’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분명히 지쳤는데?’
한 대여섯 시간 전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분명 엄청 지쳤을 텐데?’
이쯤되면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야 하는데, 차진혁은 여전히 마르코의 공격을 잘 수비해 내고 있었다.
* * *
벌써 14시간째 전투 중.
‘내가 얼마나 더 지친 모습을 보여줘야 필살의 일격을 보여줄 거냐?’
사실 차진혁은 그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았다.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능력들이 체력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네.’
행운의 신을 제외하면 체력적으로 무리를 일으키는 능력들은 없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효율이 무척 좋았다.
‘이런 실험과 연습은 진작에 했었어야 했는데.’
그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아무튼 차진혁은 그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마르코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고무적이었다.
‘체력이 조루라더니. 거짓 정보였어.’
차진혁은 방어에 집중하면서 마르코의 풀샷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던 것이 이제는 드문드문 화면에 잡혔다.
‘조금만 더!’
마르코도 지쳐가는 듯했다.
‘얼굴 잡으면 대박이다!’
조회수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 *
전투 시작으로부터 약 18시간이 흘렀다.
마르코는 판단했다.
‘일단 후퇴했다가 다시 습격하자.’
회복속도는 이쪽이 훨씬 우월할 터.
약간의 회복시간만 주어진다면, 더 큰 전력차로 차진혁을 사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큰 공격 한 방으로 일단 거리를 벌리고.’
그리고 차진혁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큰 공격이 이어질 것을 느낀 것이다.
‘자, 와라!’
늘 그렇듯 필살기는 최대한 맞아줘야 제맛이었다.
이번에는 이걸로 치열함을 어필할 생각은 아니었고, 그 순간을 틈타 애황의 얼굴을 포착하려는 심산이었다.
‘됐다!’
[신비, ‘흘리는 바람’이 작동합니다.]
[특성, ‘절대결계’를 사용합니다.]
차진혁은 여전히 어떤 공격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독 계열의 공격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
‘됐다!’
마르코의 얼굴을 찍었다.
정면샷이었다.
알려진 대로, 개미만큼 작은 몸집의 사람이어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그의 영상은 초고해상도를 자랑했고, 크게 확대해도 픽셀이 깨지지 않았으니까.
‘산적 같은 얼굴이네.’
제목도 생각해놨다.
[작고 귀여운 몸집에 그렇지 못한 얼굴]
* * *
차진혁은 카트리나를 부축했다.
정신을 차린 카트리나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년. 저택에 각성자 사냥꾼을 불러들여?”
차진혁이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카트리나는 이미 전후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뒤지기를 바랐겠지.”
카트리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진짜 여자가 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차진혁이 물었다.
“……괜찮아?”
“오빠가 그렇게 물을 줄은 몰랐네.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
“괜찮아. 나는 그저 물려주기 아까운 재능만 타고난 징그러운 괴물이니까. 잘 알고 있었어.”
카트리나는 피식 웃었다.
차진혁은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방송으로 쓰지 말아야겠다.’
굳이 중계자의 통찰로 보지 않아도, 카트리나의 복잡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많이 비참할 것이었다.
차진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분명 다시 공격해 올 거야. 내가 수호수의 권역에 들어가기 전에 급습하겠지.”
“일단 내가 사라져줘야겠네. 내가 있으면 오빠가 전력으로 싸우기 힘들 테니까.”
카트리나가 찡긋 윙크했다.
“그래도 쫌 감동이야, 오빠. 나 생각해서 전력으로 못 싸운 거지?”
“아니?”
차진혁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마르코 얼굴 찍느라고 그런 건데.”
* * *
차진혁의 머릿속에 계획이 섰다.
‘황급히 워프포탈을 타는 척하자!’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라는 인상을 주기로 했다.
혹시 어디선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작게 중얼거렸다.
자, 빨리 나를 습격해라!
“빨리 수호수의 권역으로 가야 해.”
차진혁은 골디믐 가문의 저택을 벗어났다.
뇌룡을 소환하여 하늘을 날아 대평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급한 모습을 보이면 마르코도 똥줄이 타겠지.’
아까의 공방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르코도 상당히 진심이었다.
‘스트리머를 공격했다는 오명을 얻는 건 죽기보다 싫을 거야.’
그렇다면 방송이 공개되기 전에 어떻게든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었다.
여러모로 마르코는 마음이 급해졌을 거고, 그만큼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었다.
“그만. 너무 힘들어서 소환을 유지하기 어렵군. 아무래도 직접 걸어가야겠어.”
뇌룡이 ‘그게 무슨 말이지? 그대의 체력은 너무나 멀쩡……’ 하고 묻기 전에, 차진혁은 뇌룡을 역소환시킨 뒤 땅에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