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42화 (34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42화

차진혁이 마르엔비아 지하창고 열쇠를 사용하여 무거운 철문을 열었다.

‘오……!’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공기가 탁하고 무거워서 숨쉬기가 힘들 것 같네요.”

-저게 무슨 말?

-한국인은 이미 미세먼지에 면역이 되어 있다, 뭐 이런 거 같은데?

-미세먼지가 뭔데?

-근데 습도가 저 정도로 높으면 미세먼지 낮지 않음?

-응 이과충 꺼져.

“통로가 무척 좁습니다. 저를 통째로 삼킬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네요. 전진해 보겠습니다. 천장이 낮아서 몸을 구부려야 할 것 같습니다.”

차진혁이 몸을 구부리고 좁은 공간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은 미끄럽고 축축합니다. 신발 사이로 끈적한 물이 스며드네요.”

지하창고 안은 무척 조용해서 차진혁의 말소리와 숨소리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앍 숨소리 섹시해.

-난 이미 녹음 중.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흙 냄새가 느껴집니다만……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네요.”

좁은 통로를 지나서 보니 작은 방이 하나 나타났다.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한 낡은 공간이었다.

“거봐. 아무것도 없다니까.”

콜록 콜록.

가까이 다가온 카트리나가 기침했다.

“혹시 뭐라도 숨겨져 있을까 싶어서 샅샅이 뒤져봤어. 나뿐만 아니라 내 선조에 선조들도.”

카트리나는 은근슬쩍 차진혁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그러지 말고 이제 19금으로 콘텐츠 전환하는 게 어때?”

“…….”

19금?

그러고 보니 이 공간은 밀실이었다.

숨소리마저 커다랗게 들릴 정도로 모든 소음이 삼켜진 곳.

‘조회수 잘 나올 거 같은데?’

어차피 여기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면 19금 콘텐츠라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렇게 조회수에 미친놈으로 보여?”

“……응?”

차진혁은 본인이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19금 콘텐츠를 찍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면 19금 콘텐츠는 가상결혼 콘텐츠의 연장선 아닌가?’

왕유미가 절대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했었던 게 떠올랐다.

하마터면 코앞의 작은 조회수에 눈이 멀어 큰 조회수를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분명히 뭐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중계자의 통찰로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 한세린이 옆에 있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지금 내 방송 안 보나 보다.’

한세린이 보고 있었다면 중계자의 메시지를 통해 공략이 전달될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원래 던전도 한번에 클리어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리기 마련.

‘일단 나갔다가 다시…….’

그때, 차진혁의 머릿속에 지극히 한국인다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는 습도가 무진장 높은 곳이잖아. 숨 쉬기 힘들 만큼.’

차진혁이 이 정도를 느낀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정말로 숨을 쉬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물은 아니지만 물과 거의 비슷한 공간.

‘그럼 먼지가 이렇게 자욱한 건 이상하네?’

말하자면 비가 쏟아지는 날 미세먼지가 심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 꿉꿉한 습기를 날려볼까요?”

* * *

카트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습기는 오랫동안 골칫덩이였어. 나도 없애 보려고 노력해 봤…….”

[스킬, ‘귀여운 엘리 나타나라 얍!’을 사용합니다.]

불의 정령왕 알키나스의 딸, 엘리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엘리네스는 늘 그렇듯 차진혁의 다리 한쪽을 껴안고 볼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황당해진 카트리나는 허- 하고 웃고 말았다.

‘맞다. 김철수는 정령술사였지.’

그것도 정령왕의 딸을 부리는 정령술사.

“이 물기를 다 없애줄 수 있겠어?”

“해보께여.”

엘리는 앙증맞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으으으으! 하고 힘을 주었다.

그녀의 몸 위로 불꽃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차진혁 때문에 지구의 문물(E-컬쳐)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엘리는 이미지화를 통해 능력을 끌어냈다.

“엘리는 불꽃 드라이어댜!”

엘리는 아직 어린 정령에 불과했고 강력한 파괴력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격 자체는 ‘정령왕급’에 해당했다.

‘물기가 마르고 있어?’

공기가 점차 건조해지고 있었다.

카트리나의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리고 그녀는 벽면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המושל על עץ הזהב ירש את העולם……]

‘여기 이런 게 있었어?’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이거 아무래도 뭔가 발견한 거 같지?”

글자는 차진혁이 걸어왔던 좁은 통로로 쭉 이어져 있었다.

* * *

며칠 후.

카트리나가 차진혁의 집을 찾았다.

“김철수. 너 욜린의 정체는 알고 있는 거지?”

“MK재단의 직원이잖아. 월급 루팡이 꿈이라던데.”

문득 생각해 보니 워라밸 매니아인 키하엘과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걔네 둘 이어주는 중매 콘텐츠 같은 거 해봐도 조회수 달달할 거 같은데.’

카트리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뭐 오빠가 신경 안 쓰면 됐지. 아무튼 욜린과 협업해서 글자들을 해석해 냈어. 뭐라고 써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줘?”

“그건 텍스트로 줘.”

“그거면 돼?”

“어, 시청자들이 지루해할걸?”

“오빠는 뭐든지 방송이랑 조회수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칭찬이지?”

“……응, 칭찬으로 하자.”

카트리나는 여러 가지 설명을 이어갔다.

욜린의 도움과 르세핌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다.

“……해서, 여기서는 하르코엔 가문의 연금술이 필요한데 이건 르세핌이 돕기로 했고…… 해서…… 하니까, 결국은 우주에 단 하나뿐인 황금나무를 키워내는 앰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벽면에 새겨져 있던 그 글자들은 앰플을 생성하는 레시피였어.”

그러자 알림이 들려왔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을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의 조각 일부를 완성하였습니다.]

[퀘스트, ‘황금나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얻으리라’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니!’

버려진 여왕과 관련된 시나리오들은 대다수가 가르비누와 관련이 있었고, 필연적으로 제국 7대 가문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무려 7개의 가문 중 2개의 가문(욜린을 포함하면 사실 3개의 가문)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어쩌면 우주급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차진혁이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황금나무가 수호수일 확률이 높겠지?”

“아마도?”

“만들 수 있겠어?”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아. 다만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할 것 같네. 재료들이 범상치 않은 것들뿐이라서.”

“돈만 있으면 돼?”

“돈이랑 시간. 생각해 보니 철수 오빠한테 돈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정말 어려운 희귀재료들에 있었다.

“[푸른 인어의 비늘]은 수집광 마르세유라는 자한테 하나 있기는 한데…… 지독한 수집쟁이여서 절대 안 팔걸?”

“그럼 훔치면 되지.”

“……훔친다고? 그래도 돼?”

“도둑이 그것도 못 훔치면 도둑 아니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카트리나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이 외에도 오마리아 너구리의 털. 부리 고래의 수염. 사람 얼굴 거미의 독. 이런 것들은 진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야.”

* * *

카트리나는 또 허허- 웃고 말았다.

“다 구해왔네? 그것도 4시간 만에?”

4시간이 아니라 4달이 걸려도 빠르다고 할 판국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게 빨리 구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빠, 나 진짜 궁금해서 그래. 이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구했어?”

“훔칠 수 있는 건 훔치고 살 수 있는 건 샀지.”

“철수랜드들 덕분이기도 하고.”

철수랜드는 우주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왕유미의 표현에 따르면 우주가 김철수를 돕고 있었다.

“몽마들의 도움이 가장 컸고.”

“……아. 몽마들이 있었구나.”

전 서버 암암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몽마들만의 네트워크.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몽마들의 도움만 있어도 안되고 철수랜드의 도움만 있어도 안 되고. 그 둘 모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만 이게 가능하구나.’

그럼 김철수말고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카트리나는 호호 웃었다.

“자괴감 느낄 뻔했네.”

카트리나는 모든 재료를 받아 들었다.

“근데 이거 다 합치면 조 단위의 다이아 가치를 가지는 건 알고 있지?”

“그래?”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얼마를 써도 쓰는 것보다 채워지는 것이 빨랐으니까.

이제 그는 잔고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가 이거 들고 튄다는 걱정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네.’

카트리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래야 김철수지!

“재료 구하는 게 오래 걸려서 그렇지 제작은 금방할 것 같아. 르세핌이랑 같이 해볼게, 오빠. 조금만 기다려.”

* * *

몇 시간 뒤.

카트리나의 연구실 문이 열렸다.

화악- 뜨거운 열기와 함께 땀범벅이 된 카트리나가 작은 병을 들고 걸어나왔다.

“완성했어, 오빠.”

“오.”

곧장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니,

[פושן מושל]

이름을 알 수는 없었으나 붉은색으로 표시된 아이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의 붉은색이냐!’

현재 자신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들을 표시할 때에 보통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차진혁은 몹시 흥분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정도 고생했으면 볼뽀뽀 정도는 괜찮지 않아?”

“안 돼.”

그건 방송에 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방송에 해가 되는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차진혁의 굳건한 다짐에 카트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를 거절하는 모습도 섹시하면 어떡하자는 거지?”

대놓고 거절하는데 화가 하나도 안 났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그녀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근데 씨X, 너…….”

카트리나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그녀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너어…….”

어느새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버렸다.

차진혁은 그런 카트리나를 받아주려 했지만 그에게도 그런 여유는 없었다.

‘각성자 사냥꾼?’

차진혁은 오랜만에 긴장했다.

‘대략적으로 존재는 느껴지는데.’

보이지 않았다.

중계자의 통찰로도 위치를 정확히 잡아낼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우주랭커 급이다.’

우주랭킹 TOP 10 안에 들어갈 정도의 거물이 이곳에 숨어든 것이 분명했다.

검왕 시절에도 이쯤 되는 실력자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잠깐만. 너무 설레지 말자.’

지나치게 흥분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 카트리나가 반응하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의 은밀함과 민첩함을 지녔으면서.’

차진혁도 약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사왕급 이하의 독에는 완전 면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당한 독은 최소 사왕급이라는 뜻이었다.

‘아니. 사왕급을 뛰어넘는 독이야.’

왜냐하면 방어신비인 ‘흘리는 바람’이 저절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독을 피해냈으니 망정이지 피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사왕급 이상의 독을 사용하는 각성자 사냥꾼?’

그런 사람은 우주를 통틀어서도 몇 명 없었다.

‘근데 여기는 카트리나의 연구실이잖아.’

아르비스의 7대 가문중 하나인 골디믐 가문 저택 내의 연구실.

골디믐은 온갖 보물과 보석들이 넘쳐나는 곳이니만큼, 평소에도 철통같은 보안과 경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아무리 우주랭커급의 각성자 사냥꾼이어도 이렇게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7대 가문의 후계자 중 한 명을 급습해서 기절시키기는 어렵다.

‘결국 골디믐 가문의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겠지.’

이 정도 능력을 지녔으면서 골디믐 가문과 각별한 사이의 각성자 사냥꾼이라면 결국 한 명뿐이었다.

“애황 마르코. 재미있겠네.”

검왕 시절에도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강자의 등장.

행복해진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