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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36화 (33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6화

‘시에르라.’

바람의 무투가 시에르.

차진혁이 제법 잘 아는 랭커였다.

‘회귀 전에 한 번, 마주쳤었던 게 기억이 나네.’

당시에도 시에르는 강자였다.

한국맵의 검왕이라 불리는 차진혁보다 훨씬 더 높은 반열의 강자.

우주에서도 최상위급 랭커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지옥의 영웅이었다.

‘진짜 싸워보고 싶던 놈인데.’

당시 차진혁은 ‘한 번 싸워보자’라면서 시에르에게 결투를 신청했었고, 시에르는 단 한 마디로 거절했었다.

-“난 약한 놈이랑은 안 싸운다.”

“그래도 싸우고 싶다면 30억 다이아쯤 준비해서 오든지.”

‘무척이나 분했었지.’

그날 이후로 더 치열하게 노력하며 실력을 갈고닦았었다.

언젠가는 시에르 그놈을 넘어서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에르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고 둘의 결투는 끝내 성사되지 않았었다.

‘그래. 지옥에는 시에르가 있었지.’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도. 할 수 있고말고.”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내가 시에르와 관련된 영상들을 몇 개 구해놨거든. 일단 한 번 보고 다시 얘기하자.”

차진혁은 시에르와 관련된 영상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강해.’

깔끔하고 직선적인 공격.

재빠른 스텝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타입.

회피기술만큼만 놓고 보면 우주 제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회피의 달인이었다.

‘내가 이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영상으로만 봐서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어때? 시에르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얘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냐. 물레벨도 아니고.”

“알아. 진짜배기 랭커겠지.”

“다시 물을게. 압도할 수 있겠어?”

차진혁이 피식 웃었다.

“물론이지.”

* * *

[얘들아 시에르랑 김철수랑 일대일로 결투한다는데?]

└루머 작작좀 ㅉㅉ 스트리머랑 무투가가 왜 싸움?ㅋㅋㅋ

└아니 진짜라니까?

└시에르가 김철수랑 싸워서 뭘 얻을 수 있겠냐?ㅋㅋㅋ

└시에르가 대가리에 총 맞았냐?ㅋㅋ 그걸 왜 함.

누가 봐도 시에르에게 너무 불리한 결투였다.

이겨봤자 얻을 것은 없었다.

그는 정통 무투가였고, 상대(김철수)는 스트리머였으니까.

무투가가 스트리머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승리했다는 건 그다지 자랑거리가 아니니까.

[ㄴㄴ 한세린이 시에르랑 직접 접촉했다함.]

└한세린 올려치기 제발 그만 좀 ㅠㅠ

└ㅇㅈ 무슨 한세린이 신도 아니고. 한세린이 나선다고 해서 안 될일이 되겠냐?

└시에르 엔스타그램 보셈. 오피셜로 뜸.

[헐 진짜네? 시에르 vs 김철수 성사됐네?]

└링크 좀.

시에르와 김철수의 결투가 잡혔다.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결투가 성사되었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었으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게 매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에르가 말했다.

“내가 김철수를 이기면 뮈엔느와의 결투를 주선해 주겠다는 약속.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거다.”

“물론이지. 이미 뮈엔느 경의 허락도 받아놨어. 걱정하지 마.”

한세린이 씨익 웃었다.

뮈엔느를 설득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뮈엔느 경, 당신은 지금 장기 휴가중인 상태잖아요. 직책과 책임에서 벗어나 김철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요.’라는 몇 마디에 뮈엔느는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결투 당일이 되었다.

[근데 수호수가 있는 4지옥 왕성 대련장에서 결투하는 건 오바 아님?]

└ㅇㅇ 김철수는 수호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잖아.

└??? 다들 잊고 있나 본데 김철수는 스트리머임. 이 정도 베네핏은 줘야지.

└수호수 있다고 김철수가 시에르를 이길 수 있겠냐?ㅋㅋㅋㅋㅋㅋ

수많은 우주의 시청자들이 이번 대결에 주목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승리는 시에르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김철수가 얼마나 ‘스트리머로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

[김철수는 왜 굳이 전투계열이랑 일대일로 싸움?]

└그것이 ‘치열함’이니까.

└하긴.

└어차피 져도 손해 볼 건 없을 테고. 결투의 중재자로 뮈엔느까지 나섰으니……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

└지금 실시간 시청자 봐라.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무려 1,000만 명에 달했다.

[이제 김철수도 어엿한 우주랭커 아니냐?]

└어그로 지대로네 ㅋㅋ실시간 시청자 1,000만 명은 진짜 쉽지 않은데.

└스트리머 계열로 치면 우주랭커로 인정해도 될 듯.

└개쩐다 ㅋㅋㅋㅋ 신생서버에서 1,000만 명 스트리머라닠ㅋㅋㅋ

차진혁이 시에르 앞에 서서 시에르를 관찰했다.

언제나 그렇듯, 1인칭 시점으로 방송을 송출 중.

그는 그다지 긴장하지 않은 듯한 모양새로 말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 강렬한 붉은 눈동자.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 흉터가 가득한 상체가 보이는군요.”

현재 시에르는 상의를 벗은 상태.

덕분에 온갖 흉터들이 적나라하게 다 보였다.

“주먹과 팔목에는 붕대를 칭칭 감아 놓았습니다. 일류 무투가다운 모습이군요.”

시에르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빨리 시작하지?”

그는 차진혁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때려눕히고, 곧장 뮈엔느에게 대결을 신청할 참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는 뮈엔느와의 비공식 전투에서 패배했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에르는 지옥으로 귀화하여 수련에 매진해 왔다.

그의 눈에는 뮈엔느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그가 다시금 차진혁을 재촉했다.

“무기를 들어라.”

“그럴 필요 없다.”

“뭐?”

차진혁은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으나 시에르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냐?”

“너의 패배를 사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 * *

검왕 차진혁이라면 절대하지 않을 선택을, 스트리머 차진혁은 해냈다.

‘놈은 돈에 약하다.’

고향인 아르비스를 버리고 지옥으로 귀화한 것에는 멤피스가 상당히 큰 금전적 대가를 주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자기와 싸우고 싶으면 30억 다이아를 가져오라는 말까지 했던 놈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무기를 들어라.”

“100억?”

“헛소리 말고 무기를 들어라.”

시에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투를 하자고 해놓고 불러내서는 하는 말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200억?”

“네 쪽에서 가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가지.”

어찌 패배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저 천박한 사상을 가졌단 말인가.

“500억.”

“제가 졌습니다.”

가끔 어떤 천박함은 고귀한 법이었다.

시에르는 차진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한세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을 꿈뻑거렸다.

‘압도…… 하기는 했네.’

조금 어이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꽤 강렬했다.

시에르가 김철수에게 무릎 꿇으며 패배를 인정하는 쇼츠 영상이 우주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찍어눌렀넼ㅋㅋㅋ 스트리머 압승이닼ㅋㅋㅋㅋ

-이건 결투라고 할 수 있음?ㅋㅋ

실시간 방송을 살펴본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이 상황이 하나의 몰카나 시트콤 계열의 콘텐츠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지옥의 주민들은 조금 달랐다.

“시에르가 김철수한테 졌다던데.”

“말도 안 돼!”

“아냐. 이거 봐봐.”

“그게 뭐냐?”

“지구에서 넘어온 핸드폰이라는 건데. 이걸로 엘튜브 영상을 볼 수 있어.”

지옥의 주민들은 현대문명에 익숙하지 않았다.

“진짜네?”

“시에르가 무릎을 꿇었다고?”

그들은 시에르가 김철수에게 무릎을 꿇는 영상에 주목했다.

쇼츠 영상에는 앞뒤 과정이 짤려 있었으니까.

해당 콘텐츠는 재생산에 재생산을 거쳐 퍼져 나갔다.

일부 엘튜버들은 ‘김철수가 무력으로 시에르를 꺾었다’라는 거짓소문도 만들어냈는데, 의외로 믿는 사람이 꽤 되었다.

“김철수는 얼마나 강한 자란 말인가.”

“그렇게 강한 스트리머가 존재할 수 있다니.”

물론 풀영상을 찾아본 지옥주민들도 다수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김철수가 지옥의 최강자를 일대일에서 꺾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이미지화되어 지옥에 퍼져 나갔고, 김철수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차진혁은 일련의 과정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한 것 같고. 방송 반응도 좋고.’

물론 이딴 게 무슨 승리냐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차진혁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공무원 시절일 때 먹었던 억울한 욕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이 또한 훌륭한 스트리머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스트리머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응당 수반되는 성장통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한세린의 뿔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얘기 듣고 있어?”

“아,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그래서? 무슨 얘기 중이었더라?”

“1지옥을 내가 다스려보겠다고.”

“네가? 왜?”

“군주 연습하기 딱 좋잖아.”

한세린의 말에 의하면, 지옥주민들은 무력은 강한 편이지만 지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덕분에 손에 넣고 쥐락펴락하기에 꽤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한세린은 혹시 차진혁이 실망할까 싶어 변명했다.

“물론 난이도 높은 주민들을 데리고 군주연습하는 것이 더 치열한 방법이기는 하겠지.”

“…….”

“그렇지만 한 서버급의 군주 역할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서. 일단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본을 다져야 하니까.”

차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민망한 듯 계속 변명을 이어갔다.

“기본은 무척 중요한 거잖아. 그렇지? 하하하!”

“그렇지. 아무튼 그건 지옥좌랑 잘 얘기해 봐.”

“지옥좌랑은 이미 얘기 끝냈어. 안 그래도 좋아하던데?”

“1지옥 주민들의 반발은?”

“기본적으로 너에 대한 우호도가 굉장히 높고. 일부 네게 반발하는 세력들은 시에르를 통해서 해결 중이야.”

“어떻게?”

“폭력이 모든 것을 구원하지.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는 폭력이 부족했던 것이고. 네가 가르쳐준 가르침이잖아.”

한세린이 히죽 웃었다.

“걱정 마. 지옥서버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내린 결단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라는 한세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 *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업적 효과, ‘주인이 없는 곳의 주인’을 활성화합니다.]

[‘제1지옥 서버’에 주인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제1지옥 서버’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지옥의 모든 주민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알림이 들려왔다.

[‘제1지옥 서버’의 주인 후보가 등록되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구에서와 같은 알림이 지옥주민들에게 이어졌고, 주민들은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을 때 차진혁조차도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찬성 142%, 반대 18%]

차진혁은 제1지옥 서버의 주인의 자리를 꿰차는 데는 성공했다.

‘찬성이 142%?’

100프로가 넘는 것부터 말이 안 되거니와, 심지어 반대 18%가 존재했다.

“너무 어질어질해서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짚기도 애매하네.”

기쁘다기보다는 약간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시스템 오류인 것 같았으니까.

“아. 걱정하지 마. 이건 시에르가 몇몇 세력들과 연합하여 폭력으로 구원했기 때문이거든.”

투표권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도 투표를 하게 했다나 뭐라나.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찬성율이 142%가 나왔단다.

“이래도 되는 거냐? 관리자들이 문제 삼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알아봤어. 투표권을 주는데 나이 제한 같은 건 없더라고. 그냥 으레 성인들에게만 투표권을 준 것 같아. 내가 키하엘이랑 함께 열심히 따졌더니 인정해 주던데? 그래서 찬성율 142%도 문제가 없다 이 말이지!”

한세린이 헤헤 웃었다.

“역시 치열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니까.”

그녀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서? 뭐 좀 변한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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