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5화
차진혁의 방송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효율만 생각하면 복수 같은 건 넣어둬야 함.
-저게 진짜 멋이지.
-아, 이것이 낭만이라는 것이다.
멤피스는 이를 악물었다.
‘김철수는 정의로운 자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자.
전쟁을 막기 위한 이 한 몸을 내던진 왕을 용서할 수 있는 자.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싸우면……!’
그는 여전히 차진혁을 잘못 알았다.
차진혁은 작게 속삭였다.
“미리. 네 마음대로 날뛰어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미리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전력을 다하여 부딪치기 직전의 이 순간.
차진혁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 나는 역시 전투 체질인가 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차진혁의 생각은 범상치 않았다.
‘역시 난 방송이 체질인가 보다.’
극도의 흥미를 느낀 차진혁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방어신비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차진혁이 불러낸 것이 아니었다.
“나의 주인을 위하여 핏빛 망치를 휘두르리니-”
무구인 미리가 그러했듯, 신비인 환상검희도 보다 확실한 자아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와 환상검희는 차진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적의 발을 묶겠다.”
-“그럼 내가 후두부를 깨뜨리겠어. 아름다운 선율이 되겠지. 격조 높은 이중창을 노래해 보자.”
미리와 환상검희는 묘한 영혼의 울림을 느끼는 듯 했다.
차진혁이 피식 웃었다.
‘애들이 정말 치열하네.’
이 치열함에 질 수 없지.
“간다.”
차진혁과 멤피스의 결투가 재차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이나 싱거웠다.
* * *
-근데 환상검희는 원래 저런 건가?
차진혁의 환상검희가 다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시청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보다 적극적인 방어신비로서 그 어떤 공격 신비보다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다는 건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의 환상검희는 평소와 또 달랐다.
-지금 결박시킨 거 맞지?
-내가 보기에도 그럼.
멤피스의 양 팔목과 발목에 녹색 마력링이 생성되었다.
링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긴고아처럼 멤피스의 팔목과 발목을 옥죄었다.
방어신비인 환상신비가 수준 높은 결박술을 펼친 것이었다.
시청자들 중에는 이를 아주 쉽게 설명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방어신비잖아.
-하긴.
치열한 방어신비라면 공격도 좀 하고, 결박술까지 펼쳐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이것은 일종의 밈이었다.
-역시 치열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ㅋㅋㅋㅋㅋ 저게 방어신비라니 실화냨ㅋㅋㅋㅋㅋ
-방어신비 폼 미쳤누 ㅋㅋㅋ
-???: 이게 진짜 방어다
대중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일종의 밈으로 소화했는데,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백과사전은 이 현상에 꽤 심도있게 집중했다.
‘신비가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었다.
신비는 스킬과는 달리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김철수가 증명해 주고 있어. 신비도 진화할 수 있다!’
이미 그는 오래전부터 이런 가설을 생각해 왔었다.
다만 신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신비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컸고, 때문에 신비에 대한 연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차진혁은 오래전부터 신비의 진화를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지금 적절한 타이밍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일보된 형태의 방어신비를 말이야.’
이제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도대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가.
‘잠깐!’
실시간으로 영상을 시청하던 그는 깜짝 놀랐다.
‘차진혁의 전투 컨셉은 뒤통수를 치는 건데?’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으나 백과사전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1인칭 시점으로 전투를 전개하고 있는 김철수의 영상 속, 경악하는 멤피스의 표정이 담겼다.
‘망치를 휘둘렀다?’
관자놀이나 뒤통수가 아니었다.
‘분명…….’
저 망치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 이마 쪽이었다.
백과사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건 함께 영상을 시청하던 마시멜로도 마찬가지였다.
마시멜로의 반응은 조금 더 격렬했다.
김철수가 뒤통수가 아닌 앞통수를 노리다니.
“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공식 철수랜드 1,000호는 김철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 *
‘빈틈!’
방어신비인 환사검희가 만들어준 기회.
차진혁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미리. 미안하다.’
뒤통수가 아닌 이마를 노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렇게까지 빈틈이 대놓고 보이는데 이걸 놓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아무리 연출이 좋다지만 이 정도 기회를 버리면 조작방송이라 욕먹기 딱 좋았다.
‘네 취향대로 해주기는 어렵겠어.’
방어신비가 치열하게 노력하여 만들어준 이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기로 했다.
이마를 향해 미리를 휘둘렀다.
미리에게서는 딱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
빠각!
소리가 나야 하건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약 2초 후, 빠각! 소리가 났다.
무언가 분명히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멤피스가 한 타이밍 늦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즉사?’
설마했는데 즉사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뒤통수가 깨져 있었다.
이마를 때렸는데 뒤통수가 박살 나다니.
‘내가 또 힘을 숨겼어?’
차진혁은 황당함을 감췄다.
멤피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도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여유로웠다.
“이것은 공간을 격하여 나의 의지를 관철하는 전이의 이능.”
일단 되는대로 떠들어봤는데 꽤 멋들어진 대사가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미리로 멤피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공간을 넘나드는 극의이다.”
미리를 통해 상당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잘 먹었습니다.”
방어신비인 환상검희가 계속 진화하고 있듯, 룰 브레이커인 미리도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이었다.
* * *
4지옥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옥의 군주들이 사망했다.
그에 따라 꽤 많은 분열이 벌어졌고,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자신이 새로운 지옥의 왕이라 주장하는 세력들도 많아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정도 혼란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이며,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분명 크고 작은 분쟁은 계속해서 발생하고는 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옥의 왕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소한 결과들 뿐이라는 것.
지옥좌는 차진혁에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그대의 전략이 실로 무섭군.”
지옥에 문명을 보급하고, 이후 수호수를 통해 지옥 주민들의 삶의 질을 급속도로 끌어올려 주었다.
이와 같은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 4지옥과, 상대적으로 그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지옥들 사이에 갭이 벌어지게 되면서 지옥 주민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지옥의 문명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를 지지해 주는 기반이 되고 있지.”
지옥 주민들의 SSP 이용률은 무척 낮았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만한 문명이 없었고, 지옥 주민들 또한 SSP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철수의 압도적인 무력에 지옥 주민들은 열광했다.
지옥 주민들은 선량한 약자보다 악한 강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김철수는 심지어 ‘선량한 강자’였다.
그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에 따라 SSP 이용률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구. 그중에서도 한국맵의 생산력은 경이로운 수준이고 말이야.”
“그러게. 나도 놀라긴 했다.”
특히 미국의 A사와 한국의 S사는 때아닌 특수를 누리는 중이었다.
지옥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었다.
A사와 S사 및 그와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들이 폭등했고, 두 회사의 CEO들은 차진혁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와…… 김철수가 이걸 또 해내네?
-사실 이걸 노린 거 아니었을까? 정의의 치열좌잖아.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었다.
지구에는 수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었고,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었다.
-플랜트 사업에 이해 핸드폰 사업까지 진출시켜버리네 ㅋㅋㅋ
-이래도 김철수뽕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하는 새기들 있냐?
-근데 이러면 S가 A 가뿐히 눌러버리는 거 아니냐?
지옥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시장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구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놈들 독하다고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생산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
-한국의 공장들은 24시간 불이 안 꺼진다더라.
-그게 인권침해 아니냐?
최근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최다, 최장 근로시간의 업적을 달성해 냈다.
-인권침해가 아니라 인권탄압 수준.
-근데 평균 연봉이 50만 달러 정도래.
-50만 달러? 5만 달러가 아니고?
김철수의 등장 이래로, 한국은 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스칸노르비아 서버의 개척사업 및 지옥의 플랜트 사업 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누리고 있었으니까.
-근데 아무리 50만 달러를 줘도 난 저렇게는 못 산다.
-나도 저렇게는 못 산다. 저건 삶이 아니라 사육이지.
다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개꿀 아닌가?
-원래도 이렇게 일하고 연봉 5천이었는데?
한국은 김철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서버.
가치관도 꽤 많이 오염(?)된 상태였다.
-사실 이 정도면 치열한 것도 아니지 않나?
-목숨 걸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 뭐…….
-외쿡 애들은 치열의 기준이 너무 나태하다.
어쨌든 건국 이래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한 한국만큼이나, 지옥의 발전도 눈부셨다.
차진혁은 그걸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사람이었다.
‘이거 기분이 꽤 나쁘지 않다?’
보는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감사를 전했다.
‘저도 당신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가겠습니다’라든가, ‘치열좌가 제 롤모델이십니다’라든가.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기분 좋은 건 좋은 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일단 지옥 정벌의 최종 목표는 결국 ‘지옥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 뿐이지, 지옥은 지구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더 높은 곳.
이곳의 주인이 될 수만 있다면 ‘가장 강한 플레이어’에 더 근접해 갈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근데 아직 자신이 없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지옥에서 김철수의 지지도가 굉장히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은 없었다.
여전히 김철수에게 적대하는 세력,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는 고위 귀족들이 많았으니까.
타 서버 인물에 대한 배척이 남아있기도 했고.
‘나한테 훨씬 더 우호적인 지구에서도 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무턱대고 진행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위험도 있었다.
‘한 번에 팍 진행하는 게 좋던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한 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 주민들 모두가 찬성표를 던질만큼 강력한 한 방.
이와 관련하여 한세린에게 조언을 구했다.
“안 그래도 얘기 좀 해볼까 했는데 말이야.”
한세린은 그간 직접 지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하고 전략을 구상했다.
“지옥 애들은 뭐랄까, 나쁘게 말하면 무식한 놈들이 많고, 좋게 말하면 제법 낭만이 있는 서버야. 선량한 약자보다 강한 악당을 더 좋아하거든. 무조건 적으로 힘을 숭상하는 놈들도 많고. 쉽게 말해 강한 놈이 장땡이라는 소리야. 1지옥에서 너에 대한 지지도가 제일 높은 건 알고 있어?”
“4지옥이 아니라 1지옥?”
“어. 좀 특이한 일이지. 자기들 왕을 죽였는데 제일 좋아하더라니까? 뭐였지? 공간을 넘나드는 극의였나? 그거에 꽂힌 모양이더라고.”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방송멘트를 잘 던진 것 같아 뿌듯해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말이야. 일대일 대결 콘텐츠를 한 번 더 해보는 게 어때? 지옥제일인이라고 무력으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가 하나 있어.”
“지옥제일인?”
“아르비스에서 귀화했는데, 아르비스에서도 수준급 랭커였다나 봐. 이름은 시에르. 직업은 무투가.”
“시에르?”
그 이름을 들은 차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네가 그자를 압도할 수 있느냐야. 지옥 주민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압도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어려우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