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3화
며칠 전.
차진혁은 준에게 한 가지 제약을 걸었다.
“나는 아직 너도 완전히 못 믿어.”
“물론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만약 너희 셋이서 짜고 회동 날 내 뒤통수를 치는 거면 어떡하냐? 뒤통수의 뒤통수 느낌으로.”
“그럴 거였으면 내가 굳이 여길 찾아와서 계획을 털어놓지 않았겠지.”
“나를 방심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사실 차진혁은 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중계자의 통찰로 준의 진심을 이미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재수없는_놈들 #보아라 #이것이 #배신의_길 #1지옥 #2지옥 다 내 거]
보아하니 탐욕이 득실득실했고, 이런 자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배신을 언급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유는 오로지 방송을 위한 연출이었다.
다만, 차진혁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부족한 준은 답답해했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날 믿어줄 거지?”
나는 여기 혼자 찾아왔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1지옥과 2지옥의 배신 사실을 말해주었다.
내가 배신할 동기도 명확하다.
‘더 이상 어떤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야 날 믿어줄 거냔 말이다!’
차진혁이 말했다.
“이거 동의서거든?”
“동의서?”
[촬영 동의서]
“홈페이지 마스터가 24시간 너를 촬영하는 걸 허락한다는 동의서다.”
“홈페이지 마스터는 또 뭐냐?”
준이 자신의 구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내가 이렇게 부족하군.”
“뭐?”
“아니다. 아무튼 너를 촬영할 수 있다.”
“비밀회동날까지 날 무한정 촬영할 수 있다라…… 그렇다면 그 홈페이지 마스터라는 자는 누구지?”
그러자 문이 열리고 강은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대포처럼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접니다. 일종의 사진기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4시간 촬영이라 함은 내가 샤워하는 장면도 포함인가?”
“……가능은 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는 않군요.”
강은우는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 괜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굳이 찍고 싶지도 않고요.”
강은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가 무슨 철수 님인 줄 아나.”
“뭐?”
“네?”
“방금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준은 무척 불쾌했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이쪽에 굽히고 들어온 입장이었으니.
‘개 같은 놈. 김철수를 등에 업고 나대는 꼴이라니.’
강은우의 얼굴을 기억해놓기로 했다.
먼 훗날, 오늘의 수모를 갚아주리라 생각하면서.
* * *
차진혁이 실시간 방송을 켰다.
“5지옥의 군주 준은 내 친구였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서로의 뜻이 잘 맞음을 확인했고, 평생 우정을 나누기로 약속했습니다.”
차진혁은 검은색 옷을 입고, 어두운 배경의 화면에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 뛰어난 동료인 강은우에게 부탁하여 그의 사진들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제 친구 준은 사진에 영 소질이 없었거든요. 강은우의 실력을 빌어 그와 5지옥의 풍광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촬영 동의서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차진혁이 사진을 몇 장 공개했다.
“이것은 끔찍했던 그날 밤. 2지옥의 군주 젠바가 준을 습격한 날의 사진입니다.”
차진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많은 철수랜드들이 함께 가슴 아파했다.
“준은 이토록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 된 도리로서, 저는 젠바에게 복수를 감행했습니다. 이것은 콘텐츠가 아닌 친구로서의 복수였으니, 방송으로 공개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연했다.
차진혁은 복수 같은 걸 한 적이 없었으니까.
차진혁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던 멤피스는 어이가 없었다.
‘젠바를 죽인 건 나인데?’
황당해하던 멤피스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아니, 이건 퇴로가 없는 함정이다.’
멤피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 영상을 반박하는 순간…… 나는 오히려 젠바를 배신한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오히려 김철수에게 더 명분을 실어주는 짓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저걸 그대로 인정하면…… 나는 수상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다.’
멤피스는 ‘젠바와 준이 한 편이 되어 비겁한 계략을 세웠고, 그래서 그 둘을 처단했다’라고 주장하던 상태.
그런데 젠바가 준을 죽였으니 멤피스의 말은 거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젠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괴물 같은 새끼!’
젠바가 준을 죽이는 저 장면을 어떻게 포착했단 말인가.
아무래도 K사단을 너무 얕본 감이 없잖아 있었다.
‘안 되겠군.’
그도 그 나름대로 대응을 해야 했다.
멤피스가 성명문을 발표했다.
“내가 젠바를 응징하려 했을 때, 젠바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것이 김철수의 응징이었을 줄은 몰랐지만. 준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젠바가 준을 죽였더군. 전후 사정이 복잡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내게 일말의 책임이 있으나, 나는 우리의 회동을 좋게 마무리하기 위하여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멤피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김철수는 내게 응징을 가하겠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지만 이는 명분 없는 분노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마음이 급한 나머지 전후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부분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마음이 맞는 벗을 만났는데, 그 벗이 이토록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으니 당연히 화가 나겠지.”
최선의 패는 막혔으니 이제 차선의 패를 사용할 때였다.
‘전면전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일이 이렇게된 이상, 3지옥/4지옥/5지옥은 완전히 김철수에게 우호적인 서버로 거듭났다.
2지옥 같은 경우도 멤피스보다는 김철수에게 조금 더 우호적이었고.
그렇다 보니 1지옥 vs 2/3/4/5 지옥 구도가 되어버렸고, 이 상황에서 전면전은 필패였다.
‘김철수의 정의로움을 자극하면 활로가 뚫릴 것이다.’
멤피스는 여전히 차진혁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차진혁이 정의로움과 명예에 미쳐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것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무고한 주민들이 많이 희생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명예를 걸고 일대일 결투를 신청하는 바이다.”
차선책.
그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했다.
‘어차피 김철수는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김철수의 가치관상, 주민들의 안위를 생각하면 호기롭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한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터.
‘그리고 효율적인 측면에서도 나를 살려두는 편이 좋겠지.’
이미 대다수의 군주가 사망한 시점에서 지옥좌 혼자 지옥을 통합하여 다스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오히려 나는 김철수를 죽일 기회를 엿볼 수 있고.’
젠바를 먹어치운 이후 몸에 거대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만약 김철수를 먹어치울 수만 있다면…….’
그러면 지옥을 통합하여 다스리는 건 지옥좌가 아니라 자신이 되겠지.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을 때, 결국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 * *
마시멜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야, 사전아. 김철수랑 멤피스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흠.”
상대는 한 서버를 호령하는 지옥의 군주.
“멤피스가 젠바처럼 무력에만 몰빵한 타입은 아니긴 한데…….”
“설마 김철수가 진다고 말하는 거냐?”
“아니, 그 반대다.”
“응?”
“젠바처럼 무력에만 몰빵해야 겨우 비등한 싸움을 하겠지.”
“김철수가 그렇게 세다고?”
“아무리 물레벨이라고 해도 아르비스 도시의 경비대장을 죽였잖아. 게다가 김철수는 지금도 하루에 1레벨업씩 하고 있어. 모르긴 몰라도 지금 레벨 290에 근접했을걸?”
“그래도 김철수는 스트리머잖아.”
“그래, 스트리머지. 근데 과연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마시멜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붉게 달아오르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김철수는 방송을 제일 잘하거든?”
“싸움을 제일 잘하는 거 아니고?”
“다른 것도 잘하지만 방송을 제일 잘하는 거야. 이게 김철수를 뭘로 보…….”
약간 흥분해서 말을 하던 마시멜로는 찔끔 놀랐다.
“아니. 야. 이건 그게 아니고…….”
“연설 잘 들었다, 공식 철수랜드 1,000번.”
“…….”
마시멜로의 머리가 완전히 새빨갛게 변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백과사전이 마시멜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제 그만 네 마음을 인정해라. 가끔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해. 철수랜드 1,000번.”
“아니, 아니라니까…….”
“네가 지금 부끄러운 이유는 김철수의 찐팬이라는 걸 들켜서가 아냐. 네가 공식 철수랜드 1,000번이라는 사실이지. 너는 지금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
공식 철수랜드에는 포함되었다는 자긍심.
그런데 하필이면 마지막 1,000번이라는 수치심.
두 개의 모순된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어렵긴 하겠지만, 번호가 올라가길 빈다. 친구야.”
* * *
멤피스는 결투의 장소를 ‘제4지옥’으로 선택했다.
4지옥은 지옥좌의 고향.
김철수에게 가장 우호적인 곳이었다.
‘이것은 오히려 김철수의 마음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내가 이쯤 양보했으면, 미안해서라도 나를 죽이지는 못해.’
틈을 타서 김철수를 먹어치울 수 있다면 가장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아름답게 패배하여 지옥군주 자리를 유지해도 좋고.
죽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상황.
‘내가 치열하게 전투에 임하기만하면 된다. 놈은 정성을 다하는 자들에게 감명을 받는 타입이니까!’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젠바를 먹어치우고 그의 능력을 일부 흡수했다.
몸 속에서 괴력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힘을 느끼고 있노라면, 김철수를 일대일로 압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멤피스는 차진혁과 마주보고 섰고, 차진혁이 몇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그는 짐짓 비장한 태도로 말했다.
“전력을 다해 싸워라.”
“내 모든 힘을 끌어내어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제1지옥의 명예를 걸고서.”
-와…… 스트리머랑 서버 일짱이랑 맞짱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일짱 맞짱이라닠ㅋㅋㅋㅋㅋㅋㅋ 아재요 몇살이세요 ㅠㅠ
-김철수가 지는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스트리머들 저거 보고 따라 하지 마세요. 저건 스트리머라서 가능한 게 아니고 김철수라서 가능한 겁니다.
온갖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님들아. 저도 스트리머 하면 철수 님처럼 강해질 수 있나요?]
└김철수가 애들 다 버리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한 듯 ㅠㅠ
└스트리머는 원래 안 강해 얘들아. 정신차려.
[김철수가 이기면 밸런스 노답인 거 아님?]
└밸런스는 이미 ㅈ망.
└아르비스부터 보고 와라. 이게 게임인 줄 아나. 세상은 원래 존나 불공평해.
[나님은 격투 전문가임. 78:22로 멤피스의 승리 봄. 스트리머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듯. 그것이 바로 ‘체급’이란 것이다.]
└응 격알못.
└안 사요, 돌아가세요.
└방구석 찐따 새끼가 체급을 운운하노 ㅋㅋㅋ
이윽고, 차진혁과 멤피스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
-??????
-????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