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2화
자신의 왕성으로 돌아온 준은 의자에 널브러져 앉았다.
‘차진혁.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는 자다.’
방송으로 접했을 때와는 약간 달랐다.
뭐랄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자기가 정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미친놈을 보는 것 같았지.’
그가 파악한 김철수(정의의 치열좌)라면 이 ‘비겁하고 치졸한 행위’에 대해 화를 내야 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왜 그렇게 히죽 웃으면서 좋아하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의 계획은 다 말해줬고.’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를 써야지 얘들아.”
1지옥의 멤피스.
2지옥의 젠바.
둘이 형이니 동생이니 각별한 사이임을 과시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언제부터 지옥의 군주들이 서로 친분을 나눴다고. 쯧.’
며칠 후, 비밀 회동에서 지옥좌와 김철수는 반대로 이쪽을 칠 것이고 멤피스와 젠바를 처단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옥은 다섯인데 남은 군주는 둘이 된다.
‘지옥좌가 아무리 통치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섯 개의 지옥을 통합하여 다스리기는 어렵다.’
잘하면 1지옥과 2지옥의 일부를 자신이 먹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2지옥 군주 젠바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젠바가? 날? 혹시 젠바도 나처럼 배신을 계획하고 있는 건가? 나랑 손잡고 멤피스의 뒤통수를 치려고?’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멤피스라면 몰라도 젠바는 아냐.’
젠바는 뇌도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 틀림없는 무뢰한.
‘무력만 뛰어나지 머리를 쓰는 것은 젬병이지. 그렇다면 여길 왜 찾아온 거지? 내가 배신한 걸 눈치챘나? 아니, 그렇다면 군대를 끌고 왔겠지. 혼자 비무장으로 찾아올 리가 없어.’
지옥군주끼리는 왕래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친구보다는 적 혹은 경쟁자에 훨씬 가까웠으니까.
이것은 5지옥 입장에서 보면 꽤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감히 혼자서 찾아왔습니다. 죽일까요?”
“……아니. 들여보내라.”
준에게 중요한 건 며칠 후에 있을 ‘비밀 회동’.
셋이서 의기 투합하기로한 이상,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어야 했다.
“어쩐 일이지?”
문이 닫혔다.
근육질의 거한, 젠바가 씨익 웃었다.
“이렇게 쉽게 5지옥의 왕성까지 밀고들어올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 그렇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젠바.”
“무슨 소리긴.”
젠바가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준의 호위가 황급히 검을 휘둘렀으나 젠바는 커다란 근육으로 호위기사의 검을 그냥 받아냈다.
쇠붙이와 피부가 닿았는데 깡!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칼날은 젠바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이런 소리지.”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젠바는 준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린 뒤, 힘을 주었다.
“크윽!”
준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면서 목과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호흡을 쥐어짜 겨우 물었다.
“어, 어떻게 안 거냐?”
“뭘?”
우득!
소리와 함께 준의 목이 꺾였다.
즉사였다.
눈을 뜬 채로 죽임을 당했는데, 그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젠바는 축 늘어진 준을 대충 집어던진 뒤 손을 탁탁 털었다.
“뭘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
젠바는 준의 배신을 눈치챈 것이 아니었다.
그냥 멤피스와 함께 짜고서 준을 죽인 것이었다.
군주를 한 명이라도 더 줄여놓아야 이후에 먹을 것이 더 많아지니까.
준이 이들을 배신했듯, 이들 또한 준을 배신한 것일 뿐이었다.
“자자. 너희들의 왕은 죽었다. 투항하는 놈은 살려준다.”
* * *
젠바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은 멤피스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멀쩡히 돌아왔다고?’
5지옥의 왕성에서 5지옥의 왕을 죽이고 그대로 복귀할 수 있는 건가?
‘거기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데.’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놈과 함께 작당모의를 하고서 오히려 나를 배신한 거라면?’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홀로 습격한 젠바에게 역공을 가해 죽였다’ 정도로 발표해야 했다.
그렇게 몸을 숨긴 다음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자신의 뒤통수를 쳤을 것이다.
‘젠바는 그런 계략을 꾸밀 놈이 못 돼.’
힘만 세지 머리는 텅텅 비었으니까.
멤피스는 활짝 웃으며 젠바를 맞이했다.
“어서와라, 내 동생아.”
“형님 말씀대로 준 놈을 죽이고 왔습니다. 명색이 지옥의 군주인데 그렇게 약할 줄은 몰랐군요.”
멤피스는 뚜벅뚜벅 걸어가 젠바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젠바의 몸통이 워낙 커서 제대로 안을 수는 없었고, 겨우 다리 한 짝을 안는 것으로 포옹을 대신했다.
“장하다. 그 눈엣가시같던 놈을 죽이다니.”
“이게 다 형님의 전략 덕분 아니겠습니까? 평소였다면 5지옥에 이렇게 들어갈 수도 없었을 거고, 준 놈과 독대할 수 있지도 않았…….”
젠바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형님?”
그의 거대했던 몸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 길다란 촉수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멤피스의 고유 능력인 ‘흡수’를 통해 젠바를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방심해 줘서 고맙구나, 동생아.”
“이 개새X가!”
젠바가 황급히 주먹을 내리쳤으나 이미 멤피스는 대비 중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머리를 향해 내려치는 이 단순하고 획일적인 공격.
변칙이랄 것이 하나도 없이 그저 힘으로 밀어붙이는 무식한 공격이었기에, 경로를 이미 예측할 수 있었다.
멤피스가 착용한 목걸이와 반지들이 일시에 팍! 하고 터져버렸다.
후드득- 가루를 휘날리며 땅으로 떨어졌는데, 이 모두가 이 한 번의 방어를 위해서였다.
‘미리 예상을 하고 철저히 준비를 했는데도 이 정도였다고?’
만약 젠바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젠바의 파괴력은 예측치를 훨씬 상회했다.
‘그나마 흡수를 통해 놈의 힘을 빨아들여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자신의 머리통이 부서졌을 것이었다.
젠바의 등에 꽂힌 촉수는 탐욕스레 꿀떡꿀떡 젠바를 삼켰다.
“이 개 호로새X가……!”
쭈글쭈글해진 젠바의 몸이 축 늘어졌다.
멤피스의 등에 달린 커다란 입이 좌우로 주욱- 늘어졌다.
마치 도마뱀의 혀처럼 튀어나왔던 촉수가 입 속으로 쑥- 들었다.
“꺼억-. 잘 먹었다.”
배신에 배신에 배신.
최후의 승자는 1지옥의 군주 멤피스였다.
* * *
비밀회동 당일.
미리 약속했던 대로, 차진혁과 지옥좌. 그리고 멤피스가 한자리에 모였다.
차진혁이 혹시 몰라 말했다.
“나 지금 방송 중이다. 알고 있겠지?”
“물론.”
멤피스는 씨익 웃었고, 지옥좌가 차분히 말했다.
“다른 이들은 늦는 것 같군.”
“안타깝게도 그들은 오지 못할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 더러운 놈들을 내가 모두 죽였거든.”
“더럽다?”
“놈들이 더러운 배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말에 지옥좌는 찔끔 놀랄 뻔했다.
그 또한 5지옥 군주인 준이 몰래 찾아온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새어나간 건지 모르겠군.’
멤피스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놈들을 처단했고, 나 홀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놈들에 비해 나는 너희에게 우호적이다.”
그는 3지옥과 4지옥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물결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중이었다.
결국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3, 4지옥의 영향권 내에 놓이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차라리 그 전에 완벽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마음 먹었다.
2지옥과 5지옥의 이권도 일부 챙기고 말이다.
지옥좌는 시선을 차진혁에게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멤피스는 이 회동의 키를 차진혁이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옥좌는 허수아비. 실세는 김철수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너는 무척 좋아하겠지, 치열좌!’
사실 그는 준이 배신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크게 관심 없었다.
만약 안 했다고 하면, ‘나한테 배신을 제안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고.
정말 배신을 했다고 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배신자를 처단했다’라고 말하면 되니까.
차진혁이 실세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멤피스는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라 확신했다.
‘너는 정의의 치열좌니까.’
그가 보는 김철수는 정의롭고 명예로운 일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저토록 평화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통합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겠지.
그의 보물인 수호수까지 심어주면서 말이다.
‘자. 어떠냐, 나의 이 선물이!’
차진혁이 탁자를 쾅! 내리쳤다.
“이 배신자 새끼.”
“그렇지. 배신자 새끼들은 응당 처단해야…….”
“감히 친구들을 죽여?”
순간, 멤피스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차진혁이 멤피스를 노려보았다.
살기 등등한 것이 지금 당장에라도 멤피스를 공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준은 내 친구이기도 했다.”
“……뭐?”
“꺼져라. 지금 당장에라도 죽여 버리고 싶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김철수. 나는 정의로운 일을…….”
쾅!
차진혁이 다시금 탁자를 내리쳤고, 탁자는 먼지가 되어 비산했다.
“꺼지라고 했다.”
“……실수하는 것이다, 김철수.”
멤피스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옥좌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지옥좌. 일단 회동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저 김철수의 원인 모를 분노가 가라앉은 다음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일단 자리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멤피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계획은 완벽했었으니까.
‘왜?’
* * *
한세린이 활짝 웃었다.
차진혁의 성장이 무척 기꺼웠기 때문이었다.
“잘했어. 멤피스가 이권을 독식하려고 2지옥 군주와 5지옥 군주를 없애버렸다는 걸 알아차린 거지?”
“…….”
차진혁이 답을 하지 않자 한세린은 약간 의아해졌다.
“아니야?”
“준을 죽인 건 멤피스가 아니라 젠바였는데?”
“그러니까. 머리를 쓸 줄 모르는 젠바를 멤피스가 움직이게 만든 거잖아. 무모하게 5지옥의 왕성에 혼자 쳐들어가게 만들었고.”
한세린은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정확하게 짚어냈다.
“아, 그런 건가?”
“몰랐어?”
“몰랐지. 내가 알아야 해?”
“아니, 뭐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뛰어난 군주인 한세린은 차진혁의 속내를 읽기 어려웠다.
그럼 차진혁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단 말인가.
“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그래. 왜 멤피스를 그렇게 내친 건데?”
“그야…….”
차진혁 입장에서는 한세린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당연한 걸 물으니 좀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게 더 조회수 잘 나올 거 같아서?”
“……뭐?”
“그럼 준이 네 친구였다는 건…….”
“그래야 스토리라인이 살잖아.”
“…….”
대화를 나누던 한세린은 문득 또 이상함을 깨달았다.
“잠깐만.”
“왜?”
“준을 죽인 게 멤피스가 아니라 젠바였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아니, 애초에 준이 죽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단 말이야?”
5지옥 군주 준의 사망은 철저히 비밀리에 묻혔다.
5지옥 주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5지옥 수뇌부들의 결정이었고, 실제로 준의 사망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 안 그래도 이거 너한테 보여주고 상의 좀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차진혁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그것을 본 한세린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