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0화
넬슨이 말했다.
“스승님 가문의 비밀서고, H열 2번째 칸, 제목 [카르빙턴 협업일지], 33페이지 4번째 줄 내용입니다.”
“그건 또 언제 읽었어?”
“입가한 지 2일 차에 읽었습니다, 스승님.”
“어제 연금 생리학의 뭐시기도 입가한 지 2일 차에 읽었다며?”
“2일 차에 읽은 책이 221권입니다.”
스승인 카트리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트리나도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지만 넬슨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좋아. 무슨 내용이 있었는데?”
“내용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의도적으로 지워진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문맥이 좀 이상했거든요.”
넬슨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위대한 마왕 가르비누가 그토록 강성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가 지워진 것 같은데, 이 내용을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살펴보다 보면…….”
넬슨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구체적으로 어느 책의 어느 부분을 언급할까요?’ 묻는 듯한 눈빛에 카트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결론만 말해도 돼.”
“이곳의 여러분들이 이미 예상하고 계시듯 수호수와 큰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고, 가르비누께서 그렇게 강성한 수호수를 키워낼 수 있었던 건…….”
빛나는 보석상 골디믐.
창조의 연금술사 카르빙턴.
이 둘의 도움이 있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마침 르세핌 경께서 연구하고 계신 것이 수호수의 성장 촉진과 관련된 분야 아니었습니까?”
르세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비료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고 하셨죠?”
“어. 근데 효과가 없더라. 네 말대로 주요한 정보들이 잘려 나간 것 같은 느낌?”
“[카르빙턴 협업일지]의 사라진 내용을 앞뒤 문맥을 유추해 보자면 특별한 재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재료를 가지고 완성한 연금술의 산물이 가르비누의 수호수를 완벽하게 만들었거든요.”
카트리나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다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이건 얘가 최소 수천 권의 고서들을 모두 읽었고, 그걸 외우고 있어서 내릴 수 있는…….”
거기서 르세핌이 말을 끊었다.
“수만 권일걸? 우리 비밀서고에 있는 책들도 쟤가 다 읽었거든.”
“하르코엔 저택에 있는 비밀서고까지 오픈해 준 건가?”
“그렇지? 비밀서고를 오픈하는 것 정도는 철수랜드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
어쨌든 두 가문의 비전을 얻은 이들이 김철수에게 호의적이었고, 그 가운데 천재소년 넬슨이 왕래한 덕분에 이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차진혁이 간략하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연금술로 수호수를 위한 비료를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이 흙이 필수적인 재료인 것 같다는 얘기지?”
골디믐의 후예만 있어도 안 되고.
카르빙턴의 후예만 있어도 안 되고.
두 가문의 후예들이 힘을 합쳐야 완성할 수 있는 특별한 아티팩트가 있다는 얘기였다.
카트리나가 호호호 웃었다.
“이번에 왠지 은혜를 좀 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은근슬쩍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가 팔짱을 꼈다.
여성의 몸이 되었으나 여전히 웅장한 대흉근으로 차진혁의 팔을 압박했다.
“어때? 내 청혼선물로 하자, 오빠.”
차진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우결 콘텐츠는 방송에 방해돼.”
“아니, 오빠, 콘텐츠가 아니라…….”
카트리나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방송에 미친 자의 광기를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카트리나는 씨익 웃었다.
‘역시 섹시하다니까.’
* * *
르세핌/카트리나/넬슨/트리투리로 이루어진 연구단(?)은 기존의 연구자료들과 켈리베르크 산에서 채취한 흙을 재료로 하여 새로운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어냈다.
카트리나가 밀가루 포대처럼 생긴 포대 하나를 건넸다.
“가장 큰 기여를 한 넬슨의 이름을 따서 넬슨샌드라고 부르기로 했어.”
그 안에는 반짝거리는 모래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아티팩트라고 했다.
“이 넬슨샌드가 수호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아.”
넬슨샌드는 수호수의 성장을 촉진하는 비료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수호수들이 처음에는 빠르게 자라나는가 싶더니 이내 썩어버리는군요.”
목재현은 이를 일컬어 일종의 영양 과포화 상태 혹은 과습 상태라고 표현했다.
차진혁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목왕의 말을 빌리면, 양분이 지나치게 많아서 수호수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어린 수호수에게 실험해 볼 수 없다면, 큰 수호수에게 실험해 보면 되겠죠?”
수호수는 기함을 토했다.
-“지구에서는 날씬한 게 예쁜 것이도다. 나는 살이 찌고 싶지 않으시도다!”
‘죽지는 않는다는 거지?’
-“흥, 나는 그런 영양제 따위로 죽는 연약한 개체가 아니시도다.”
수호수의 거대한 몸통이 움찔 떨렸다.
-“혹시 내가 죽으면 어그로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시겠지도다?”
‘설마 그런 생각을 했으려고.’
-“지금 말 더듬은 것 같으시도다?”
‘아냐. 내가 뭐 방송에 미친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냐?’
차진혁은 넬슨 샌드를 수호수에게 뿌려주었다.
수호수 뿌리가 워낙 단단하고 깊게 박혀 있어서 두더지우먼과 두더지부대의 도움을 받았다.
‘두더지우먼이 나오면 시청자 숫자가 확 뛰네.’
역시 외모가 경쟁력인 세상.
두더지우먼이 밖으로 나와 이마의 땀을 닦아낼 때면 시청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두더지우먼을 자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한편, 수호수는 넬슨 샌드를 섭취(?)하는 것을 꽤 좋아했다.
-“간에 기별도 안 가시도다! 더! 더 원한다!”
성장한 수호수에게 별로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넬슨 연구팀은 넬슨 샌드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수호수 뿌리에 점차 많은 양을 뿌려주었다.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하던 어느 날, 목재현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형!”
그는 움직이는 나무 덩굴을 타고 수호수 꼭대기로 올라가 과실 하나를 땄다.
수박의 대여섯 배쯤 되는 크기의 황금 과실이 열린 것이다.
목재현의 육체로는 들지도 못할 정도의 무게와 크기였다.
“이것 보세요.”
목재현은 나무 덩굴을 사용해 황금 과실을 감싸 안은 채 차진혁에게 건넸다.
“엄청 무거우니까 조…… 심하지 않아도 되네요.”
차진혁은 그리 어렵지 않게 황금 과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과실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거대한 과일은 처음 봅니다.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합니다만…….”
중계자의 통찰로 살펴보니 생기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넬슨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한 기록에서 보면 위대한 마왕 가르비누가 거대한 알 같은 것을 삼켰다고 되어 있었거든요. 향긋한 냄새가 나고 황금빛이 나는 거대한 알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이 과실일 수도 있겠어요.”
“아, 그럼 이걸 삼켜야 하는 건가?”
목재현이 펄쩍 뛰었다.
“사람이 그걸 어떻게 삼켜요?”
저 정도면 코끼리나 하마도 한입에 삼킬 수 없었다.
사람이 저걸 삼켰다가는 식도가 모조리 찢어져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먹방]
방송 제목도 설정했다.
“오늘은 먹방입니다. 한입에 삼켜야 할 것 같은데 저로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 같네요.”
* * *
르세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의 몸을 일시적으로 고무처럼 만들어주는 포션이 있기는 하지.”
아르비스의 몇몇 산업현장에서 쓰인다고 했다.
“그렇지만 포션이 워낙 독해서 여러 번 나눠 마시고 몸에 적응시키는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시간이 없다면?”
차진혁은 즐거운 마음을 감췄다.
말하자면 지금은 타임어택 중.
르세핌의 반응은 쫄깃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르세핌이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안 돼. 진짜 위험해.”
“하지만 진짜 부탁이라면?”
“진짜 부탁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이거 복약 매뉴얼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하지만 여기가 아르비스가 아니고 지옥이라면?”
“안…… 돼. 위험해.”
“폭력으로 빼앗겠다면?”
“…….”
“그건…….”
생각해 보니 김철수 영상의 조회수 올리는데 엄청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좀 맞아줄까?
르세핌은 솔깃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당장의 조회수 측면에서는 좋을 거 같은데 장기적으로 네 이미지에 나쁠 것 같아. 나는 철수랜드니까 말이야.”
“아 맞네. 고맙다.”
“차라리 네 적이었으면 좋았을걸. 엘튜브각 제대로였을 텐데.”
옆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던 넬슨은 이들의 대화 흐름을 따라가기 벅찼다.
천재적인 그의 머리로도 이게 무슨 대화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었던 건 트릭이었습니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포션 한 병이 들려 있었고, 언제 나타났는지 천사소녀 송하영이 헤헤- 웃고 있던 것이다.
“미션 성공. 헤헤.”
차진혁은 송하영에게 받아든 포션을 벌컥벌컥 마셨다.
절대결계로 몸 전체를 보호하면서.
르세핌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고 가짜 포션을 가져왔지.”
송하영도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고 네 연구실에서 진짜 포션을 훔쳐 왔지.”
“……뭐?”
“한세린이 가르쳐주던데? 진짜 포션은 하르코엔 저택에 있을 거라고!”
“…….”
송하영이 르세핌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네 마음 이해해. 철수랜드로서 저 포션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주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만약 정말로 이 포션을 주지 않을 참이면 아예 안 만들면 되었다.
그러나 르세핌은 차진혁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만들긴 만들었다.
“충분히 그런 모순적인 마음이 생길 수 있어. 김철수의 방송을 생각하느냐, 아니면 김철수의 몸을 생각하느냐, 그 지점에서 충돌이 생길 수 있으니까. 네 마음 진짜 120프로 이해해.”
“…….”
르세핌은 송하영과 무척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차진혁은 고무화 포션을 모조리 들이켰다.
‘절대결계로 뇌만 보호하면 괜찮은 거 같은데?’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몸에 탄성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먹방 시작해 보겠습니다.”
차진혁이 입을 크게 벌려 거대한 과실을 삼켰다.
그 모습이 굉장히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했으나 1인칭 시점인지라 그 모습이 방송으로 노출되지는 않았다.
넬슨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차진혁을 쳐다봤다.
‘많이…… 징그럽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마치 끔찍한 교통사고의 현장을 마주한 것처럼, 그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옆의 두 사람(르세핌, 송하영)이었다.
“어쩜…….”
“정말 치열하지?”
어느새 두 사람은 손까지 맞잡고 있었다.
“진짜 섹시하다.”
“그러니까.”
넬슨은 귀를 의심했다.
저 징그러운 모습 어디가 섹시하다는 건지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 모습에 반했지.”
“나도.”
차진혁이 황금 과실을 완전히 삼켰다.
그것은 징그러운 모양새로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몸속에서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절대결계로 보호하고 있지 않았으면 온몸이 산산조각 날 뻔했습니다.”
넬슨은 또 황당해졌다.
‘저걸 저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고?’
바로 옆에 있었던 넬슨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정말로 위험했다.
몸 안에서 해소되고 나온 잔여 압력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몇 발자국이나 뒤로 밀릴 정도였다.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거야?’
인형으로 변해 있던 15년의 세월 동안, 세계에 너무나 큰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레 차진혁에게 다가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역시 프로.
이미 종이와 펜을 들고서 기록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로 물었다.
“어떤…… 변화가 있나요?”
차진혁은 대답 대신 한 가지 창을 공유해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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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꾼의 기록일지(귀속)]
황금 수호수의 탄생과 성장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일지.
* 2022/7/26 : 씨앗을 뿌렸다.
* 2022/7/29 : 어린 황금 수호수가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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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2/23 : ‘위대한 파종꾼’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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