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29화
차진혁은 새삼스레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듀얼 플레이지, 사실은 아니었구나! 내게는 무한대에 가까운 동료들이 있는 거구나!’
이렇게 화면 밖의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문득 새롭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솔로잉이되 솔로잉이 아니고, 듀얼플레이이되 듀얼플레이가 아니었다.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게 이런 기분인가!’
이 작은 깨달음이 그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테르서박이 협동 플레이에서 받게 된 희열과 비슷한 감정을 차진혁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건 스트리머이기에 가능한, 오로지 스트리머만의 방법!’
이것을 깨달은 이상 앞으로의 플레이가 더욱 기대되는 바였다.
반얀트리 던전 때 사람들이 문제 삼았던 ‘이걸 과연 솔로잉으로 봐도 되느냐?’에 관한 답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일반 플레이어의 솔로잉’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할 수 있어도, ‘스트리머 플레이어의 솔로잉’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또 새로 태어난 기분이군.’
차진혁은 기분이 좋아져서 은은하게 웃었다.
때마침 신성목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어 차진혁의 얼굴을 비추었는데, 강은우가 그 순간을 포착해 냈다.
강은우로서도 아주 만족스러운 사진이었다.
수많은 철수랜드를 열광시킬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한편, 언제든지 열광할 준비가 되어있는 철수랜드들은 채팅을 쏟아냈다.
[001호: 그럼 철수 님 저기 갇힌 거야?]
[002호: 1호야, 철수 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니야?]
[033호: 내 남친이 서버 랭커급 길잡이인데 저기 가달라고 부탁해 볼까?]
[107호: 그보다 내가 가는 게 빠를 듯. 나 던전 클리어 전문 길잡이야.]
[109호: 나 왠지 107호 누군지 알 거 같은데.]
상대적으로 100번대 이후의 철수랜드들은 능력자들이 많았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혹은 다소 불법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철수랜드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900명에 달하는 상위 능력자들이 김철수를 위해 지옥행을 고민하던 찰나, 철수피아 관리자(2호, 강은우)가 철수랜드들을 진정시켰다.
[2호: 얘들아 진정해. 너희들이 철수 님 애정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자중할 줄도 알아야지.]
[121호: 지금 자중하게 생겼어? 철수 님 얼굴에 생채기라도 나면 어떡해?]
[133호: 그런 끔찍한 소리하지 마.]
[204호: 얼른 취소해. 부정 타잖아.]
철수랜드들의 채팅 화력은 막강했고 강은우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흥분하기 시작한 철수랜드들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S컷이 최고였다.
[사진]
[2호: 이거 보고 진정 좀 해. 1분만 나한테 발언권을 줘.]
1,000명에 달하는 철수랜드들이 동시에 채팅을 멈추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해진 철수피아에서 강은우가 채팅을 이어갔다.
[2호: 너희들의 순수한 마음과는 별개로 철수 님의 플레이에 방해가 될 수도 있잖아. 너희들이 괜히 끼어들었다가 콘텐츠 망치면 어떡해. 우리 철수랜드, 그런 악성팬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 * *
두더지우먼은 자신 있었다.
이 던전의 주인이 테르서박에 의해 테이밍된 상태.
“말하자면 던전의 근간이 뽑혀나간 상태, 이 말이다, 두지.”
이런 경우는 던전을 빠져나갈 통로를 훨씬 쉽게 만들거나 찾을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까지가 클리어의 조건인 것 같다, 두지.”
그녀는 뛰어난 길잡이답게 길잡이다운 견해를 이어갔다.
“단순히 던전 보스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이 던전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가 중요한 곳이지. 그래서 애초에 이렇게 거대한 필드가 던전으로 설정된 것 같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마물군단과 신성목과 싸운 다음에도 체력을 남겨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테스트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두지.”
던전의 속성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올바른 길을 찾아 완전한 던전 클리어로 이끄는 것.
‘그것이 랭킹 1위 길잡이의 사명이지!’
그녀는 후후 웃으며 차진혁에게 다가갔다.
“이런 상황은 낯설겠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두지. 이 몸이 함께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두지.”
두더지우먼은 안전모를 벗고서 대신 녹색 고글을 착용했다.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고글이라서, 마치 녹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게 시간을 조금만 주면 곧장 올바른 길로 너희를 안내해 주, 응?”
두더지우먼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입을 쩍 벌렸다.
“기, 길이 생겼군, 두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망치로 패니 길이 생겼다, 두지?”
* * *
차진혁은 아까 환상검희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환상검희가 땅을 내리치자 던전이 통째로 흔들렸던 것이다.
그 공격을 통해 던전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두더지우먼이 실컷 잘난 척을 하고 있을 때에, 차진혁도 나름대로 방송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던전 보스가 테이밍된 지금, 던전의 골격이 엄청나게 약화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던전을 이루는 핵이 사라져 버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던전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이것은 일종의 설정값이니, 부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다 던전 붕괴하는데.
-유미님 제발 전해주세요. 저런 식으로 던전 무너뜨리면 다 죽어요.
-차원의 틈새에 갇혀서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리고 만다고요.
왕유미는 신속하게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달해주었으나 차진혁은 그 메시지를 못 본 척했다.
던전이 무너진다고?
‘긴박감 쩔겠는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시청자들의 염려와 걱정은 고맙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콘텐츠 진행이 안 된다.
현장에 나와 있는 자신의 감과 확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그들의 조언이 아예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박살 내면 안 되겠네.’
최대 힘으로 던전의 설정을 부수는 건 조심해야 했다.
‘미리야. 준비됐지?’
-물론이지요. 그런데 던전의 뒤통수는 어디일까요?
미리는 여지껏 먹어보지 못했던 별식을 먹어본다는 생각에 츄릅, 하고 입맛을 다셨다.
‘잊지 마. 네 근본은 뒤통수 브레이커가 아니라 룰 브레이커야.’
-아, 맞…… 아니, 물론 알고 있답니다.
미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의 본분을 완벽하게 잊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룰 브레이커로서, 던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설정을 부술 거고.’
-네에……!
미리는 약간 흥분한 듯 달뜬 숨을 내뱉었다.
‘단순히 힘으로 부수는 게 아니라 해금술의 힘과 연계할 거야.’
-……네에.
미리는 약간 아쉬운 듯했다.
아무래도 별식을 나눠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미리의 전신에 녹색 기운이 깃들었다.
해금술의 권능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보자, 미리, 해금술!’
차진혁이 허공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쾅!
허공에 균열이 생겼고,
쾅!
-뒤통수, 뒤통수를 보자!
쾅!
세 번의 망치질 끝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다.
* * *
[던전, ‘켈리베르크 산’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차진혁은 은근히 올 클리어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올 클리어 알람이 뜨지는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올 클리어 알람이 안 뜨다니. 뭔가를 놓친 게 틀림없네.’
[클리어 보상으로 ‘켈리베르크 채굴권’이 주어집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만능 삽’이 주어집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만능 포대’가 주어집니다.]
“켈리베르크 채굴권, 만능 삽, 만능 포대가 클리어 보상으로 주어졌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 269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1레벨이 올라서 269가 되었습니다.”
레벨업 소식에 테르서박이 눈을 크게 떴다.
“이봐, 김철수. 던전 보상으로 1레벨이 주어졌다고?”
아무리 레벨업이 빠른 스트리머라고 해도, 던전 클리어 하나 했다고 레벨이 오를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레벨 230대인 나조차도 레벨이 안 올랐는데?’
차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레벨업을 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역시 그렇지……?”
그럼 어떻게?
테르서박이 의문을 표하자 차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구인들이 힘을 모아줬잖아.”
“……아.”
던전 클리어와 상관없이 그냥 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범우주 연합의 시초.
아직은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팀이 지옥을 찾아왔다.
차진혁은 이 조합이 꽤 마음에 들었다.
‘카르빙턴의 지식을 가진 르세핌에.’
창조의 연금술사 카르빙턴.
그 후예가 하르코엔이었고. 르세핌이 그 하르코엔의 유산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 중이었다.
그러니까 카르빙턴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빛나는 보석상 골디믐의 후예인 카트리나.’
제국 7대 가문 중 둘의 진전을 이은 동료들이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카트리나에게는 천재소년 넬슨이 붙어 있었고, 그 둘은 차진혁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목재현에 트리투리까지.’
이 조합이라면 켈리베르크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데 충분한 전문인력들이었다.
르세핌이 말했다.
“김철수. 네가 얻은 던전 보상들 있지?”
“채굴권이랑 만능 삽이랑 만능 포대?”
“어. 그게 있어야 할 것 같아. 특별한 설정이 걸려 있어서 채굴권이 있어야만 던전 내의 흙을 외부로 반출할 수 있어.”
“그래?”
“지금 그런 설정 같은 건 부수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물론 합리적인 생각이기는 한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 설정 하나가 붕괴되면 그와 연계된 다른 설정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마련이고, 그러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모르거든.”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내가 설정을 부숴서 게이트를 열고 나온 건?”
“그건 운이 좋았지.”
“운이 나빴으면?”
“그건 나도 몰라.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있으면 그건 길잡이가 아니라 신이지 않겠어?”
“하긴.”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가능하면 그런 짓은 하지 마.”
르세핌은 두더지우먼을 힐끗 쳐다봤다.
아르비스의 최상위 랭커 르세핌은, 신생 서버 지구의 랭커 두더지우먼에게 열렬한 경쟁심을 느끼는 중이었다.
“나를 데려갔으면 그런 무모한 짓은 안 해도 됐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지, 두지?”
“네가 부족했기 때문에 김철수가 그런 짓을 한 것이다, 두더지우먼. 너는 치열하지 못했다.”
“그, 그건…….”
“잘난 척하면 떠들 시간에 나였으면 게이트를 뚫어냈을 텐데.”
두더지우먼은 한차례 당황하는가 싶더니,
“그렇지만 선택받은 건 당신이 아니라 나다, 두지. 순수 실력은 당신이 뛰어날지 몰라도 방송에 적합한 인재는 나라는 뜻이다, 두지!”
“그건 그냥 네가 예뻐서 그런 거고!”
르세핌은 의기양양해졌다.
길잡이로서 저런 말을 들으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할 테니까.
그러나 어느새 차진혁에게 물든 두더지우먼은 피식 웃었다.
“예쁜 걸 어떡하냐, 두지. 김철수에게 선택받고 싶으면 아름다움을 가꿔서 와라, 두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길잡이로서 쪽팔리지도 않나?”
“흥, 방송 나오려면 뭐라도 찍어 발라야지! 나는 그냥 길잡이가 아니라 방송 전문 길잡이다, 두지!”
“세상에 그런 전문 길잡이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네가 5위밖에 안 되는 거다, 두지!”
“지금 말 다 했냐!”
차진혁은 허허 웃었다.
신생 서버 지구의 최상위 랭커와 전통강호 아르비스의 최상위 랭커의 말다툼이라.
‘쇼츠로 만들면 조회수 대박 나겠다!’
실제로 영상은 대박이 나서 차진혁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어쨌든 르세핌은 차진혁으로부터 채굴권과 삽. 그리고 포대를 제공받아 ‘켈리베르크의 산’에서 시료들을 채취하여 그곳의 환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어쩌면 이건…….”
카트리나의 제자로 들어간 천재소년 넬슨.
그가 가장 먼저 특이한 점을 발견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