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26화 (32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26화

“다녀올게, 두지!”

잠수복을 입은 두더지우먼은 늪 속으로 다이빙했다.

물이 아니라 늪이었건만, 그녀는 마치 물에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어인 줄.

-언니 나랑 결혼해 주라 ㅠㅠ

-저기 위험하진 않겠지? 너무 존예로워서 늪괴물이 데려가면 어뜩해.

두더지우먼의 인기가 실시간으로 높아져 갔고, 차진혁은 절대결계를 사용해 자신과 테르서박을 보호했다.

구 형태의 결계가 차진혁과 테르서박을 뒤덮었다.

“놈들이 저희를 덮고 있습니다. 절대결계에 상당한 압력이 느껴지고 있어요.”

1인칭 시점으로 상황을 전달 중.

아마 시청자들에게도 상당한 압박감이 전해지고 있을 것이었다.

“테르서박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테르서박이 눈을 번쩍 떴다.

“이 녀석들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고 있다. 사람에게 우호적이야.”

“대화?”

“그래. 물론 테이밍을 한 것이 아니니까 아주 정교한 의사소통은 어렵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해도 대화하고 교감하는 건 쉬운 일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있어서 대화와 교감이 어렵다’가 훨씬 자연스러운 문장이니까.

그렇지만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 그렇군.”

“이렇게 몸으로 뒤덮는 것은 일종의 인사인 것 같군. 마치 사람들이 악수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 입장에서는 압사 혹은 질식사를 일으키기 딱 좋은 방식의 인사였지만 말이다.

“아직 테이밍을 하지도 않은 마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이게 가능한 거였군요!”

“마물과 대화조차 할 수 없다면 그건 테이머라고 볼 수 없지.”

“그게 테이머의 기본인가?”

“물론.”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반응에 우주의 수많은 테이머들이 자신감을 잃었다.

-???: 나 테이머 아니었네.

-나는 목소리 안 들리던데.

-저게 기본이라고……?

-3년째 테이머 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그만둬야 할 거 같다.

테르서박이 말을 이었다.

“김철수. 이들의 인사를 받아줄 건가? 늪의 정령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싶다고 하는데.”

순간, 테르서박은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인사를 나누고 있군.”

절대결계를 거둔 차진혁은 이미 수많은 늪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차진혁 위로 늪괴물들이 계속 덮어져서, 거인의 형상이 되어 있었다.

“이 끈적끈적한 액체가 입안으로 밀고 들어와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숨도 안 쉬어지고요.”

여전히 1인칭 시점.

시청자들은 차진혁이 느끼는 이 압박감을 간접적으로 경험 중이었다.

차진혁이 느끼는 것의 훨씬 약한 강도로 말이다.

-나 방금 화면 껐어.

-우리한테 전달되는 게 이 정도인데,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다고?

-설마 이것도 스트리머의 기본자질인가?

-???: 나 스트리머 아니었네.

다만, 차진혁 본인이 체감하기에는 그렇게 갑갑하거나 위험하지는 않았다.

조금 불편한 정도여서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입 주변에 절대결계를 작게 둘렀다.

‘겨우 이 정도로 오디오를 비울 수는 없지.’

이제 말하기가 편해졌다.

“이 끈적하고 냄새나는 반액체들이 온몸의 구멍에 파고드는 것 같군요. 레벨 230 이하의 탱커들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하고 격렬한 인사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질식사하겠군요. 혹은 압사당하거나요.”

-???: 레벨 230 이하의 탱커는 죽겠지만 스트리머는 죽지 않는다.

-230 이하 탱커보다는 내가 훨씬 강하다.

-지나가는 레벨 240탱커인데요, 저는 저기서 살아나올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 지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늪지대 속으로부터 두더지우먼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굉장한 정보를 획득했다는 듯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 몸 등장, 두지! 아니, 근데 이게 김철수인가, 두지?”

차진혁의 몸 위로 진흙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어서 마치 진흙으로 뒤덮인 인형 같아 보였다.

두더지우먼은 손으로 흘러내리는 진흙들을 마구 헤집으며 차진혁의 얼굴을 찾았다.

“여기가 얼굴인가 보다, 두지.”

차진혁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두 손을 진흙 속으로 넣었다.

손으로 우산을 만들어 흘러내리는 이 액체들을 막아주었다.

두더지우먼과 차진혁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미친 투샷이다.

-이거 장르는 생존 같은데 왜 화면은 멜로냐?

-예쁜 사람은 그림자도 예쁘다더만 진짜였네 ㅋㅋ 저 더러운 몰골도 개잘생김 ㅋㅋㅋ 이 더러운 세상 ㅋㅋ

-이건 뭐 질투도 안 난다, 행복하세요.

“김철수. 잘 들어라, 내가 아주아주 중요한 단서를 하나 찾아왔다, 두지.”

“혹시 늪의 정령?”

“……응?”

“에서 끝은 아니지?”

두더지우먼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늪의 심층부까지 헤엄친 뒤,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수정구슬을 통해 이 정보를 획득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두더지우먼 또한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정보였다.

“무, 물론 끝이 아니지, 두지. 늪의 정령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원래는 알고 있다,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것 같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긴 해도 시간만 주어지면 내가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두지!”

그리고 그때, 차진혁이 말했다.

“이들이 늪의 정령을 데리고 온다고 하는군요.”

두더지우먼과 테르서박이 비슷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너도?’

‘너도?’

둘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 * *

테르서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철수가 늪괴물들과 교감했어?’

묻고 싶었다.

정말 대화를 나눈 것이냐고.

아니면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해서 속마음을 읽어낸 것이냐고.

“테르서박의 가르침처럼,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잘 모르는 외국어로 대화하는 느낌이 맞군요. 어쨌든 늪의 정령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는 합니다. 테르서박, 내가 들은 게 맞아?”

“……맞다.”

“가르침 고맙다, 테르서박.”

테르서박은 또다시 묻고 싶어졌다.

‘내가 뭘 가르쳤지?’

굳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테이밍하지 않은 마물들과도 기본적인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테이머라고 할 수 있다’라는 기초적인 사실뿐이었다.

‘그걸 말해줬더니 진짜로 마물이랑 대화를 나눠버렸다고?’

테르서박은 아까 김철수가 보내왔던 도전적인 눈빛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김철수는 훗날 자신을 위협할 만한 테이머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차진혁의 회귀 전 테르서박은 경쟁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테이밍에 있어서 남과의 경쟁은 하등 쓸모없고 소모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절대 안 진다, 김철수.’

그는 김철수와 진지하게 경쟁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건 몰라도 테이머 계열의 1위는 자신이어야 했다.

한편, 두더지우먼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졌군, 두지.”

김철수는 지금 최소한의 힘을 사용하여 아주 효율적으로 길을 찾아내고 있었다.

모름지기 길잡이라면 최소한의 체력을 사용하여 최적의 길을 찾아내야 하는 법.

지금 김철수의 플레이는 길잡이의 플레이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방심은 하지 마라, 두지.”

예전 그의 경쟁자는 한세린이었다.

사실 요즘도 한세린에게 종종 경쟁심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더욱 강렬한 라이벌이 생겨버렸다.

“지구 최고의 길잡이는 나다! 네가 아니라, 두지!”

* * *

테르서박과 두더지우먼이 나름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늪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던 이 늪의 바닥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깊지는 않군요. 대략 20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만치 아래, 악어 형상의 무언가가 보였다.

악어의 등에는 반투명한 날개 두 쌍이 달려 있었다.

앙증맞은 날개를 펴고 열심히 날갯짓을 하자 악어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LV299/늪지대 요정/스킬/업적]

그런데 업적이 조금 신기했다.

[7,000년의 신성목 파종]

7,000년. 신성목.

차진혁이게는 무척 익숙한 키워드들이었다.

그가 직접 진행했었던 히든 퀘스트의 내용이었으니까.

[히든 퀘스트, ‘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가 지켜온 7,000년의 염원’이 생성되었습니다.]

“바쿠르드나이마?”

팔색목 개미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던 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

그때의 사건들을 통해 환상검희를 획득했고, 더 나아가 개미여왕과 사투까지 벌였었다.

악어 형상의 요정이 차진혁 앞에 둥실둥실 떠서 무언가를 말했다.

[אני פיית ביצות, נעים להכיר.]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테르서박은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테이머라면 사람조차 테이밍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고, 그 대상에는 요정도 포함이었다.

혹여 테이밍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배기 테이머의 진수를 보여주지.

그렇게 다짐하던 찰나, 차진혁이 엘리를 소환했다.

“헤헤. 요정족은 오랜만이에요.”

“요정과 대화가 가능해?”

“물론이죠!”

테르서박은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또 잃고 말았다.

* * *

엘리의 통역능력은 탁월했다.

덕분에 켈리베르크 산의 숨겨진 정보들을 대량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늪의 요정은 켈리베르크 던전의 주인과 아주아주 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이 던전의 주인은…… 바쿠르드나이마의 일부인 것 같군요.”

수천 년 전, 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는 널리 널리 씨를 퍼뜨렸고, 그중 자리를 잡은 나무 하나가 이 켈리베르크산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바쿠르드나이마가 자라기 아주 유리한 환경이었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성목에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사람도 영양 과잉이 되면 비만이 되고, 비만이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마련.

“……마는 수십 년 전부터 신성목의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신성목은 이곳을 던전화한 것 같습니다. 던전이 되면 모험가들이 찾아들기 마련이니까요.”

모험가들에게서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일단 제가 한 번 던전 마스터와 만나보겠습니다. 바쿠르드나이마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니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차진혁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수많은 늪괴물들이 따랐다.

얼핏 보면 굉장히 무서운 광경이었지만,

“저를 배웅해 주고 있습니다.”

늪괴물은 늪괴물 나름대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테르서박은 늪괴물들 중 가장 교감이 잘 되는 늪괴물 한 마리와 입을 맞추고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다.

차진혁 일행은 요정을 따라 계속 걸었다.

어느덧 늪지대를 벗어나 고산지대로 접어들었다.

산길은 꽤 험했으나 이 정도 산길을 타는 것은 체력적으로 별로 무리가 되지 않았다.

두더지우먼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로 했다.

“기온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어. 이럴 때를 대비하여 만능 온도조절 텐…….”

“엘리가 따뜻하게 불을 피웠어요, 헤헤. 잘해쪄?”

주변의 나무들이 얼어붙고 있었지만 엘리 주변만큼은 굉장히 따뜻했다.

“근데 예쁜 언니, 방금 뭐라고 해떠여?”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두지.”

던전 속에서 며칠이 흘렀다.

슬슬 테르서박이 지쳐갈 무렵, 거대한 분화구가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분화구입니다. 마치 평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것 같군요.”

차진혁은 주변 풍광을 송출했다.

거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평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 아래에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군대가 도열해 있습니다. 내려가 볼까요?”

지옥왕의 지옥군세와 비슷한 형상의 마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십만은 되어 보였다.

악어 요정의 등에 탄 채 분화구 아래로 내려서자 마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차진혁 일행을 포위했다.

“드디어 함정이군요.”

침착한 표정에 그렇지 못한 말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