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21화
대귀족 필리악은 다소 비겁한 방법을 써서 차진혁을 죽이려는 작전을 세웠다.
이미 곳곳에 라웅 밀림에서 데려온 원주민들이 숨어 있는 상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은 최고의 암살 실력을 자랑했다.
‘그들은 살상독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그들만으로 김철수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은 필리악도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사왕급 이하의 독에는 완전 면역인 체질을 갖고 있으니.’
이것은 심리전의 일종이었다.
독에 완전 면역인 상대에게 독을 사용해서 방심을 이끌어 내는 것.
일종의 셋업 과정이었다.
뮈엔느가 나서는 걸 보며 필리악은 깨달을 수 있었다.
‘방송에 제법 진심인 저놈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던 건…… 생각보다 좀 더 많은 고전을 해서겠군.’
필리악은 크게 오해했다.
‘그렇다면 지금 체력도 거의 남아나지 않은 상태. 첨탑을 박살 내버린 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르비스의 랭커라. 생각보다 일이 어렵게 되었군.”
그는 검을 빼냈다.
‘일단은 뮈엔느와의 결투에 집중하는 척한다.’
필리악은 뮈엔느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뮈엔느가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결투를 할 때에 어떻게 하는지도.
‘곧장 나를 찍어누르지는 않을 터.’
약자와 싸울 때는 늘 배려를 해주는 편이었다.
특히 최선을 다해 싸우는 약자에게는 더 관대했다.
실력이 부족해도 의지는 높이 사주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
김철수는 방송에 진심인 자이니, 분명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 한 번은 있을 터.
‘그때 김철수를 기습한다.’
물론 자신의 공격으로 김철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또한 함정이고 셋업이었다.
‘내 공격은 그저 신호일 뿐!’
어찌 됐든 김철수는 극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절대결계를 펼칠 것이 분명했다.
‘그때가 진짜 기회지.’
이를 위하여 가문의 지하감옥에 유폐시켰던, 전대 원로를 미리 준비시켜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이 없는 노인.
지금은 시중을 드는 시종 정도로 꾸며놓았다.
‘네놈의 강한 방어력이 오히려 네 족쇄가 될 것이다.’
절대결계는 정말 탐이 날 정도로 훌륭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 강력한 방어력이 독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전대 원로의 공격은 상대의 방어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빛을 발했다.
상대의 방어력을 역이용하여 데미지를 입히는 신비, [전환격(轉換擊)]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차라리 잘 된 거다. 뮈엔느가 나서면 오히려 더 방심하겠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뮈엔느와 맞서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지옥의 자유를 위하여.
그는 자신의 한 몸을 불살라 김철수를 죽이기로 했다.
‘나의 죽음이 제3지옥에 커다란 들불을 일으킬 것이다.’
* * *
검을 빼 든 필리악이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뮈엔느 경.”
“…….”
결투가 시작되었다.
뮈엔느가 필리악의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는 그 시점에서, 필리악은 이미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컥.”
어느새 거리를 좁힌 뮈엔느가 왼 주먹으로 필리악의 복부를 때린 것이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고통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는 생각했다.
‘도대체 왜?’
평소의 뮈엔느와는 너무 달랐다.
그리고 평소의 뮈엔느라면 여기서 끝냈을 것이었다.
대부분의 결투에서 승리한 뮈엔느는 늘 같은 말로 결투를 끝냈다.
-“일어나라. 결과는 이미 정해졌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일어나라. 조금 더 패야겠으니.”
“…….”
필리악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필리악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다시금 뮈엔느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크아아악!”
때린 곳을 또 때렸다.
이미 데미지가 누적되어 있던 상태.
필리악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얼굴이 누르스름하게 떴다.
뮈엔느가 저벅저벅 걸어와 필리악을 강제로 일으키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똑같은 곳을 때렸다.
“때린 데를 또 때리는 법이 어디…… 크어어어억!”
어느새 또다시 거리를 좁힌 뮈엔느가 아주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리악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뮈엔느가 왜 이러는지를 알아야 했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이래서야 김철수에게 접근은커녕 점점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마치 미쳐버린 사람처럼.
‘설마!’
뮈엔느를 세뇌시킨 것인가.
그제야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뮈엔느는 김철수에게 꽤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세뇌하기 쉬웠을 거야! 지옥여제와 동맹을 맺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겠지!’
그가 외쳤다.
“뮈엔느 경!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은 지금 세뇌된 상태입니다! 저 악랄한 지옥여제와 김철수가 당신에게 세뇌를 걸어 조종하고 있습니다! 김철수를 향한 당신의 호감을, 김철수는 비열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에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히죽 웃고 말았다.
‘오, 편집점!’
다음 편 예고로 쓰기 딱 좋은 장면이 뽑혀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 * *
뮈엔느의 몸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필리악의 배에 맞닿기 직전에 주먹을 멈춘 것이다.
필리악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래. 세뇌는, 세뇌를 인지하는 순간 쉽게 깨진다!’
특히나 뮈엔느처럼 우주랭커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더욱 쉽게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십니까?”
“정신이 좀 들었지.”
아무래도 너무 봐줬어.
저런 헛소리를 마음껏 지껄이는 걸 보면 말이야.
이제 정신 차리고 죽일 각오로 임해야겠군…… 이라는 뜻이었으나 필리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입니다.”
‘오히려 잘 됐다. 이제 뮈엔느의 분노는 김철수를 향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런 그를 향해 칼날이 떨어져 내렸다.
주먹으로만 필리악을 상대하던 뮈엔느가 이제는 진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주 무기는 창이었으나 필리악을 상대로는 검으로도 충분했다.
“도, 도대체 왜!”
필리악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네 발로 기거나 구르면서 뮈엔느의 검을 겨우 피해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이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애썼다.
‘뮈엔느의 실력이라면, 마음먹은 순간 나를 벨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건…….’
의도는 명백했다.
자신을 무섭게 위협하면서,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뮈엔느가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뮈엔느가 주문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철수. 절대 지켜.”
그녀는 여전히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서 힐끗 차진혁 쪽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분량 뽑혔으려나?’
차진혁에게 진심인 만큼, 차진혁의 방송에도 진심인 뮈엔느였다.
그녀는 차진혁의 방송을 위해 신념을 버린 지 오래였다.
‘중요한 것은 가끔 꺾이기도 하는 신념이다.’
* * *
차진혁이 말했다.
“아무래도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 같군요.”
마음만 먹는다면 필리악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차진혁은 필리악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저렇게 얻어터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다.
‘나를 향한 살기는 진짜야. 그런데 여기서 나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본인도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뮈엔느가 등장한 시점에서 이미 상황은 끝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필리악이건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꽤 훌륭해 보였다.
‘게다가 이 서버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짜고.’
물론 주민들을 잡아다가 폭행하고 고문한 것은 잘못되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서버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게다가 대귀족이니까. 저 녀석을 포섭하면 지옥좌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는데.’
“대귀족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하여, 방송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공지사항을 통해 간략하게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방송을 끈 차진혁은 필리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필리악은 필사적으로 뮈엔느의 검을 피해내고 있는 중.
“고마워, 뮈엔느. 이 정도면 분량 충분히 뽑힌 것 같아.”
우습게도, 차진혁의 말이 필리악에게는 구원의 빛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뮈엔느의 말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럼 이제 죽이면 되나?”
신성제국 헬렌의 7대 성기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아니. 잠깐 대화를 좀 하고 싶어.”
“김철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나를 세뇌한 사람으로 비방했지.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방송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건 고맙게 생각해.”
차진혁의 고맙다 한 마디에 뮈엔느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아니,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이제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
뮈엔느는 살벌한 눈으로 필리악을 노려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뮈엔느. 잠시 눈을 좀 감아봐.”
눈을? 왜지? 하고 되물을 법하건만, 뮈엔느는 그냥 눈을 감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입술을 꽉 앙다물었고 몸이 잔뜩 굳었다.
“그러고 있어.”
“……알겠다.”
“움직이지 말고.”
“……알겠다.”
“약속했다. 눈 감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무, 물론이다.”
몹시 긴장한 뮈엔느를 지나친 뒤 필리악 앞에 섰다.
“필리악. 서버를 향한 내 마음만큼은 진짜인 것을 안다. 표출이 좀 잘못 되었…….”
그때, 필리악의 눈이 돌변하는 것을 보았다.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좋았어! 이럴 줄 알았다!’
실시간 방송을 안 하고 있다 뿐이지 녹화는 하고 있다.
필리악이 차진혁을 향해 검을 뻗었다.
“죽어라!”
황급히 눈을 뜬 뮈엔느가 반응하려 했으나 차진혁과 필리악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차진혁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뮈엔느가 눈을 감고서 잔뜩 굳어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그림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차진혁은 절대 결계를 사용했고,
‘드디어 저 시종으로 꾸민 녀석이 움직인다!’
전대 원로의 움직임을 읽었다.
필리악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많은 것들을 준비했으나, 아르비스를 경험한 차진혁에게는 사실 별거 아니었다.
‘이래서 주변 환경이 중요한가보다.’
우주랭커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한 서버의 랭커 정도는 이제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아닌가.
중계자의 통찰로 상대의 레벨도 이미 파악해 놓았고, 방송하면서 열심히 관찰해서 지니고 있는 신비까지도 모조리 읽어낸 상태였다.
‘필리악이 나를 공격했고!’
솔직히 완전히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지만 방송을 위해 맞아주기로 했다.
푸욱!
그의 검이 차진혁의 배를 뚫었다.
물론 이 ‘푸욱!’은 효과음이었다.
실제로는 조금 베였다.
‘이게 신호였나 보다!’
시종으로 분장했던 전대 원로가 차진혁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신비, 전환격(轉換擊)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방어력을 역이용하는 능력.
강한 방어력으로 방어하면 그 방어력만큼이 순수 데미지로 전환되어 상대를 공격한다.
필리악의 눈이 기대에 물들었다.
도끼가 차진혁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필리악이 씨익 웃었다.
차진혁의 가공할 만한 방어력이라면, 저 신비와 맞닥뜨리는 순간 즉사겠지!
‘이제 끝이다!’
동시에 차진혁도 활짝 웃었다.
‘또 엘튜브 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