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9화
왕유미는 최근 차진혁의 행보를 상당히 아름답게 그려냈고, 그 덕택에 김철수를 향한 대중들의 호감도는 극에 달하는 중이었다.
또한 백과사전이 그와 관련된 분석글을 게재하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연금술사 협회는 여전히 김철수를 악으로 몰아가고 있으나 대중들에게 별로 와닿지는 않는 주장인듯 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김철수는 유망주를 키워내는 것에 커다란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김철수는 결코 성장을 독식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무척 즐거웠다.
김철수를 분석하는 글은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천만 단위였다.
어지간한 어그로성 제목보다 ‘김철수’ 세 글자가 더 강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방송 채널을 조건으로 내걸어, 카트리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국 넬슨을 카트리나의 제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결국 그는 잊혀질 뻔했던 비운의 천재, 넬슨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기회를 선사한 것이다. 힘을 가진 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시간으로 급증하는 조회수를 보며 백과사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시멜로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거 너무 김철수 뽕 아니야? 너 원래 무슨 뽕, 무슨 뽕, 다 싫어하잖아.”
“나는 그냥 사실만을 전하는 거다.”
“아닌데. 이거 누가 봐도 김철수 뽕인데?”
“아니. 나는 너같은 철수랜드가 아냐.”
“야, 나도 철수랜드 아니거든?”
“너 공식 1,000번 철수랜드잖아. 대단해.”
‘공식 1,000번 철수랜드’라는 말에 마시멜로는 아주 잠깐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아차 싶어 변명을 이어갔다.
“당연하…… 아니, 이게 아니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그냥 떠오르는 신예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아보려고. 새로운 시대에 어린 친구들이 뭘 좋아하는지 분석 좀 하려고…… 말하자면 시장조사를 위해서 그런 거라니까?”
백과사전은 빙그레 웃었다.
‘저번이랑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하네.’
그렇다는 건 마시멜로가 미리 스크립트를 준비해서 변명거리를 외워놓았다는 뜻이었다.
백과사전이 미끼를 던졌다.
“아, 근데 뭐였더라? 김철수가 또 대단했던 게 있었는데? 엄청 대단했던데?”
“그간 소외되어 있었던 암살자들을 잊지 않은 거? 브릭에게 은혜 갚을 기회를 줘서 마음의 빚을 덜어준 거? 하르코엔의 유산을 독식하지 않고 르세핌과 공유하며 연금술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한 거? 썩은물 연금술사 협회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연금술의 바람을 이끌어 내고 있는 거?”
“역시 공식 철수랜드 1000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신이 나서 말을 하던 마시멜로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장 조사를 위해서…….”
“어? 김철수 라방 켰는데?”
“라방?!”
마시멜로는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내 폰 어디 있냐!”
“제목이 [솔로잉]이네?”
마시멜로의 마시멜로 머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머리에서 허연 김이 솟구치고 있었다.
“솔로잉? 이건 못 참지!”
* * *
정신을 차려보니 반얀트리 호텔 앞이었다.
‘어라. 내가 왜 여기 있지?’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신계 공격에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솔로잉]
‘내가 언제 이런 제목으로 라방을 켰지?’
아무래도 강력한 정신계 공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라고 생각한 차진혁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쩔 수 없지.’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치열한 스트리머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목숨보다 무겁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본이고, 응당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이자 무게인 것이다.
‘어? 근데 아직 활성화가 안 됐잖아?’
생각해 보니 반얀트리 던전이 활성화되려면 지금으로부터 최소 5년 이상은 지나야 했다.
그저 ‘반얀트리’라는 네 글자에 꽂혀서 앞뒤 안 가리고 여기까지 달려오고 말았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뭐 하나에 꽂히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냥 그것 하나만 보이는 경우.
‘사람이니까. 아주 가끔은 이럴 수도 있지. 나는 미친놈이 아니야.’
그래도 일단 ‘솔로잉’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켰으니 뭔가 보여주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왕유미의 중계채널에 수많은 시청자가 몰려든 상황.
-오랜만에 솔로잉?
-여기가 솔로잉 맛집이라는데 맞나요?
-김철수는 초심을 잃지 않는다.
스트리머의 솔로잉.
레벨 100 이하 부근에서야 간혹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에서의 솔로잉 콘텐츠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스트리머 ‘김철수’가 유일했다.
왕유미로부터 쪽지가 도착했다.
[이 타이밍에 솔로잉이요? 너무 좋아요. 그런데 거기는 지금 수호수 권역 내인데, 어떤 거 솔로잉 하시려구요?]
사전협의 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왕유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무엇을 솔로잉하든 김철수를 반짝반짝 빛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차진혁은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제가 솔로잉할 것은…….”
솔직히 수호수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눈 뒤, ‘행운의 신’을 사용하면 여기에 그럴듯한 필드 보스몹 한 마리 나타나게 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진혁은 그런 식으로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반얀트리 던전입니다.”
-반얀트리 던전?
-그게 뭐임? 반얀트리 호텔에 던전 있음?
“물론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수호수의 주인인 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에 던전이 생성될 예정입니다.”
수호수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못 느끼는 걸 느끼셨도다?
수호수도 주변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차진혁이 거짓말하는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치열하지 못해 미안하시도다. 나도 느껴보시겠도다.
수호수는 그 말을 끝으로 반얀트리 호텔에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었다.
차진혁이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콘텐츠는 던전 생성부터 클리어까지, 솔로잉 위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휴우, 차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시청자들을 기만하지 않게 된 그는 히죽 웃었다.
시청자들 앞에서 솔로잉을 공표해 버렸으니 이건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성질의 것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군.’
그는 반얀트리 던전을 활성화시킨 장본인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제가 스트리머인 만큼, 최소한의 도움은 받아서 진행하겠습니다.”
반얀트리 던전을 활성화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두더지맨이었다.
* * *
마침 두더지맨은 반얀트리 호텔 근처에 있었다.
두더지맨과 만난 차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두더지맨?”
“노노. 이제 나를 두더지우먼으로 불러라, 두지.”
갈색 머리카락의 늘씬한 여자 한 명이 눈 앞에 서있었다.
뭘 하다 왔는지 머리에는 랜턴이 달린 하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얼굴과 옷에는 검댕이가 잔뜩 묻어 있었고, 어깨에는 흙 묻은 곡괭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와 저런 몰골로 예쁜 거 실화냐?
-근데 저게 두더지맨이라고?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두더지맨의 원래 모습을 공유했다.
-에이 이건 사기지.
-조사가 필요하다. 두더지맨 아니라는 것에 내 손목을 건다.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로 두더지맨의 각성명을 살폈다.
[두더지맨]
각성명에 밑줄이 쳐져 있는 건 또 처음이었다.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현재 개명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두더지맨은 이제 두더지맨이 아니라 두더지우먼이 되었다.
아니, 되어가는 중이었다.
“몹시 진중하게 고민했다, 두지. 두더지우먼이 나을지 두더지걸이 나을지.”
“…….”
“그래도 두더지걸보다는 두더지우먼이 더 강해 보여서 두더지우먼으로 개명 신청 완료했다.”
“각성명을 바꾸는 건 어렵다던데?”
“기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두지. 각성명을 바꾸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두지.”
“핫산에게 성스러운 기적을 수여받은 거냐?”
“그렇다, 두지.”
“그건 공식 철수랜드만 받을 수 있는 건데?”
“공식 철수랜드다, 두지.”
“……너도?”
“당연하다, 두지. 김철수의 플레이를 직접 경험하고서 철수랜드가 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두지. 아, 그리고 나 또한 철수랜드 90프로의 동의를 얻어서 기적을 수여받은 것이니 이 점에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두지!”
두더지우먼이 활짝 웃었다.
-와 존예.
-저 정도면 나도 성전환 고려할듯
-핫산은 신이시다.
두더지우먼은 차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상 방송에 대고 하는 말이었다.
“2번. 나는 2번에게 크게 실망했다. 이 기적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전환까지 했어야 했다. 너는, 덜 치열했고, 한 자릿수 철수랜드로서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어, 두지.”
차진혁은 왠지 모르게 조금 찔렸다.
그 또한 성전환을 보류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두더지우먼처럼 하는 것이 플레이어로서는 더 옳은 것이기는 했다.
‘다행히 나를 질타하지는 않네.’
그런데 약간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두더지우먼. 너 직업명이……?”
[이것은 광부인가 길잡이인가, 파다보니 길이요, 찾다보니 보물이로다.]
생전 처음 보는 직업명이었다.
* * *
두더지우먼은 자신이 왜 반얀트리 던전 근처를 헤매고 있었는지 설명했다.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두지. 이런 곳은 보물이 나오거나 보스몹이 나오거나 던전이 튀어나온다, 두지.”
“나도 비슷한 걸 느꼈어. 나는 여기에 던전이 생성될 거라고 본다.”
“생긴다면 반얀트리 던전이 되겠군, 두지!”
두더지우먼은 또다시 활짝 웃었다.
새로운 던전을 발견해 내고 활성화시키는 것은 길잡이로서 영광이었으니까.
“99는 되었는데, 마지막 1이 부족하다, 두지. 물은 50도나 99도나 어차피 안 끓는다, 두지.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두지. 던전도 마찬가지다, 두지! 트리거 한 방이 필요하다, 두지!”
두더지우먼은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이 필드의 밑에는 에너지가 충분히 응축되어 있고, 나는 좋은 광물들을 활용하여 그 에너지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두지. 그것이 곧 던전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두지. 그렇지만 까딱 잘못하면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두지.”
“폭발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지?”
“사소하게는 근방이 초토화될 수 있겠고, 심각하게는 던전이 파괴되어버릴 수도 있을 거 같다, 두지.”
차진혁은 두더지우먼과 함께 방안을 모색했다.
훨씬 미래에 있을 일을 앞으로 당겨오기 위해서 분명 고도화된 전략과 방법이 필요할 터.
함께 고민하던 두더지우먼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수호수의 주인이라 이곳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었지, 두지.”
“……그랬지.”
“그리고 수호수는 지키는 힘을 증폭시키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두지.”
둘은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수호수의 가지를 사용해서 말뚝을 만들면 어떨까, 두지? 그 말뚝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다면 에너지의 분출을 효과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지 않을까, 두지?”
“……오.”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물론 그럴듯하지 않다고 해도 시도는 해볼 작정이었다.
이미 차진혁의 마음이 너무 급했다.
1초라도 빨리 반얀트리 던전에 들어가서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럼 일단 수호수의 가지를 잘라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군.”
지구에 그런 장인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송하영에게 의뢰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고, 만약 없다면 르세핌이나 뮈엔느에게 부탁하여 아르비스 내의 장인들을 섭외하면 될 것 같았다.
‘트리투리한테 물어봐도 될 것 같고.’
그런데 두더지우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있잖아, 두지.”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때,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