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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05화 (30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5화

검왕 시절의 차진혁은 전투계열 플레이어가 아니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전투계열 플레이어도 해당 분야의 랭킹 1, 2위쯤 되어야 겨우 기억할까 말까였으니 비전투계열 플레이어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플레이어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그야말로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들이었다.

차진혁은 태국의 한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갓 핑거 핫산. 지금쯤이면 각성했을 거 같은데?’

갓 핑거 핫산.

그는 혜성처럼 등장해 태국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플레이어였다.

그가 제대로 활동한 기간은 겨우 2년여에 불과했지만, 그는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로 기록되었다.

‘성전환계의 신이라고 불렸었지.’

그는 오로지 플레이어들만을 선별하여 성전환을 진행해 주었는데, 그 기술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라 하여 갓 핑거라는 이명이 붙었다.

‘부작용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영구적인 버프 효과를 걸어주는 걸로도 유명했는데.’

차진혁은 아주 잠깐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성만 바꾸는데 영구적인 버프효과를 받을 수 있으면 나도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미인계와 같은 맥락이었다.

정말 치열한 스트리머라면 미인계든, 성전환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아직 그는 성전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 나는 부족해.’

아직 미인계조차 제대로 좋아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다음 단계까지 노린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뛸 수는 없는 법.

이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덜 치열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자꾸 이유를 만들어냈다.

‘나는 남성으로 오래 살아왔으니까 남성의 몸이 훨씬 익숙해. 아무리 뛰어난 것이어도 익숙하지 않다면 무용지물이지.’

차진혁은 자기합리화에 성공했다.

‘그래. 성전환은 아닌 것 같다!’

휴우,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갓 핑거를 떠올린 차진혁이 제안했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오히려 훨씬 뛰어난 육체로 탈바꿈시켜줄 플레이어를 알아.”

“그 정더 대눈 애드른 이미 다 알아바찌. 모두 거절당해따거여.(그 정도 되는 애들은 이미 다 알아봤지. 모두 거절당했다고요.)”

“이름이 안 알려져 있어서 너는 모를 거야.”

“그던 인간이 이따고오오? 지이인짜?”

술에 잔뜩 취한 카트리나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서 잠들어 버렸다.

* * *

다음 날.

카트리나는 펄쩍 뛰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를 이름도 없는 그런 놈에게 맡긴다고? 오빠 몸 아니라고 막 그렇게 함부로 해도 돼?”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것도 신규 서버인 지구의 플레이어에게 성전환을 맡긴다?

카트리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였다.

“나 좀 불쾌해. 오빠가 이 정도 잘생긴 거 아니었으면 얼굴에 주먹 꽂았어.”

차진혁은 카트리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충분히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핫산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건, 훗날 태국의 한 유명 여자 배우가 성전환 사실을 고백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모두가 여자인 줄 알았지.’

그 누구도 트랜스젠더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태국에는 원래 그런 애들 많지 않음?

-진짜 예뻤는데 사실 트젠이라서 개깜짝 놀랐어.

-저런 경우 진짜 많음. 솔직히 저정도로 예쁜 경우가 흔하진 않지만.

라고 말했으나 해당 배우의 과거 사진이 공개되면서 모두 기겁했다.

-저기서 이 얼굴이 나온다고?

-이건 창조다!

-핫산은 신이시다.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생김새는 그렇다 쳐도 키는 왜 커졌음?

-키가 커진다고?

남자였을 당시 162였던 키가, 여자가 되면서 168까지 컸다.

-골격 자체가 달라졌는데?

당시 수많은 의학전문가들이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핫산은 갓 핑거라 불리며 유명세를 얻게된 것이다.

훗날 밝혀지기를, 핫산은 이레귤러였다.

‘정말 특별한 이레귤러였지. 레벨조차 존재하지 않는.’

핫산에게는 레벨이 없었다.

그저 ‘77번의 성스러운 기적’을 가지고 있었을 뿐.

77번의 성전환 능력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일평생 77명만 성전환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초창기의 기적일수록 그 효과가 더 탁월하다는 것.’

1번 기적이 77번 기적보다 효과가 더 뛰어났다.

‘문제는 카트리나를 설득시킬 방법이 없네.’

논리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내 목숨을 건다고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차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목숨을 걸다니, 별로 치열해 보이지 않았다.

“내 방송채널을 걸게.”

이 정도는 되어야 좀 치열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만약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채널을 삭제하고, 나는 절대 스트리머계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다.”

“…….”

치열함이 전달됐나?

차진혁은 카트리나를 쳐다봤고, 카트리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해.”

“어떻게?”

“성전환이 제대로 안 됐어. 혹은 무슨 문제가 생겼어. 그러면 오빠가 날 책임져.”

“구체적으로 말하면?”

카트리나는 한참 동안이나 말하기를 꺼려 했다.

차진혁은 괜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송을 걸었는데, 이거보다 더한 게 있나?’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긴장한 채 카트리나의 말을 기다렸다.

결국 카트리나가 입을 열었다.

“나랑 혼인하자.”

“…….”

차진혁이 대답하지 않자 카트리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쳤다.

“왜? 그건 못하겠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더 쉬운 걸 걸어놓고 못하겠냐고 묻는 거지?’

* * *

천사소녀 송하영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나이는 대략 25세 전후. 성별은 아마도 남자. 이름 혹은 각성명은 핫산. 위치는 태국 어딘가.”

그리고 손에 든 종이를 보았다.

몽타주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조악한 그림이 들려 있었다.

눈과 코와 입이 달린 사람 형상의 그림이었는데, 그나마 특징 하나가 잡혀 있었다.

“특징이라고는 코 밑에 작은 점. 하나.”

“그래.”

“이 정도 단서를 가지고 태국에서 사람을 찾아오라는 거지? 그것도 1주일 내에? 심지어 성별이랑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데 말이야. 그런 거지?”

“그렇지?”

“지금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지?”

“이게 무슨 문제가 돼?”

티 없이 맑은 질문에 송하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뻔했다.

이런 걸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태국이 한국의 5배쯤 되는 건 알고 있는 거겠지?’

[#도대체 이 인간은_나를_뭐라고_생각하는 걸까?]

중계자의 통찰로 송하영의 속내를 읽어낸 차진혁이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천사소녀 송하영으로 생각하지.”

그 한 마디에 송하영은 문득 정신이 깨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나는 천사소녀 송하영이지.’

그 허접했던 그림으로 네덜란드의 히트호른을 찾아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것 같기도 했다.

“하긴. 나는 천사소녀 송하영이지.”

오히려 자부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네 기준에서는 내가 이걸 찾는 게 당연한 거겠지?”

“어, 맞아.”

“왜냐하면 나는 네가 무척 믿고 있는 동료, 천사소녀 송하영이니까.”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송하영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차진혁은 송하영을 믿었다.

정말 치열하게 찾는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송하영은 깨달음을 얻은 듯 중얼거렸다.

“내가 핫산을 찾지 못한다면, 그건 치열하지 못했던 거겠지.”

그리고 3일 만에 핫산을 찾아냈다.

* * *

“찾기 굉장히 쉬웠어.”

의외로 핫산은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자기한테 아주 뛰어난 성전환 능력이 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니까.

현지에서는 약간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한 명도 시술을 안 했대?”

“그런 것 같던데.”

“좋아, 그럼 가자.”

“어딜 가?”

“태국으로.”

“거길 왜?”

송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내 치열함을 완전히 믿지 않는 건가?’

“내가 데려왔지.”

“데려왔다고?”

“어, 데려오란 거 아니었어?”

찾아달라고 했지 데려오라고는 한 적은 없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근데 왜 검은 포대기가 싸여 있어?”

“치열한 도둑이라면 물건만 훔쳐선 안 되잖아?”

“설마 납치했냐?”

“그게 무슨 소리야? 도둑질했지.”

“납치랑 도둑질은 뭐가 달라?”

“납치는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제로 데려오는 거고, 도둑질은 몰래 데려오는 거고.”

“사람을 몰래 데려올 수 있어?”

“당연한 거 아냐?”

차진혁은 검은 포대기를 벗겨냈다.

차진혁이 기억하는 핫산이 맞았다.

“…….”

그는 동공이 풀린 채 쓰러져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열두 시간 정도 지나면 깨어날 거야. 부작용도 없어.”

“혹시 이 기술 이름이 [비 콰이어트]야?”

“오! 내 뒷조사는 언제 했어? 곽도형을 통해서 한 건가?”

‘비 콰이어트’는 차진혁도 잘 알고 있는 스킬이었다.

송하영에게 여러 차례 당했었으니까.

‘근데 그건 보통 [알람 결계] 등을 마비시켜 무력화시키는 용도의 스킬이었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스킬은 아니었는데?’

송하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치열한 도둑이 되려면 이 정도 마비 스킬은 가지고 있어야지.”

“하긴.”

* * *

핫산이 정신을 차렸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송하영은 철두철미한 도둑이었다.

이미 스킬을 발동한 상태.

황금색으로 빛나는 둥그런 물체들이 핫산의 팔목과 발목을 휘감았다.

그녀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긴고아를 닮은 형상이었다.

핫산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도둑질한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도둑으로서 수치지.”

그리고 미리 통역 구슬도 준비해놓았다.

송하영의 철저한 준비성 덕택에 차진혁은 비교적 쉽게 핫산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스트리머이자 엘튜버 김철수라고 합니다.”

“…….”

핫산은 눈을 크게 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랬군. 그랬어. 김철수마저도 한통속이었나?”

“…….”

“하긴. 김철수, 너도 스트리머지.”

핫산은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힘없이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네 마음대로 해라.”

그 모습은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 같기도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핫산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삶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도둑질당한 것이 그렇게 억울한 건가?”

“그래, 처음에는 수치스러웠다. 그렇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마음대로 해.”

차진혁이 가만히 있자 핫산은 약간 발악하듯 몸을 일으켰다.

“내가 스스로 벗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핫산이 상의를 훌러덩 벗어 던졌다.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핫산의 상체에 흉터가 꽤 많았다.

최근에 생긴 흉터들이었다.

‘어?’

중계자의 통찰에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왜 스트리머의 흔적이 느껴져?’

스트리머가 스킬을 사용한 흔적이 핫산의 몸에 녹아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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