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1화
르세핌은 어린 시절부터 연금술을 취미로 익혀왔다.
물론 여기서의 취미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르세핌의 기준이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금술과 관련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어쨌든 본인 기준으로는 취미, 일반적 기준으로 전문가인 그녀는 연금술에 관한 지식이 상당히 해박한 편이었다.
“마법을 일으키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맺는 손동작이 수인인 것처럼 연금술도 동일해. 연금술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연금술사들이 맺는 손동작이 수인이지. 다만 그것을 활용할 때 마법사들은 마력을 동원하고, 연금술사들은 마력뿐만 아니라 갖가지 요소들을 활용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야.”
“마법사는 마력빨, 연금술사는 템빨이라는 의미인가”
“음, 뭐 대충?”
르세핌이 설명을 이어갔고 차진혁은 간략하게 요약하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연금술의 분야 중, 수인을 근간으로 하는 연금술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그 수인은 마법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연금술사마다 모두 다르다고 했다.
마치 지문처럼.
“근간을 알고 있으면, 연금술로 만들어진 것들을 역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고 하네요.”
중요한 건 베셀리티의 수인과 하르코엔의 수인이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르세핌이 씨익 웃었다.
“이걸 익힐 수 있다면 하르코엔의 유산들을 소화하는 데 훨씬 유리하겠는데?”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감사기도를 올렸다.
엄마, 아빠, 고마워, 엄마아빠가 억지로 익히게 했던 연금술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엄마아빠의 말을 잘 들어서 손해 볼 것은 별로 없었다.
“이거 내가 진짜 찢는다?”
“그래.”
“값은 어떻게 치르면 돼?”
차진혁은 약간 고민했다.
돈으로 달라고 할까? 아니면 나를 돕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할까?
‘아니.’
차진혁은 르세핌의 눈에 깃들어 있는 간절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굳이 중계자의 통찰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저 광기.
차진혁은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을 다루는 법을 본능적으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가끔은 그저 마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
“선물이야.”
“선물? 이걸 나한테 선물로 준다고?”
“어. 명예 철수랜드가 된 기념으로.”
“……뭐?”
차진혁은 미리 준비했던 명패를 건네주었다.
* * *
명예 철수랜드 제도.
차진혁이 명예시민권을 획득한 것을 보고 왕유미가 고안한 것이었다.
“르세핌이라면 자격이 충분해요. 기존 철수랜드들 90퍼센트 이상 찬성으로 르세핌을 명예 철수랜드 1호로 받기로 했어요.”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임명장과 명패를 건네주었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당연하죠.”
“이게 의미가 있어?”
“저를 믿어 보아여!”
차진혁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왕유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진짜 열심히 할게. 나 진짜, 진짜, 진짜 열심히 할게. 진짜, 진짜로.”
르세핌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감동한 것이다.
별거 아닌 임명장과 명패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인벤토리에 넣었다.
‘우주급 시나리오 보상 스크롤보다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약간 의아할 정도였다.
“이건 무려 돈쭐, 돈벼락도 못 받은 거잖아? 내가 알기로 그냥 SVIP로 분류돼서 철수피아에만 초대된 걸로 아는데.”
“어, 아마 그럴걸?”
철수피아에서 채팅은 가능하지만 공식 철수랜드로 인정받지는 못한 이들.
“내가 그들보다 우월할 줄이야……!”
얘기가 그렇게까지 된다고?
차진혁은 아직도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함을 느꼈다.
솔직히 르세핌이 이렇게까지 감동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르세핌은 주먹을 꽉 쥐고서 선언했다.
“최선을 다할게. 명예 철수랜드 1호로서. 철수랜드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연금술을 선보일게!”
그것은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
스크롤을 찢어 베셀리티의 수인을 획득한 그녀는 곧장 활약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어쩌면 되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연금술의 근간을 이루는 수인.
그것을 해석하여 역순으로 연금술을 활용하면, 인형이 된 이들을 사람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쪽은 안 되고.”
르세핌은 되살리는 것이 가능한 이들과 가능하지 않은 이들을 분류했다.
선별작업이 끝나자 브릭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닐슨을 살려줄 수 있다는 건가, 르세핌 경!”
“어, 충분한 재료만 갖춰진다면, 아마. 대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거야. 연금술은 원래 엄청 비싸거든.”
그래서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불린다.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학문이었다.
브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또한 연금술의 악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전 재산으로 어림없을 수도 있어.”
브릭은 일류 암살자이지, 일류 자산가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차진혁이 나섰다.
“브릭. 네게 닐슨은 얼마나 소중한 친구였지?”
엘튜브 각이었다.
* * *
하르코엔의 연서들은 유서로 인정되었다.
연서뿐만 아니라 본인 입으로도 직접 인정했다.
“그대를 향한 연서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맹세해.”
결국 하르코엔의 모든 유산은 차진혁이 이어받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었다.
심지어 하르코엔 가문까지도.
[충격! 하루아침에 바뀐 하르코엔 가문의 가주]
[아르비스 7대 명가에서 제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유서 깊은 전통의 명가 하르코엔 가문이 차진혁의 것이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제 차진혁을 김철수가 아닌 하르코엔 김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르코엔 가문을 제외한 나머지 6대 가문 중 무려 4개 가문은 김철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다만 차진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차진혁에게 중요한 것은 ‘하르코엔 가문의 가주’ 직위가 아니라, 당장 뽑을 수 있는 콘텐츠였으니까.
그는 지금 르세핌을 따라다니며 촬영 중이었다.
“와…… 이 귀한 것들이 이렇게 모여 있어?”
다행히 추가적인 지출은 없을 듯했다.
하르코엔 가문의 지하창고에는 온갖 진귀한 광물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인형화’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모여 있었다.
“이것들만 팔아도 왕국 몇 개는 사겠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인형들을 사람으로 되돌리는 작업 말이야. 그걸 안 하면 넌 왕국 몇 개는 살 수 있어. 그런데도 굳이 이 작업을 하려는 이유가 뭐야?”
“그야…….”
엘튜브각이니까?
어차피 원래 내 것도 아니고, 이걸로 이런 선행(?)을 베풀면 굉장히 큰 이슈가 될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엘튜브 각이라서 그렇긴 한데…….’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브릭을 보니 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르세핌이 넬슨을 사람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끝마쳤을 때, 넬슨의 호흡이 돌아왔을 때, 브릭이 엉엉 우는 모습을 보며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넬슨! 네 친구 브릭이다, 나를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야, 브릭.”
“넬슨!!!”
‘저 뜨거운 리액션이 좋기는 한데…….’
엘튜브각이라서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건가?
‘왜 이렇게 들뜨는 거지?’
브릭이 넬슨을 껴안고 엉엉 우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차진혁은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 * *
이번 콘텐츠는 차진혁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이다.]
[귀족 출신이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귀족다웠던 하르코엔 김.]
[귀족의 명예가 무엇인지 보여준 치열좌의 위엄.]
지구의 모든 매체와 커뮤니티가 ‘김철수’를 주목했다.
-이 정도면 지구뽕 개쌉인정.
-아아, 지구뽕에 취한다.
-지구는 김철수 보유서버 ㅋ
그런데 그중에서도 더욱 짙은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지구뽕 거리고 있냐?ㅋㅋㅋ
-김철수 보유서버? ㄴㄴ, 김철수 보유국 ㅇㅇ
-한국에 김철수 있음. 너넨 뭐 있냐?ㅋ
일각에서는 비웃음거리로 소비되던 ‘국뽕 콘텐츠’가 또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국뽕에 취해도 무죄지.
-와 진짜 미쳤다 클라스 오지네 ㅋㅋ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과 귀중한 재료들을 헌납했다.
-수천억 다이아는 가뿐히 넘어간다던데.
-뭔 소리? 억 단위가 아님, 기본으로 조 단위가 그냥 넘어감.
김철수의 이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끔찍한 나날이었습니다. 하르코엔은 밤마다 제 몸 여기저기를 만졌고, 항상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나체]룸에 전시되어 방치되었죠.”
-“하르코엔은 제게 키스하는 것이 취미였어요. 인형이 된 제 입을 강제로 벌리고 혀를 억지로 밀어넣었죠.”
하르코엔의 변태적인 욕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브릭의 친구이자 수달계 수인족인 닐슨도 증언했다.
-“한동안 나를 베개로 썼어요.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베개를 본 적 있냐며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했죠. 한 달인가 지났을 때 하르코엔은 이제 내게 흥미가 떨어졌다면서 [수인]룸으로 옮겨서 전시해놨어요. 나 다음으로는 고양이계 수인족, 그다음은 사자계 수인족, 수인족 아이들이 계속해서 들어왔어요. 하르코엔에게는 나름의 법칙이 있었어요. 베개는 꼭 12세 이하의 어린 수인족으로만 썼거든요.”
닐슨이 납치되었던 해가 12세가 되던 해였다.
-“하르코엔의 눈에 1년만 늦게 띄었다면 나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수달계 수인족 닐슨이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리는 영상은 김철수의 방송을 통해 우주 각지로 송출되었다.
하르코엔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헬렌 제국은 이례적으로 하르코엔의 목을 잘라 대신전 앞에 전시했다.
시민들은 대신전의 광장으로 몰려가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그 와중에 다른 것에 집중한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연금술사 협회의 연금술사들이었다.
“하르코엔 부인의 연금술은 과연 신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 틀림없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완벽한 인형화가 되었는데 저 정도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심지어는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일반인들 기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연금술사들의 기준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르비스의 연금술사 협회장 마체라티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르코엔 가문의 연구자료들을 어떻게든 가져와야 한다. 방법이 없겠는가?”
“…….”
“머리를 좀 굴려보게! 하르코엔 가문의 그 위대한 유산이 김철수 따위에게 전해진다는 것이 말이 되나!”
“물론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하르코엔의 유서와 유언이 너무나 명확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묘수를 짜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김철수와 협력하는 편이 어떻습니까? 연금술의 발전을 위해 함께 도약하자고 꼬드기면 넘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는 명예에 미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