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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99화 (29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9화

차진혁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마치 하르코엔 부인의 미혹에 당한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하르코엔. 정말 나를 사랑해?”

“물론.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으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리니…….”

“나를 향한 연서들이 모두 진심이었어?”

하르코엔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책상 밑에 몰래 숨겨놓았던 연서들을 어떻게 들켰는가에 대해 딱히 의문을 품지 않았다.

지금의 하르코엔에게 중요한 것은 그 진실된 마음이 김철수에게 닿았다는 것이었다.

“그대를 향한 연서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맹세해.”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하르코엔의 손등 위에 손을 포갰다.

“하르코엔.”

하르코엔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르코엔.”

하르코엔은 차진혁의 부름에 재빨리 대답하지 못했다.

차진혁이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하르코엔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신세계를 경험 중이었다.

‘이게 진짜 되네?’

이름을 연거푸 부르는 것은, 철수피아에서 철수랜드들에게 영감을 얻은 방법이었다.

[221호: 001호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352호: 너무 부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러워 죽을 거 같아 ㅠㅠㅠㅠ]

[552호: 나 민지로 이름 개명하러 간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철수랜드들에게는 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

이게 정말 통하나 싶어 해봤는데 진짜로 통하는 것 아닌가.

‘근데…… 이거 진짜 어렵긴 하다.’

그는 지금 발상의 전환을 이룩한 상태.

전생에는 암살자들의 위협에만 시달리던 그였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 암살자를 고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 또한 새로운 도전이었고 영감이었지만 차진혁은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그간 당했던 것들을 오히려 양분 삼아 도전하는 것.

그것이 치열한 스트리머의 모습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 무섭다는 미인계를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게 유혹이 되나?’

늘 당하던 입장에서 직접 해보려니 영 어색한 것이 느낌이 살지 않았다.

‘너무 어설픈 거 같은데?’

그나마 하르코엔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먹히는 것 같기도 했다.

차진혁은 회심의 대사를 내뱉었다.

“하르코엔. 나를 안아주겠어?”

회귀 전, 경험이 없던 애송이 시절에는 이런 대사에 여러 차례 낚였었다.

‘암살자를 안았다가 정말 여러 번 죽을 뻔했었지.’

문득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암살자들만 있었던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순수하게 안아달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그런 경험들은 자극이 워낙 미미하여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원래 비슷한 상황이면 강렬한 자극을 남긴 것만 기억하는 게 보통 아니겠는가.

어쨌든 차진혁은 약간 의심했다.

‘안아주려나?’

보통 안아달라는 말은 ‘곧 당신을 찌르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하르코엔은 또 “아…….” 하고 달뜬 숨을 내뱉더니 차진혁을 안았다.

‘이게 되네?’

하르코엔은 차진혁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서 실성한 듯 냄새를 맡았다.

그야말로 무방비상태.

‘아니, 이제 공격해도 되나?’

이렇게까지 무방비상태로 노출이 되니 오히려 공격을 해도 되는지 헷갈렸다.

암살자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해야지.’

차진혁은 본능적으로 하르코엔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하르코엔은 온몸에 힘을 풀고 차진혁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하르코엔. 네게 선물을 줄 거야.”

“철수, 당신이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몸에서 힘을 빼고, 조금만 기다려 주겠어?”

“그대의 요청이라면 영원도 기다릴 수 있어.”

차진혁은 하르코엔의 등을 쓸어내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게 진짜 되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차진혁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검은 범의 노래.”

일곱 마리의 검은 범이 모습을 드러내 하르코엔을 집어삼켰다.

“즉살.”

즉살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하르코엔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쓰러진 와중에도 그녀의 손가락은 차진혁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았다.

그 손가락에 하르코엔의 치열함과 집념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게 진짜 되는 건가?’

혹시 몰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침 브릭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검을 갈무리하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하르코엔이 정말로 사망했다.

순간, 차진혁이 예상하지 못했던 알림이 이어졌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의 조각 일부를 완성하였습니다.]

* * *

그간 ‘?’로 가려져 있던 ‘버려진 여왕의 유산’의 단서를 우연찮게 찾기는 했지만 차진혁은 크게 기쁘지 않았다.

‘기분이 영 요상하네.’

차진혁은 브릭과 함께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차진혁과 달리 브릭은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나의 용맹함에 주눅이 들었는가, 김철수 경.”

“…….”

“나 지금 누구랑 대화하지?”

차진혁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보고 걸었다.

‘미인계를 사용한 건 틀림없이 치열한 거였는데…….’

검왕 시절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고무적이었다. 발상의 전환, 사고의 유연함.

모두 스트리머로서 아주 훌륭한 요소들이었으니까.

‘근데 내 스타일은 아니네.’

이것은 차진혁이 ‘미인계’라는 방법에 대해 가지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가까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취향과 호불호가 있기 마련.

막상 한 번 해보니, 미인계는 차진혁의 취향이 아니었다.

스스로 해보니 좀 어색하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이걸 고민하는 게 맞나?’

진짜배기 스트리머라면 이런 걸 따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미인계가 아니라 미인계 할아버지라도, 치열하게 할 수 있으면 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진 차진혁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며 저택을 파괴하고 있는 퓌렐 앞에 섰다.

“네가 요즘 뜨는 그…….”

차진혁은 광란의 마법사 퓌렐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퓌렐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홍염이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스쳐 지나가는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날 무시해?”

잠시 사그라들었던 홍염이 다시금 치솟아 올랐다.

“야, 김철수!”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차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칠게 붙잡으려 했으나 간발의 차로 차진혁을 놓쳤다.

차진혁으로부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감히 날 앞에 두고도……!”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았다.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울 것만 같은 강렬한 불꽃이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그녀는 차진혁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씨X, 존나 매력 있어……!”

* * *

마시멜로의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삐죽 솟아올랐다.

‘드디어 김철수가 내게 오는구나!’

합방 제의를 하겠지!

마시멜로는 두근거렸으나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깨를 쭉 펴고 꽤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김철수?”

“조언을 구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

내, 내게 조언?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쉴 새 없이 진동했다.

김철수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만큼 마시멜로 자신을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하긴. 내가 좀 위대한 선배이기는 하지. 그래. 무엇을 묻고 싶은 거냐?”

“나는 방금 하르코엔을 죽이고 오는 길이다.”

“…….”

마시멜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김철수가 스트리머치고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아무리 하르코엔이 다른 7대 명가의 가주들에 비해 형편없이 약하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200대 스트리머가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하르코엔이 알아서 죽여달라고 목 빼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어…… 진짜 목 빼놓고 기다렸구나.’

얘기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즉살을 이용해서 하르코엔을 죽여? 하르코엔은 그걸 순순히 받아줬고?’

이해할 수 없는 미친 결과였으나, 한편으로는 이게 이해가 돼서 짜증 났다.

김철수에게 미쳐 있는 하르코엔의 마음을 일부나마 알 것 같았으니까.

“……즉살을 사용하려면 정말 엄청난 셋업이 필요했겠군.”

말이 쉬워 즉살이지, 즉살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밑작업이 필요하다.

‘검은 범의 노래’처럼 즉살의 확률을 높여주는 스킬이 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미인계를 사용했다.”

“음.”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해되는군.

마시멜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어떤 조언을 바라는 거냐?”

“미인계를 사용한 것은 내게 있어서 발상의 전환이었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결과도 훌륭해.”

“그런데?”

“미인계를 사용하고 싶지가 않다.”

“……왜?”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마시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차진혁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로 고민을 하는게 과연 맞는 건가 싶은 거지? 진정한 스트리머라면 본인의 취향 따위는 무시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마음을 잘 알아. 나도 한때 미인계를 많이 썼었거든.”

어느새 차진혁 옆에 선 브릭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일류 암살자로서 직언하지. 그대가 미인계를 쓴다면 십중팔구 형편없을 것이다, 마시멜로 경.”

그러고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김철수 쪽을 노려보고 있는 퓌렐을 향해 말했다.

“퓌렐 경. 하르코엔은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난동은 삼가해 주면 좋겠군. 아무리 마시멜로 경의 말이 헛소리에 가까웠다고 해도 말이야.”

마시멜로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퓌렐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었다.

‘미인계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진짜 빡치게 할래?’라며 불덩이를 날리고도 남을 여자였다.

‘나는 지금 김철수한테만 집중해야 한다고!’

상황이 너무 난잡해지면 퀄리티 있는 방송이 어렵다.

그는 상황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응?’

그런데 의외로 퓌렐은 난동을 피우지 않고 있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는 복잡한 속내를 감춘 채 차진혁과 대화를 이어갔다.

“김철수.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 필수다.”

“……역시.”

“그러나 일정 수준의 반열에 들고나면,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마시멜로는 차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이미 반열에 올랐다, 김철수.”

“…….”

“네가 진심이 아니라면, 네 방송도 진짜가 아니게 된다.”

차진혁은 마시멜로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진심일 수 있어야, 방송도 진짜가 된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그렇군.”

차진혁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시멜로와의 대화가 그의 시야를 틔워주었다.

“고맙다, 마시멜로. 그 조언을 가슴에 새기도록 하지.”

“훗. 내 조언을 완벽히 이해한 모양이군.”

차진혁이 무언가에 홀린듯 중얼거렸다.

“미인계도 진심으로 좋아해 보겠다.”

마시멜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화의 결론이 저렇게 흘러가?’

우리가 ‘대화’를 나눈 것이 맞기는 한 건가?

그리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노력으로 좋아하는 게 가능한 건가?

쟤는 지금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건가?

마시멜로의 복잡해진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진혁이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봐도 될까?”

“……뭘?”

차진혁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광란의 마법사를 유혹해 봐야겠다.”

“……야.”

그게 되겠냐! 이 미친 녀석아!

저 미치광이 여자가 이미 네 말을 다 들었다!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김철수를 자제시켜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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