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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98화 (29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8화

브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그대의 기사도는 심히 왜곡되어 있는 것 같군.”

그가 보기에도 차진혁은 영 이상했던 것이다.

차진혁은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도대체 기사도가 뭐지?”

“무릇 기사도란 명예로운 기사들이 응당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뜻하지.”

“이를테면?”

브릭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김철수 경!”

“그게 아니라 방송에 내보내려고 그래.”

“……기사도란 기사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며.”

“그러니까 잘 모른다는 거지?”

“실례다, 김철수 경! 기사도를 본인보다 더 잘 이해하는 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장황하게 하는데 잘 모른다는 의미 같았다.

“나의 기사도를 증명하지. 새벽 3시 30분. 놈들의 경비가 대대적으로 교대하는 시간이다. 그때를 노려서 침투할 것이다.”

침투 방법과 기사도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지만 일단 들어 보았다.

훌륭한 엘튜버라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들을 엮어서 그럴듯하게 연출할 수 있어야 하니까.

혹시 플레이 도중에 잊을까 싶어 체크도 해놓았다.

[*기사도가 무엇인지 증명하는 장면 삽입!]

브릭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서 물었다.

“정말 같이 갈 건가?”

“같이 가면 방해되나?”

“아니, 뭐, 네가 걸려주면 나는 좋지. 네 쪽으로 시선이 분산될 테니. 대신 넌 죽는다.”

“좋군.”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방금 좋다고…….”

차진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죽음의 위협을 즐기는 또라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고, 적어도 나는 아니다.”

“…….”

결국 새벽 3시 즈음이 되었다.

어둠이 내리깔리고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는 깊은 새벽.

차진혁은 약간 설레는 중이었다.

일류 암살자의 방식은 일류 길잡이와 어떤 식으로 다를까.

생쥐계 수인족은 일반적인 사람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삼엄한 경비를 뚫어낼까.

‘오.’

생쥐계 수인족.

일류 암살자 브릭의 방법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이런 방법이?’

브릭은 의외로 그다지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브릭이 피 묻은 검을 털어내며 검집에 넣은 채 유유히 걸었다.

그가 명언을 남겼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지.”

정문 부근의 경비가 모두 죽어서 소란이 일지 않았다.

브릭이 자랑스레 말했다.

“이것이 나의, 기사도다.”

* * *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다, 라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기는 했지만 이게 기사도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튜브각은 잡혔다.

이 내용을 가지고 재미있게 뽑아내는 건 편집자인 강철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어?’

“브릭, 단순히 네가 강해서 잠입에 성공 중인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지?”

브릭은 또 기분이 나빠졌다.

“내 기사도를 모욕할 셈인가?”

“아니. 봐봐. 우리보다 먼저 여길 들어온 자들이 있다. 경비들이 정신 계열 마법에 당했고, 애초에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뭐, 뭐라?”

“그러니까 네 멋들어진 기사도가 위대했던 게 아니라, 너보다 먼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브릭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시체에 다가가 킁킁- 하고 냄새를 맡았다.

“마법의…… 냄새가 난다. 김철수 경. 그대의 말이 맞군.”

브릭은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류 암살자인 내가 읽어내지 못한 흔적들을, 스트리머인 그대가 어떻게 읽어낸 거지?”

물론 알고 보면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던 상황에서 이걸 읽어내는 건 일류 길잡이들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스트리머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서 침착하게 물었다.

“그대의 기사도를 가르쳐다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세상이 많이 변했는가. 내가 모르는 진보된 방법이 이 스트리머에게도 전해진 것인가.”

차진혁은 깨달았다.

브릭이 말하는 기사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본인이 생각하기에 멋진 거면 다 기사도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차진혁에게도 기사도가 존재했다.

바로 흑염룡이라 부르는 그것이었다.

브릭은 경건한 마음으로 차진혁의 흑염룡을 기다렸다.

“파악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좋다, 그대의 기사도를 읊어보아라.”

차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마시멜로 방송의 미리보기 알림이 떠 있었다.

[광란의 마법사 퓌렐, 하르코엔 저택 침입 성공]

마시멜로의 실시간 방송으로 확인했다.

브릭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대의 기사도는 최첨단이었구나.’

* * *

어쩐지 경비가 너무 허술하다 싶더라니.

차진혁은 마음 놓고 핸드폰 액정을 살펴보았다.

액정 속 퓌렐이 말했다.

-“내 개인적인 은원이다.”

차진혁은 약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붉은 불꽃에 휩싸인 채 걷고 있는 퓌렐의 모습은 화염 그 자체였다.

과연 광란의 마도사라 불릴 법했다.

‘저렇게 계속 마력을 방출하면 손해일 텐데.’

보통 화려하면 실속이 없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진혁은 퓌렐의 모습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마시멜로와의 협업이겠구나.’

아마 마시멜로가 멋진 장면을 연출해 달라고 요청했겠지.

그리고 퓌렐이 약간의 마력을 뿜어내면, 마시멜로가 더욱 극적으로 편집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불꽃이 조금 더 홍염에 가깝도록.

더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끼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진전을 이을 아이였다.”

마시멜로는 자료화면을 띄웠다.

김철수가 인형들이 모여 있는 방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출처는 김철수의 방송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혔고, 그것은 또 차진혁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가 마시멜로 방송의 자료화면으로 쓰일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뜻이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전쟁이다.”

차진혁은 퓌렐에게서 약간의 어색함을 발견했다.

‘아, 저건 각본인가 보다.’

퓌렐의 평소 성격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광란의 마법사’라 불리는 걸로 봐서 저렇게 침착하지는 않겠지.

최첨단의 기사도를 조금 더 경험하겠다며 차진혁의 어깨 위에 앉은 브릭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여자는 침착한 척하는 광인이 틀림없다.”

“침착한 척하는 광인?”

“그렇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미 맛이 갔군.”

방송을 좀 더 살펴보니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퓌렐은 깔깔대며 하르코엔의 저택 여기저기를 파괴하고 불태웠다.

확실히 광인의 광소 같았다.

그걸 보며 차진혁은 또 감탄했다.

‘처음에는 담담하고 침착한 척 연출.’

아끼는 제자를 잃은 스승의 감정을 표현하다가, 이내 분노에 휩쓸려 광소를 터뜨리는 그 연출이 제법 세련된 것 같았다.

실제로 채팅창 반응도 좋았고.

-오죽하면 한 몸이나 다름없는 다른 7대 명가를 치냐…….

-내가 다 안쓰럽다 ㅠㅠ

-하르코엔은 벌 받아야지.

-저런 걸 지구에서는 읍참마속이라 한다지.

7대 명가는 한 몸이다.

……라는 것은 사람들의 오해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여론은 퓌렐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역시 콘텐츠에는 서사가 있어야지.’

그리고 차진혁은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방송이 완전한 실시간은 아니라는 것.

‘주상남자와 같은 방식이구나!’

주상남자처럼, 실시간으로 영상을 편집해서 송출하고 있었다.

역시 우주 최강의 스트리머다웠다.

‘강철도 열심히 수련하고는 있는데…….’

아직 실전에 써먹을 정도는 아니라나 뭐라나.

어쨌든 이를 통해 마시멜로와 자신의 격차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녹방인데 쟤는 라방이네.’

어마어마한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 정도 사이즈의 콘텐츠를 진행하면서 라방으로 진행한다니 말이다.

자극을 많이 받는 밤이었다.

* * *

광란의 마법사 퓌렐이 날뛰어준 덕분에 경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어그로가 완전히 저쪽으로 끌려 버렸습니다.”

먼발치서 퓌렐의 기운이 느껴졌다.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포하고 강맹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지껏 만나보았던 그 어떤 마법계열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무형의 결계가 저를 밀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마력의 농도가 짙고 무겁네요.”

저택의 상공에는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저 오로라가 마법력을 일부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연금술의 일종이겠죠.”

퓌렐은 분명 강력한 마법사였지만 상대가 바로 하르코엔.

그 저력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강력한 결계에 막혀 퓌렐도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마시멜로가 말했다.

-“퓌렐. 아무래도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돌아오는 게 좋겠습니다.”

-“헛소리 작작해. 난 오늘 하르코엔 그 X의 모가지를 따버릴 거야.”

-“그렇지만 상대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잊지 말아요. 이쪽은 혼자라는 걸.”

아무래도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연출인 것 같았다.

-“닥쳐. 나는 진입한다.”

퓌렐이 대문을 향해 불사조 형상의 마법을 난사했고,

“나의 기사도는 저토록 무모하지 않다. 오히려 우아하고 은밀하지.”

차진혁과 브릭은 혼란을 틈타 저택 안으로 숨어들었다.

차진혁은 그런 브릭의 몸동작을 흉내 내며 브릭과 함께 움직였다.

송하영의 도둑걸음을 응용하니 의외로 쉽게 되었다.

브릭은 이제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덧 브릭도 차진혁에게 익숙해진 것이었다.

쾅-! 쾅-!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저택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복도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아무리 어그로가 저쪽에 끌렸다고는 해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군요. 브릭과 함께 하르코엔 부인의 침실로 향해보겠습니다.”

차진혁과 브릭은 곧장 하르코엔의 침실로 향했다.

브릭의 몸이 기체화되는가 싶더니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저건…… 못 따라 하겠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나는 왜 그 흔한 투시 스킬 같은 것도 없는 거지?

잠시 자책하며 고민하던 그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나의 사랑스러운 뮤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차진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브릭은 사람 형상의 인형에 연신 검을 찔러대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기사도다.”

브릭의 눈이 굉장히 붉어져 있었는데,

“내 팔다리가 길어졌잖아?”

아무래도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브릭이 어깨를 쭉 펴고 일어섰다.

“이것이 180의 시야로군.”

브릭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180의 기사도란 이런 것이지.”

브릭은 짧은 팔로 연신 검을 휘둘렀다.

“보아라, 나의 긴 팔다리를! 이 기사도의 위엄을!”

허상 속 무언가를 계속해서 찌르는 모양이었다.

“내 뮤즈. 나는 네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대가 암살자를 고용한 것도.”

“역시 치열하네, 하르코엔 부인. 그럼 밖에서 날뛰는 광란의 마법사를 그냥 내버려 둔 것도?”

“그래. 그녀가 날뛰고 있으면 오히려 네가 안심하고 이곳을 찾아올 테니까.”

하르코엔 부인은 무척이나 얇은, 은사로 짠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한 겹의 천 안쪽으로, 몸의 실루엣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우아한 몸동작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철수, 당신만 내 손에 넣는다면 말이야.”

다른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김철수만큼은 얻고 싶었다.

김철수는, 그녀가 보아왔던 그 어떤 미인보다 더 아름다우니까.

침실의 벽면과 천장에 오색찬란한 가루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르코엔이 후- 하고 입안에 머금고 있던 가루를 내뿜었다.

그 가루들은 한차례 강풍에 휩쓸린 것처럼 방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가 이내 별 가루처럼 반짝거렸다.

이 공간 자체가 분홍빛으로 물들고,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렸다.

하르코엔이 달뜬 숨을 내뱉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가자. 나의 사랑하는 그대.”

그 손은 창백할 정도로 하얘서 푸른 실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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