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6화
우주의 암살자들이 침을 질질 흘렸다.
“이 정도면 하르코엔 암살을 시도해 봐도 되지 않나?”
하르코엔은 아르비스 7대 명문가의 주인.
그 대단하다는 아르비스에서 명문가로 불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만 많아서는 안 되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업적과 명성이 있어야만 비로소 명문가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과거의 영광은 많이 사그라들었다지만 그래도 7대 명문가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7대 명문가의 수장을 암살할 수 있다면…….”
“엄청난 업적을 쌓을 수 있겠는데…….”
평소라면 하르코엔을 감히 건드릴 수 없겠지만 지금은 하르코엔에 대한 여론이 극에 치달은 상황.
“다른 명문가들도 은근히 그걸 바라는 모양인데.”
사실 별로 연관은 없지만, 어쨌든 7대 명문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하나로 분류되곤 했다.
하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하르코엔의 가문을 제외한 나머지 6대 명문가는 하르코엔이 하루 빨리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실제로 6대 명문가의 가주들은 헬렌 제국에서 긴급 회의를 가졌다.
긴급 회의를 소집한 자의 이름은 ‘그리들.’
검의 명가이자 위대한 검의 영웅 피사트의 후예.
검의 현인이라 불리는 검술가 그리들이었다.
나이는 180세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7대 명가 가주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가슴팍에 태양표식이 그려진 로브를 입고 있는 젊은 여자.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은 인상을 찡그리고서 불만을 토해냈다.
“하르코엔, 그 미친X의 집착이 이 사달을 낼 줄 알았다니까. 그러길래 진즉에 팔다리를 부숴놓자고 했잖아.”
그녀의 이름은 퓌렐.
광란의 마법사라 불리는 이였다.
“도대체 언제적 7대 가문 분류야? 그 X의 연금술이 여전히 특출나? 특별해? 아니잖아. 병X 같은 년이, 그래도 7대 가문 수장이라고 좀 봐줬더니.”
퓌렐은 한동안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다가 말석에 앉아 침묵하고 있는 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차라리 키옌가에서 사람을 보내 하르코엔의 자살시켜 버리는 건 어때?”
체구가 작은 여자는 곧장 대답했다.
“그건 어려워요.”
그녀의 표정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회의에 참석한 6인의 귓가에 똑똑히 전달되는 음성이었다.
“왜? 실력이 딸려?”
“무의미한 도발은 멈추세요, 퓌렐 경. 언니의 강함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언니는 누가 언니야?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는데.”
“네, 퓌렐 경.”
퓌렐의 살벌한 기세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가는 여자의 이름은 사라 키옌.
신비의 가문이라고도 불리는, 키옌 가문의 가주였다.
“키옌 가문의 철칙은 다들 잘 알고 계시면서 왜 다 입꾹닫을 하고 계실까?”
최연장자. 검의 현인 그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비의 가문 키옌가의 은밀한 암호 같은 것인가 약간 의아했다.
회의 주체자로서 이 의문스러운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입꾹다트?”
“입을 왜 다들 꾹 다물고 계실까요?”
“…….”
그리들은 인상을 찡그렸고 다른 가문의 가주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죽이지 못할 것이 없어요.”
광란의 마법사 퓌렐이 히죽 웃었다.
“퍽이나.”
“…….”
“하지만 상대가 다른 6대 가문의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본가의 철칙을.”
6대 가문은 마왕 가르비누의 위대한 동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의의 검객 피사트.
만유의 성자 훼일러.
홍염의 파괴자 헤이나.
무한의 순례자 빅토르.
창조의 연금술사 카르빙턴.
빛나는 보석상 골디믐.
정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으나 역사학자들은 한 사람을 더 꼽았다.
어둠의 그림자 샤킬 키옌.
이 ‘샤킬’이라는 이름은 후세의 사람들이 임의로 지은 것이며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몇몇 역사적 사건들에 가르비누와 6명의 위인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멍들이 존재했는데, 그 구멍을 채워 넣은 미지의 인물이 바로 어둠의 그림자 샤킬이었다.
[위대한 영웅들에게는 말 못 할 고충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 고충을 해결해 줘야 했고, 어둠의 그림자 샤킬이 바로 그들의 해결사였다.]
6명의 영웅들은 각자의 업적과 활약을 통해 위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나 샤킬은 달랐다.
그는 ‘아르비스의’ 영웅이 아니라 ‘6명의’ 해결사였으니까.
[6명의 영웅들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샤킬이 바로 현 키옌 가문의 가주로 추정된다.]
……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키옌 가문은 나머지 6대 가문과 복잡한 은원관계로 얽혀 있었고, 키옌 가문은 6대 가문의 사람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법칙을 지켜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긋방긋 웃고 있던 사라 키옌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제야 그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그리들은 어린 시절 사라의 검술을 지도해 준 적이 있었고, 사라에 대해서 꽤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실없이 농담만 하다가도, 저런 표정이 나오면 무거운 진심을 드러내곤 했었지. 어릴 때부터 말이야.’
그리고 조금 기대했다.
신비가문 키옌의 가주가 어떤 현답을 내놓을지.
“귀찮아요.”
“…….”
“농담이고. 본가는 최근 수년간 대외적인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딱히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군요. 그리고 어차피 키옌 가문은 욕먹을 것도 없습니다. 급한 건 여러분들이겠죠.”
다소 도발적인 말에 다른 가주들은 침묵했고, 오히려 광란의 마법사 퓌렐이 깔깔대며 웃었다.
“아무튼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 건 마음에 든단 말이야.”
“퓌렐 경한테 한 수 배우는 중이죠.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 건 퓌렐 경이 으뜸이니까.”
“해보자는 거지?”
“여자랑은 안 해요. 전 이성애자라서. 내가 아는 언니 있는데 소개 시켜드릴?”
“이 미친X이.”
검의 현인 그리들이 퓌렐을 말렸다.
“퓌렐 경. 좀만 참으시지요. 퓌렐 경도 아시다시피, 사라, 저 아이는 아직 많이 어리지 않소?”
“공식 석상에서 저 아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신 같은 늙은이가 싸고도니까 애새X가 저렇게 싸가지 없지.”
다른 가주들은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약간의 동족혐오 같은 건가.
광란의 마법사 퓌렐은 의자에 풀썩 앉았다.
“됐다. 저런 X이랑 말 섞어봐야 입만 아프지. 나중에 사석에서 보자고. 많이 예뻐해 줄 테니.”
“네, 언니.”
퓌렐은 흥, 하고 시선을 옮겼다.
‘게으른 천재?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어.’
세상에 게으른 천재는 없다.
부지런해야 천재라 불릴 수 있을까 말까.
어려서부터 철저한 훈련과 온갖 업적을 달성해 왔던 퓌렐은, 게으른 천재 키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키옌 가문은 네 대에서 끝나겠지. 끝나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끝내주고.’
사라는 그 살벌한 눈빛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제 일어나도 될까요? 밀린 업무들이 있어서.”
그 말에 그리들이 약간 반색했다.
“가문에는 복귀한 것이냐, 아니, 복귀한 것인지요?”
“편하게 하세요 아저씨. 가문 복귀는 안 했고요. 앞으로도 안 할 거예요.”
“…….”
“옛날부터 말했죠? 가문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냥 나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편한 곳에 취직해서 평생 편안하고 소소하게 살 거예요.”
“…….”
다른 가주들은 크흠, 헛기침을 내뱉었다.
요즘 애들이 많이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라 키옌은 그 궤를 달리했다.
어릴 적부터 그냥 소소한 워라밸이 꿈이라고 말했었는데 그게 진짜일 줄이야.
“그럴…… 때가 있단다. 그렇지만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은 법. 유희도 적당히 즐기렴. 키옌가의 가주가 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을 테니.”
광란의 마법사 퓌렐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우 눈꼴 시려서 못 봐주겠네. 나도 관짝에 드러누운 우리 스승님 꺼내오든지 해야지. 난 간다. 여러분이 하르코엔을 죽이든 자살시키든 나는 신경 안 쓸 테니까.”
굳이 사라 키옌을 툭! 치고 지나가며 속삭였다.
“컨셉에 잡아먹히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미X년아.”
이후 퓌렐은 워프를 통해 사라져버렸다.
“어쨌든 우리가 7대 명가라 불리는 이상, 누군가는 하르코엔이 싸지른 오물을 치워야 할 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 * *
차진혁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던 걸까.
왜 하르코엔이 암살자 비슷한 것들을 보낼 거라고만 생각했던 걸까.
“나도 암살자를 고용할 수 있잖아?”
반대로, 이쪽에서도 암살자를 고용해서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암살자로 누구를 고용해야 할까, 누구와 접선해야 할까, 그래야 제일 흥미로운 방송각이 잡힐까를 고민해 봤다.
‘하르코엔이랑 인연이 있는 암살자면 좋은데.’
우호적인 관계여도 좋고.
악연이면 더 좋고.
아무래도 관계가 있던 편이 서사를 쌓아가기 좋았으니까.
‘음, 좋은 아이디어를 좀 얻을 수 있으려나.’
이번에 철수랜드들의 능력을 몸소 체험한 차진혁은 철수랜드 전용 앱, ‘철수피아’에 접속했다.
[001호: 꺄ㅏ ㅏ ㅏ ㅏ ㅏ ㅏ 철수님 ♡]
차진혁은 흠칫 놀랐다.
아직 내 접속 알람도 안 떴는데?
그제야 알림이 떴다.
[‘김철수’님이 입장하였습니다.]
김철수의 등장에 철수랜드 1000여 명이 모였다.
[019호: 기쁘다 철수 님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ㅏㅏㅏㅏㅏ!]
[003호: 은혜롭네요ㅠㅠㅠ 살아 있길 잘했다 ㅠㅠㅠ]
[882호: 식사는 하셨나요 철수 님?]
차진혁은 또 나름 뿌듯해졌다.
‘화력이 장난 아니네.’
겨우(?) 1000명 모인 채팅방인데 수백만 명 이상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스크롤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읽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크게 기뻐하는 철수랜드들을 보며 차진혁은 약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 얻으려고 접속한 건데…….’
이건 분명한 잘못이었다.
‘우선순위를 잊었구나, 내가.’
정보 얻는 게 먼저가 아니라 소통이 먼저여야 했다.
소통하다가 정보를 얻게 되는 건 괜찮지만, 정보를 얻으려고 소통하는 건 잘못된 것이었다.
차진혁은 마음가짐을 고쳐먹고서, 철수랜드들과 기쁘게 소통하기로 결심했다.
‘근데 너무 화력이 세서 소통이 어려운데?’
그러나 2호가 등장하면서 또 얘기가 달라졌다.
[002호: 우리 철쪽이들 ^^♡ 약속 지키기로 해요.]
잠시 흥분했던 철수랜드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채팅을 멈췄다.
채팅방 관리를 맡고 있는 2호(강은우)가 서둘러 공지를 띄웠다.
───
* 철수 님 말할 때에는 모두 조용하기.
* 채팅은 3분에 하나씩만.(같은 말 반복하지 않기)
* 철수랜드끼리 싸우지 않기.
* <중요>은혜로울 때에는 ‘♡’로만 응답하기.(☆ 단, 색깔 혼용사용은 가능하며 하트의 숫자는 30개 이하로 규정.)
───
굉장히 진지하고 엄숙한 공지였다.
‘단합력이 진짜 좋네.’
팬들의 뛰어난 단합력을 보면서 차진혁은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저 빙그레 웃었을 뿐인데 채팅창에는 형형색색의 하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 이거야?’
은혜로울 때에는 하트로만 응답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중요 표시에 별표까지 있길래 뭔가 대단한 것이 숨겨져 있는 줄 알았는데 별 거 아니었다.
별 거 아닌 것을 이렇게 열심히 써놓은 걸 보니 괜히 자극되고 좋았다.
가끔은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치열할 필요가 있는 거니까.
여기 와서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