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5화
차진혁의 방송을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하르코엔 짓 아님?
-하르코엔을 구속해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피켓을 들고 나서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우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철수랜드들이 광장 곳곳에 모여 시위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하르코엔을 처벌하라.
-우리는 악마를 보았다.
물론 그런 철수랜드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솔직히 걔네는 정의 따위 관심 없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지.”
철수랜드가 ‘정의 수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에 나서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의 의도는 너무 투명해 보였다.
“정의고 나발이고 감히 우리 오빠를 건드려? 잖아.”
“요즘 그것도 아니더라. 오빠도 아냐. 김철수가 워낙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있어서.”
그래서 ‘감히 우리 오빠를 건드려’는 맞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냥 우리 철수 님을 건드려? 인가 봐.”
“김철수 영향력이 이 정도라고?”
“이번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
그러나 불법적인 가택 침입에 불법적인 증거 수집이었다.
이 영상을 증거로 쓰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아르비스는 시민의 증언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잖아. 특히 헬렌 제국은 더더욱.”
하이드가 먼저 모든 죄를 인정했고 자백했다.
“하이드가 진술을 번복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걸?”
* * *
머렌시의 시장 율레임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사실 그는 뮈엔느가 처음 이곳에 경비대장으로 부임할 때부터 뮈엔느를 부담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이봐요, 뮈엔느 경. 당신처럼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원리원칙대로 하는 겁니다.”
“아무리 뮈엔느 경이라도, 비 아르비스 서버의 플레이어를 아르비스로 데려올 수 있는 건 한 명에 불과합니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 이봐, 누구였지?”
율레임 옆에 선 비서가 빠르게 대답했다.
“이름 한세린. 전직 길잡이이자 현직 군주로 활동 중인 지구 서버 출신의 플레이어입니다. 김철수의 동료이기도 합니다.”
“그래, 한세린. 뮈엔느 경의 보증으로 그 여자를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돌아가세요.”
보통 상급자가 이렇게 말하면 뮈엔느는 군말 없이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철수랜드가 된 뮈엔느는 달라졌다.
“하지만 시장님, 여기 시 규례에 별책에 보면 예외사항이 존재합니다.”
[머렌 시의 범죄의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난 경우, 치안 담당자는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여 아르비스의 진입을 허가할 수 있다.]
……라는 내용이었는데 실무 담당자들도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비서였다.
“이, 이걸 뮈엔느 경이 찾았다고요?”
뮈엔느는 훌륭한 성기사이지만 약간의 글자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책이든 서류든, 뭐든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뮈엔느 경이 별책을 뒤지면서까지 이걸 찾아냈다고?’
어쨌든 시장은 뮈엔느의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천사소녀 송하영이 아르비스 서버, 헬렌 제국령, 대도시 머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송하영은 곧장 하이드와의 면회를 요청했다.
* * *
‘천사소녀? 그 여자는 김철수의 측근 아닌가.’
천사소녀가 자신에게 면회를 요청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진술번복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지고 떠나기로 굳게 다짐한 상태.
어릴 적부터 사랑해 왔던 하르코엔을 위해 아름답게 죽으리라고 맹세했다.
그렇지만 또 굳이 면회를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는 집행일이 정해진 사형수였고,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리거나 거슬리게 하지 않았다.
벌써 5일째 그는 무료한 감옥 생활을 보내는 중이었다.
“면회를 수락하지.”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로 두고 송하영과 마주 선 하이드는 인사 대신 말을 꺼냈다.
“나는 진술을 번복할 생각이 없다.”
“딱히 그걸 요구하려는 건 아닌데요?”
헛소리.
보나 마나 그걸 요구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하이드는 깜짝 놀랐다.
‘메인 직업이 도적이라더니 실력이 제법이군.’
송하영이 유리벽 너머로 편지 하나를 몰래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간수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키우다시피 했던 하르코엔 부인을 무척 사랑하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김철수를 사랑해요. 아저씨가 하르코엔을 모시듯, 나도 김철수를 모셔요. 그래서 아저씨의 마음을 일부 알 수 있어요.”
단어 선택. 표정. 말투.
이 모든 것들은 송하영이 하이드를 상대로 하기 위해 철저히 연구하고 연습한 것이었다.
하이드의 마음속 빈틈을 파고들기 위한 천사소녀의 전략.
송하영 기준에서, 모름지기 도둑이라면 사람의 심리도 뒤흔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면회를 신청했어요. 아저씨가 억울하지 않으면 좋겠어서.”
송하영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방으로 돌아온 하이드는 송하영이 건넨 편지를 몰래 살펴보았다.
‘보나 마나 뻔하겠지.’
이런저런 말로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진술을 번복해 달라는 얘기겠지.
하이드는 마음에 방벽을 단단히 치고서 편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줄을 보자마자 그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송하영의 편지가 아니었다.
‘하르코엔의 편지?’
하르코엔의 글씨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이드였다.
이건 분명 하르코엔의 글씨였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저스틴 아저씨께]
저스틴은 헬렌 제국의 대신관으로서, 이번 사건의 재판을 맡은 책임자였다.
하이드는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내 선처를 부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인.’
그러나 내용은 하이드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하이드의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냥 안부인사에 가까운 편지였다.
‘그래. 나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필요는 없겠지.’
굳이 긁어 부스럼이 될 것이었다.
그가 보는 하르코엔은 외로운 아이였다.
친구라고는 인형밖에 없는 가여운 아이.
그러니까 이런 편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가 정말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은 오직 아저씨뿐이에요. 아시죠?]
“…….”
하이드는 여러 번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제가 정말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은 오직 아저씨뿐이에요. 아시죠?]
하이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 때문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건…… 천사소녀의 같잖은 술수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서운한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탕! 탕! 두드렸다.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난동을 피우면 간수 입장에서도 매우 곤란한 법.
간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 무슨 일이냐!”
“하르코엔 부인에게 면회를 신청한다.”
“좋다. 뜻을 전하도록 하지.”
하이드는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명상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들끓는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화를 한 번만 나누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르코엔 부인이 면회 신청을 거절했다.”
* * *
하이드가 면회를 신청했다는 말에 하르코엔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나한테 면회를 신청해?”
그녀는 여전히 하이드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였다.
만약 회복의 룬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김철수는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잖아. 김철수를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내 부탁을 거절한 주제에 뻔뻔하게 면회 신청을 한다고?
“흥.”
그녀는 자신의 면회 거절이 하이드에게 굉장히 큰 형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종장도 벌 받아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하이드는 반성을 좀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르코엔이 면회를 거절하자 하이드는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위한 한 마디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없어도 된다.
어차피 하르코엔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한 것은, 하르코엔의 부탁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었으니까.
[제가 정말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은 오직 아저씨뿐이에요. 아시죠?]
그는 편지를 와락 구겨버렸다.
그는 불같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삼키며 계속 명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형집행 당일.
‘나는 하르코엔을 위해 죽는 거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런 배신감이나 실망감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이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는가?”
대신관 저스틴의 얼굴을 보자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있다.”
* * *
며칠 전.
뮈엔느는 께름칙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사문서 위조라니…… 이런 걸 해도 되는 건가?”
“철수랜드라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
예전의 뮈엔느였다면 송하영을 제재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철수랜드로서의 연배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김철수와의 관계로 보나, 송하영이 대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속겠어.”
“그런데 네 직업이 도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도적이 어떻게 이렇게 글씨를 똑같이 베껴 쓰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송하영은,
“유능한 도적이라면 필체를 흉내 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라는 말을 남겨서 뮈엔느를 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유능함의 기준이 왜 그래?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송하영의 말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알아.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이 정도면 완벽한 거 아닌가?
솔직히 정말 의문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철수 유니버스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꾹 다물었다.
‘근데 이건 사기인데…… 괜찮나?’
하이드와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송하영은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좋아, 치열했어.”
그 말에 뮈엔느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진심으로 치열했으면 되는 거였구나.’
뮈엔느가 송하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훌륭한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천사소녀.”
* * *
“하르코엔. 모두 그 아이의 짓입니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하이드의 사형집행일은 뒤로 미루어졌다.
대신관 저스틴이 물었다.
“하이드. 그대는 왜 이제 와서 진술을 번복하는 거지?”
하이드는 저스틴을 노려보았다.
저스틴과는 단 한 마디 대화도 섞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나의 짓이 아니라는 것. 인형들은 하르코엔, 그 아이의 작품이라는 것.”
이것은 전 우주적으로 아주 큰 사건이었다.
-이거 ㄹㅇ임?? 설마 했는데 진짜라고?
-아직 정확한 증거가 나온 건 아님
-방송 안 봄? 그게 증거가 아니면 뭔데?
-일개 스트리머의 방송을 공신력 있는 증거로 취급하는 볍신이 여기 있누 ㅋㅋㅋ
김철수의 영상만으로는 하르코엔의 유죄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신원미상의 조력자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그들은 영상 전문가들이었고 김철수의 방송에서 수많은 단서들을 알아내며, 하르코엔의 유죄 입증에 커다란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철수 유니버스에선 모르는 게 존재하지 않아.
이것은 일종의 밈이 되어, 철수랜드가 아닌 사람들조차 철수랜드 세계관에 동참했다.
하르코엔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집단 지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송하영은 하르코엔의 저택에 잠입했다.
‘나이스!’
역시 도둑질은 타이밍이지.
평시라면 이런 잠입은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극도의 혼란이 발생한 상태.
혼란을 틈타 하르코엔의 방에 숨어들었다.
‘어? 이건 진짜 편지네?’
하르코엔의 안방 서랍에는 수백 장의 편지가 있었다.
빨간색 봉투에 담긴 편지였다.
‘와…….’
송하영은 나름대로 감탄했다.
‘진짜 치열했구나, 하르코엔.’
솔직히 김철수를 소유하고 싶다는 저 욕심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하르코엔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김철수에게. 경애하는 김철수에게. 소중한 나의 뮤즈에게.”
기타 등등.
이 수많은 편지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하르코엔이 김철수를 향해 속삭이는 사랑의 언어들로 가득했다.
말하자면 팬레터 혹은 연서였다.
“혹시라도 내가 죽는다면, 내 모든 것을 김철수에게 넘길 거야?”
표현만 달라지고 이런 내용이 굉장히 많았다.
내 모든 것보다 김철수가 소중하다는 그런 내용.
나의 모든 것을 철수를 위해 쓰겠다는 내용들이었다.
송하영은 히죽 웃었다.
“오…… 이거 유서로 봐도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