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94화 (29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4화

낫을 낚아챈 사람은 다름 아닌 차진혁.

하이드 입장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철수가 이렇게 빨리 회복했다고?’

차진혁은 낫을 쥔 채 히죽 웃고 있었다.

“어떻게…… 회복한 거냐?”

분명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는데.

아무리 뛰어난 힐러의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최소 몇 시간은 누워 있어야 할 수준의 부상을 입혀놓았는데.

어떻게 벌써 이렇게 멀쩡히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하이드는 차진혁의 손등에, 미약한 황금빛 기운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건……!’

올 클리어 각인 위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기운.

저 기운은 하르코엔의 연금술로 인한 버프였다.

‘회복의 룬’이라 불리는 것으로 올 클리어 각인과 반응하여 신체의 회복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이드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하르코엔. 너였구나.’

하르코엔에 대해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었다.

오히려 하르코엔이 하이드 자신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김철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미리 손을 써둔 거겠지.’

연금술을 활용한 버프는 일반적인 버프 계열의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능력과 비교하여 가성비가 무척 떨어졌다.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 수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르코엔은 차진혁을 위해 미리 결계에 회복의 룬을 삽입시켜 놓았던 것이다.

“내 몸이 생각보다 튼튼하네.”

“……네 몸이 튼튼한 게 아니다. 네 오른손을 보아라.”

올 클리어 각인에서 미세하게 하얀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올 클리어 각인과 연동하여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회복의 룬이었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쯤은 나도 알아.”

“저 멍청한 X이 너를 살려보겠다고 너를 위해 펼쳐놓은 안배다. 너를 돕고 있는 것은 회복의 룬이라 불리는 것으로 한 번 사용하는 데에 무려 수십억 다이아가 필요하다.”

하이드는 분한 듯 중얼거렸다.

“저 멍청한 X이.”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수십억 다이아를 사용하면서까지 김철수를 돕고자 했다는 식으로 포장될 수 있겠어.’

그런데 차진혁이 또다시 히죽 웃었다.

“수집품 몸에 생채기 나는 게 싫어서 걸어놓은 거 아니고?”

차진혁의 방송 송출 능력은 꽤 일취월장한 상태.

매우 높은 화질을 우주 각지로 전송했다.

“인형들에 생채기가 하나도 없네.”

차진혁이 인형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안 돼!”

비명성을 토해낸 사람은 하르코엔이었다.

빠각!

인형의 관절이 뒤틀렸으나 이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인형들에도 걸려 있네. 근데, 왜 비명은 쟤가 지를까?”

* * *

-김철수 방송 안본 눈 삽니다 ㅠㅠ 개존잼 ㅠㅠㅠ

-진짜 방송퀄 미쳤음ㅋㅋ

-이번에 여벌목숨쓸때 진짜 쫄깃하더라.

대외적으로 여벌목숨은 사라졌다고 알려져있었다.

차진혁이 여벌목숨이 사라지는 과정은 방송에 송출했으나, 다시 복구된 것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철수랜드들은 해당장면을 짤로 만들어 공유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위대한 스트리머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이 영상을 헌정합니다.”

-와, 이게 복선이었네 ㅋㅋ

-미래의 오늘 여벌목숨 값지게 썼읍니다 ㅋㅎㅋㅎㅋㅎ

-그럼 저때부터 방송각 잡았던 거네? 일부러 숨기고?

-저때 영상 링크좀 ㅠㅠ

└에피소드 #223 보면 됨 ㅇㅇ

└감사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냥 놀랐고, 백과사전처럼 식견이 있는 자들은 약간 충격이었다.

'여벌목숨으로 하이드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다니.'

여기 얼마나 치열한 계산이 들어갔는지 느껴졌다.

여벌목숨은 보통 레벨 200이하급 공격에서나 유효한 거니까.

하이드로 하여금 레벨 200이하급의 약한 공격을 유도하여 일부러 맞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치열한 계산만으로 이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쩐지 여벌목숨이 더 강화된 거 같은데……?'

이 부분은 나중에 김철수를 만나 직접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한편, 하이드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하르코엔도 일단 체포되기는 했으나 금방 풀려났다.

하이드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서 하르코엔의 결백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하르코엔이 비명 지르는 거 못 봤음?

-근데도 인형이 사실은 하이드 거라고?

-와 이건 말도 안 된다 ㅋㅋㅋㅋㅋㅋㅋ

하르코엔이 ‘안 돼!’ 하고 소리쳤던 건, 인형이 망가질까 봐가 아니라 하이드가 다칠까 봐 그런 것이라 발표되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한통속인 거냐?

-이게 말이 됨?

-시민들을 얼마나 바보로 보면 이따위 수사를 진행하는 거지?

하르코엔을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어 올랐으나 하르코엔은 구속되지 않았다.

헬렌 제국은 하이드의 범죄가 매우 끔찍하고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형을 결정했고, 하이드는 항소 없이 사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재판과정이 전례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하이드의 사형은 1주일 뒤로 결정되었다.

* * *

르세핌은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입도 제법이네. 도둑이라고 해도 믿겠어.”

“스트리머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긴.”

르세핌은 차진혁에게 많은 영감을 받는 중이었다.

잃어버렸던 초심도 다시 찾아가는 중이었고.

그래서 ‘스트리머라면 이 정도 잠입은 할 줄 알아야지’라는 말을 크게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보안 설정이 많이 바뀌어서 다시 들어오기 어렵겠다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하르코엔의 수집품을 모아놓은 비밀공간.

저번과 똑같은 인형들과 전시공간들이 보였다.

[집사]

[수인]

[나체]

[미인]

하르코엔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수집품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 인형들이 하르코엔의 거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니, 근데 뮈엔느. 당신 이래도 되는 건가?”

르세핌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뮈엔느는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르세핌을 쳐다보았다.

“뭐가 이래도 되냐는 거지?”

“당신은 머렌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이고…… 규칙과 정의를 늘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르세핌은 예전에 뮈엔느로부터 과속 과태료를 부과받은 적이 있었다.

탈 것의 규정속도를 5㎞/h 정도 초과했는데, 사실 이 정도는 다들 어기는 것이라 르세핌 입장에서는 억울했었다.

좀 봐달라고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 원칙주의자인 뮈엔느는 절대 봐주지 않았었다.

“당신이 제아무리 랭킹 5위의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규칙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으면서.”

“……어서 증거를 찾도록 하지.”

“우리 지금 이거 불법인 건 아는 거지? 그리고 김철수가 이거 다 녹화하고 있을 거고.”

줄곧 엄숙한 태도를 유지하던 뮈엔느는 차진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표정과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모자이크 부탁드려요, 철수 님.”

“목소리도 변조할게.”

“감사합니다.”

르세핌은 어이없다는 듯 하아- 한숨을 내쉬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뮈엔느. 당신 솔직히 말해.”

“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잠입한 거야, 아니면 김철수랑 플레이하고 싶어서 잠입한 거야?”

“……정의를 위해서.”

뮈엔느의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솔직히 부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철수를 향한 팬심을 바탕으로 그녀는 뻔뻔해질 수 있었다.

“나는 오로지 정의를 위해 움직인다.”

* * *

인형들을 살펴보던 뮈엔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들을 살펴본다고 해서 하르코엔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과연 나올 수 있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르코엔의 사설 경비병들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그 전에 얼른 증거를 찾고 이곳을 떠야 했다.

“당연히 나오지. 이 인형들을 만드는 근간에는 연금술이 있어.”

“……연금술?”

“저번 방송 복습 안 했어?”

르세핌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고 그에 반해 뮈엔느는 조금 주눅 들었다.

“복습이라면……?”

“이 인형들 하나하나에 연금술을 활용한 룬들이 새겨져 있었잖아. 회복의 룬 같은 거. 하르코엔이 그만큼 수집에 치열하다는 얘기지.”

“수집에 치열한 만큼 오히려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거 이거 이 아가씨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시네. 내가 이래서 엘리트들이랑 안 맞는다니까.”

르세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로 수집에 치열하면, 이 수집품들이 내 거라는 표식을 반드시 남길 거란 말이야.”

“증거를 남긴다고? 설마 그런 멍청한 짓을 하려고.”

“그게 멍청하다고?”

르세핌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서 차진혁에게 물었다.

“김철수. 이게 멍청한 거냐, 치열한 거냐?”

“치열한 거지.”

들키면 크게 곤란해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수집한 수집품에 자신의 표식을 남기는 것.

그것은 치열함의 증거였다.

천사소녀 송하영은 굳이 자신의 도둑질을 나타내는 메롱 표식을 나타내는 것과 비슷한 맥락.

“아마 연금술사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을 거야.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야. 이를테면 신체 어딘가에 특수한 도료가 묻어 있다거나.”

“…….”

르세핌은 인형들의 몸 여기저기에 불을 대보기도 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특정 온도를 맞춰보기도 하면서 증거를 수집했다.

“하지만 르세핌. 그렇다면 이곳에 연금술사를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르세핌이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뮈엔느는 아직 멀었다.

“추적 전문 길잡이라면 연금술도 좀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당신 김철수 방송 제대로 안 보지?”

“아니다!”

뮈엔느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김철수의 방송을 별로 안 본다는 모욕적인 언행을 들을 줄이야.

뮈엔느는 황급히 변명했다.

“물론 덕통사고를 당한 지 얼마 안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모든 영상들을 정주행하고…….”

“최근에 김철수가 뭐라 그랬어?”

이 질문은 기사단 입단시험보다 더 날카롭고 어려웠다.

잔뜩 긴장한 바람에 적절한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르세핌은 차진혁의 말을 완벽히 똑같이 재연했다.

“한세린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군주가 그 정도도 못하면 군주냐고.”

“…….”

“똑같아. 길잡이가 이 정도도 못하면 길잡이겠어?”

“…….”

뮈엔느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에 발을 들이는 기분.

김철수의 세계에 조금씩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뮈엔느도 영감을 받기 시작했다.

불현듯, 뮈엔느가 무언가 하나를 떠올렸다.

“그거다!”

* * *

뮈엔느는 차진혁의 최근 영상 내용을 떠올렸다.

차진혁이 유언을 내뱉는 것처럼 엘리와 인사를 나누던 그 장면.

“그때, 이 인형의 눈동자가 정령불과 반응하여 색깔이 미묘하게 변했었다.”

“그게 정말이냐?”

르세핌이 핸드폰을 꺼내 황급히 영상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봤다고?’

뮈엔느. 이 독한 여자 같으니라고!

눈동자의 색깔이 변한다고 표현은 했지만,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살펴봐야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변화.

……였건만,

[영상 12분 23초경. 눈동자 색깔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맞나요?]

[영상 12분 24초경, 보라색으로 눈동자 변함.]

[정령불에 반응하는 어떤 표식 같은 게 존재하는 듯.]

공식 철수랜드들은 그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고 각종 커뮤니티에 제보 중이었다.

-와 진짜 도른자들이다 ㅋㅋㅋㅋㅋ 이걸 본다고?

-이게 보인다고? 나는 설명 보고도 이해 못해서 5번 돌려봄.

-나는 내가 색맹인 줄 알았다 ㄹㅇ

-영상에 얼마나 진심이면 이걸 보냐?

어쨌든 뮈엔느가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사실이었다.

르세핌은 놀라움을 속으로 감추었다.

마치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맞아. 정령불에 반응하지. 김철수. 정령을 불러봐. 확인하자.”

차진혁은 둘의 대화를 보며 매우 만족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뮈엔느와 르세핌은 문답 형식으로 방송을 잘 이끌어나갔다.

좋은 파트너들이었다.

“귀여운 엘리 나타나라 얍!”

저번과 달리, 완연한 형체를 이룬 엘리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한 엘리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인형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보라색으로 변했다.

“눈동자의 색깔이 변하는 매커니즘을 분석하면 하르코엔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어.”

뮈엔느가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우리는 지금 불법으로 여기 침입했고 불법으로 증거를 수집한 거야.”

“우린 불법이지. 근데 김철수는 그냥 플레이하는 중이잖아? 여기가 방송 금지 구역도 아니고.”

평소의 뮈엔느라면 말 같지도 않은 궤변 펼치지 말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문제에 늘 엄격했고 질서 유지에 진심인 편이었으니까.

“하긴.”

오히려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매커니즘을 분석하려면 진짜 연금술사를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말했잖아. 유능한 길잡이라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아, 그랬지.”

“진정한 철수랜드가 되려면 멀었구나, 뮈엔느.”

“…….”

뮈엔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유능한 창술가는 뭘 더 할 줄 알아야 하지?’

나만 지금 너무 무능한 거 아닌가?

여러모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차진혁의 방송이 공개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