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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89화 (28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89화

주상남자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

김철수가 저토록 진지한 표정을 짓도록 만드는 그 무언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길래 저런단 말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을 왜 나는 모른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그게 뭐지?”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외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군.”

“…….”

정말 그런가? 내가 그렇게 모자란 인간이었나?

주상남자는 혼란스러워졌다.

“스스로 생각해 내라. 중요한 것이니.”

주상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외면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나는 주식회사 상남자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명예롭게, 멋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김철수가 말했다.

“정말 모르는 거냐?”

“모르겠다. 가르쳐다오. 내가 잊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외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명예를 지켜낼 지식이 무엇이냐!”

“스트리머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 나라고 인정해야지.”

“……뭐?”

설마 지금 그거 한마디 들으려고 이 짓을 한 건가?

아르비스까지 넘어와서?

하르코엔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친놈인가?’

주상남자의 심정과는 별개로 차진혁은 진지했다.

패륜도 괜찮고, 암습도 괜찮다.

다 괜찮은데, 자기가 제일 강하다는 허위 사실 유포는 참을 수 없었다.

차진혁이 요구하는 건 하나였다.

[제가 오만했습니다. 저보다 김철수가 훨씬 더 강합니다.]

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

“자. 다시 묻는다. 네가 세냐, 내가 세냐?”

“……네가 세다.”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냐?”

“그래. 네가 나보다 훨씬 강하다.”

“좋군.”

주상남자는 저도 모르게 차진혁의 눈을 보고 말았다.

‘미친놈이 맞다. 이자는 틀림없이 미친놈이야.’

……라고만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이 순간, 그는 ‘왜 레벨 300이 넘었는데도 김철수를 이기지 못했는가’에 대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됐다. 가라.”

“…….”

주식회사 상남자는 또 떨떠름해졌다.

“나를 살려준다고?”

“그래.”

처음에는 차진혁도 주상남자를 죽일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한세린의 설득에 넘어갔다.

“걔를 살려둬야 네가 편할걸?”

“왜?”

“생각해 봐. 걔가 스트리머들 중에서는 두 번째로 강한 거잖아. 너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무조건 걔를 거쳐와야 돼. 너도 허접한 애들이랑 싸우고 싶지는 않지? 약한 애들은 다 주상남자한테 넘기면 돼. 내 생각엔, 어지간하면 주상남자 선에서 컷 될 것 같거든?”

“……나한테 도전하려면 얘부터 넘고 와라, 뭐 이런 건가?”

“그렇지!”

“흐음.”

사실 차진혁은 좀 허접한 애들이 덤벼들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조무래기들이랑 푸닥거리하다 보면 방송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잖아?”

“……하긴.”

덕분에 주상남자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 * *

하르코엔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멍청한 놈이……!”

그녀의 상식상, 주상남자는 죽어야 했다.

“저걸 왜 살려두는 거지?”

주상남자가 죽어야 그녀가 그의 몸속에 숨겨놓은 ‘레비나 광물가루’가 활성화된다.

그건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어야만 효과를 발휘하니까.

그녀의 계획에 따르면 주상남자는 여기서 죽었어야 했다.

“기껏 세뇌를 해놨더니만.”

하르코엔은 주상남자를 기만하여 ‘네 레벨은 이제 300이 넘어’라는 세뇌를 진행했었다.

그래야 주상남자가 자신 있게 김철수에게 도전할 테니까.

하르코엔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일이 자꾸 틀어질수록, 계획이 어긋날수록, 김철수를 향한 그릇된 욕망은 자꾸 커져만 갔다.

현재 격투장의 상황을 보여주는 많은 스트리머들의 화면에 담긴 김철수.

김철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보물 같았다.

“반드시 가져야 해.”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버럭! 지르고서는 책상 위에 있던 물컵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하고 물컵이 깨졌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하이드의 부재를 체감했다.

하이드가 있었다면 저 물컵이 깨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렇게 집어 던져도, 늘 하이드가 미리 움직여서 받아내 주었으니까.

“……아저씨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뺨을 때린 건 실수였다.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나를 배신해? 어릴 적부터, 나는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따랐잖아.”

수십 년간 옆에 있어 주었던 하이드의 부재가 느껴지니 문득 외로워졌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에는 꽤 즐거웠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의 깨끗했던 모습이 그립다. 나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했거든.”

하이드의 그 말이 일견 이해가 되었다.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인형으로 만들어 영원히 보관할 것이다. 착하고 순수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그 말도 크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인형수집가인 그녀이기에, 하이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가 정말 기분 나쁜 건, 지금 시종장이 내 옆에 없다는 거야!”

뺨을 때린 게 처음도 아니었고.

이보다 더한 짓도 많이 했었는데.

“고작 뺨 좀 때렸다고. 해고라고 한 마디 했다고. 정말로 저택을 나가버리는 건 무슨 경우야?”

하르코엔은 의자에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문득 너무 외로워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하르코엔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고마워, 시종장.”

손수건을 받아든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시종장?”

“이럴 줄 알았습니다.”

한세린의 예상이 맞았다.

하이드는 하르코엔을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또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부인의 부탁을 들어줘야겠지요. 옛날처럼.”

하이드가 하르코엔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김철수를 완벽히 속이고 돌아왔습니다, 부인.”

사실 내키지는 않는 일이지만 그는 하르코엔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만 했다.

“얼마 후면 김철수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 * *

죽음을 각오했었던 주상남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런 식으로 살아나게 될 줄이야.’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기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차진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격한 실력의 격차를 느꼈다. 당분간 네게 도전하지 않겠다. 내가 자격을 갖…… 크윽!”

말을 하던 주상남자가 풀썩 쓰러졌다.

몇 초간 숨을 헐떡이던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었다.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살자?’

어렴풋이 공격 위치가 잡혔다.

아마도 꽤 특별한 공격을 한 것 같았다.

이를테면 주상남자 맞춤형 독 같은 거.

사실 차진혁은 공격의 순간, 살기를 읽어내기는 했다.

‘절대결계를 펼치긴 했는데.’

당연히 차진혁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일 줄 알았다.

그래서 절대결계를 본인에게 펼쳤는데 주상남자를 노린 공격일 줄이야.

다만, 사람들은 차진혁이 주상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와아아아!”

큰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정의가 구현되었다느니, 이게 바로 진짜 참교육이라느니, 관중들이 신나 하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누가? 왜 죽인 거지?’

그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냐, 이건?’

[렌마, 37번 거리, 골목 귀퉁이, 하얀벽돌집, 이곳에서 만나.]

[렌마, 37번 거리, 골목 귀퉁이, 하얀벽돌집, 이곳에서 만나.]

[렌마, 37번 거리, 골목 귀퉁이, 하얀벽돌집, 이곳에서 만나.]

차진혁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와, 이거 세뇌 같은 건가 보다!’

독 계열은 아니었고, 세뇌를 활성화하는 어떤 물질을 자신의 몸속에 집어넣은 것 같았다.

‘언제?’

아마도 주상남자가 죽는 그 타이밍 근처인 것 같은데.

사실 차진혁으로서도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휩싸인 상태였다.

‘내가 세뇌에 당한 것처럼 행동해야 하나?’

전생에 세뇌에 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긴 했다.

빌런들 중 일부는 세뇌된 자들도 있었으니까.

일단 차진혁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렌마…… 37번 거리…….”

얼마 후,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는 사라졌다.

* * *

철수랜드들은 차진혁이 무얼 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역시 우리 철수 님은 맺고 끊음이 확실해! 단호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시다고!’라며 열광하고 있지만, 만약 차진혁이 주상남자를 살려줬었다고 해도 ‘역시 우리 철수 님은 관용이 넘치셔!’라고 환호했을 것이었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젊은 남자 시청자들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역시 김철수는 고구마를 모르는 형님이시다!

-갓철수, 속이 시원해짐 ㅋㅋㅋ

-이게 참교육이쥬 ㅋㅋㅋㅋ

방송은 꽤 성공적이었으나 차진혁으로서는 고민이 깊은 밤이었다.

한세린에게 물었다.

“분명히 세뇌였단 말이야. 근데 갑자기 또 사라졌어. 이건 왜 그럴까?”

“아마 효과가 드문드문 나타나도록 설정했겠지. 거기서 너무 티가 나버리면 좀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아마 굉장히 고도화된 능력일 거야. 그래서? 그곳을 찾아갈 거지?”

“찾아가야지.”

문득, 차진혁은 한세린이 달라졌음을 또 체감했다.

‘회귀 전의 한세린이었다면…… 너무 무모하다는 잔소리를 했을 텐데?’

사실 차진혁은 꽤 철저하게 변명거리도 생각해놨었다.

-“내가 사왕급 이하의 독에는 면역이 있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독을 사용하진 않은 거 같고. 근데 [제왕의 격]을 갖고 있는 건 모르나 봐. 그러니까 이렇게 티 나게 세뇌를 시도했겠지? 이걸 보면 그렇게 치열하지 않은 녀석이야. 내가 제왕의 격을 갖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지만, 내 플레이 영상을 치열하게 분석하면 제왕의 격을 갖고 있다는 건 눈치챘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그 녀석의 함정은 그렇게 치열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어. 어때? 이 정도면 쳐들어가도 괜찮겠지?”

……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지금의 한세린은 잔소리를 할 생각은커녕, 당연스레 ‘그곳을 찾아갈 거지?’ 하고 묻고 있었다.

안 가면 실망할 거다? 라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레 세뇌당한 것처럼 자연스레 행동할 수 있을까?”

“일단 네가 뭐에 당했는지를 알아야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보기엔 주상남자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을 거 같거든. 걔를 죽여야 활성화되는 세뇌가루 같은 거라든가.”

“그런 게 있어?”

“몰라.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유추해 보는 거지.”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이 아니라 창문에서.

차진혁이 창문을 열어주자, 검은색 타이즈에 복면을 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진혁 앞에서 복면을 벗었다.

“하이드?”

“그래. 나한테 추적이 붙어서 이런 꼴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쫓기고 있어. 시간이 별로 없다. 잘 들어. 눈치채고 있겠지만 주상남자는 하르코엔이 죽인 거다.”

“하르코엔이? 어떻게?”

“주상남자의 몸에 들어있던 가루와 만나면 극독으로 변하는 물질을 투입하여 살해했다. 정확한 설명은 어렵고, 연금술의 일종이라 보면 된다. 저번에 말했듯, 하르코엔은 뛰어난 연금술사니까. 지금 네 몸에는 [루돈 광물 가루]가 흡수되어 있다. 세뇌를 일으키는 일종의 마약 같은 거지.”

차진혁이 들이켠 가루의 이름은 레비나 광물 가루.

하이드가 가르쳐준 가루의 이름은 루돈 광물 가루.

이름을 다르게 가르쳐주었다.

“아마 하르코엔은 널 함정으로 불러낼 것이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 네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말이야.”

하이드가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일단 함정이니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너라면 분명히 가겠지. 그곳에 갈 거라면 이걸 가지고 가라.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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