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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85화 (28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85화

‘근데 내가 아직 가르비누 정도는 아니잖아?’

이번에 아르비스 서버에서도 약간의 유명세를 얻기는 했지만 솔직히 가르비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가르비누는 우주의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이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수준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냥 떠오르는 루키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트리나의 말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가르비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르비누의 발자취부터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집령석에 대해 자세히 좀 알려줘.”

“다음에 또 저녁 같이 먹어주면.”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밥이야 매일 먹는 거고, 같이 밥 먹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얼마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키하엘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진짜 이상하다.”

엄청난 보상 같은 걸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밥 몇 번 먹는 걸로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턱턱 물어온단 말인가.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왜? 무슨 문제라도?”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저번부터 어이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혹여 된다고 치자. 그런 작업을 하려면 진짜 엄청나게 숙련된 농부들, 최소 아르비스에서 수십년 굴러먹은 농부들, 그중에서도 수호수를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 랭커들이나 가능할 텐데. 걔들이 지구에 오겠냐? 3등 시민들이 살고있는 이 낙후되고 모자란 서버에?”

……라고 말했는데 아르비스의 농부들이 몰려오고.

‘분명 대단한 경험과 지혜를 보유한 농부들이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어. 이건 안 돼. 숙련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또 되고.

‘근데 이 정도면 아르비스에서 견제 들어오지 않을까? 김철수가 아무리 잘났어도 아르비스 차원에서 견제 들어오면 힘들어질 텐데…… 이거 내 밥그릇 걱정 또 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르비스에서 지구를 돕는단다.

왠지 모르게 우주의 기운이 김철수를 도와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구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적이지. 로날도 같은 자들은 분명히 김철수에게 위협이 될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의 철수랜드들을 결집시키는 좋은 연료가 되어주었을 뿐.

그런데 이제는 집령석이라는 것을 알아왔단다.

‘원래 이런건 정보원들을 파견해서 오랫동안 파내야 나오는 거 아닌가?’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아무튼 키하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나름대로 조사해 보도록 할게. 내가 조사하는 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도움이 딱히 안 될 것 같다. 근데 이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나는 워라밸만 추구하면 그만이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쓸모없어지는 기분이잖아?’

인생의 목표가 워라밸이었던 키하엘의 심경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조금은 열심히 일해야 할 거 같기도.’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 * *

두더지맨이 차진혁의 대문을 쾅! 쾅! 두드렸다.

오, 대놓고 습격인가, 약간 들뜬 차진혁은 녹화기능을 활성화한 채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뭐야, 두더지맨이냐?”

“키하엘에게 얘기는 들었다! 어째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하지 않았던 거냐, 두지!”

두더지맨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왜 화가 난 거냐?”

“MK재단에서 광부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린다며!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워준다며!”

‘집령석’에 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함이었다.

가능하다면 집령석을 캘 수 있으면 더 좋고.

참고로 세간에서는, 비인기 직종 클래스를 향한 김철수의 따뜻한 지원이라고 홍보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튼 두더지맨은 그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런 게 있다면 나한테 먼저 얘기했어야지, 두지.”

“너한테 왜?”

“내 보조직업이 광부인 걸 아직도 몰랐단 말이냐, 두지!”

“……너한테 보조직업이 있다고?”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두더지맨은 전문 길잡이였고, 다른 직업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세린이 군주로 전직하기 전까지, 엎치락뒤치락 한국의 랭킹 1위 길잡이를 노렸었다.

당시에는 이런 인터뷰도 했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두지. 여러 개의 우물을 얕게 파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하나의 우물을 깊이 파야 물이 나오는 법이다, 두지.”

“……그러니까 광부도 적성이 잘 맞아서 열심히 수련하는 중이라고?”

“그렇다, 두지.”

“……왜?”

두더지맨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차진혁을 쳐다보았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잖아, 두지.”

그는 차진혁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스트리머이면서 전투도 잘하고, 수호수도 잘 키워내는 걸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지, 두지.”

그리고 그는 이미, 한국 랭킹 5위의 뛰어난 광부였다.

“집령석이라는 거. 내가 찾아 준다, 두지.”

* * *

지구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지구 곳곳에 어린 수호수들이 생겨나면서 일종의 ‘수호수 망’이 생성되었고, 수호수의 힘이 지구 전역에 퍼지게 된 상태.

수호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레비온 바이러스는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아르비스를 비롯한 각 서버들에서 치료제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레비온 바이러스를 극복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서버급 시나리오, ‘레비온의 습격’이 취소되는 진풍경이 불어졌다.

지구 서버를 관리하는 총괄 관리자가 시스템을 통해 직접 공지를 전달했다.

[이번 서버급 시나리오는 관리자들의 실수로 생성된 잘못된 시나리오였고…… 하여…… 오류임을 인정하며 심심한 사과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저는 지구의 총괄 관리자직을 내려놓겠으며…… 하고…… 지구 소속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위로금 1,000만 다이아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발표되었으나 이 공지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미 지구에 도착한 마시멜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오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구인들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다가 실패했고, 사건이 워낙 커지면서 지구에 이목이 집중되자 더 이상 레비온 바이러스를 사용하기 어려워진 것이 틀림없었다.

“당분간 개수작은 어렵겠어.”

마시멜로는 후후 웃었다.

마시멜로와 함께 지구에 따라온 백과사전이 핵심을 찔렀다.

“왜? 이제 김철수가 괴롭힘 안 당할 거 같아서 좋냐?”

“누가 그딴 걸 신경 쓴대?”

마시멜로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나는 그냥 시스템이 약소서버에 말 같지도 않은 짓을 벌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라고.”

“근데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1,000만 다이아를 준다는 걸 보면 시스템이 방향성을 바꾼 거 같기는 한데.”

“그게 무슨 말이냐?”

“돈을 일부러 엄청 뿌리는 거잖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동반시킬 것 같은데. 대놓고 죽이는 건 어려우니, 천천히 말려 죽일 예정인가 봐. 아마 겉으로 보이기에는 지구에 유익한 정책들을 취하겠지.”

“…….”

“그러다가 결정타 한 방을 크게 먹여서 지구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사실 백과사전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실시간으로 변하는 마시멜로의 표정이 재미있을 뿐.

“그, 그럼 김철수한테도 악영향 있는 거 아니냐?”

* * *

그날 밤.

마시멜로는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근데 내가 굳이 지구까지 찾아와서 이런저런 방송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김철수가 먼저 합방제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

“왜 합방을 안 해주지? 그렇다고 내가 먼저 합방을 제안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원하면 네가 먼저 제안해 봐.”

“딱히 그렇게 원하는 건 아니고.”

마시멜로는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내가 발로 뛰는 콘텐츠들을 좀 해봐야겠어. 그 내가 옛날에 하던 거. [체험, 직업의 현장] 같은 콘텐츠 말이야.”

“몸으로 하는 건 힘들어서 안 한다며?”

“초심을 되찾아야지.”

마시멜로는 광부 체험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시청자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와, 드디어 초심 찾았네 ㅋㅋ

-요즘 배가 부른 줄 알았는데 ㅋㅋㅋ

-마시멜로가 개고생하는 콘텐츠라고? 이건 봐야지.

마시멜로는 거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우쭐거렸다.

“봤지?”

“뭘?”

“내가 딱히 김철수를 돕고 싶어서 이런 콘텐츠를 하려는 건 아니야. 시청자들 반응 봐봐. 되게 좋잖아.”

음, 초심찾기 프로젝트, 나쁘지 않았어.

그는 그렇게 합리화(?)한 뒤 지구에서의 광부 체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주 랭커급 스트리머이다 보니, 그의 콘텐츠는 꽤 이슈가 되었다.

* * *

아르비스 서버.

랭킹 5위의 길잡이이자 추적 전문가인 르세핌은 약간 초조해졌다.

‘왜 연락이 안 오지?’

지구에 꽤 큰일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마무리됐잖아?’

총괄 관리자가 나서서 직접 사과하고 일이 일단락되었다는 것까지도 알았다.

‘그럼 이제 주상남자(주식회사 상남자)를 추적해야 되는 거 아냐?’

눈앞에서 주상남자를 놓쳤다.

기이한 힘이 작용하여 주상남자를 전이시켰었다.

그럼 당연히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일정들을 모두 비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지 뭐.’라고 말할 날을 고대하던 중이었다.

‘설마 추적 안 하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녀가 아는 차진혁이라면 분명 콘텐츠의 마침표를 찍고 싶을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이상한 예고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추적]

김철수의 영상이었다.

에이 설마, 제목만 추적이겠지.

주상남자를 추적하는 콘텐츠는 아니겠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확인해 보았다.

“이게 뭐야!”

주상남자와 관련된 얘기가 틀림없었다.

지구에서의 일이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주상남자를 추적하겠다는 예고 영상이었다.

“저 여자는 뭔데?”

예고 영상에 등장한 여자가 굉장히 거슬렸다.

“한세린?”

황급히 검색해 보니 한세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꽤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군주?”

군주로서 맹활약을 떨치고 있는 플레이어.

군주라는 사실을 알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 군주부터 섭외해서 큰 그림 짜고, 그 다음에 나를 섭외하겠지?’

그 섭외과정 또한 콘텐츠로 담으려는 것 같았다.

‘근데 왜…….’

군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슬리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상 속, 한세린과 차진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게 저게, 왜 저렇게 예쁘게 웃는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쭈?”

게다가 눈웃음? 보조개? 머리를 쓸어 넘겨?

댓글들을 살펴보니 한세린에게 입덕했다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언니 너무 예쁘다느니, 한세린 개이쁘다느니, 지구에 이런 군주가 있었냐느니, [추적]영상인데 한세린 외모에 대한 얘기를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한소리 해야겠다.’

이건 연출의 실수인 것이 틀림없었다.

콘텐츠의 주 내용인 ‘추적’보다 오히려 외모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직업은 다르지만 예비 아내, 아니, 선배로서 잔소리를 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분명 섭외전화가 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는 황당한 영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섭외]

김철수가 한세린을 섭외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확인한 르세핌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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