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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75화 (27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75화

트리투리는 굉장히 떨떠름했다.

꽤 많은 정령석을 만져본 그로서도 이렇게 정순한 불의 정령석은 처음이었다.

정령술사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최상품 등급의 정령석이 눈 앞에 있었다.

‘……이건 또 어디서 구한 거지?’

심지어 그것을 잘게 빻아왔다.

안에 담긴 정령의 기운이 대부분 유지된 채로 말이다.

‘이 정도면 농사에 쓰일 게 아니라 정교한 연금술에 쓰일 정도잖아?’

그는 무척 놀랐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제 지엄한 스승이 되었으니, 제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놀라면 안 되는 거니까!

“제법 괜찮은 정령석이구나.”

어떻게 하면 스승의 품위가 상하지 않으면서 비법을 물어볼 수 있을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어떻게 구했지?”

“네?”

“물론 내가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의 제자는 정직해야만 한다. 획득방법이 투명하고 정직해야 하므로 물어보는 것이니 대답하거라.”

차진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정령왕의 딸을 불러서 부탁했습니다. 딸이 그 아버지인 정령왕에게 부탁했고, 정령왕은 딸을 잘 부탁한다면서 정령석을 내어줬습니다. 눈에 힘을 주니까 정령석이 생성되더군요.”

정령왕의 딸을 불러? 어떻게?

그리고 정령왕이 직접 정령석을 만들어줘? 왜?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감췄다.

“그럼 이 가루는?”

“어제 부탁했던 기술자에게 또 빻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정도 기술자는 몇 년 치 예약이 이미 잡혀 있을 텐데?”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카트리나가 그렇게까지 뛰어난 기술자였나?

그리고 그냥 오늘 저녁에 밥 먹기로 약속하니까 즉석에서 해주던데.

“생각보다 한가해 보였습니다.”

“…….”

“뭐가 많이 부족합니까?”

“아니, 이 정도면 꽤 준수한 수준이다. 사, 사용 못 할 정도는 아니군.”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아무튼 정령석으로 만든 비료는 완성이 되었다.

“아주 소량만 줘서 부작용을 체크하고, 그다음부터 양을 조금씩 늘려가도록.”

* * *

-꿀맛이시도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로다!

차진혁은 허허 웃고 말았다.

이번만큼 정신적 결속감이 강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수호수가 워낙 행복해하고 있으니, 괜스레 차진혁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게 벌레를 먹인 것은 용서하시겠도다.

‘앞으로도 자주 먹어야 돼.’

-끄응.

‘정령석도 종종 구해줄게.’

수호수는 굉장히 싫은 눈치였으나 그래도 정령석 비료를 준다는 말에 이내 수긍했다.

그리고 3일 뒤, 수호수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스승님, 수호수에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러냐?”

‘아직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닌데?’

트리투리는 또 놀랐으나 놀라지 않은 척했다.

“첫 열매이니 모두 땅에 떨어뜨려 절로 썩게 놔두어라.”

“썩을 것 같지가 않던데요?”

트리투리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썩지 않는 과실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무식한 놈! 하고 혼을 내려다가 차진혁이 내민 사진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황금 수호수의 열매라고?’

처음 보는 형태의 열매였다.

‘이런 건 할아버지께도 들은 적이 없다!’

황금 수호수의 열매가 망치 형태였다.

지구의 황금 수호수가 맺은 열매는 농부들 사이에서는 아주 큰 이슈가 되었다.

“황금 수호수에 망치가 달렸다고?”

“에이 말도 안 돼!”

“황금 수호수 같은 영목이 지구 같은 초짜 서버에 자라고 있다는 건 말이 되고?”

전 우주의 농부들이 이 진귀한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지구를 찾기 시작했다.

농부들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나무에서 망치가 열렸다?”

“정령왕이 만들어준 불의 정령석과 광물의 정령석을 혼합한 비료를 사용했다더군.”

“유기체에서 무기체가 탄생하다니. 안 되겠다. 직접 가봐야겠어.”

전 우주의 연금술사들도 지구를 찾았다.

그런데 농부, 연금술사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진 집단도 존재했다.

“황금 수호수에서 망치가 열렸다!”

“얼마나 훌륭한 재료로 쓰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바로 대장장이들이었다.

외눈박이 거인족 대장장이. 뮬리누스는 지구에 정착한 이래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내 눈으로 직접 봤지. 정말로 나무에 망치가 열렸다.”

뮬리누스에게 연락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안 그래도 김철수가 나한테 샘플 몇 개를 준다고 했다. 뭐? 갑자기 내가 왜 네 형님이냐?”

게다가 전 세계의 도적들도 수호수의 망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었고, 뭐든지 ‘처음이자 희귀한 것’에는 높은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훔쳐야겠군.”

“수호수의 영역에서 그걸 훔쳐낼 수 있다면 우리 명성이 높아지겠지.”

우주의 도적들이 움직였고, 천사소녀 송하영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도적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 도적이야.”

송하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 서버의 물건을 도둑질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흑장미 연합의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열매를 지켰다.

이래저래 수많은 관심이 서울로 쏠리자, 서울 각지의 상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특히 수호수 근처의 숙박시설은 예약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혹자는 이번 수호수의 열매 사건이 가져다준 경제적 가치가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 * *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수호수가 망치형상의 열매를 맺은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지만, 개중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바로 차진혁이었다.

‘어그로는 충분히 끌렸는데.’

이미 쇼츠영상은 찍었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일까.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에 랭크된 것을 물론이거니와 순식간에 조회수 10억을 달성했다.

‘나는 아직 목마르다!’

이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트리투리는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사실 트리투리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CB나 정령석을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까지는 고마운데, 그 이상의 조언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걸로 어떤 콘텐츠를 또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미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저도 저걸 먹어볼 수 있을까요?

‘먹는다고?’

미리와도 강한 정신적 결속이 느껴졌다.

미리는 지금 저 열매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마치 수호수가 정령석을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네, 저를 사용해서 저걸 깨주세요!

혹시 모를 부작용이 있을까 싶어 카트리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참고로 어제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

별사건은 없었고, ‘오빠가 조금만 약했어도 당장 우리 집으로 납치해 갔을 텐데’라는 해괴한 소리만 몇 번 들었을 뿐이었다.

사실 납치 시도 해주는 것도 엘튜브 각이 살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진짜 시도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카트리나가 뮬리누스와 함께 차진혁의 집을 찾아왔다.

“천장이 너무 낮군.”

거인족인 뮬리누스는 허리를 잔뜩 굽힌 채 돌아다녀야 했다.

자꾸 어이쿠! 어이쿠! 하고 전등에 부딪히곤 했는데, 차진혁의 어머니에게 크게 혼이 났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차진혁의 어머니는 뮬리누스가 차진혁의 친구인 줄 알았다.

당황한 뮬리누스는 머리를 긁적거렸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김철수의 친구?’

뮬리누스는 약간 긴장한 채 물었다.

“김철수. 우리는 친구인가?”

차진혁도 뮬리누스를 딱히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좋은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원만한 교우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어머니가 좋아하실 포인트 같았다.

“우리 정도면 친구 아닌가?”

“나는 예전부터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다.”

뮬리누스는 신이 나서 허리를 쭉 폈다가 이내 쾅! 하고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천장에 구멍이 났다.

* * *

카트리나와 뮬리누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한 번에 그냥 삼키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수호수가 정령석을 섭취했던 것처럼 조금씩 양을 늘려가는 게 좋아 보이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방식이 수호수가 정령석을 섭취하던 것과 비슷했다.

카트리나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수호수의 열매를 빻는 건 또 처음이네.”

“지금 시간이 좀 됩니까?”

“당연히 되지.”

트리투리가 말하길 이 정도 기술자는 몇 년 치 예약이 밀려 있다고 했는데.

콧대가 높아서 급작스러운 예약은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역시 트리투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가.’

옛날 기준을 가진 것 같았다.

차진혁은 또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았다.

시대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 기준만 고수하면, 트리투리처럼 뒤처지게 된다.

늘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좀 더 새 시대에 맞는 기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스트리머가 스트리밍만 하는 시대의 기준은 이제 벗어던져야겠지.’

스트리머가 칼도 좀 쓰고, 방어도 하고, 나무도 키우고, 강화도 좀 하고.

그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준 아닐까 싶었다.

참고로 스트리머가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는 양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대부분 레벨 100 언저리에 도태되어서 그렇지.

아무튼 카트리나는 수호수의 열매를 빻는 데 성공했고, 미리가 군침을 흘렸다.

-잘 먹겠습니다.

수호수의 열매를 섭취(?)한 미리의 몸에서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번쩍!

빛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연희동 주변 일대에 잠깐 전기가 끊겼다.

태양만큼 밝았던 빛이 사그라들자, 둥둥 떠 있는 미리가 보였다.

차진혁은 미리를 손에 쥐어보았다.

‘오.’

겉모양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아이템의 고유 스킬이 하나 생겨나 있었다.

“소소한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고유 스킬- 절대 방어]

차진혁은 왜 공격무기인 미리에 ‘절대 방어’와 같은 방어 계열의 스킬이 생겨났는지 솔직히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스트리머로서 시청자들에게 설명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호수, 미리, 환상검희는 저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환상검희가 망치를 든 건 미리의 영향이 컸고,

수호수가 자꾸 방어한답시고 마물들의 머리를 깨는 건 환상검희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수호수의 이상한 말투도 환상검희의 영향을 일부 받았던 거고.

‘아무튼 나 빼고 다 이상해지고 있다니까.’

“그리고 저에게는 절대결계라는 스트리머 전용 방어 스킬이 있죠. 아무래도 이런저런 것들이 모두 영향을 끼쳐서 이런 종류의 스킬이 생성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강화는 성공이었다.

다만, 뮬리누스는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김철수. 너는 지금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다!’

수호수 열매를 빻아서 강화의 재료로 만드는 건 카트리나가 했다.

마찬가지로, 미리의 강화는 강화의 장인이자 대장장이인 뮬리누스가 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김철수는 미리를 직접 휘둘러 강화를 성공시켰다.

아이템들 중 가장 강화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에고 아티팩트’였다.

자아가 있는 만큼 강화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걸 너는 직접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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