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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74화 (27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74화

“원래 제가 정령석에 대해서는 잘 모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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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석(광물)]

광물 속성의 정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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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속성의 정령석은 처음 봤다.

세상에 수많은 정령들이 있다더니 광물의 정령도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금속 계열의 정령석인 것 같네요.”

광물 속성의 정령석이 있다면 광물의 정령도 있다는 뜻인데,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희귀하다는 뜻이었다.

다만, 아까까지 삐져 있던 수호수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아주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걸?

-이 몸이 꽤 맛나게 잡술 수 있을 것 같으시도다.

-특별히 먹어줄 수 있으시도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정신적 결속감이 느껴졌다.

수호수가 엄청난 식욕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더 알아봐야겠지.’

트리투리가 그랬다.

체질이 안 맞는 정령석을 줬다가는 괜히 부작용만 생긴다고.

나무에다가 광물비료라니.

궁합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그걸 준다면 특별히 말을 잘 들어줄 의향이 있으시도다.

‘잠깐 기다려. 조금 알아보고.’

-아, 알아보긴 무엇을 알아본단 말이야? 어서 그걸 내게 줘어어어!

차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애가 투정을 부릴 때 다 받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차진혁은 수호수의 절규(?)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전문가를 찾아 물어봐야겠습니다.”

차라리 잘됐다.

암살자들의 습격 콘텐츠는 생각보다 너무 시시했으니까.

어중이떠중이들이 하도 몰리는 탓에, 진짜배기들은 나서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저 같아도 끼어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괜히 어중이 떠중이들과 함께했다가는 급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 테니까.

남들이 한다고 우르르 몰려드는 건 일류라고 할 수 없다.

“다음에는 일류 암살자가 저를 노리면 좋…….”

아니, 이거 아니지.

“좋은 콘텐츠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

말이 끝까지 나오질 않았다.

솔직히 일류 암살자들이 좀 덤벼주면 좋겠으니까.

하지만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차진혁이기에, ‘암살자들이여, 다 내게 오라!’라는 방송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우주급 시나리오도 진행해야 하고 늪지대 크루와 관련된 뒷배도 알아내야 한다.

‘암살자들이 자꾸 덤벼들면 정작 내가 진행해야 할 거대 콘텐츠를 진행을 못 해.’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아쉽지 않았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져서 그제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스트리머 보호조약의 보호를 받는 스트리머이니까요!”

* * *

차진혁은 광물 속성의 정령석을 들고서 종로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오빠!”

육감적이고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

종로 보석 상점의 주인 카트리나가 차진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요즘 아주 난리야, 난리.”

카트리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호호 웃었다.

“오빠는 날이 갈수록 더 섹시해지는 것 같아.”

“카트리나. 정령석에 대해서 좀 압니까?”

“귀금속을 다루는 상인 중에 정령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잘됐네요. 이거는 어디다 쓰는 겁니까?”

“어? 이건 광물 속성의 정령석이잖아? 엄청 희귀한 건데. 지구 서버에도 이게 풀렸었구나!”

얘기를 들어보니 광물 속성의 정령석은 몇몇 서버의 특산물이란다.

“뭐 다른 정령석이 대부분 그렇듯 정령을 소환하는 매개체로 많이 쓰기는 하는데, 광물 속성의 정령사는 아주 희귀해.”

“하긴. 저도 한 번도 못 봤군요.”

“기본적으로 광물의 정령 자체가 흔하지 않을뿐더러, 걔들은 별로 인간에게 협조적이지 않거든.”

“계약을 맺은 정령술사에게도 말입니까?”

“기본적으로 히키코모리들이라서.”

땅속에 숨어 있는 걸 좋아한다나 뭐라나.

결과적으로 광물의 정령은 인간에게 별로 쓸모있는 정령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 정령석도 그렇게 쓸모있는 편은 아냐. 보석을 제련할 때 빻아서 사용하면 좋기는 한데…….”

“가성비가 떨어진다?”

“그치. 이 정령석을 대체할 재료들이 요즘 너무 잘 나와서 말이야. 이 비싼 걸 하나 넣느니, 그냥 저렴한 여러 개 섞어서 쓰는 게 훨씬 효과가 좋거든.”

“그럼 이 정령석을 잘게 빻을 수는 있습니까?”

“당연하지. 보통은 다 그렇게 써.”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정령석을 빻아야 한다면 카트리나에게 의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음에 나랑 가볍게 술 한잔 어때?”

“그날 약속 있어서요.”

“언제라고 말 안 했는데?”

카트리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씨익 웃었다.

“저러니까 내가 뻑이 가지.”

* * *

아르비스로 이동한 차진혁은 곧장 트리투리를 찾았다.

처음에 얘기를 들은 트리투리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구의 수호수를 한번 봐달라고?”

“네, 부탁드립니다.”

“아르비스의 수호수를 보다가 지궁인지 뭔지 하는 곳의 수호수를 보면 내가 기분이 좋겠나? 게다가 요즘 아주 바빠.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것 같군.”

트리투리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차진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트리투리 님은 제 스승님 같은 분이시지 않습니까?”

“……뭐?”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트리투리가 자신을 제자로 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비록 부족하여 트리투리 님의 진전을 이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트리투리 님께 많은 배움을 받고 싶기는 합니다.”

“……크흠.”

“트리투리 님은 아르비스의 수호수를 키워내신 위대한 농부이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지.”

차진혁은 트리투리를 살살 달래며 대화를 이어갔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정식 제자가 될 수는 없어도, 저는 트리투리 님을 마음 속 스승님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흠……!”

“지구의 수호수를 한번 보시고 가르침을 주신다면, 그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기며 보다 나은 농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네가 정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결국 트리투리는 지구행을 택했다.

“그럼 보수는……?”

“보수는 무슨 보수!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러 가는 건데! 자, 얼른 가보자고!”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 * *

수호수를 살펴본 트리투리는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10년쯤 된 묘목이겠군.”

“…….”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수가 여기 심기기 전 9년쯤 자란 상태였었나?

“아주 잘 컸어. 정성을 다해 키워냈나 보구만.”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건 그렇지! 으하하핫!”

차진혁이 물었다.

“수호수가 자꾸 이 정령석을 자기 비료로 달라고 조릅니다.”

지금도 계속 정령석을 내놓으라고 칭얼대고 있었다.

“그걸 느끼고 있단 말이냐?”

“예. 이제 대화가 됩니다.”

“대, 대화가 된다고? 그건 분명 네 꿈이라고…….”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수호수와 대화하는 법도 가르쳐주셨잖아요.”

내, 내가 그랬던가?

트리투리는 혼란스러웠지만 냉큼 인정했다.

“하, 하긴, 그, 그랬지. 그, 그래서 수호수가 지금 말하는 게 들려?”

“예, 이걸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머리가 윙윙 울릴 정도로요.”

“머리가 윙윙 울릴 정도라고?”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수호수의 목소리는 모기처럼 작다고 했는데.

그래서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들어야 겨우 들린다고 했는데.

“예.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했더니 목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군요.”

“내 가르침이 역시 뛰어나긴 했나 보군.”

트리투리는 굳게 다짐했다.

이 녀석을 내 제자라고 소문내야겠다고 말이다.

트리투리는 수호수에 다가가 몸통을 매만졌다.

-이 영감탱이가 어딜 만져! 머리통을 콱 깨버……!

‘가만히 있어라. 안 그러면 이거 안 준다.’

-가만히 있는 것이 내 취미이시도다.

정령석으로 협박하자 수호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트리투리의 손길이 무척 거북하고 싫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너무 더듬는도다!

‘조금만 참아.’

트리투리는 수호수를 정성스레 만지며 깨달았다.

르세핌이 엘리를 보고 ‘격’을 느꼈듯, 트리투리 또한 수호수의 격을 느꼈다.

‘이 수호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수호수였다.

자신이 키워낸 아르비스의 수호수보다 더욱더 엄청난 수호수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한 번 더 확실하게 하지. 자네, 스승이 누구지?”

“그야 당연히 트리투리 님이죠.”

트리투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아버지. 제가 해낼 거 같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제자를 통해 이루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 제자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수호수를 키워내면, 그것이 곧 나의 성공 아니겠는가!

트리투리의 머릿속에서 대단한 수준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자, 제자야. 잘 들어라. 정령석을 빻는 건 아주 정교하고 어려운 일이다. 무턱대고 부쉈다가는 정령석 안에 담긴 정령의 기운이 다 날아가 버리니까. 제자는 이 난관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농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고, 트리투리는 뛰어난 조력자를 찾는데 무려 1년이 걸렸다.

“지금부터 시간을 천천히 가지고 훌륭한 조력자를 찾아보거라!”

“지금 당장 만들어 오겠습니다.”

“허허허!”

자신만만한 차진혁을 보며 트리투리는 옛 생각에 잠겼다.

‘나도 그랬었지.’

패기 넘치던 시절.

할아버지가 ‘좋은 조력자를 찾는 데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비웃었었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차진혁은 정말로 정령석을 곱게 빻아서 가져왔다.

“이걸…… 어떻게 해왔지?”

“제가 잘 아는 보석상점의 주인이 마침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나한테나 해주는 건 아닐 텐데?”

이런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은 콧대가 높다.

어지간해서는 의뢰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기술자들과 특별한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어떻게 기술자를 구슬렸느냐?”

“돈을 줬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렇게 특별할 건 없던데.

“다음에 밥이나 한번 먹기로 했습니다.”

“……그게 끝이냐?”

“예.”

트리투리는 황당한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겨우 그걸로 이렇게 정교하게 갈아주는 기술자가 있다고?

아무래도 그 기술자를 소개받아야 할 것 같았다.

트리투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스승으로서 엄정한 가르침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광물 속성의 정령석을 수호수에게 비료로 주기 위해서는 또다른 정령석이 필요하다. 바로 불의 정령석이지.”

불의 정령석은 광물의 정령석보다는 훨씬 구하기 쉽고 흔했다.

그러나 트리투리가 요구하는 건 한 차원 높은 것이었다.

“순도가 아주 높아야 한다. 수호수는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나무니까.”

순도가 높고 정순한 정령석을 구하는 데 분명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여기까지 가르침을 내려준 뒤, 그는 아르비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안 그래도 지금 일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트리투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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