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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64화 (26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64화

르세핌은 흥미로운 눈으로 환상검희를 바라보았다.

“방어신비라고, 저게?”

“어, 환상검희라는 신비야.”

“알아. 나도 환상검희 몇 번 봤어.”

‘방어신비라기보다는 적극적인 공격신비로 분류되는데?’

르세핌은 고개를 갸웃했다.

‘게다가 모양새가 좀 특이하네.’

그녀가 본 환상검희들은 대부분 깨끗하고 깔끔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보통은 하얀 색상의 검을 들고 있게 마련이었는데,

‘단정하고 우아하기로 유명한 환상검희가 왜 저렇게 피폐한 건데?’

지금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있어?’

아마 신비 소유자와의 동기화율이 굉장히 높은 것 같았다.

해금술에 이어 환상검희까지.

“신비와의 상성이 굉장히 좋은 육체를 타고났나 봐. 하지만 조심해. 아무리 뛰어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도, 너무 많은 신비를 익히면 서로 충돌하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되니까.”

콰아앙-!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걸음을 옮기던 르세핌이 다시금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방어신비라고?’

저렇게 살벌한 환상검희는 처음 봤다.

아무리 봐도 공격신비가 틀림없었다.

제일 어이없는 것은 사용자 본인이 방어신비라고 굳게 믿고 있는 저 모양새였다.

* * *

르세핌은 햄릿이 걸어 나온 공간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시간을 계속 끌고 있는 것 같아. 1번 늪지대 녀석이 원하는 게 뭐지?”

“…….”

뒤쪽에서는 환상검희와 햄릿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르세핌은 왠지 모르게 조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까까지는 분명 조잘조잘 떠들었었는데.

차진혁은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계속해서 멘트를 던지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으, 신경 쓰인다!’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이 이렇게 신경 쓰인 적은 별로 없었다.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랄까.

저 정도 생긴 애가 뒤에 있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라는 것을 그녀는 처음 알았다.

그녀는 결국 뒤를 돌아 묻고 말았다.

“도대체 뭐 해?”

“음.”

사실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고민 중이었다.

‘쟤 뒷모습을 따라 걸으면서 좀 무서운 BGM 깔면 긴장감 살지 않을까?’

적절한 긴장감 연출을 위해 잠시 침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마룻바닥을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이 삐그덕 소리를 극대화하면서 말이다.

차진혁이 물었다.

“네가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고?”

“뭐?”

진짜로 르세핌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본은 없었지만 이렇게 얘기해 보고 싶기는 했다.

‘르세핌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르세핌과 함께 플레이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던 그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 감정의 교류.

쾌락에 가까운 이 플레이의 경험!

‘만약 내 플레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깜짝 놀라거나 오히려 침묵하면서 긴장감을 끌어내 주겠지!’

이 진득한 교류를 이어가고 싶었다.

르세핌이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좀 수상하기는 하잖아. 아르비스의 랭킹 5위쯤 되는 추적 전문가가 1번 늪지대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마치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것처럼.”

“…….”

르세핌은 더욱 황당해졌다.

“1주일 만에 찾아냈잖아?”

“…….”

‘뭐, 뭐야, 저 눈빛은?’

차진혁의 눈빛은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뭘 새삼스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르세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건…… 그래.’

랭킹 5위에 안착한 이후로 벌써 5년이 흘렀다.

더 위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가지도 않고, 5위를 굳건히 유지 중.

다른 말로 하자면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차진혁이 계속 말했다.

“생각해 보면 좀 수상하기는 해. 1번 늪지대를 빨리 못 찾는 것도 그렇고. 랭킹 5위가 발 벗고 나서서 나 같은 초짜를 도와주는 것도 이상하고.”

르세핌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초짜라니?

물론 레벨이 좀 낮은 편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레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디온의 경비대장을 죽인 데다가, 자신이 쉽게 해금할 수 없는 결계마저 빠르게 풀어버렸고, 비록 인형이라고는 해도 신비만으로 햄릿을 상대하지 않았는가.

르세핌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준이…… 나와 달라!’

저 기준은, 오랜 옛날 르세핌의 기준이었다.

르세핌도 초심은 저랬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최상위 랭커가 된 이후 안일해졌던 마음이 다시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너 진짜 괜찮은 애구나.’

사실 개똥 같은 말을 해도 괜찮다고 느낄 거 같기는 했다.

누군가가 얼굴이 개연성이라고 말을 하곤 했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오늘 깨달았다.

“사실 나는 너를 눈독 들이고 있어.”

“나를?”

“가능하면 길잡이 쪽으로 전향시켜 보려고.”

“나는 길잡이 쪽에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는 못했는데.”

“겸손할 필요 없어. 나는 이미 다 알아봤으니까.”

“……어?”

“마침 나도 제자를 육성할 시점이기는 해서.”

르세핌이 히죽 웃었다.

차진혁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그래도 르세핌은 비교적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녀석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던 것 같다.

저런 웃음을 짓는 사람치고 제정신인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근데 말이야, 조금 서운하네. 미래의 배우자를 의심하다니?”

배우자? 저건 또 무슨 소리지?

제자를 뜻하는, 아르비스의 은어 같은 건가?

* * *

1번 늪지대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X…….”

그의 몸은 얇은 은사로 칭칭 동여 매어져 있었다.

그의 앞에는 사람의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거미가 걸어 다녔다.

거미는 입에서 은사를 계속 내뿜으며 1번 늪지대를 계속 돌돌 말았다.

‘그 X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아르비스 경비대의 추적을 받게 된 지금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르코엔 부인밖에 없었다.

하르코엔이 알려준 은신처로 숨어들어왔는데 이건 하르코엔의 함정이었다.

‘애초에 이 의뢰를 받아들이면 안 됐었다!’

1,000억에 눈이 돌아가서 욕심을 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3번 늪지대가 죽었을 때, 그냥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멈추지 않고 달리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몸이 뜨거워지는군.’

하반신 쪽에는 감각이 없었다.

하반신 대부분이 녹아내린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통증이 없다는 건가.’

저 거미가 내뿜는 은사에는 강력한 마취성분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거미의 이름은 ‘은사 타란튤라’.

더 정확히 말하면 은사 타란튤라 형상의 인형(?)이었다.

은사 타란튤라는 은사를 내뿜어 사냥감을 녹여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냥감을 녹여 액체로 만든 뒤 엑기스를 빨아먹는 습성을 지녔다.

‘증거도 남기지 않겠다, 이건가.’

은사 타란튤라는 하르코엔 부인의 수집품들 중 가장 강력한 개체였다.

살아 있을 때의 레벨은 무려 302.

레벨만 봤을 때 가장 강력하다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하르코엔 부인의 수집품들 중에는 레벨 300이 넘는 것들도 다수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들 대부분은 인간형이었다.

‘차라리 인간형이었으면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인간형 수집품들은 인형화 되는 순간, 모든 능력이 급락해 버린다.

인간은 끝없는 수련과 기술 연마를 통하여 강해지는 타입의 생명체.

높은 지능과 숙련도가 매우 중요한 개체였다.

인형화되면 이지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게 되므로, 살아생전 익혔던 대부분의 능력들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곤충형의 경우는 달랐다.

이런 개체들은 연마한 기술 같은 것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성과 지식보다는 본능을 따르는 개체였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쓸데없이 발버둥 치지 않아서 좋네.”

“살려주십시오.”

부채를 든 하르코엔 부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말했다.

“이미 너무 늦었어. 지금쯤이면 이미 상반신까지는 녹아내렸을걸? 감각은 없겠지만. 호호호.”

“제가…… 김철수를 잡아 올 수 있습니다.”

“일이 너무 커져 버렸잖아.”

하르코엔 부인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나를 여기서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리고…….”

“아니, 아니지.”

하르코엔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김철수에게 발견이 될 거야. 김철수는 영상을 찍고 있을 테니까.”

1번 늪지대가 사망하는 장면은 정확히 담아야 했다.

그래야 꼬리를 확실히 자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소중이를 가져가는 거지. 어때, 내 예쁜 계획이?”

“…….”

1번 늪지대는 속으로 욕했다.

‘변태 같은 X.’

왜 저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지도 알고 있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공포에 질린 모습이 보고 싶겠지.

그러면 아마 [재미있는 표정] 수집품 중 하나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일부러 얼굴만 남겨둔 채 칭칭 감아놓은 모양이군.’

표정이 담긴 얼굴은 수집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시간 계산을 철저히 했다고 자부하겠지?”

1번 늪지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틀렸어, 병X아.”

1번 늪지대는 알고 있었다.

“김철수는 늘 생각보다 빠르다.”

이건 김철수를 직접 상대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직감이었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을 하고 계획을 세워도, 김철수는 늘 그보다 빨랐다.

쾅!

벽면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1번 늪지대가 저기 있습니다.”

* * *

르세핌은 주변을 탐색했다.

‘분명 누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미세하게나마 바닥에 체온이 남아 있었다.

스킬로 족적을 읽어낸 르세핌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약한 부양마법을 사용했어?’

그래서 족적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추적하려면 못할 것도 아니긴 한데…….’

문제는 은사 타란튤라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1번 늪지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으읍…… 으읍!”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모양새였다.

목에 핏대가 솟고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1번 늪지대가 뭐라고 하고 있기는 한데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렵겠습니다. 레벨 300대 마물은 처음이군요.”

차진혁도 꽤 긴장했다.

“말하자면 이곳은 던전이었던 모양입니다. 여기가 보스룸이고요.”

“하읍, 하으으읍!”

1번 늪지대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내 뒤에는 하르코엔이 있다! 그 X이 몸통이다! 를 외치고 싶었으나 혀가 마비되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르세핌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1번 늪지대는 죽겠네. 우리도 빠져나가자.”

“이미 우리를 본 거 같은데?”

르세핌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아니, 우리를 본 게 아냐.”

처음부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쪽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그녀는 은사 타란튤라의 시선을 정확히 읽어냈다.

“김철수. 너를 노리고 있어.”

“그래 보이네.”

하읍! 하으으읍!

하르코엔이다! 하르코엔이 널 노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1번 늪지대의 목소리는 차진혁에게 닿지 않았다.

은사 타란튤라가 차진혁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르세핌.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뭔데?”

“하르코엔이 뭐냐?”

“뭐?”

“아니, 내가 알기로 저거 은사 타란튤라거든? 근데 시스템 설정상 하르코엔의 애완거미라고 되어 있어서.”

1번 늪지대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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