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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63화 (26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63화

차진혁이 물었다.

“혹시 결계를 푸는데 특화된 능력 같은 게 있으면 어때?”

“미안하지만 나는 추적 전문이라 해금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냐.”

물론, 어중간한 랭커들보다는 뛰어난 편이었지만 르세핌 역시 최상위 랭커.

그녀의 기준은 굉장히 높은 편이어서 본인의 해금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한테 해금술이 있거든.”

말을 하는 차진혁은 약간의 섭섭함을 느꼈다.

물론, 우주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플레이하다 보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 것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르세핌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스트리머잖아.”

“스트리머지.”

“스트리머가 해금술을 왜 익혔어? 상성이 별로 안 좋을 텐데?”

르세핌은 오히려 약간 실망한 모양새였다.

떠오르는 신성 스트리머에 대한 기대가 조금 낮아진 느낌이었다.

“상성?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

“잘 들어. 사람의 몸과 정신은 하나야.”

르세핌은 차진혁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더 앞서나간 최상위 랭커로서,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모든 직업과 신체. 그리고 능력에는 각각에 맞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상성이 좋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르세핌은 최상위 랭커로서 많은 말을 이어갔다.

워낙 진지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차진혁도 속으로 약간의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해금술이랑 나랑 안 맞는 거였나?’

이것도 약간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다.

여태까지 해금술과 자신의 상성이 무척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생각보다 꽤 훌륭한 결과를 내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주급 랭커가 보기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겨우 이 정도로 잘 맞는다고 보는 건 너무 지나친 자신감이었나?’

아무래도 기준을 더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우주급 랭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지.

새로운 관점을 만나게 되어 또 많이 배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떨어지겠지.”

르세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래, 고마워.”

차진혁은 르세핌의 말을 나름대로 신뢰했다.

‘어차피 실패하겠지.’

만약 그가 결계술사였다면 슬펐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스트리머였다.

스트리머로서 본분만 다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서 했으나 잘 안 됐다…… 라는 내용도 뭐 나쁘지 않지.’

다행히 이번 콘텐츠의 컨셉은 압도 같은 게 아니었다.

이번 콘텐츠는 나름의 기승전결과 스토리라인이 존재했고 그 와중에 열정이 돋보여도 나쁘지 않은 연출이 될 것이었다.

‘좀 더 멋있고 비장하게 해보자.’

왕유미가 그랬다.

오른손의 흑염룡을 풀어낼 때는 적극적이고 마음껏 풀어내라고.

“원수의 목전을 향한 여정을 가로막는 자여.”

굳이 미리를 들어 올릴 필요는 없지만 미리를 들어 올렸다.

미리에서 은빛 광채가 새어 나와 꽤 위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내가 명하노니. 무너져라.”

최선을 다해 미리를 휘둘렀다.

콰지지직!

미리와 결계가 부딪치며 뇌전이 일었고,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안 되겠지?’

결계가 해제되었다.

* * *

르세핌은 조금 놀랐다.

“아주 특별한 형태의 해금술을 가지고 있나 봐.”

“그래?”

“보통의 해금술은 그런 주문 같은 걸 외우지 않아도 되거든.”

르세핌은 아직 차진혁의 컨셉을 잘 몰랐다.

“아무튼 그 정도 능력의 해금술을 가지고 있다니, 운이 엄청 좋은 편이네.”

차진혁은 르세핌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내 해금술이 되게 특별한 해금술이었던 거구나.’

“내가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야?”

“그렇게 특별한 해금술은 보통 상성을 많이 따져.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들과 충돌을 자주 일으켜서 결계술사들도 좀 꺼리는 신비거든. 해금능력이 뛰어날수록 까다로운 편인데……. 네 것은 이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성을 별로 따지지 않고 있어. 엄청 특별하고 희귀한 케이스야.”

“사실 행운과 관련된 신비도 갖고 있거든.”

“역시.”

참고로 차진혁의 해금술은 그냥 평범한 해금술이었다.

어쨌든 결계는 파훼 되었고 르세핌과 차진혁은 성안 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성 내부에는 꽤 고전적인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화살이 날아오네.’

르세핌은 이렇게 자잘한 함정들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해 주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알아서 피할 수 있지? 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고, 차진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게 팀플레이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능력을 알고 최적의 효율을 보여주는 플레이.

그 와중에 꼭 언질이 필요한 부분은 소통을 해주었다.

이를테면 레벨 250급에 해당하는 쇠뇌가 날아든다든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르세핌과 다른 공간으로 분리될 수 있는 분리 결계라든가.

이런 부분은 미리 주의를 주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기는 했다.

“극독 묻은 창이 튀어나오는 구조 같아.”

이렇게 쓸데없는 경고도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맞을게.”

“야! 미친놈아!”

그에 따라 이렇게 쓸데없이 놀라기도 하고 말이다.

어쩔 수 없기는 했다.

아직 호흡을 맞춘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어. 창날은 절대결계로 막으면 되고, 사왕급 이하 독은 나한테 안 통하거든.”

“……그렇다고 그 독을 그냥 맞아?”

“어, 왜?”

“아무것도 아냐.”

아르비스 서버 출신의 르세핌이 보기에 차진혁의 플레이는 상당히 기상천외했다.

보통 해독제가 있다거나 독 저항이 있다고는 해도, 그걸 굳이 일부러 맞아가며 플레이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되게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고전적인 함정들을 파훼해가며 전진하던 르세핌이 말했다.

“왠지 우리의 발목을 좀 묶어놓는 기분인데.”

“너도 그렇게 느꼈어?”

“너도?”

둘의 눈이 마주쳤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 짜릿한 일이었다.

적어도 차진혁에게는 그랬다.

우주급 플레이어와의 팀플레이는 차진혁에게 묘한 쾌감과 설렘을 선사해 주었다.

차진혁 입장에서는 그랬고 르세핌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쟤, 사실 길잡이 아냐?’

* * *

성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방 하나를 마주쳤다.

차진혁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어, 여기는…….”

차진혁과 르세핌이 동시에 말했다.

“보스룸?”

“일종의 보스룸 같은 느낌이네요.”

르세핌은 조금 더 황당해졌다.

무슨 스트리머가 공간을 보자마자 보스룸을 떠올린단 말인가.

이건 길잡이 계열 능력자들이나 느낄 수 있는 직관인데 말이다.

처음에는 황당과 충격, 그리고 이후에는 약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쟤 레벨 아직 250도 안 됐다고 했지?’

250이 넘어간 이후로는 전직이 힘들다.

물론 250 이후에 전직하여 대성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아주 극소수.

‘사실 네 재능은 길잡이인 것 같아!’

만약 길잡이로 진로를 튼다면?

저 특별한 해금술과 시너지가 훨씬 더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정말로 우주급 랭커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었다.

‘진지하게 제안해 봐야겠어.’

길잡이 계열, 아르비스 서버 랭킹 10위 내에서 제자가 없는 사람은 르세핌뿐이었다.

‘나도 이제 슬슬 제자를 받을 때가 됐잖아?’

아르비스 서버에 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도 발급해주고.

정식 제자로 채택해서 몇 년 정도 키우면 시민권도 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결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기 멀리, 철문이 하나 있네.”

끼이이익-

쇳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차진혁과 비슷한 키, 상반신을 탈의한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상체에 흉터가 가득했다.

“어라?”

르세핌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아!”

“아는 사람이야?”

“어. 10년 전에 실종된 무투가.”

태어나면서부터 천재라 불렸던 무투가.

무투가로서 명성을 높여가던 중, 겨우 열여섯의 나이로 실종되었다.

아르비스의 수많은 사람들이 천재 무투가의 실종을 안타까워했다.

“20년 정도 지나면 우주 최상위 랭커가 될 거라고들 했었는데.”

르세핌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서 이곳에서 탈출할 준비를 했다.

저 소년이 정말 햄릿이라면 승산이 없었다.

실종된 후 벌써 10년이 흘렀다.

얼마나 강해졌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로 햄릿의 정보를 읽어냈다.

“레벨은 290인데, 특별한 설정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멈춰 버린 시간. 움직이는 인형…… 이네요.”

그 말에 르세핌은 다시 한번 햄릿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눈에 이지가 없었다.

‘움직이는 인형?’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르비스에는 인형 수집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마치 진짜 사람 같은 인형을 수집한다나 뭐라나.

“르세핌. 우리 쟤랑 싸워야 하는 건가?”

“아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지. 지금 여기엔 전투 계열 플레이어가 없잖아. 뭐, 물론 네가 디온의 경비대장을 죽일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건 알지만…….”

르세핌은 햄릿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자꾸 시간을 끄는 것 같아서 찝찝하단 말이지.”

“아, 그러면 시간을 끌지 않으면 되는 건가?”

“그렇겠지. 하지만 힘들 거야. 햄릿은 무투가 중에서도 방어능력이 무척 뛰어난 무투가였거든. 일례로 12살에 그보다 상위 체술가의 공격을 45분 동안 성공적으로 방어해…….”

차진혁은 이미 햄릿에게 접근하여 미리를 휘두르던 중이었다.

사실 차진혁은 지금 약간 화가 난 상태였다.

그는 이제 의도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방송멘트를 내뱉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적으로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르세핌은 뛰어난 눈썰미로 저 인형이 ‘인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을 인형화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반인륜적인 패악이었다.

‘하긴. 화가 날 수 있는 문제지.’

차진혁이 미리를 휘둘렀다.

햄릿이 팔을 들어 올려 미리를 막아내는가 싶었는데,

빠각!

미리가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 햄릿의 관자놀이를 쳤다.

번쩍!

은빛 섬광이 터져 나오고,

빠각!

차진혁이 재빨리 추가타를 적중시켰다.

“이 피지컬을 이렇게 쓰다뇨?”

이쪽을 향해 걸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레벨에 비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숙련된 체술가는 온몸에, 체술가다운 기운이 녹아 있기 마련이었다.

김정현과 수많은 대련을 치러왔던 차진혁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차진혁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너무 약합니다.”

차진혁은 진심을 담아 미리를 휘둘렀다.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햄릿이 튕겨 나갔다.

‘저 피지컬로 이걸 못 막는다고?’

실력 없는 놈이 조종하는 건가?

아니면 전투지능이 낮은 건가?

아무튼 이유는 상관없었다.

그저 화가 많이 날 뿐이었다.

르세핌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내는 이유가…… 저게 맞아?’

르세핌의 의문을 뒤로한 채, 차진혁이 계속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저런 나약한 소프트웨어를 가진 인형과 싸우는 건 저에 대한 모욕이죠. 저는 직접 싸우지 않겠습니다. 다행히도, 저에게 저와 비슷한 능력을 낼 수 있는 신비가 있죠.”

몇 번 부딪쳐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햄릿, 아니 인형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거대한 망치를 든 타락천사가 히죽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의 머리를 깨부숴 주지, 라는 말을 하면서.

믿음직한 방어신비에게 이곳을 맡기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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