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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61화 (26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61화

검은 제복을 입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진혁은 짧게 감탄했다.

‘오.’

그들의 움직임은 은밀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을 깜빡하니 눈앞에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이들 같았다.

‘레벨이 다들 290대네.’

과연 아르비스는 아르비스였다.

타 서버 가면 290대를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말이다.

‘심지어 매니저도 290대고.’

경험해 보니 물레벨일 가능성이 높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레벨 290이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참고로, 회귀 전 지구 출신 중에서는 그 누구도 290레벨대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특수 경비대가 나타나자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마시멜로였다.

“아니, 잠깐만. 제국 특수 경비대가 이런 변방 중소도시에 온다고?”

마시멜로는 아르비스 내에서도 랭킹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스트리머계열 플레이어였고 경비대원 중 몇은 마시멜로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굳이 아는 체하지는 않았다.

“너를 디온 경비대장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한다.”

특수 경비대 셋이 차진혁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나머지가 마시멜로에게 다가갔다.

“혹시 방송 중입니까?”

“당연히 방송 중이지.”

특수 경비대가 차진혁을 함부로 제압하지 못한 이유였다.

“공적인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나도 내 플레이를 하는 것 뿐이다.”

“……플레이를 막을 권한은 없습니다만, 임무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책임을 지셔야 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은근한 협박이 담긴 말이었으나 마시멜로는 코웃음 쳤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음모다!”

방송 제목도 바꿨다.

[음모론]

“하필이면 딱 지역 경비대가 1층에서 대기 중이었고, 하필이면 딱 특수 경비대까지 모습을 드러냈네? 이건 윗선의 개입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요?”

마시멜로 방송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는 특수 경비대장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혹시 이자의 지인 혹은 관련자입니까?”

“흥, 그럴 리가. 얼굴도 오늘 처음 봤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방해하시는 겁니까?”

마시멜로는 방송송출을 아주 잠깐 중단한 뒤 말했다.

“엘튜브 각이잖아.”

그리고 방송송출을 재개한 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건 정의롭지 못해 보여서!”

* * *

차진혁은 체포되었다.

‘오…….’

체포와는 별개로 약간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어그로 제대로 끌리겠다.’

아르비스 출신이 아닌 스트리머가 아르비스에서 인기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들은 아르비스의 콘텐츠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소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상황은 꽤 반가운 것이었다.

‘노이즈 마케팅!’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히죽 웃고 말았다.

차진혁을 체포한 경비대장은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웃지 마라, 살인자야. 당장이라도 머리를 깨버리고 싶으니.”

차진혁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순히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차진혁은 비행차 뒷자리에 앉아 근처 경비대로 이송되었다.

특수 경비대의 대장은 약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일반 경비대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지?’

특수 경비대가 체포한 인물은 특수 경비대로 이동하는 게 원칙.

‘이자는 일반 경비대의 대장을 직접 살해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

물론 운이 따라줬을 것은 분명했다.

저 정도 레벨로 경비대장을 압도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경비대에서 감당하기 힘든 범죄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우리가 현장에서 직접 잡았는데?’

그런데도 왜 일반 경비대로 이송하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마시멜로의 말대로 어쩌면 음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깊게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

그는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차진혁의 팔목과 발목을 특수 쇠사슬로 단단히 결박한 뒤에, 일반 경비대의 유치장에 수감했다.

마시멜로가 경비대를 찾아왔다.

마시멜로 역시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아무래도 윗선이 개입된 거 같습니다.”

마시멜로의 방송이 전 우주에 송출되었다.

* * *

[1등 시민, 살해되다]

[타 서버 플레이어에게 살해당한 경비대장]

[용의자는 지구 출신 스트리머 플레이어]

차진혁의 예상대로, 이번 사건은 아르비스 내에서도 꽤 큰 이슈가 되었다.

경비대원들이 증언했다.

“놈은 자신을 팬이라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을 호텔 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파렴치한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희는 여인의 비명을 들었고 곧장 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배가 보이는…… 여인이 침대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늦었어도 아마 큰일이 났을 겁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증언했다.

스트리머 김철수가 자신의 팬인 릴링을 강제추행 하려다가 사고를 친 것이라고.

김철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김철수는 어느새 파렴치한 성추행범이자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마시멜로가 방송까지 진행하면서 사건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마시멜로가 제기한 음모론.]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우연인가?]

[마시멜로, “이 음모를 반드시 밝혀낼 것.”]

한편, 일이 예상외로 너무 커지자 하르코엔 부인은 화를 잔뜩 냈다.

“그깟 200 초반대 플레이어 하나 제대로 못 잡아 와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1번 늪지대는 약간 항의하고 싶었다.

놈이 레벨을 속이지 않았습니까!

270대였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요.

“……이만 이번 일에서 손 뗄까요?”

1번 늪지대로서도 이번 의뢰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차진혁에 대한 복수를 끝낼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계약금은 환불 조치 해드리겠습니다.”

“그깟 계약금이 문제야!”

1번 늪지대로서도 하르코엔 부인의 반응은 의외였다.

사실 이 정도로 사건이 커지면 일단은 덮고 지나가는 것은 일반적이었으니까.

“나는 김철수를 가져야만 해.”

“…….”

“그건 내 예쁜 보물이라고.”

결국 하르코엔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이면 잠잠해질 테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재개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기회 봐서 빼내 오겠습니다.”

호송 과정에서 납치했다면 최고였겠지만, 강직한 특수 경비대장을 구워삶기는 힘든 일.

그래서 일단은 일반 경비대의 유치장에 가둬놓았다.

기회를 봐서 빼내오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철수랜드들이 등판하면서 사건의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 *

[우주의 철수랜드들아, 마시멜로에게 힘을 줘!]

마시멜로는 임시 메일을 오픈하여, 김철수와 관련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백과사전이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김철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이 내가 김철수 따위를 돕는 거로 보여?”

“어, 그렇게 보이는데.”

“그냥 엘튜브 각이라서 그런 건데?”

“그런 거로 하자.”

백과사전은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과사전이 보는 마시멜로는, 평소 엘튜브 찍을 때보다 훨씬 의욕 있어 보였다.

“어디 보자……. 와 이거 메일 다 읽지도 못하겠다.”

이미 메일이 수만 통 가까이 쌓여 있었고 실시간으로 늘어가는 중이었다.

“일단 한번 볼까?”

[철수 오빠는 아무 죄도 없어요!]

[철수 님은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요!]

“영양가 개뿔도 없는 메일이 많이 오네.”

그러던 중, 특별히 [VIP] 메일이 도착했다.

내가 VIP요! 라고 주장하듯 메일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시멜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임시 메일함에 VIP 설정을 따로 한 적이 없는데?”

게다가 이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메일이라니?

임시 메일함에 이런 설정도 있었나?

[안녕하세요, 저는 철수랜드 1호 김민지라고 합니다.]

김민지는 2번 늪지대의 C.B와 관련된 영상을 첨부했다.

[아마도 릴링은 C.B에 감염된 것 같아요. 그쪽으로 파고들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우리 철수 님을 꼭 도와주세요.]

마시멜로는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중이었고, C.B와 관련된 내용도 방송에 담았다.

* * *

차진혁이 체포된 지 3일 후.

대반전이 벌어졌다.

[마시멜로의 음모론, 사실로 드러나나?]

[부당한 횡포의 희생자, 김철수?]

그것은 한 사람의 제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저는 SSP 스트리밍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주무관, 케서린입니다. 사건 이틀 전, 김철수에게 SSP 스트리밍 허가를 내준 장본인이며, 이번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릴링의 오랜 친구이기도 합니다.

케서린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

-저는 릴링의 오랜 친구로서, 김철수에게 행정적 편의를 봐준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빨리 나설 수 없었습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업무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철수의 편의를 봐주어 허가를 내준 것을 사과했다.

-릴링은 김철수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선착순에 밀려, 공식 철수랜드 번호를 부여받지 못한 것 때문에 3일 밤낮을 울었을 정도입니다.

릴링의 퉁퉁 부은 눈과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동영상 속 케서린은 릴링을 놀리고 있었다.

그까짓 번호 못 받은 게 뭐 그렇게 대수냐며 놀렸고, 릴링은 뿌우우우-! 화를 내며 울고 있었다.

-저는 릴링의 아주 친한 친구이며, 릴링을 위하여 사소한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SSP 공식 영상을 녹화는 이틀 후 자정부터 시작하지만, 본인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임시 녹화권한을 발급하였습니다.

엘튜브 업로드가 불가한 임시 녹화권한을 설정해 주었다.

-이 영상은 제 서버에 자동으로 전송되며, 저는 이 영상을 훗날 릴링에게 선물해 줄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분명한 제 월권이며 이에 관련하여 책임질 것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케서린은 울면서 말을 이었다.

-김철수를 위한 모든 증거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김철수에게 전해주세요. SSP 영상들 중 아르비스 폴더에 관리자 권한으로 숨겨진 영상이 있습니다. 그 안에 모든 진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은 마시멜로가 직접 유치장에 있는 차진혁에게도 전해줬다.

“야 너 대박이다. 증거 영상 있다는데?”

“…….”

“표정이 왜 그러냐?”

소식을 전해 들은 차진혁의 기분이 별로 좋 아보이지 않았다.

“……어그로 좀 더 끌고 싶었는데.”

“뭐?”

“엄청 이슈 되고 있잖아.”

“……너 설마, 비밀리에 녹화되고 있는 거 알고 있었냐?”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몰랐겠냐?”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비밀리에 영상이 녹화되고 있다는 것을.

명상을 하면 아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아르비스의 일 처리는 굉장히 진보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많았다.

“권리자 권한으로 숨겨져 있었다던데?”

“……대충 숨겨놨나 보지.”

명상하니까 쉽게 보였다.

마시멜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잠금도 되어 있을…… 아, 너 해금술 있지?”

“한 2~3일 정도만 시간 더 끌었으면 좋았을걸.”

마시멜로는 깨달았다.

‘이 새끼는 미친놈이구나!’

차진혁은 얕은 한숨을 내쉰 뒤 영상 복사본을 마시멜로에게 보여주었다.

“네가 공개할래?”

“네가 안 하고?”

차진혁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말했다.

“아직은 네가 하는 게 더 파급력이 클 거 같아서. 이슈도 잘 되고.”

“…….”

차진혁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졌고, 마시멜로도 그 표정에 덩달아 살짝 긴장했다.

차진혁이 방송에 진심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꼈고, 이제부터 나올 말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그래, 말해봐라.

선배로서 네 생각을 주의 깊게 들어주지.

마시멜로는 경건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차진혁의 말을 기다렸다.

“대신 내 이름 꼭 언급하고 내 채널 홍보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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